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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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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 ( 강화도 3 )
2017-05-22 오전 9 조회 3569추천 2   프린트스크랩


마침내 몽골군이 몽케 칸의 숙부인 예케를 원수로 삼고 아모간과 홍복원을 부장으로 삼아 고려를 침략하였다.
예케는 고려의 사신으로 온 이현이 탐욕스러운 성품임을 간파하고는 황제의 금패를 내려 회유하였다.
회유에 넘어간 이현은 고려의 약점을 몽골군에게 일러바치고 앞장서서 고려의 여러 성에 항복을 권유하고 다녔다.


예케는 이현의 권유에 따라 병력을 둘로 나누어 쑹주에게는 동쪽의 내륙으로 향하게 하고 자기는 서쪽으로 내려갔다.
쑹주의 동군은 척후기병대를 먼저 내려 보내 정찰과 정지작업을 시킨 후에 본대가 따라 내려갔다.
 동군은 화주, 안변, 동주(철원), 춘주(춘천), 광주를 연결하는 통로로 내려가 서군과 합세할 작정이었다.
또한 쑹주는 별동대를 파견하여 안변, 통천, 고성, 간성, 양양, 강릉의 동해안을 제압하도록 하였다.


쑹주의 동군 본대가 동주성에 도착하였다.
동주성은 방호별감 백돈명이 지휘하고 있었다.
독선적인 성격의 백돈명은 추수를 위하여 병사들을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는 현지 수령들의 의견을 묵살하고 이에 반발하는 주리의 목을 베어버렸다.
또한 험준한 지세에 의지하여 수세에 치중해야한다는 수령들의 의견도 무시하고 적들이 준비를 갖추기 전에 공격해야한다고 주장하며 정예군 600명을 성 밖으로 출진시켰다.
그러나 백돈명의 독선적인 행동에 불만을 품은 병사들은 성 밖으로 나가자마자 대부분 가까운 산으로 도망쳐 버렸다.
그러자 성 안에 있던 병사들도 일부 성을 빠져나가 도망치는 등 동주성은 큰 혼란에 빠졌다.
이틈을 타서 몽골군이 성에 난입하여 방호별감 백돈명과 동주부사, 판관, 금성 현령 등이 전사하고 성은 함락되었다.


동주성을 함락시킨 몽골군은 남하하여 춘주성을 에워쌌다.
당시 춘주성에는 안찰사 박천기와 문학 조효립이 휘하의 약간의 사졸들과 춘주성의 백성 및 성안으로 들어온 인근의 백성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몽골군이 항복을 요구하였지만 고려군이 거부하자 춘주성 주위에 여러 겹의 목책과 참호를 파서 춘주성을 고립시키고 파상적인 공격을 감행하였다.


농성이 오래 계속되자 성안의 우물이 모두 말라 소와 말을 잡아 그 피를 마실 정도가 되었다.
조효립은 성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것을 알고 아내와 함께 불길에 뛰어들어 자결하였다.
안찰사 박천기는 몽골군의 포위망을 뚫기 위하여 600여명의 결사대를 이끌고 성 밖으로 쳐들어 나갔다.
그러나 목책을 뚫는 데 까지는 성공했으나 참호를 넘지는 못했다.
결국 몽골군의 집중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박천기 이하 600여명의 결사대는 모두 전사하고 말았다.


결사대를 제압한 몽골군은 여세를 몰아 발석차와 당차로 동문과 남문을 집중 공격하여 치열하게 맞서 싸우는 군민을 제압하고 성을 함락시키었다.
성을 함락시킨 몽골군은 성내의 군민들을 대부분 무참히 도륙하고 나머지는 포로로 잡았다.


몽골의 동군은 부대를 별군과 본군으로 나누어 별군은 원주로 본군은 양근(양평)으로 진출하였다.
원주로 진출한 별군은 원주 성을 포위공격 하였으나 원주성의 방호별감 정지련이 백성들을 이끌고 필사적으로 저항하여 성을 함락시키지 못하자 인근의 마을을 대상으로 노략질을 가하며 분풀이만 하였다.


한편 양근으로 진출한 본대는 양근성을 지키던 방호별감 윤 춘의 항복으로 손쉽게 양근성을 점령하고 바로 광주로 내려와 서군과 합류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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