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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 (강화도 2 )
2017-05-20 오후 12:42 조회 3463추천 2   프린트스크랩


구유그칸이 죽고 나서 몽골의 정권이 혼란한 5년 동안 고려에서는 평화가 유지되었다.
고려에서는 강화도의 맞은편인 승천부의 백마산 아래에 새로이 궁궐을 지었다.
이 궁궐로 왕의 거소를 옮기어 몽골의 출륙환도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몽골의 대 칸 몽케는 대 칸이 된 후 바로 고려에 사신을 보내어 고려의 출륙환도와 국왕의 입조를 요구하였다.
이에 고려는 추밀원 부사 이 현을 책임자로 하여 사신을 몽골에 보냈다.
이 현은 고려는 이미 새로이 궁궐을 지어 출륙환도의 준비를 마쳤으며 현재 국왕이 60이 넘은 고령으로 와병중이어서 직접 입조하기는 어렵고 대신 태자의 입조를 허락해 주신다면 태자의 입조는 즉시 가능하다고 말하였다.


몽케는 이 현 일행을 억류하고 서장관 장일만 대동시켜 고려의 출륙환도 방침에 진정성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하여 고려에 사신을 보냈다.
몽케는 사신 단이 떠나기 전에 밀명을 내렸다.
“만일 고려 국왕이 육지까지 영접을 나온다면 진정성이 있는 것이지만 육지로 나오지 않는다면 진정성이 없는 것이니 즉시 본국으로 돌아오라.”


몽골의 사신 일행이 갑곶 강 건너 승천부에 도착하였다.
서장일은 강화도로 건너가서 국왕을 뵙고 자신이 파악한 몽골의 밀명을 국왕에게 아뢰었다.
고종은 즉시 어전회의를 열었다.
백관들은 모두 국왕이 갑곶을 건너 승천부에서 몽골사신을 영접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최우가 죽고 새로 집정이 된 최항이 위험하다며 극구 반대하여 고종이 강화도를 나가는 것이 무산되었다.
이를 알아챈 몽골의 사신일행은 바로 고려를 떠났다.


몽골의 사신일행이 떠나자 몽골의 재침은 기정사실화 되었다.
고려는 각지의 요새와 산성에 방호별감을 파견하고 병력을 증강 보충하며 방어시설을 확충하여 몽골의 재침에 대비하였다.


순기는 삼별초 이 종수와 짝을 이루어 충주 성으로 향했다.
이 종수는 활을 잘 쏘았다.
이 종수와 짝을 이루자 순기는 겁날 것이 없었다.
먼 곳의 적은 종수가 활로 쏘고, 가까이 오는 적은 순기가 칼로 베면 그만이었다.
삼별초들은 몽골군과의 일대일 대결에서 승리를 자신하였다.
서너 명과의 대적도 마다하지 않을 만큼 자부심이 컸다.
삼별초가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 땀을 흘렸던가?
까짓 몽골 병 서너 명 쯤이야! 둘이서 힘을 합치면 십여 명 정도의 몽골 병 소부대는 충분히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충주성이 가까워지자 순기는 김윤후 장군을 만날 일에 가슴이 설레었다.
김윤후 장군이 누구이던가?
20여 년 전 몽골군이 침략했을 때 처인 성에서 적의 총사령관 살리타이를 화살로 쏘아죽인 장본인이 아니시던가?
지휘체계가 마비된 몽골군은 그 때 바로 철수를 하고야 말았다.
장군은 이공로로 상장군에 제수되었지만 극구 사양하여 정6품의 하위 무관계급인 섭랑장에 임명되셨다.
그 김윤후 장군이 지금 충주 성에 방호별감으로 파견되어 계신 것이었다.

김윤후 장군에게 둘은 큰 절을 올리었다.
장군은 이들을 반갑게 맞으며 백성들의 훈련과 성의 정비에 힘써줄 것을 부탁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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