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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 여행기(4편)
2017-05-04 오후 5:03 조회 3810추천 3   프린트스크랩

여행기를 쓰기 전에 요사이 범람하고 있는 신조어에 대한 소회를 두 가지만 언급하고 시작할까 한다.

 

오늘 날 현대인들,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신조어를 쓰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주로 시간 절약을 위한 축약어들이다.  하루에도 수십 개의 신조어가 생겨난다. 신조어 중에서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쓰이고 활용도가 높은 말은 어엿한 표준어로 자리를 잡는 경우도 있다. ‘ 생선 = 생일 선물 ‘   ‘안습 = 안구에 습기가 차다 -> 슬프거나 안타까워서 눈물이 나다. ‘ ‘ LOL = 크게 웃다. ‘ 처럼 긴 낱말을 줄여 쓸 수 있으니 축약어로 된 신조어들이 바쁜 현대 사회에서 불가피하게 필요악이 되어 버렸다.

 

컴퓨터를 다루거나 젊은이들과 문자 같은 것을 통하여 교류하지 않는 주로 고 연령층에 해당되는 아날로그 세대의 사람들은, 젊은이들이 근래에 만들어낸 신조어를 접하면 의미가 생경하여 외래어나 심지어 화성어 같고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는 고백을 들은 적이 있다. 필자 역시도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하여 새로 생겨나는 말들의 의미를 파악하려고 인터넷을 열심히 찾아보면서 습득하고 있다.

 

우리 고유의 말로만은, 급격히 변모해온 현대 사회에서 출현하는 수 많은 새로운 창조물이나 현상에 대하여 딱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적절한 어휘력이 부족한 측면이 있음을 때로는 통감한다. 이런 자리를 신조어가 채워나가서 우리 말의 어휘력을 풍부하게 해준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역할이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같은 말을 쓰는 동족간에도 의사 소통이 안 될 정도로 무분별하게 만들어지는 엄청난 규모와, 더욱이 신조어들 중 일부는 비속어이거나 입에 담기에도 민망한 천박한 의미를 내포하는 단어들까지 양산되는 현상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특히나 기존의 아름다운 우리 말로도 의사소통을 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는 낱말까지도 이상한 대체어가 출현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젊은이들이 신조어에 너무 익숙해지다 보니 대학의 논문이나 리포트, 심지어 회사의 입사 원서의 자기 소개서나 공문서 같은 공적인 기록에서 조차 무의식 중에 신조어가 섞여 있는 것을 보게 될 때는 고개를 갸우뚱 하게 되고 착잡해진다.

 

금번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를 여행하면서 경험한 이들 나라들의 숙박업소 퇴실 시간이 서구 여러 나라와는 다르다는 점이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1300 시가 체크아웃 시간이라는 통념은 이 나라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이들 나라는 1000 시다. 동구권 나라들이 모두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침 시간이 너무 촉박할 수 있다. 우리는 일정이 바쁜 관계로 매일 일찍 숙소를 나섰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여유를 즐기면서 여행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아침에 부산을 떨어야 한다.

 

두브로브니크로 가는 길도 좁은 1차선 고속도로이니 가는 여정이 고달플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고속도로가 갑자기 없어지고 한산한 시골 마을 주택가를 지나는 일반 국도로 연결되는 황당함도 경험하고 때론 허용 속도 130 km를 믿고서 140 km 로 달리다가 아무런 예고 없이 아드리아 해로 떨어지는 천길 낭떠리지의 급 커브 40 km 의 속도 제한 표지판 구간이 나타나서 위험 천만의 경악스런 순간을 경험하기도 했다. 도로 사정에 익숙한 현지인들이야 미리 심적인 준비와 감속을 하겠지만 초행 길의 여행객들이야 순식간에 100 km 를 어떻게 줄인단 말인가 ! 딸 애의 순간 대처 임기웅변 덕택에 저승길도 무사히 통과하고 풍광 좋은 아드리아 해를 우측으로 끼고 구경하면서 달리기를 3 시간 만에 갑자기 앞서 달리던 자동차들이 멈춰서는 것이었다. 영문도 모르고 시속 5~10 km 속도로 가다 서기를 반복하면서 거의 2km 미터 정도를 가는 데 40 여분을 소모하고 앞을 보니 검문소가 나오고 검문을 하는 것이었다. 화물차는 우측으로, 승용차는 좌측 라인으로 검문소로 진입하면서 든 생각은, 무장 탈영병이라도 발생한 것인가 하는 생각에서부터 이런 저런 상상을 펼치면서 앞차를 보니 여권 검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 그 때까지 예비 지식이 없었던 우리들은, 이 나라는 국내 여행에서도 수시로 여권 검사를 하는가 하는 생각으로 의아해 하면서 가족들의 여권을 모아서 일단 창구에 제시를 했더니 탑승 인원을 확인하고 차량 등록증까지 보여달라는 것이었다. 국경 통과 시에 그런 전례가 없었음에 비추어 ‘도난 차량이라도 검문하는 것인가 보다’ 하고 상상하는데 군 말 없이 스탬프를 쾅쾅 하고 찍어주는 것이었다.

 

검문소를 벗어나니 이제 한산한 도로에서 제 속도를 내어 손해 본 시간을 벌충 좀 하겠거니 하고 생각하는 데 이번에는 도로 확장 공사 때문에 파헤쳐 놓은 비포장 구간이란 복병을 만나서 제 속도를 못 내는 것이었다. 


여권을 돌려받은 후, 도대체 무슨 도장을 찍은 것인지 확인해보니 보스니아 입국 스탬프였다. 아니, 보스니아 영토로 들어갈 계획이 일정 상에 없었는데 길을 잘못 들었다는 낭패감에 우리가 계획 여정이 어디서 잘못되어 도대체 이 길을 가게 된 것인지, 오늘 달린 4 시간은 헛걸음을 한 것인지 구글 지도를 펼쳐서 검색해 보고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크로아티아는 우리나라처럼 분단 국가였던 것이다. 유럽에 동/서독 말고 분단 국가가 또 있었다는 얘기는 금시초문이었는데 분명 분단 국가가 아닌가 !

 

다만 분단 국경선이 우리처럼 DMZ로 되어 있거나 동/서독처럼 장벽으로 되어 있지 않고 국경 검문소가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다를 뿐이었다. 크로아티아는 북부에서 남부 지방으로 계속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남부 지방에 다다를 즈음에 보스니아 영토가 크로아티아 영토를 가로질러서 아드리아 해안선까지 뻗쳐 있어서 크로아티아를 남/북부로 차단한 형상이었다. 보스니아가 점유하는 구간의 길이는 차로 대충 15분 거리 25km쯤 되는 것 같았다. 보스니아와 크로아티아가 유고연방이라는 같은 나라였을 때는 전혀 불편한 일이 없었는데 제각각 독립을 하고 나니 졸지에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이라고 했다. 크로아티아 쪽에서 문제가 된 영토를 획득하려고 금전적 제시나 다른 곳의 접경 지역 토지와 바꾸자는 대토(代土) 제의에도 보스니아가 완강히 거부하여 어쩔 수 없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었다. 여행기 3편에 나타난 지도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크로아티아는 700 km 달하는 해안선을 가진 해양 국가임에 반하여 보스니아 입장에서는, 고작 25 km 해안선 덕택에 다른 나라를 거치지 않고 아드리아 해로 자유롭게 통행하고 명색이나마 해양 국가로 행세할 수 있는 데 그 곳을 크로아티아에 넘겨준다면 바다는 없는, 스위스와 같은 완전 내륙 국가 신세로 전락하게 되니 국가 사활이 걸린 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우리는 금번 여행 덕택에 좋은 지리 공부를 했고 동구권 두 나라가 안고 있는 고심과 두통거리가 무엇인지도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비포장 도로 25 km 를 달린 후에 이번에는 보스니아의 출국 스탬프와 크로아티아의 입국 스탬프를 찍는 또 한번의 번거로움을 거치고 나서 40 여분을 달리니 우리가 관광할 3번째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뒤쪽으로는 높은 산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고 앞쪽으로 낮은 저 지대는 바다와 만나는 난공불락의 천연요새와 같은 두브로브니크는 모든 건물들이 고전 영화에서나 봤음직한 옛 로마 시가지를 연상하게 하는 암갈색 석조 건물에다가 전부 빨간 기와 지붕을 하고 있는 이채로운 도시였다. 시가지를 따라 형성된 도로들과 도시 요소 요소에는 상록수들이 싱그러움을 더해주는 데 이곳은 계절이나 기온이 한국보다 50 일 정도 앞서 가는 이미 늦은 봄의 분위기였다.

 

크로아티아

 

 

 

크로아티아의 남쪽 하단에 해안선 쪽으로 살짝 보스니아 영토가 크로아티아를 갈라놓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 밑으로 50 km 정도 가면 두브로브니크가 있다.

 

두브로브니크


 

 

아드리아 해를 끼고 자리잡은 두브로브니크 시가 모습

 

 

 

"2필지만으로도 재건축"  ... 소규모 도시정비 추진[ 서울 목동·경북 영주 등 4곳 시범사업 추진 ]


사진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상쾌해지는 
 해변가 선착장에 구멍이 3 개 보이는 그 곳에 우리는 숙소를 잡았다 

 

 

 

 지중해로 나가는 아드리아 해 길목에 위치하여 아드리아의 진주로 불리는 이 도시는 서울의 종로구보다도 살짝 작은 21.35 ㎢ 로 불과하고 인구 42,615 명이 살고 있는 아담한 도시지만 이 나라가 접한 지중해 연안 도시 중 유네스코가 지정한 가장 아름다운 관광지 중 으뜸으로 꼽는 곳이다. 1991년 유고 내전 당시 크로아티아는 세르비아 및 몬테네그로가 연합한 연방군의 침공을 받아 항전하였는데 두브로브니크가 남부 도시 중에서는 연방군에 포위되어 교전을 벌인 거의 유일한 지역이다..

 

1991년 북부 크로아티아가 독립을 선언하자 인구 구성이 대부분 크로아티아 족(90 %)인 두브로브니크를 비롯한 남부 해안 지역은 비록 보스니아 영토로 가로 막혀 있었지만 신생 독립국 크로아티아의 주권이 미치는 크로아티아 국민이 되기를 원했다. 두브로브니크가 연방군의 표적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앞의 지도에서 본 바와 같이 지리적으로는 크로아티아와 분리되어 동떨어져 있었으며 역사적으로도 이 지역은 크로아티아로 간주된 적이 단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1991년 10월 1일, 이 도시를 장악하려고 포위 공격을 시작한 유고 연방군과 이들을 격퇴시켜서 두브로브니크에 대한 포위망을 분쇄하고 동족들을 구출하려고 달려온 북부의 크로아티아 군간에 이듬해 5월까지 7 개월간의 교전 끝에 두브로브니크에 대한 유고 연방군의 봉쇄망을 크로아티아 군대가 분쇄하고 이 도시로 진입한다. 1992년 10월, 내전 발발 후 1년만에 이 도시는 완전 해방이 되어 크로아티아 령(領)이 되었지만 그 후에도 유고 연방군은 무려 3 개월 동안이나 이 도시에 대한 포격과 폭격을 간간히 가했다. 유고 연방군에 의한 무차별 공격으로 유네스코가 지정한 고색 창연한 이 도시 구 시가지 건축물의 56 %가 크고 작은 피해를 입었다. 이 전쟁을 지휘하고 포격을 명령했던 몬테네그로 출신 연방군 지휘관 스트러거 대장은 추후 전범 재판에서 7년 6개월의 형을 선고 받아 복역 중 형기를 전부 채우지 않고 조기 출소하였다. 장기간의 폭격 및 포격에도 불구하고 두브로브니크 민간인 사망자 숫자는 불과 114 명인 것으로 집계되었다. 민간인 피해가 적을 수 있었던 것은 암벽으로 형성된 이 요새화된 도시 자체가 엄폐 역할을 했기 때문이었다. 자구적인 노력과 국제사회의 협조로 이 도시의 전흔은 전쟁 이전으로 거의 복구가 되어 현재는 왕성하게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우리 숙소는 1층과 앞 뜰은 카페 겸 식당으로 운영하는 주상 복합 건물의 2 층과 3 층에 만들어진 콘도미니엄 형태였다. 우리는 2 층에, 딸네는 3 층 숙소였는데 여기 집들은 여전히 재래식 열쇠로 여닫는 식인데 특이한 점은 문만 닫으면 자동으로 문이 잠기는 것이 아니어서 방안에 있을 때도 안에서 열쇠로 문을 잠가야만 했다.

 

방안에서 창문을 열고 내려다 보면 뒤쪽으로는 바다가 보이고 앞 쪽 정원에서는 손님들이 한가하게 앉아서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커피나 음료를 마시고 있는 카페의 정경이 이국적인 풍경이다. 사람들은 관광지 특유의 활기가 넘쳤지만 결코 시끄럽지는 않은데 좌우 일차선의 비좁은 도로에서 차량이 아예 반대편 차선으로 들어와서 길을 막고 세워놓은 후에 운전자가 자리를 떠버리는 경우도 봤다. 이런 교통 위반이 종종 벌어졌지만 누구 하나 시비하는 사람 없고 차량들은 역 주행 상태로 자기 통행로를 막은 차량을 피하여 상대편 차선으로 들어가 피해서 통행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성이 참으로 낙천적이라고 평가할 수 밖에 없었다.

 

이 도시를 지켜낸 성채로 이뤄진 유적지에 형성된 중심가를 따라서 관광을 하고 해산물 요리로 식사를 했다. 아드리아 해를 보면서 든 한가지 의문은, 저 넒은 바다에 간혹 배가 다니기는 하지만 어선은 한 척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어선은 없는 데 그 많은 해산물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현지 주민들에게 물어봐도 속 시원하게 대답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다만 아드리아 해는 어족 자원 보호를 위하여 엄격하게 어로 작업을 통제하기 때문에 먼 지중해로 나가서 잡아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만 들을 수가 있었다.

 

여행기를 제대로 쓰려면 보고 듣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궁금증을 알아보기 위하여 그 날 저녁 가족들이 해변가를 산책하는 동안 나는 가족들과 떨어져서 현지인들을 만나보기로 했다.

 

집 앞 카페에 군인인지 유니폼을 입은 젊은이 두 사람이 앉아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방해가 안 된다면 20 분 정도만 시간을 내줘서 글을 쓰는데 필요한 내 질문에 답해줄 수 있는지 양해를 구한 후에 합석을 했다. 알고 보니 자신들은 전투 경찰이었고 독립 전쟁 당시 한 명은 두 살, 다른 한 명은 출생하지도 않았다는 것이었다.

 

두 젊은이 모두 영어가 유창하여 의사소통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한국에 대해서 아느냐고 물었더니 학교 다닐 때 배웠다고 했다. 권위주의 독재국가에서 군인이 쿠데타를 일으키고 국민들을 이끌어서 경제적 기적을 일궈내어 전 세계적으로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최단기간에 도약한 유일한 나라라고 했다.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알고 있다는 대답이 싫지가 않았다. 이 나라를 여행하면서 든 의문은, 동구권에서 벗어난 지가 불과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가는 곳마다 젊은이들이 하나 같이 영어를 잘 한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뼈에 사무치는 이유가 있다고 했다. 자신들이 세르비아의 침략을 받았을 때 전 세계 어느 나라도 침략군을 물리치는데 구원병을 보내준 나라가 없었다.

 

근현대 세계사에서 한국은 미국을 위시한 연합군의 도움으로 소련과 중공(그는 Red China 라고 했다)의 지원을 받은 북한의 침략을 저지한 반면에, 남부 베트남은 미국을 비롯한 우방국의 군사 및 경제 원조에도 불구하고 침략 저지에 실패하고 적화 통일을 당하고 말았다. 여기서 크로아티아가 얻은 교훈은, 한국은 전 국민이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전의가 있었던 반면에, 월남은 나라를 지키려는 전의는 없고 모든 것을 우방이 해주도록 의탁하고 전쟁을 수수방관했다는 점이라는 견해를 표명했다.

 

한국은 박정희라는 선각자가 도탄에 빠진 나라를 구하기 위하여 당당하게 미국과 교섭하여 한국 전쟁에 참전한 미군이 현재까지도 한국 땅에 남도록 정치를 하고 상호방위 조약을 체결하여 강대국 사이에서도 미국의 보호 아래 경제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결과, 현재는 한국의 국력이 막강해져서 미국도 일방적으로 한국을 도와주는 입장이 아니라 상호 도움이 되는 관계로 발전했기 때문에 전 세계가 한국을 무시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이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 것으로 잘못 알고 있었지만 하여간 비교적 소상하게 한국에 대하여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크로아티아가 독립 전쟁 후 NATO와 EU에 가입하고 크로아티아에 미군도 주둔시키고 무기도 미제로 구입하려고 시도했지만, 미국은 주둔비 분담 문제를 거론하고 무기 구매도 한국이나 일본에 제공하는 것과 같은 최신 무기들을 자기 나라에 판매하는 것에 갖가지 핑계를 대면서 거절하고 있다. 크로아티아에 미군이 주둔해주기를 요청을 했지만 군사 고문단만 보내주고 더 이상 진척이 없는데 미군의 주둔을 국가의 시급한 정책 목표로 삼고 있다. 과거 소련에서 배웠던 군사교리를 던져버리고 미군을 배우기 위하여 이 나라 군인들을 미국에 군사유학을 보내는 등 미군을 자국에 유치하기 위하여 환심을 사기 위해서나, 유사시 연합군과 합동작전을 펴려면 자국에 들어온 NATO 군을 지원하는 데 전 국민이 의사 소통에 어려움이 없도록 영어를 반드시 익혀야 한다는 것이 정부 방침으로 시달되었다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으면서, 당신들이 주둔을 그렇게 애걸하는 미군에 대하여, 상당 수의 한국인들, 특히 젊은 세대들이 미국을 외세로 간주하여 적대시 하는 반미주의로 언젠가 가까운 시일 내에 미군이 한국에서 떠나버릴 것 같은 분위기를 이들이 안다면 어떤 표정일지 착잡한 심정으로 인터뷰를 마쳤다. 

 

  • 5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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