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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베 단편소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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벡빈정식
2019-03-16 오후 5:22 조회 1137추천 2   프린트스크랩

백반 정식


아침에 운동을 하는데 딸애가 말했다.
 “ 나 오늘 나가야돼”
“그래? 몰랐었는데.”
“전에 말했잖아 토요일 날 약속 있다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야, 오늘은 자유이다. 점심 때 마음 놓고 술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아내에게 체조를 시켰다.
뇌출혈 후유증으로 약을 먹고 있는 아내에게 고지혈증과 간에 대한 약이 추가되었다.
전에 체조를 시켰다가 귀찮아서 그만두고 간간이 산책만 시켰었는데 다시 체조를 시켜야만 할 처지가 되었다.
체조를 시키고 내가 하고 있는 운동인 기천의 기본 동작까지 시키면 금상첨화겠지만 아내가 따라오지를 못해서 기천 문 운동은 포기하였다.


월곡동 뒷산을 올랐다.
왼쪽으로 삼성 래미안 아파트와 대우 푸르지오 아파트를 두고 주욱 올라갔다.
쑥이 한창 새싹을 내놓고 쥐똥나무의 움이 피어나고 있었다.


장위중학교를 지나서 왼쪽 길로 접어들었다.
 오른쪽 길로 계속가면 우리가 늘 가는 월곡정에 이른다.
거기에는 커피를 파는 아주머니가 있다.
우리는 커피를 마시면서 서울의 전경을 내려다보는 것이 일상이었다.


가파른 길을 내려갔다.
겨울에 눈이 오면 다니기가 무척 어려운 길이 분명하다.
하지만 눈이 올 때는 우리는 이 길을 절대로 내려가지 않는다.
길옆에 노란 꽃이 보였다.
내가 외쳤다.
“어, 벌써 개나리가 활짝 피었네?”
아내가 말했다.
“개나리가 아니야.”
정말 자세히 보니 개나리가 아니었다.
가는 덩굴 끝에 핀 꽃은 개나리가 아닌 것이 분명하였다.
무슨 꽃인지 궁금하였다.
아내가 복수 초 같다고 말했지만 나중에 인터넷을 찾아보니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언덕을 내려가고 신호등을 지나서 음식점에 도착하였다.
전에 몇 번인가 와본 곳이었다.


6천 원짜리 백반정식을 두 그릇 주문하였다.
벽에는 바지락의 효능에 대한 글이 씌어져 있었다.
그걸 본 아내가 다음에는 반드시 바지락 수제비를 시켜야겠다고 말했다.
음식이 나왔다.
음식이 나오는 것을 보며 나는 막걸리 한통을 주문하였다.


밥과 국, 방풍나물 무침, 콩나물무침, 고구마 순 무침, 멸치볶음. 배추 겉절이, 달걀프라이, 깍두기가 나왔다.
막걸리를 한잔 따라 마시고 깍두기를 한 점 입에 넣었다.
아드득 아드득 깍두기가 입안에서 녹아났다.
적당히 익은 깍두기의 맛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밥을 한 숟갈 떠서 입에 넣었다.
풋풋한 향기와 함께 밥알 한 알 한 알이 다이아몬드처럼 입안에서 빛난다.
어릴 때 유성 외갓집에서 먹던 햅쌀밥 맛이다.
고실 고실하고 고소한 햅쌀밥,
 ‘우릉 우릉 우릉 우릉’ 벼 타작을 하고난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햅쌀밥이 등장했다.
그 햅쌀밥을 무청 동치미와 같이 먹던 날은 무척 행복했었다.
외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나는 그 때 외할아버지를 오할아버지 라고 불렀다.
충청도 사투리일 것이다.
청주 한 씨에 택자 수자 인 오할아버지는 시골 훈장이셨다.
과거를 보는 옛날 이었다면 관찰사는 물론이고 영의정까지 할 수 있었다는 할아버지의 장담을 우리는 그저 비웃음으로 넘겼었다.
오할아버지는 주역으로 점을 치셨다.
인근은 물론이고 대전에서도 손님들이 찾아왔었다.
나는 점을 치는 옆에서 먹을 갈고는 푼돈을 챙겼다.


오할아버지는 나에 대한 기대가 크셨다.
어린 나이에 천자문과 동문선습을 순식간에 띄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눈이 침침한 할아버지는 내가 연필로 책 옆에 희미하게 토를 달아놓았다는 사실은 알지 못하셨다.


어느 날인가 된통 혼난 적이 있었다.
화가 난 나는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버텼다.
할아버지는 나를 달래서 학교에 데려가셨다.
 할아버지의 고명을 익히 알고 있던 담임선생님은 할아버지에게 외손자에 대한 칭찬을 입에 발리게 늘어놓으셨다.
집에 돌아오면서 할아버지의 가슴에 큰 광명이 깃들었던 것이 지금도 느껴진다.


그 때 학교에서는 책읽기 시합이 있었다.
책을 틀리지 않게 읽는 시합인데 내가 늘 반에서 일등을 차지하였다.
단순히 시력과 발음의 문제인 것 같은데 담임선생님의 의견은 달랐다.
“OO이는 평상시에도 늘 사물에 대하여 깊이 생각을 한다. 그래서 책을 잘 읽는 것이다.”


그 때가 나는 3학년 때인데 4, 5학년 반에서 담임선생님이 출장을 가셔서 수업이 비면 내가 늘 그 자리에 차출이 되었다.
선배들은 나에게 우선 노래를 한 마디 부르라고 독촉했다.
나는 ‘죽장에 삿갓 쓰고’ 같은 유행가를 부르고 구수한 옛날이야기로 선배들을 한 시간 동안 즐겁게 해주었다.


밥과 함께 먹는 된장국도 일품이었다.
콩나물과 우거지에 된장을 풀어 넣은 국인데 어찌 그리 심심하면서도 감칠맛이 있는지.


막걸리를 또 한잔 하고는 이번에는 방풍나물과 멸치볶음에 젓가락이 간다.
된장에 무친 방풍나물이 남해바다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중간크기의 멸치를 쪼개서 볶은 멸치볶음은 반잔이 아니라 하나의 고급요리이다.
입안에서 잘근 잘근 씹히면서 건건한 맛이 우러나온다.
전에 ‘탐라’란 소설에서 죽방멸치에 대해서 쓴 적이 있는데 이것이 그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죽방멸치는 들어만 봤지 보지도 먹어보지도 못했지만 말이다. ㅎㅎ.


달걀프라이는 거의 없어져 버렸다.
아내가 거의 다 먹어버렸다.
아내는 유난히 달걀을 좋아한다.
집에서 잔치국수를 끓였을 때도 아내는 내 그릇에 있는 달걀을 거의 다 걷어가 버린다.
나는 그저 내버려두지만 딸내미는 가만두지 않는다.
건강에 좋지 않다는데 왜 자꾸 욕심을 부리냐 면서 나 까지 싸잡아 비난한다.
“문제는 아빠야. 아빠”


도톰하게 불은 고구마 순이 처음에는 고사리로 보였다.
고사리 치고는 색깔이 옅다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고구마 순이었다.
부드러운 고구마순은 좀 더 과장하면 입안에서 녹아나는 것 같았다.
몇 번 씹으면 곧 입안에서 풀어졌다.
 반면에 콩나물 무침은 아삭아삭하고 상당히 씹는 맛이 느껴졌다.
막 자란 것을 뽑아왔는지 전혀 질기지가 않았다.


밥 한 숟갈에 배추 겉절이 한 잎 베어 먹는 것도 참 멋있는 조합이다.
사실 이것 하나만 해도 밥 한 그릇은 뚝 딱 해치울 것 같다.
어머님이 무쳐주던 겉절이 맛이다.


밥이 조금 남아있는데 아내가 물었다.
“다 먹었어?”
먹고 싶다는 눈치였다.
당연히 아내에게 남은 밥을 양보하였다.
아내는 밥그릇에 물을 부어 남은 밥을 맛있게 먹어치웠다.
아픈 아내의 제 일 순위는 먹는 일이다.
전두엽이 훼손되어서 그런지 일차적인 본능이 아내의 의식을 지배한다.
전에 아내가 한 말이 생각났다.
“오래 오래 살아서 맛있는 것 많이 먹어야지.”
아내의 소원을 꼭 들어주고 싶다.


계산을 하면서 주방장 아주머니를 불렀다.
 “여기 음식은 반찬이 아니라 하나하나가 모두 고급요리입니다.”
주방 아주머니와 서빙을 하는 아주머니가 안심한 듯 얼굴 표정을 환하게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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