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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 ( 강화도 5 )
2017-05-24 오전 10:06 조회 3608추천 3   프린트스크랩


금당 협에서 타격을 받은 몽골군은 여주로 일시 후퇴하였다가 다시 남하하여 충주 성 주변의 촌락과 산야를 초토화 시키는 한편 충주성과 좋은 짝을 이루는 천룡산성을 공격하려고 이를 포위하였다.
천룡산성의 방어는 황려현령 정신단과 방호별감 조방언이 맡고 있었다.
이들은 몽골의 대군이 성을 포위하자 겁을 먹고 항복을 하였다.


배후의 위협을 제거한 몽골군은 총대장인 예케의 지휘아래 1개월에 걸친 총 공격을 개시하였으나 김윤후가 지휘하는 충주성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막대한 피해를 입은 몽골군은 원수인 예케마저 병에 걸려 평주로 이동하고 충주성 공격은 부장인 아모간과 홍복원이 맡았다.
이들은 70여 일 동안 끈질기게 공격을 하였으나 충주성을 함락시킬 수 없었다.
이 때 충주성에서는 화살과 돌들이 바닥나고 군량과 마초가 다 떨어진 상태였다.
김윤후는 사졸과 백성들을 불러놓고 “만일 힘을 다한다면 귀천을 가리지 않고 모두 관직을 내리겠다.”고 말하며 관노의 부적을 불사르고 몽골군에게서 노획한 소와 말을 나누어 주었다.
용기백배한 고려군은 성문을 열고 나가 몽골군을 공격했다.
혼란에 빠진 몽골군은 포위를 풀고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고려군이 충주성 전투에서 승리하자 몽골군의 경상도 쪽으로의 진출은 좌절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에 고무된 고려군의 각지에서의 유격전술에 몽골군은 골머리를 앓게 되었다.
1253년 11월 중순에는 교위 장자방이 교동의 별초군을 이끌고 밤에 평주에 주둔하고 있던 몽골의 본진을 기습하여 다수의 몽골 병들을 살상하였다.
장자방은 짧은 칼로 몽골군 10호장 20여명의 목을 베었다.


충주성 전투에 실패하고 고려 유격 군들에게 괴롭힘을 당하자 몽골군은 고려의 협상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고려 국왕 고종은 임시로 지은 승천부의 궁궐로 나와 예케가 보낸 몽골사자들을 영접함으로써 출륙한도의 모양을 갖추었다.
그리고 안경공 창이 국왕을 대신하여 입조의 길을 떠나자 몽골군도 철수를 단행하였다.


몽골군이 철수한 후 고려조정에서는 몽골군에게 항복한 천룡산성의 방호별감 조방언과 황려현령 정신단을 해도에 유배시켰다.
그리고 기타 몽골군에게 항복한 여러 장수들에게도 모두 중벌을 주고 이들이 지휘하던 군현을 하급 행정단위로 강등시키거나 폐지시켰다.
또한 고려를 배신한 이현의 가산을 몰수하고 이현 자신은 큰 거리에서 조리돌린 다음 처형하였다.
그의 아들들은 모두 바다에 빠뜨려 죽이고 누이들과 사위는 섬으로 유배시켰다.


몽골의 대칸 몽케는 왕자의 입조만으로는 만족하지 않고 국왕의 출륙과 입조를 요구하면서 이현을 처참하게 처벌한 것을 트집 잡아 재차 고려에 침입하였다.


몽골의 정동원수 자랄타이(차라대)는 척후기병대를 먼저 내려 보내고 남진을 계속하여 8월 22일 보현원에 도착하여 고려의 임시수도인 강화도를 압박하였다.
고려조정은 보현원에 사신을 보내 강화를 요구하였으나 자랄타이는 이를 묵살하고 남하하여 충주성 공략에 나섰다.
순기는 이종수와 함께 충주성에 도착했으나 김윤후 장군이 더 위태로운 상주성을 도와주라고 해서 상주산성으로 내려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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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베 |  2017-05-24 오전 10:11:28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여행때문에 오월 말까지 연재를 쉴까합니다. 6월 2일부터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지금은 이야기가 다소 지루하나 앞으로 재이있는 일도 많이 벌어지니 기대하십시오.  
취팔선 |  2017-05-24 오후 9:10:1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흥미진진하게 읽고있습니다 ^^ 즐거운 여행 다녀오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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