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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 여행기(5편)
2017-05-22 오후 7:12 조회 3716추천 3   프린트스크랩

여행기를 게재하면 독자들 중에, 해외 체류 국가나 여행한 국가가 한국과 비교하여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알려달라고 하는 분이 있다. 이번 편을 시작하기 전에 오지리가 한국인과 다른 점을 약간 알려드릴까 한다.

 

요사이 한국은 대기 오염 때문에 걱정이 많다. 오스트리아(오지리)가 서울보다 좋은 점 중에 하나는, 공기가 맑다는 점이다. 미세먼지와 같은 공해물질이 많지 않기 때문에 장기간 차량을 세워놓아도 차 위에 먼지가 앉지 않는다. 세차는 눈이 오고 나서나 흙탕물을 뒤집어 썼을 때 일년에 서너 번만 해도 충분하다.

 

최근 비엔나 시는 이태리 수도 로마 시와, 로마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를 비엔나 시에서 유상 처리해주는 계약을 체결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쓰레기 처리 비용은 종량제로 계산하여 받게 된다고 한다.

 

비엔나 시는 자체 보유한 쓰레기를 소각하여 발전하는 폐열 병합 발전소에 필요한 연료 중 비엔나 시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만으로 다소 부족하여 고민하던 차에 로마 시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를 돈을 받고 소각 처리하면서 안정적으로 연료를 확보하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두게 되었다고 한다. 로마 시는 연간 1,200만 유로 정도(150억원)의 쓰레기 처리비용을 비엔나 시에 지불하게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는데 자체적으로 처리하는 데는 그 비용이 2,500만 유로 정도를 써왔고 그나마 수거되는 쓰레기를 소각하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 적체되는 쓰레기로 고민하던 문제가 저렴한 비용으로 해결되게 되어 두 나라(도시)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합의라고 한다.

 

 독일이 통일 되기 전 적지에 고립되어 있던 서 베를린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를 가난한 동독 정부가 돈을 받고 인수한 후 처리하는 협정을 체결하여 시행해온 관례가 통일이 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음을 확인한 적이 있다.

 

또 한가지는, 여기 사람들은 자동차를 운전하는 동안 전화를 하거나 문자를 확인하는 일, DMB 같은 것과 같이 교통안전에 방해되는 행위를 하는 사람을 좀처럼 보기 힘들다. 신호대기처럼 무료한 대기 시간에도 한눈 파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 주변에 경찰이 있는 경우가 극히 드물어서 누가 감시하지 않음에도 스스로 법규를 지키는 준법정신이 높다. 이들 국민성은 법을 안 지키는 사람이 오지리에 있다면 내가 그 장본인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각자가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 사는 곳이니 그런 위반자가 있어도 필자가 못 본 것인지도 모르지만, 혹시 있다고 하더라도 한국과 비교한다면 1/1,000 정도가 아닐까 싶다. 그렇더라도 한국이 오지리보다 더 좋은 점은 헤아릴 수도 없이 많다. 외국을 너무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여행사를 통한 단체 여행이 아니라 개별 여행을 하면,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정해준 음식이 아니라 자기가 선택해서 먹을 수 있는 점이 개별 여행의 장점 중 하나인 것만은 분명하다. 단체 여행을 가면, 여행사가 계약한 음식점을 이용해야 하고 이런 음식점들은 여러 여행사와 계약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손님이 겹치는 경우가 많아서 손님 대접이 소홀할 수도 있고 또한 다음 손님을 위하여 자리를 비워줘야 하기 때문에 느긋하게 앉아서 식사 시간을 즐기는 여유를 갖기도 어렵다. 때론 해외 여행을 나왔다면 그 지역의 향토 음식을 먹어보고 싶은 데 해외에서 까지 한국 동포가 운영하는 한국 식당과 계약을 한 관계로 선택의 여지 없이 한식을 먹어야 하는 경우도 경험하셨을 것이다.

 

우리 가족은 사전에 인터넷을 통하여 딸 내외가 미리 예약을 한 현지 식당을 찾아가서 식사를 했다. 그런데 필자 개인 생각은 미리 식당까지 예약했다가 먹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다. 막상 예약을 한 곳을 찾아가려면 차로 이동해야 할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시간도 더 걸리고, 대단한 음식일 것으로 기대를 하고 갔는데 다른 식당과 다른 특색도 없으면서 광고한 값 한다고 다른 곳보다 비싼 경우도 경험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예약 시간에 맞춰서 가야 하기 때문에 관광에 지장을 초래할 수도 있다. 차라리 관광을 하다가 배가 고프면 지나가다가 식당이 깨끗하고 분위기 좋으며 기호에 맞는 음식 샘플과 가격표까지 전시된 식당을 골라서 선택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고 가격도 쌀 수 있다. 식당을 미리 예약하는 것은 비추천이다.

 

두브로브니크에서 시청한 TV 프로는 미국 영화와 드라마 일색이었다. 이 나라가 얼마나 영어 교육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지는 미국 영화를 자국어로 더빙한 후에 영어 자막을 넣어서 방송할 정도였다. 덕택에 귀가 나쁜 외국인들이나 영어를 아는 관광객들은 이해하기가 쉽다.

 

두브로브니크를 여행하면서 느낀 소회는, 겉으로 드러난 현지민들의 얼굴 표정만 봐서는 극히 평온한 모습이지만, 그들과 국가, 이념, 독립과 같은 정치적 토론을 하는 과정에서, 최근에 전쟁을 치른 나라의 국민들에게는 하나 같이 전쟁의 트라우마가 남아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특히나 침략국 세르비아나 몬테네그로인들에 대한 가슴에 사무치는 적개심이 절절함을 보면서, 우리 국민을 도륙(屠戮) 낸 북녘의 김정은 집단에게 적개심은 커녕 환상을 갖거나 아무런 감정이 없는 조국의 일부 젊은이들은 생각하면 착잡한 심정을 금할 수 없었다.

 

불과 30여년전만 하더라도 단일 국가, 단일 국어를 사용하던 사람들이 여섯 개 제각기 다른 민족국가로 갈라지고 민족어를 새로운 국어로 채택함에 따라 국가 정책으로 과거의 국어를 망각하도록 만들어서 젊은 세대로 갈수록 같은 나라였던 유고 연방의 국어로는 의사소통이 안 되는 세대가 점차 늘어나고 있음을 목도하면서, 우리가 해방 후 급속하게 일본과 단절하여 의도적으로 일본어 사용을 금기시한 결과, 우리 국민들이 국제적인 외교나 통상교역에서 유용하게 활용할 수도 있고 저절로 얻어진 지적 자산인 일본어란 외국어 자산을 너무 쉽게 망각해 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말을 하면 당장 친일파라고 매도하는 것이 한국의 풍토지만 그런 사람들까지도 영어, 불어, 일본어, 중국어 등 외국어를 능통하게 하는 사람을 보면 부러워하는 경외심을 마음 한 구석에 갖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튿날 아침 모처럼 숙소에서 쌀밥을 짓고 라면을 끓여서 아침 식사를 마친 우리는 다음 목적지인 자그레브를 향하여 북상하면서 중간에 있는 관광명소 자다르(Zadar)를 구경하기로 오늘 일정이 잡혀있다. 다른 숙소와 달리 지난 밤 묶은 이 숙소에는 커피포트가 있어서 출발 전에 모닝 커피까지 타 마시고 0915 분에 숙소를 나섰다. 

자다르가 어디인지 감을 잡을 수 있도록 다시 한번 지도를 올린다. 자다르는 둘째 날 구경한 스플리트에서도 100 여분을 더 북상해야 하는 크로아티아 북서 해안에 위치한 관광지이자 휴양지로 이름 난 명소다. 인구 78,000 여명으로 우리 기준으로는 도시 축에도 들지 못할 정도의 규모지만 이 나라에서는 5번째 큰 도시다.

 

 

Republic of Croatia - vector map 공화국 크로아티아의-벡터 지도입니다. 크로아티아 지도학 벡터파일

 

 

 

 

 

 

 이 도시는 1차 세계대전 결과 1920년 라폴로 조약에 의거 이태리 영토가 되어 이태리의 통치를 받다가 2차 대전 중에는 연합군의 공격으로 도시의 상당 부분이 파괴되었으며 종전 후 1947년 파리 조약에 의거 크로아티아로 환원된 도시이다. 1991년 크로아티아 독립 전쟁 당시 세르비아는 크로아티아 지역에 대하여 두 개 방면으로 쳐들어왔는데 두브로브니크 외에 나머지 한 곳이 자다르이었다. 크로아티아 내 소수민족인 세르비아 계 민병대가 주축이 된 유고 연방군 침략세력과 크로아티아 방위군 사이에 치열한 교전을 벌어졌으나 크로아티아 군 수비망은 뚫리지 않았고 크로아티아는 결국 이 도시를 지켜냈다.  

 

두브로브니크에서 자다르까지는 5시간이 넘게 걸리는 장거리 여행이다. 오후 3시경에 자다르에 도착한 우리는 시내의 명소들을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자다르대학과 아드리아해

                       자다르 아드리아 해변가에 위치한 자다르 대학 전경

 

여행을 하는 모든 도시들이 제각각의 특색이 있고 아름다웠지만 그중에서도 자다르는 더욱 그러했다. 이 도시가 접한 아드리아 해의 야자수 그늘 아래 카페의 의자에 앉아 시원한 맥주나 진한 커피 한잔을 앞에 놓고 있으면 시인이 아니어도 시상이 떠오르고 작곡가가 아니어도 악상이 떠오름직한 낭만적 도시다. 이렇게 축복받은 도시에서 불과 얼마 전에 피비린내 나는 살육전이 벌어졌다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자다르 시내 중심가를 구경하는 동안 한국인 관광객들도 두개 팀 정도를 만났다. 우리가 이 도시를 굳이 보려는 이유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보기 힘든 일몰 즈음에 이 도시의 해안가에 접한 방파제에서 일어나는 자연현상을 보기 위해서 이었다. 

 

부둣가 방파제의 적당한 곳에 차를 주차한 우리는, 해가 질 때까지 이 곳 저 곳을 배회하다가 아드리아 해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넓은 광장에 자리잡은 예약된 식당을 찾아가서 식사를 했다. 문어, 오징어로 만든 갖가지 해산물 요리에다가 이색적인 것은 문어, 낙지의 먹물을 쌀에 섞어서 튀겨낸 검은 쌀밥이란 별미를 먹었다. 석양을 품에 안고 흑맥주를 반주로 하여 먹은 것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대부분 서양 관광객들인 옆 테이블에 앉은 손님들이 우리와 눈이 마주치자 ‘ 하이 !’ 하고 손을 흔들어주는 여유는 언제나 마음을 여유롭게 해준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왔던 길을 되돌아서 아열대성 나무들로 숲을 이룬 가로수 길을 따라 다시 연안 부두로 나갔다.  손 한 뼘 길이 만큼 남은 이글이글 타오르는 태양으로 미뤄보아 앞으로 20 여분 이내에 해가 질 것 같다.

 

선창가 여기 저기에는 현지인들이 방파제에 자리잡고 앉아서 견지 낚시를 하고 있는데 이제 막 시작을 한 것인지 잡은 고기를 가둬놓는 어망에는 고기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으니 아직 개시를 못 한 것 같다.   선창가의 바다에는 누군가가 마시고 나서 버린 술병 두 개가 병 모가지만 물 위에 내놓고 물결이 밀리는 데 따라 정처 없이 떠 밀려 다니고 있었는데 금방이라도 가라앉을 것처럼 위태 위태 해 보이는데 가라앉지 않고 버티어 내는 모습을 보니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네 인생을 많이 닮아 보인다.


 

 

그 순간 저 멀리서 피아노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오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하여 집결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오늘의 쇼가 시작된 것이다. 적어도 4~500명은 넘는 인파가 몰려들었다. 사람이 치는 피아노 소리가 아니었다. 바닷물이 여울이 질 때마다 밀려들고 나가는 파도의 압력에 의하여 방파제 밑에 설치된 파이프 오르간이 저절로 내는 소리였다. 파도의 강약에 따라서 눌러지는 건반이 다르고 강약도 자동 조절이 되는, 자연의 소리였던 것이다. 썰물이 밀물로 바뀌면서 물결이 더욱 거칠어지자 피아노인지 오르간인지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사뭇 분노의 광상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신이 제멋대로 작곡한 광상곡은 어떤 규칙도 없이 귓전을 때릴 때 죄 많은 인간에 대한 나무람인지 누구 한 사람 그 자리에 있던 관객들은 기침 소리도 내지 못할 정도의 경외심에 나는 소름이 돋았다.




               태양광 팬널 위에서 신이 나서 점프를 해 보이는 손자 녀석

자연이 만들어준 연주회는 20분을 넘지 않았다. 신의 섭리인지 밀물, 썰물의 조화인지 어느 시점이 되니 더 이상 건반 악기는 소리를 멈췄다. 그 때였다. 방파제 바닥에 설치된 드넓은 고강도 아크릴판에 형형색색의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기를 반복하던 영롱한 불빛은 어느 시점이 되자 더욱 강하게 비추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그 위에서 활보를 하거나 점프를 하기도 하고 아기들은 아예 그 위에 드러누워서 바닥을 고사리 손으로 만지곤 했다. 아크릴 판넬은 석양이 발산하는 태양광 발전 장치로 태양열에 의하여 자동 발광이 이뤄지는 것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이 장소를 기념하기 위하여 너도 나도 사진기 셔터를 누르는 것이었다.  여럿이 뒤엉켜서 사진을 찍는 와중에 뭇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미녀가 있었다.  이 나라 제일의 미녀 모델이 석양을 배경으로 상업용 사진을 찍는 것이라고 했다. 뭇 사내들의 야릇한 시선에도 아랑곳 없이 요염한 포즈를 취한 모델을 놓고 전속 사진사가 사진을 찍는데,  그래서는 아니 되는데 관광객들도 그 모델을 대상으로 셧터를 마구 눌러대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보안요원들이 접근하여  찍은 사진을 전부 지우도록 하는 것이었다. 선창가 방파제 그 넓은 공간에 이런 장치를 만든 것은 누구의 아이디어일까?  자연을 이용하여 이런 인공시설을 만들어서 관광객을 유치하는 번뜩이는 지혜가 부럽다.  

 

 

내가 어린 시절 낚시를 하기 위하여 늘 거닐었던 제주시 서부두(西埠頭) 방파제에도 이런 시설을 설치하면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지금도 밀려드는 관광객 열풍으로 돈을 버는 것은 좋지만, 삼다도/삼무도란 별칭을 갖고있는 제주도가, 대륙의 무법자들에 의하여 환경이 파괴하고 범죄의 온상이 되는 공해요인만 또 하나 만드는 것은 아닐까 하고 원주민들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닐 테니 다 좋은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자그레브에서 그리 멀지 않은 폴리트비체에 예약한, 오늘 하루밤을 머무를 숙소로 가려면 3시간 정도 야간 주행을 해야하는 관계로 1940 분에 자다르를 출발하여 고달픈 여정을 밟아나갔다. 가도 가도끝이 없는  어둠만이 깔린 밤길은 고행의 길이다. 지금쯤 어디를 달리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오로지 네비 하나에 의존하고 초행길을 달리다 보면, 내가 왜 이 고생을 하는지 때론 외로움이, 공포와 함께 엄습하기도 하고 고국, 대한민국이 그리워진다. 자정이 가까워서야 목적지에 이상 없이 당도하였다.

 

6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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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베 |  2017-05-22 오후 10:00:4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좋은 구경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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