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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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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 (강순기 5 )
2017-05-05 오전 9:21 조회 3453추천 2   프린트스크랩


기절한 순기가 깨어난 건 금강을 건널 때 쯤 이었다.
순기는 깨어나자마자 본능적으로 말에서 뛰어내려 도망을 쳤다.
그러나 곧 잡히고야 말았다.
이번에는 몽골군이 순기를 단단히 결박을 하였다.


순기는 후회를 하였다.
눈치를 보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도망을 쳤어야했는데 그만 일을 그르치고 만 것이었다.
눈앞이 캄캄하였다.
 “어머니께서 얼마나 걱정을 하실까? 과연 내가 집에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복순이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자기 또래의 어린 남자 아이들만 몇 명이 말에 묶여있는 것이 보였다.
무섭고 막막하기만 하였다.


처음 말을 타보는 순기는 천안의 들판에 다다를 때까지 심한 멀미에 시달렸다.
말이 아래위로 요동을 칠 때마다 속이 메스꺼웠다.
몇 번이나 토하기를 반복하고 나서야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갔다.


천안의 들판에 초가을의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자 순기의 멀미도 진정이 되어갔다.
평택의 넓은 벌판에는 벼들은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다.
 독골 뒷산에서 바라본 대평리의 들판이 넓다고 생각했었는데 여기는 거기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대평리에 비하면 여기는 끝도 없는 대 평원이었다.


안성을 지나 산길에 접어들었을 때 고려군의 기습이 있었다.
행렬 앞쪽으로 화살이 날아와 너 댓 명의 몽골군을 쓰러뜨렸다.
곧 이어 말에 탄 고려 군사들이 행렬로 짓쳐들어 대 여섯 명의 몽골군을 칼로 베고 지나갔다.
몽골군은 데려가던 아이들을 말에서 내려 땅에 엎드리게 하였다.
인솔하던 몽골군이 아이들을 지키는 동안 후위에서 따라오던 몽골군들이 행렬의 앞으로 뛰쳐나갔다.
 “그러면 그렇지 우리 고려군사가 얼마나 날랜데.”
순기는 원배 형같이 싸움을 잘하는 고려 군사들이 쳐들어 와서 자기들을 구해주기를 기대하였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고려 군사들은 몽골 군사들을 혼만 내줄 요량이었던지 그대로 사라지고 말았다.


한수를 건넜다.
오른쪽에 신도에서 바라본 계룡산과 모습이 비슷한 산이 보였다.
계룡산 보다는 바위가 훨씬 더 많고 조금은 더 높아보였다.
한수이북에 있는 산이라서 북한산이라고 하였다.
계룡산과 비슷한 산을 보자 순기는 집 생각이 더욱 간절하였다.
냇물에서 멱을 감고, 물고기를 잡고, 산에서 산열매를 따먹던 모습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릿속에 떠올랐다.
순기는 이를 악물었다.
“그래 반드시 살아서 다시 고향에 돌아가자. 어떤 일이 있어도 참고 이겨내자.”


다시 강을 건너 개경에 도착하였다.
왕도를 강화도로 옮겼으나 아직도 예전의 건물들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산골에서 자란 순기에게는 개경이 으리으리한 대도시로 보였다.
공주 목은 여기에 비하면 시골이나 마찬가지였다.
 기와집들이 수도 없이 순기의 눈앞에 펼쳐졌다.
과거에 급제하거나 야별초가 되어 개경을 찾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것이 순기의 꿈이었었다.
그런데 지금은 몽골군에게 잡힌 몸으로 이곳에 들렸다.
순기는 너무도 처량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화가 났다.
 “도대체 우리가 무엇을 잘 못해서 이런 꼴이 된 건가? 우리에게는 몽골군을 이겨낼 만한 군사들이 없었나?”


개경에서 이틀을 쉰 다음에 행렬은 다시 북으로 이동하였다.
멸악산 기슭에서 고려군의 기습이 있었지만 이번에도 순기는 구출되지 못하였다.
몽골군들은 방비를 더욱 단단히 하면서 행렬의 속도를 재촉하였다.


행렬이 대동강에 가까워졌다.
갈대들이 서걱서걱 가을바람에 서로들 몸을 부딪치며 합창을 해대었다.
강은 넓고 깊었다.
일행이 모두 배로 건너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강을 건너고 넓은 들을 한참을 이동하였다.


서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서경은 낭장 필현보와 홍복원의 반란이 진압된 뒤 방치되어 있던 탓에 폐허로 변해있었다.
그러나 폐허로 변했어도 서경의 경치는 아름다웠다.
성벽과 누각과 대동강이 어울린 서경은 가을 단풍으로 얼룩져 처연한 아름다음을 뿜어내고 있었다.


평양은 고구려의 도읍지가 아니었던가?
 순기는 수나라와 당나라의 거센 도전을 고구려가 용감하게 맞서 싸워 이겨내곤 하였다는 이야기를 어머니께 들었었다.
 “왜 우리 고려는 고구려만큼 용감하지가 못한 건가?”
순기는 깊은 한 숨을 내쉬었다.


서경은 넓고 아늑하였다.
높은 산에 둘러싸인 개경보다 더 정이 갔다.
원배 형에게 강으로 둘러싸인 부여가 넓고 아늑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서경이 말로만 들었던 부여와 같은 모습인 것 같았다.
몽골군에게 끌려가는 신세가 아니고 여기서 살려고 이사를 온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순기는 잠시나마 서경으로 이사 온 행복한 꿈을 꾸어보았다.


서경에서 며칠 쉰 행렬은 다시 북으로, 북으로 이동하였다.
안주를 거쳐 의주로 향해갔다.
 이제 고향집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의주에서 압록강을 건넜다.
이제부터는 이국땅이었다.
온갖 착잡한 생각이 머리를 짓눌렀다.
순기는 마음을 내려놓고 운명에 몸을 맡기기로 결심을 하였다.
몸과 마음이 편해졌다.


요동 벌을 지나며 어쩌면 이렇게 넓은 곳이 있는지 감탄을 하였다.
사방을 둘러봐도 산이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것은 그저 망망한 지평선 뿐 이었다.
이전에 무척 넓다고 감탄 했던 평택의 들은 넓이만큼은 여기와 비교의 대상이 되지 못하였다.


끝이 없을 것 같던 지평선에 멀리 산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산이 점점 높아져서 천민진이란 곳을 지날 때에는 상당히 험준한 꼴로 변해있었다.
산위에 성벽이 보였다.
진시황이 쌓았다는 만리장성을 후대에 여기까지 연결한 것이었다.
관문을 넘었다.
당나라 때에는 임유관이란 이름으로 불리어졌다고 하였다.
얼마 후에 일행은 금나라의 수도였던 중도에 도착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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