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 ( 강화도 4 ) | 나도 작가
Home > 커뮤니티 > 짜베
짜베 단편소설

작가의 말


 이 글의 저작권은 작가에게 있습니다. 저작권자와 협의하지 않은 무단전재는 금합니다.
탐라 ( 강화도 4 )
2017-05-23 오전 10:30 조회 3609추천 3   프린트스크랩


남하하던 예케의 서군은 8월 초순 황주에 도착하였다.
서군은 병력의 일부를 쪼개어 별동대를 삼아 황해도의 안악에 있는 양산성을 공격하였다.
양산성은 사면이 깎아지른 절벽이었고 사람과 말이 겨우 통행할 수 있는 하나의 통로만 있는 천혜의 요새이었다.
방호별감 권 세후는 요새의 험준함을 믿고 방비를 게을리 하였다.


몽골군이 사자를 보내 항복을 권유하였으나 권 세후는 단호히 거절하였다.
몽골군은 양산 성에 대규모 발석 차 공격을 가하는 한편 험한 벼랑을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불화살을 퍼부어댔다.
민가가 불에 타자 고려군이 혼란에 빠진 틈을 타 몽골군이 성내로 난입하였다.
권 세후는 목메어 자살했고 끝까지 저항하던 4700여명의 고려 장정들이 모두 화를 당하였다.


별동대를 양산성에 보낸 예케의 본진은 금천에 이르러 금교 홍안등지에 병력을 주둔시켰다.
이 때 고려의 교위 대금취는 1253년 8월 7일 우봉별초 30인을 이끌고 휴식중인 몽골군에게 야습을 감행하여 수 십 명의 몽골군을 살상하고 몽골군을 혼란에 빠뜨리었다.
이들은 전리품으로 말, 활, 화살, 털가죽 옷 등을 거두어갔다.


고려군의 야습을 두려워한 예케는 300여명의 척후기병대를 조직하여 전라도로 내려 보냈다.
중부지방과 남부지방의 연락을 끊고 본대의 남진을 자유롭게 하려는 술책이었다.
그러나 이 척후기병대는 전주성 남쪽 반석 역에서 고려의 삼별초지유 이주의 공격을 받아 절반이상이 죽고 말 20여 필을 빼앗겼다.


몽골의 서군은 척후기병대를 따라 남하하다가 병력의 일부를 강화도의 맞은편인 풍덕, 통진 일대에 전개시켜 강화도를 위협하고 본진은 광주에서 동군과 합세하여 여주를 거쳐 충주로 진출하였다.


몽골군의 척후대가 접근한다는 첩보를 접수한 충주성에서는 군사를 내보내어 적군을 급습하기로 했다.
창정 최 수가 나섰다.
강 순기와 이 종수도 따라갔다.
고려군은 성을 나와 금당 협으로 향했다.
매복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었다.
일단의 몽골군이 접근하고 있었다.
몽골군 뒤에는 포로로 잡힌 200여명의 고려 백성들이 있었다.
맨 앞의 적을 이 종수가 활로 쏘아 맞혔다.
고려군이 계속 앞 쪽의 몽골군에게 활을 쏘는 동안에 창과 칼을 든 고려군이 포로들과 몽골군 사이를 가르고 나섰다.
순기의 검이 번득일 때마다 몽골군의 팔 다리와 목이 떨어져 나갔다.
몽골군은 죽자 사자 도망쳤다.
몽골군이 모두 도망친 다음에 보니 목이 떨어져 나간 몽골군이 15명이었다. 최 수 일행은 포로로 잡혔던 백성들을 데리고 충주 성으로 개선하였다.

(계속)

┃꼬릿글 쓰기












* 띄어쓰기 포함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000 / 400바이트)
대국실입장하기
다운로드 이용안내 고객센터
정회원가입
오로볼구매
가장 많이 본 기사
스폰서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