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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산 6 | 나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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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베 단편소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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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산 6
2019-12-01 오전 11:35 조회 916추천 3   프린트스크랩

고갯길을 올라가는 근수의 발걸음이 무거웠다.
충청도의 알만한 사찰을 모두 찾아가 보았으나 가족의 발자취는 없었다.
이제는 강원도 쪽으로 발길을 옮기는 중이었다.
배가 고팠다.
점심을 거른 상태였다.
길옆에 밤톨이 몇 개 떨어진 것이 눈에 띠었다.
얼른 주워서 껍질을 벗겨 깨물었다.
아드득하면서 떫고 달콤한 맛이 느껴졌다.
연거푸 서너 개를 깨먹자 속이 조금은 차는 듯했다.
전에 아내가 구워주던 밤 맛이 생각났다.
저녁을 지으면서 밤톨 몇 개를 아궁이 속에 넣어서 구워온 것이었다.
얼굴에 그을음을 묻혀가면서 먹던 그 군밤 맛을 어찌 잊을 수가 있으랴!
군밤을 생각하자 더욱더 배가 고팠다.
고갯길을 오르는 동안 내내 먹을 것만 생각했다.
고개를 넘고 주막에 다다르면 실컷 음식을 시켜먹겠다고 다짐했다.
 “그래, 결핍이 없으면 소원도 환희도 없는 것이다. 항시 배부른 자가 어찌 음식의 맛을 알겠는가?”


강원도를 절반 이상 헤맸으나 가족들의 소식은 어디에도 없었다.
초조한 마음이 들었다.
저녁밥을 먹는 둥 마는 둥 몇 숟갈을 뜨고는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잠이 오지 않았다.
이상하게 배가 아팠다.
배가 꼬이는듯했다. 일어나 앉았다.


전에는 이렇게 아플 때면 아내가 바늘로 따주었었다.
아내는 바늘에 실을 꿰어 앞섶에 꽂고는 근수의 옆자리에 앉았다.
우선 등을 주먹으로 몇 대 친 다음에 양손바닥으로 배와 등을 동시에 문질렀다.
아내의 따스한 손길에 이미 절반쯤은 배 아픈 것이 가라앉는 것 같았다.
이어서 양 손으로 근수의 왼팔을 어깨 쪽부터 손가락 쪽으로 쭉쭉 훑어 내렸다.
왼손 엄지손가락까지 훑은 다음에는 앞섶에 꽂았던 바늘을 빼어서 바늘에 걸린 실로 엄지손가락 밑 둥을 동여매었다.
그런 후에 바늘을 머리에 몇 번 문지르고 나서 근수의 엄지손톱 위의 가운데 부분을 톡 하고 찔러 제쳤다.
따끔했다.
겁 많은 근수는 고개를 돌린 채 얼굴을 약간 찡그렸다.
검붉은 피가 한 방울 배어 내왔다.
헝겊으로 피를 제거한 다음에는 자리를 바꾸어 이번에는 오른손을 따 주었다.
양 손을 모두 따고 나면 신기하게도 트림이 나며 막혔던 배가 시원하게 뚫리는 것이 느껴졌다.


근수는 아내의 따스한 손길을 생각하며 그저 아픈 배만 수 없이 문지를 수밖에 없었다.


경상도 길로 접어들은 지도 오래였다.
어디선가 달콤한 냄새가 났다.
누군가가 엿을 고는 모양이었다.


근수네 옆 동네에서도 엿을 고는 데가 있었다.
무슨 볼일이 있어선지 그 동네에 아내와 함께 갔던 근수는 그 달콤한 냄새를 맡고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아내에게 갱엿을 한 근 사달라고 졸랐다.


근수는 어릴 때부터 이 동네에 자주 드나들었던 터라 전에도 갱엿을 먹어본 적이 있었다.
묽은 조청을 계속 다려서 진하게 만든 다음에 한 국자씩 퍼서 바닥에 놓으면 진한 갈색의 갱엿 덩어리가 되었다.
갓 퍼 놓은 갱엿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났다.
엿 장사들이 파는 가래엿은 이 갱엿을 가지고 만든다.
어느 정도 식은 갱엿을 사다가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서로 잡아당겨서 늘인 다음에 다시 합치고 다시 늘리기를 반복한다.
그러면 갱엿에 공기가 들어가 엿의 색깔이 차츰 차츰 하얗게 변하면서 가래엿이 된다.
 이 가래엿을 목판에 싣고 다니면서 파는 것이다.


“아니, 입에 풀칠하기도 바쁜 요즈음에 무슨 엿 타령이에요.”
아내가 톡 쏘아댔다.
 따끈한 갱엿을 한 입 베어 물 기대에 부풀었던 근수는 아내의 매정한 반대에 그만 머쓱해졌다.
눈에 뜨이는 자갈돌을 왼 발로 힘껏 차 날렸다.
“제기랄”


풀이 죽어서 걷는 근수의 목덜미가 근질근질했다.
무슨 벌레가 날아와 앉은 모양이었다.
오른 손 바닥으로 탁 하고 목덜미를 때렸다.
그런데 근수의 손에 잡힌 것은 벌레가 아니고 아내가 문질러댄 강아지풀이었다.
“이런, 뭐하는 짓이야.”
화를 내며 근수가 악을 썼다.


아내와 더 크게 싸운 적이 있었다.
 아들 녀석이 저지른 잘못에 대하여 근수가 크게 소리쳐 꾸짖은 다음이었다.
“당신은 아이를 사랑할 줄 몰라요.”
“뭐라고, 내가 아이를 사랑할 줄 모른다고?”
근수는 어이가 없었다.
자기 나름으로는 아들을 사내답게 키운다고 큰 소리 친 것을 가지고 사랑타령이라니.
 아들이 태어난 때는 엄동설한의 섣달 새벽이었다.
 근수는 집을 나섰다.
하얀 입김을 뿜으며 어두컴컴한 동네 길을 걸었다.
 앞 들판에 나서서야 날이 훤해지기 시작했다.
마음이 훈훈해서 그런지 겨울의 추위가 전혀 괴롭지가 않았다.
아침 햇살을 받은 뒷동산의 봉우리들이 근수를 축하해주는 듯이 보였다.
들판을 가로지른 내를 건넜다.
가장자리는 얼음이 얼어있었지만 물살이 센 가운데는 바지를 걷고 물에 빠져 건너야했다.
 아무리 차가운 냇물도 근수의 기쁨을 억누르지는 못했다.
나는 듯이 시오리 길을 걸어가 읍내 장터에서 미역을 사가지고 돌아왔다.


얼마나 애지중지하고 사랑해온 아들인가? 그런 근수의 마음을 모르는 아내가 미웠다. 크게 말다툼을 하고 싸운 이후로 거의 사흘 동안 서로 말을 걸지 않았던 기억이 났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내와 싸운 것이 모두 자기 잘못인 것처럼 생각되었다.
왜 그 때는 좀 더 너그러운 마음을 갖지 못했을까?
후회가 되었지만 아내가 눈앞에 없는 현재에는 사과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럭저럭 남해의 물가에 닿았다.
파도가 밀려왔다가 밀려갔다.
해안가에는 온통 동글동글한 돌들이 깔려있었다.
파도가 지나갈 때마다 이 돌들이 서로 부딪치어 와그락 와그락 소리를 냈다.
 “그렇다, 저렇게 서로 부대끼며 아웅다웅 싸우는 것도 서로에게 도움이 되겠다.
가볍게 싸우면서 서로의 모난 부분을 계속 닳아지게 하는 것이다.
세월이 가면서 서로는 둥글고 원만한 자세를 갖춰가겠지.
 만약 예의를 차리느라고 부딪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큰 충격에 서로 반 토막이 날 수도 있을 것이다.
아, 언제나 아내를 다시 만나서 티격태격 싸워볼 것인가?”


전라도의 절들을 대부분 돌아다녀 봤지만 가족의 흔적은 찾을 길이 없었다.
계절은 벌써 봄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하루 종일 비를 맞고 돌아다녔더니 다리가 몹시 아팠다.
저녁을 먹고 여관방에 누웠다.
전에 집에서는 아픈 다리를 한 채 방안에 누우면 아내가 옆에 누워서 한쪽 다리를 올려놓았었다.
안마를 하는 것이 아닌데도 다리가 무척 시원하였다.
아내의 다리가 무겁다고 느껴질 때쯤 이제는 반대로 근수가 아내의 몸에 다리를 올려놓았다.
다리는 더욱 시원하였다.


온종일 내리던 비가 그친 모양이었다.
바깥에서는 낙숫물 소리가 퐁당 퐁당 들리었다.
근수는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이리 뒤척 저리 뒤척 밤을 지새웠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몇 가닥 핀 개나리꽃에 진눈깨비가 쌓여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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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판돈이다 |  2019-12-03 오전 12:04:21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그 간 잘 읽었습니다.
당분간 바둑도 광장도 접을라고요.
나머지는 바쁜거 끝나면 들러 읽겠습니다.
건투와 건강을 빕니다.  
짜베 고맙습니다.
바쁘시군요.
하는 일이 모두 다 잘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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