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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 ( 마사시 1 ) | 나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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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베 단편소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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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 ( 마사시 1 )
2017-06-08 오전 11:07 조회 1654추천 2   프린트스크랩
 

마사시 중위가 탄 순양전함 기리시마는 1941년 11월 18일 히로시마만을 출항하였다.
자매함 히에이와 함께였다.
기리시마는 공고 급 순양전함이었다.
공고 급 순양전함은 공고, 히에이, 하루나, 기리시마로 모두 네 척이었다. 기리시마는 히에이와 함께 제 3전대를 구성하고 있었다.
어디로 향할 것인지는 비밀이었다.
동복과 하복이 동시에 지급되었다.


기리시마는 히도카프만에 잠시 정박하였다.
히도카프만에는 전함과 순양함, 구축함 이외에 항공모함도 여러 척이 정박해있었다.
 마시시는 무언가 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항공모함 아카기의 함상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했다 온 기리시마의 함장이 장교들을 불러 모았다.
 “우리는 진주만을 공격할 것이다.”
장교들이 웅성거렸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마사시는 가슴이 떨리고 자기도 모르게 두 주먹이 쥐어지는 것을 느꼈다.
저녁때에는 모든 승조원이 배에 설치된 신사에 절을 하고 공격의 성공을 기원했다.


진주만 공격부대는 1941년 11월 26일 새벽 6시에 히도카프만을 출발하였다.
공격대의 사령장관은 나구모 주이치 중장이었다.


이미 겨울로 접어든 날씨에 연료절약을 위하여 난방을 하지 않는 관계로 함 내는 상당히 추웠다.
장병들은 모두 두꺼운 옷을 입고 생활했으며 샤워도 찬물도 했다.
그러나 이런 불편에도 불구하고 장병들의 사기는 충천해있었다.


12월 4일 오전까지 전 함정에 급유가 이루어졌다.
급유를 마치자 급유함이 떨어져나갔다.
공격이 임박했다는 느낌이 마사시의 온 몸을 감쌌다.
아니나 다를까 11시 40분이 되자 Z기가 나구모 제독의 기함 아카기에 올랐다.
공격이 곧 시작된다는 신호였다.


1941년 12월 7일 6시 10분쯤에 뒤따라오던 항공모함들에서 비행기들이 이륙하여 기리시마의 상공을 지나갔다.
 180여대의 전투기, 폭격기, 뇌격기들이 떼를 지어 남쪽으로 향하는 광경이 장관을 이루었다.
 까마득하게 높은 함교에서 이들을 지켜보던 마사시는 잠시나마 비행기 조종사가 되지 못한 것을 후회하였다.
 90분이 지난 후에 또 다시 160여대의 비행기들이 남쪽으로 향했다.
기리시마에서는 모든 승조원이 전투태세로 배치되어 적의 공격에 대비하였다. 마사시는 포술장의 명령에 따라 언제든지 즉각 함포를 발사할 수 있도록 부하들을 독려했다.


6시 30분에 기리시마에서 수상기 한 대가 사출되어 남쪽으로 날아갔다.
수상기들은 히에이와 중순양함 도네와 치쿠마에서도 한 대씩 사출되었다.
이들은 오아후에서 일본함대를 향하여 북상하는 미군의 함정이나 비행기를 감시할 것이었다.


오전 10시가 지나자 공격에 나갔던 비행기들이 돌아오기 시작하였다.
 함 내에는 이미 공격이 성공했다는 소식이 퍼져있었다.
모든 승조원들이 환호하며 만세를 불렀다.
12시가 지나자 모든 공격기들이 돌아온 것 같았다.
일본의 함정들은 북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철수를 시작하였다.
강대국 미국에 공격을 퍼부어 성공을 거두고 돌아가는 것이었다.
함포 한발도 쏘아보지 못한 마시시는 다소 아쉬운 점이 있었지만 자랑스러움에 온 몸이 뿌듯하였다.


일본군은 진주만을 공격하는 동시에 남방작전을 전개하여 말레이와 필리핀을 침공하였다.
공격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1942년 1월 12일 쿠알라룸푸르를 점령했고, 2월 15일 싱가포르를 지키던 영국군 사령관 퍼시발 중장의 항복을 받아냈다.
싱가포르를 점령하자 일본 전역은 축제무드에 들떴다.
흥남비료공장에서도 직원들에게 술과 떡이 내려졌다.
히로시 이하 연구소의 전 직원들이 하루를 흥겹게 즐겼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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