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 여행기(3편) | 나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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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 여행기(3편)
2017-04-28 오후 8:46 조회 5044추천 3   프린트스크랩

여행기를 시작하기 전에 외국에서의 식당 이용에 대해서 얘기해 볼까 한다.

 

외국에 오래 거주하지 않은 한국인들 중에는 외국 여행을 많이 다닌 분들 중에도 식당을 이용할 시에 간혹 한국과 다른 현지 관습을 잘 모르거나 무심코 지키지 않아서 예상하지 못한 결과에 당황하는 것을 가끔씩 보게 된다.

 

인기 있는 맛 집들 중에는 붐비는 식당이 더러 있고 그런 식당들은 사전에 예약하지 않은 한은 줄을 서서 기다리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외국인들이 식당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것을 보면, 초등학생들이 줄을 선 것처럼 칼같이 서 있지 않으면 서성거리는 사람들이 이미 앞에 와서 차례를 기다리는 대기 손님인줄 모르고 그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지나쳐서 식당 안으로 무조건 들어가다가 무안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예약을 하지 않은 이상, 식당 앞에 사람들이 있으면 대기 손님인지 여부를 먼저 살펴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외국의 일류 식당들 중에는 제대로 된 복장을 착용하지 않으면 출입을 불허하는 식당들이 더러 있다. 주로 예약 제 고급 식당에서 그런 곳이 있는 데 정장이나 최소한 말쑥한 복장을 요구한다. 머리를 끼워 입는 라운드 형태의 셔츠나 남성이 반바지, 찢어진 청바지 차림이나 운동화, 심지어 슬리퍼 차림으로 식당에 왔다가 일행은 입장이 허용됐는데 혼자 제지를 당해서 식식거리며 돌아가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데 참고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점차 보편화 되어가고 있는 현상이지만, 미국이나 유럽의 식당은 일단 들어가면 카운터 앞이나 식당 홀 입구에서 기다리다가 종업원이  정해주는 좌석에 앉아야 한다. 국내에서 하던 습관대로 식당에 들어가자 마자 자기가 좋아 보이는 자리에 일방적으로 앉았다가 무안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종업원으로부터  편한 자리를 골라서 앉으라고 양해하지 않는 이상 안내에 따라야 한다. 심지어 영어로 ‘ Reserved ‘ 란 ‘ 예약석 ‘ 팻말이 놓여있는 테이블에도 잘 몰라서 앉는 사람도 없지 않다.  

 

식당에 들어가면 마실 물이 필요하다. 한국은 아예 물컵과 물통을 종업원이 먼저 갖다 놔준다. 미국도 종업원이 냉수를 담은 컵을 갖다 놔 주고 물 값은 따로 받지 않는다. 그러나 유럽은 다르다. 마실 물이 귀한 대륙이다. 물 자체는 흔하지만 그 흔한 물은 목욕이나 세탁 등에는 별 문제가 없지만, 음용수로는 부적절하다. 미세한 분말 형태로의 석회석이 섞여있기 때문  수돗물을 그냥 마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물이 귀하기 때문에 식당에서도 생수를 병으로 구매해서 마시거나 물값을 별도로 계산해야 한다. 물을 요청하지 않았는데도 종업원이 물을 가져다 줬다면 식사 계산서에 물값이 반드시 추가된다. 인심이 야박하니, 바가지니 하면서 목청을 돋구는 관광객을 본 적이 있는데  고약한 주인을 만나서 경찰이라도 부르면 즐거워야 할 여행을 망칠 수도 있다. 물까지 돈 내고 마시는 것이 싫다면 물 대신에 음료수나 맥주 같은 것을 시켜 마시는 것이 현명한 대안이다. 물값보다 생맥주 값이 더 쌀 수도 있다.


물값이 비싸다고 관광을 할 때 돌아다니며 마시던 물을 식당에 가져가서 마시는 분을 본 적은 없지만 그럴 경우 식당에서 제지를 할지 뭐라고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 행동도 별로 좋아 보이지는 않으므로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수준이라면 전부 아는 상식이지만, 혹시라도 생소한 분들을 위하여 적어봤다.  

 

티토 대통령 사망 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에 속한 각기 다른 민족들은 왜 단일 국가를 계속 유지하지 못하고 분리 독립을 추구하여 유고 연방이 와해된 것일까?


첫째는 고르바초프의 선언에 의한 동구권의 붕괴가 가장 큰 원인이지만, 이질적 민족 집단을 하나로 통합한 티토라는 구심점이 사라진 것도 또 다른 요인이었다. 유고 연방 공화국을 통치한 핵심세력은 세르비아 계였고 요직은 세르비아 계가 두루 장악하고 있었지만 티토라는 크로아티아 출신 걸출한 리더가 국가를 운영함에 있어서 모든 민족을 차별 없이 공평하게 국가 정책을 폄으로써 이민족간의 갈등 소지를 봉합하고 단일 국가를 이끌어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티토 사후에 뒤를 이은 밀로세비치는 세르비아를 제외한 여타 민족들에 대하여 극단적인 민족 차별 정책으로 인종 청소와 같은 공포 정치를 폄으로써 각 민족은 제 살 길을 찾아 분리독립을 모색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제 다시 여행기로 돌아가서 이 번은 크로아티아다.

 

우리는 크로아티아에서 다음 지도에 나와 있는 1. 스플리트, 2. 두브로브니크, 3 수도(首都) 자그레브 순으로 각각 1박씩을 하면서 관광하고 귀가하는 것으로 금번 여정을 잡았다.

 

크로아티아 지도

 

Republic of Croatia - vector map 공화국 크로아티아의-벡터 지도입니다. 크로아티아 지도학 벡터파일 

 

1. 위 지도를 보면 오지리에서 크로아티아를 방문하려면 슬로베니아를 반드시 통과해야 함을 알 수 있다.

2. 왼편에 보이는 바다가 아드리아 해(海)고 그 왼쪽에 이태리 반도의 극히 일부가 살짝 드러나 있다.

3. 우리는 슬로베니아에서 리예카(Rijeka) 우측으로 크로아티 영토로 진입하여 중남부 해안 도시 스플리트(Split)와 최남단 아드리아 해와 지중해가 만나는 곳에 위치한 두브로브니크(Dubrovnik) 를 보고나서 다시 위로 올라와 수도 자그레브(Zagreb)를 관광한 후에  비엔나로 복귀했다.

4. 위 지도를 유심히 보면 Ploce 를 지나 두브로브니크를 가려면 같은 크로아티아 임에도 다른 나라인 보스니아 영토로 두 지역이 분단되어 있음을 알 수 있고 보수니아 국경 검문소에서 출입국 사열을 받아야 한다.  

 

우리가 오늘 가는 곳은 슬로베니아의 블레드에서 크로아티아 국경까지 남쪽으로 한 시간 정도를 달린 후에 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 간의 국경을 건너서 4 시간 정도를 더 달려서 크로아티아의 중남부 쪽에 속한 해안 도시 스플리트(SPLIT)까지의 여정이다. 스플리트는 인구 20만명으로 한국 기준으로는 중소 도시에 해당되지만 이 나라에서는 수도 자그레브에 이어서 두 번째 큰 도시라고 한다. 아드리아 해의 경제 중심지로 목재와 대리석이 유명하다.  0910 분경 호텔을 나서서, 우리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허용 속도가 130 km인 1 차선 고속도로(커브 구간은 80~10 km 구간도 있지만)를 달리고 있는데 우리 차를 추월하는 차가 있어서 보니 기아 스포티지가 아닌가! 체력이 국력의 상징이 아니라 자동차가 국력의 상징처럼 느껴진다.

 

차로 주행하면서 목격한 이 나라 산천이 우리나라와 다른 점은, 한국의 높은 산의 정상에는, 통상 통신이나 방송 중계탑이 있고 적의 내습에 대비하여 지키는 군 병력과 대공포같은 것이 있으며 민간인 통제구역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 나라도 산 정상으로 가는 길은 잘 포장이 되어 있고 통제구역인 것만은 맞는 데 산 정상에는 으리으리한 공관이나 별장 형식의 주택이 있는 점이 이채로웠다. 멀리서 보면 마치 요새처럼 보이기도 하고 성곽처럼 보이기도 한다. 우리나라라면 자연훼손으로 산림법이나 그린벨트 문제로 이런 곳에 일반 주택을 짓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한다. 그런데 이 나라는 고색창연하고 연륜을 느낄 수 있는 성곽 대신에 현대식 건물이 들어서 있는 점이 다르다. 이런 건물들은 이 나라가 유고연방의 사회주의 국가 시절, 정부나 공산당, 아니면 군부, 비밀 경찰의 고위직에 있던 간부가 일반인들의 범접하기 어렵도록 병영처럼 철조망을 치고 일대에 지뢰를 매설하고 출입로 상에는 기관단총으로 무장한 경호원들에 의해 보호되는, 권력의 상징이자 성역이었는데 요사이는 돈 많은 권세가가 들어가서 여전히 사설 경호원들의 경호를 받으면서 사는 소 궁전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그 곳이 어떤 별천지인지,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일반 국민들은 아무도 모르고 그저 상상만 할 다름이라고 했다.

 

슬로베니아에서 크로아티아 쪽으로 갈수록 숲보다는 암벽으로 된 구릉들이 점점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나라 고속도로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주로 산 모퉁이를 깎아서 만들고 그게 불가능할 때만 터널로 뚫린 고속도로이기 때문에 커브가 유난히 많았다. 꾸불꾸불 굽은 외길 고속도로를 운전자들은 한 수 더 떠서 속도 위반에 걸리지 않는 한계치인 139 km까지 밟으니 탑승자로서는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 커브에서 위험 속도에 도달하면 우리 차는 옵션으로 채택한 자동 브레이크가 스스로 작동하여 속도가 줄어들었는데 그럴 때 마다 몸이 쏠려서 승차감이 떨어지고 운전하는 딸애도 당황스러워 했지만 덕택에 안전에는 도움이 되어서 여행을 아무 탈 없이 마칠 수 있었지 않나 싶다.


장시간 차를 타고 있으면 때론 무료해진다. 이런 때는 위스키라도 한 잔 마시면 정신이 맑아질 것 같은 데 어린 손녀가 내 옆에 앉아 있으니 어른들이 술을 마시는 모습이 교육상 좋지 않을 것 같아서 술병을 가져오지 못했는데 솔직히 아쉽기도 하고 이 손녀가 성장하여  할아비와 술을 대작할 때까지 내가 살아있을지 모르겠지만 상상만 해도 절로 미소가 감돈다.   

 

우리나라도 요즘 뚫리는 터널은 예상 외로 긴 곳이 많다. 불가피하게 터널 내에서 사고가 나서 차가 멈춰서고 터널 밖으로 비상탈출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나 멈춰선 차에서 차량 화재나 가스 누출 같은 것이 발생하면 연쇄 화재, 차량 폭발 등으로 대 참사를 빚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터널들도 그런지 모르겠는데 유럽의 터널들에는 자신의 차량이 멈춰서 있는 곳에서 차량에서 내려서 비상 탈출할 때, 터널 앞쪽으로 나가는 것과 뒤로 후퇴하여 나가는 것 중 어느 쪽이 빠른지 터널 앞 뒤 출구까지 거리가 매 20m 간격(?)으로 각각 명시되어 있는데(예 : <- 250 m, 680m ->) 우리나라도 500 m 이상의 긴 터널 중에 이런 거리 표시가 되어 있지 않은 곳이 있다면, 이제부터라도 표시해 놓으면 촌각을 다투는 급박한 상황에서 대피에 도움이 될 것 같다.

 

드디어 두 나라 사이의 국경 검문소에 도착했다. 슬로베니아 쪽은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나가는 데도 철저하게 검문을 하는 것이었다. 출국 스탬프를 받고 200 미터 정도 앞에 크로아티아 차량 검문소가 있다. 경찰관서가 있고 경찰관이 서 있는데 그가 검문하는 것이 아니라 복장은 경찰 복장과 유사한데 CARINA 라고 상의 잠바 등 뒤에 적힌 무장 대원이 우리의 여권을 검사하는 것이었다. 방문 목적을 묻고 가족 전원의 여권을 컴퓨터에 스캔을 하고서 입국 도장을 찍어줬다. 로마 문자는 맞는데 카리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하여 나중에 현지인에게 물어보니 공항과 항만, 육상 국경선에 배치된 국경 경비대를 의미하는 현지어라고 알려줬다. 크로아티아에서는 로마 알파벳으로 적혀 있는 단어의 의미가 해석이 안 된다면 현지어 임을 기억해두면 좋을 것 같다. 이제 크로아티아란 나라에 대해서 알아보자.

 

슬로베니아와 마찬가지로 구 유고 연방에서 떨어져 나온 7 개의 국가 중 하나인 크로아티아는, 서쪽으로 아드리아(Adria) 해와 접해 있고 국경이 맞닿는 이웃나라들로는 슬로베니아, 항거리, 세르비아, 보스니아, 몬테네그로라는 5개국과 접해있는데, 국토의 면적은 한반도의 1/4 정도인 56,594 km2 이고 인구는 420만명으로 그리 크지 않은 나라다. 이 나라는 대부분의 국토가 돌이 많은 산악 지형으로 수도 자그레브를 포함한 내륙지방은 대륙성 기후를, 나머지 해안지방은 아드리아 해의 영향에 따른 해양성 기후를 띈다. 종족 구성은 크로아티아 계가 89.5 %. 세르비아 계가 4.5 %이며 기타 소수 민족이 일부 혼재되어 있다.


크로아티아 고유 언어(슬라브계 언어)와 라틴 문자를 사용하며 종교는 전 인구의 대부분이 가톨릭(89.5 %)이고 동방정교 4.4% 기타가 7 %다. 세르비아의 재 침공을 걱정하는 크로아티아 역시 슬로베니아처럼 유고 연방에서 분리된 6개국 중 NATO 에 가입한 한 나라로 EU에도 슬로베니아에 이어서 2013년도에 가입하였다.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가 냉전 시기 동구권 국가였음에도 불구하고 소련 붕괴 후 가입 조건이 까다로운 NATO 군사 동맹에 손 쉽게 가입할 수 있었던 까닭은, 유고슬라비아가 냉전 시기 소련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비동맹 노선을 추구하여 바르샤바 조약기구에 끝까지 가입하지 않았고 1990년 대 이후에도 세르비아가 러시아 편에 선 반면, 이들 두 나라를 포함한 나머지 3개국이 미국을 위시한 유럽 국가의 친 서방 정책에 동조하여 서방 편에 선 것이 주효했다고 할 수 있다.

 

슬로베니아는 화폐까지도 자국 화폐를 포기하고 유로로 전환했지만, 크로아티아는 전부터 사용하던 독자 화폐 쿠나(KUNA) 를 현재도 계속 사용하고 있다. 1쿠나는 한화 150원 정도의 가치이며 이 나라에서는 유로화도 통용된다. 이 나라는 우리나라와 달리 개인이 운영하는 외국환 환전소 영업이 허용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현금인출기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숫자 만큼이나 환전소와 자동 환전기가 거리 곳곳마다 흔하게 설치되어 있다. 도시 내에서도 환전소마다 같은 시간대에도 환율이 다르며 지방에 따라서는 환율의 진폭(다른 폭)이 1 유로당 무려 200 원 정도 차이가 나기도 한다.


우리는 처음 방문한 스플리트에서 1 유로에 8.59 쿠나의 환율로 쿠나를 매입했는데 다음 날 두브로브니크에서는 7. 1 쿠나를 적용 받았다. 모든 물건이나 음식의 가격표는 쿠나로만 적혀 있고 가끔씩은 유로로도 병기되어 있다. 쿠나로만 적혀진 물건을 살 때 유로화로 지불할 경우 상인들이 멋대로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환율을 계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쿠나를 준비했다가 쿠나로 지불하는 것이 환차손을 적게 하는 요령으로 추천한다.    

 

이 나라의 국체(國體)는, 슬로베니아처럼 대통령이 존재하는 의원 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데 슬로베니아와 다른 점은 단원제라는 점이다. 자동차의 주행 방식이나 전압은 구 유고 연방 시절에 적용되던 방식을 그대로 승계되었으니 6 개 나라가 동일하다.(슬로베니아 소개 참조). 이 나라의 1인당 GDP는 2017년 추정치로 US $ 12,405(명목상), PPP GDP(구매력 기준)은 US $ 23,171로 나와 있으니 슬로베니아보다는 떨어짐을 알 수 있다.   

 

크로아티아 역시나 `1992년 11월에 남북한이 공히 경쟁적으로 독립국가로 승인하고 외교관계를 체결하였다.  주재 대사는 우리나라가 자그레브에 대사관을 개설한 후에 상주 대사가 현지에 주재하고 있음에 반하여 북한은 이 나라 상주 대사는 없고 불가리아 주재 대사가 겸직하고 있다. 그나마 구 유고 연방시절부터 자그레브에 개설되어 운영되고 있던 영사관을 1992년 10월에 폐쇄 조치를 한 후에 재개할 움직임이 없는데, 영사관 폐쇄 이유는, 1) 사회주의 형제국이라고 믿었던 유고 연방의 일원인 크로아티아가 적(대한민국)과 수교한 데 대한 항의의 의미, 2) 고난의 행군과 같은 경제적 어려움에 의한 외화 난, 3) 크로아티아와 북한과 정치, 군사, 경제 등 국가적 이해관계가 크지 않음 등 외에도 윤정희 납치 불발 사건 이후 크로아티아 자치주 정부와의 불화의 지속 등도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닌가 하고 유추할 뿐이다.

 

북한에 대하여 전 세계가 가하는 외교 및 경제 제재에 따른 경제 난과, 김정은 체재에 불안을 느낀 외교관들의 연쇄적인 탈출을 계기로, 북한은 최근에 평양 정권의 재정 지원 없이 현지에서 자립 능력이 없는 외교 공관의 외교관과 동반 가족 숫자를 줄이거나 중요한 이해관계가 없는 나라들은 기존에 설치한 상설  대사관마저 폐쇄하고 있음에 비추어 크로아티아에도 앞으로 상당 기간 공관을 재개하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크로아티아 역시 슬로베니아와 마찬가지로 서울이나 평양에 상주 공관을 두지 않고 있으며 따라서 주(駐) 한국 대사는 일본 주재 대사가, 주 북한 대사는 중국 주재 대사가 겸임하고 있다.  

 

4 시간 여의 주행 끝에 드디어 스플리트 시내에 도착했다. 방향 전환할 곳을 놓치고 지나갔더니 똑 소리 나는 네비에서 우회 도로를 다시 설정해 줘서 우리가 묵을 숙소에 차질 없이 도착할 수 있었다. 네비는 참으로 충직한 길잡이가 아닐 수 없다. 우리가 묵을 장소는 호텔과 같은 영업용 시설이 아니라 개인 아파트였다. 일반 주민이 오래된 아파트를 리모델링하여 저렴한 가격으로 인터넷에 올린 것을 보고 계약을 한 것이다. 사회주의 시절에 지은 승강기도 없는 5층 아파트의 5층에 우리 숙소는 자리 잡고 있었다. 실 평수 18 평 정도의 방 2 개에 3 개의 침대가 있는 숙소를 90 유로에 빌렸고 낑낑대면서 무거운 가방을 5 층까지 올렸다.


숙박비를 받은 주인은 내일 아침 10 시까지는 방을 비워달라면서 열쇠를 주고 가버렸다. 미리 예약해둔 맛집에서 식사를 하기 위하여 밖으로 나왔다. 음악이 은은히 흐르고 정장을 입은 선남 선녀들이 식사를 하다가 우리 일행이 들어가니 일제히 우리를 쳐다보는 가운데 시내 중심가이지만 차가 다니지 않는 이면 도로에 위치한 분위기 좋은 식당에 우리가 예약한 좌석이 확보되어 있었다. 육질이 좋은 스테이크와 아드리아 해에서 잡아온 왕 새우 요리에 와인을 곁들여 먹었다. 6인분 식사비는 팁까지 포함 100 유로를 넘지 않았다.


식사 후에 손자와 손녀를 숙소에서 쉬도록 데려다 준 후에 나머지 네 사람은 시가지 주변을 둘러보려고 숙소를 나왔다. 선창가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서 천천히 걸어서 부도 쪽으로 나갔다. 아드리아 해의 바다 내음을 맡으며 방파제를 걷는 데 부두 앞 광장을 따라서 노천 카페들이 정겹게 들어서 있다. 카페에 앉아서 음식이나 커피를 마시는 사람, 간단하게 술을 마시는 사람 등이 평화롭고 낭만적으로 느껴진다. 선착장에는 스플리트에서 다른 지역으로 가는 정기 여객선들이 있고 아예 배의 선체에 90 분 유람에 1인당 20 유로라고 큼지막하게 적힌 20인승 크기의 ‘사랑의 유람선 ‘ 이라는 TV 드라마에서 봤던 것과 같은 크루즈 보트가 우리를 유혹했다. 곧 어두워질 터인데 시간이 맞지 않아서 유람선은 못 타고 스플리트 시내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그 일대에서 가장 고지대에 있는 산 중턱으로 올라갔다.

 

 혹시 스케이트보드로 여행해보신분 있으세요??

 

             언덕 위에서 내려다 본 스플리트 시내 전망

 

10 여분 정도 계단식으로 된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서 시내를 내려다 보면서 사진을 찍는데 왁자지껄하는 곳을 보니 역시나 5성홍기를 따라 중국인 일단이 점점 우리 쪽으로 다가와 우리 가족을 포위하더니 우리를 아랑곳 하지 않고 담배 연기를 뿜는 사람, 사진을 찍는 사람, 게다가 침까지 아무데나 뱉는 것이었다. 그들과 잠시나마 함께 있게 된 것에 불편을 느낀 우리는 재빠르게 그 자리를 빠져 나와 숙소로 발길을 돌렸다. 아, 정말 엮이기 싫은 불쾌한 사람들이란 생각이 안 들 수가 없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이 곳에서 나는 과일들을 사서 숙소에 가져가서 온 가족이 둘러앉아 먹었다. 씨 없고 한국 포도 맛과는 좀 다른 신맛은 전혀 없고 달콤하기만 한 청포도, 당도가 엄청 높은 딸기와 귤, 일조량이 풍부한 아열대성 기후에서 생육된 미각을 유혹하는 그 과일들의 맛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물론 가격도 비싸지  않았다. 독자 여러분들도 현지를 가게 된다면 꼭 먹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결코 후회하지 않을 맛이다. 숙소에서 맛있게 과일을 먹고 샤워 후에 TV 를 보려고 켜니 이 곳도 역시나 로컬 채널 외에는 나오는 것이 없어서 보는 것을 단념하고 마침 방에  비치되어 있는 전신 안마기 의자에 앉아서 맛사지를 받으니 저절로 잠이 왔다.


이튿날 아침 식구들 중에서 가장 먼저 잠이 깬 나는 다른 식구들이 깨지 않도록 양치질과 고양이 세수를 하고 0630분 숙소를 출발하여 인적이 많지 않은 산책로를 10 여분 간 천천히 걸어서 어저께 봐둔 선창가의 카페를 찾아갔다. 아드리아 해가 보이는 이국의 선창가 노천 카페에는 부부나 함께 밤샘을 한 연인들 몇 쌍이 커피나 스낵을 먹고 있을 뿐 한산하였다. 나는 어제 이 곳을 지나가면서,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이 곳에서 일출을 보며 호젓하게 커피와 스낵을 먹는 것을 버킷리스트에 추가하기로 순간적으로 결심한 터였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추억으로 남을 순간으로 기억하고 싶었다.

종업원이 갖다 주는 메뉴판에서 에스프레소 커피 한잔과 간단한 아침 식사를 주문하였다. 식사는 구운 베이컨 3 조각, Sunny Side Up Egg(계란 프라이?) 2 개와 토스트 식빵 한 쪽인데 40 쿠나라고 적혀있었다. 5유로로 어쩌면 될 것이 같고 1유로 짜리 동전이 없어서 5유로를 내밀었더니 6 유로라고 했다. 10 유로를 줬더니 거스름 돈으로 20 쿠나를 주는 것이었다. 도대체 어떤 셈법이 이런가? 3유로 정도를 바가지 썼다. 그렇지만 이국의 하늘 아래 선창가에서 뜨는 해를 보며 여유롭게 앉자서 진한 커피와 식사를 할 수 있는 축복이 어디 단돈 3유로 (3천7백원 상당)와 바꾸랴! 웃으면서 팁 한번 후하게 준 것으로 간주하고 Thank you ! 하고 웃어줬다. 에스프레소 진한 향이 감미로움을 더해 줬다.


이 나라를 여행 중에 유로로 주면 잔돈은 매 번 쿠나로 줬다. 그 경우 상인들이 멋대로 환율을 적용하니 본의 아니게 약간의 손해를 각오해야 한다. 이 나라에서 쓸 돈은 쿠나로 미리 환전해둘 것을 거듭 권고한다. 숙소에 들어와 보니 아직도 식구들은 꿈속을 헤매고 있었다. 여덟 시가 되니 한 사람 두 사람 식구들이 일어났고 준비를 마친 우리는 다음 여정을 위하여 0910분경에 체크 아웃을 하였다. 차에 오르려고 보니 앞 차창에는 어제 우리가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중에 부딪혀 죽은 무수한 벌레들의 자국들이 늘어붙어 있었다. 인간의 즐거움을 위하여 각종 파리 모기, 하루살이들의 목숨을 본의 아니게 앗아갔구나. 해충은 그렇더라도 무고한 생명들이 영문도 모르고 죽었으니 한갖 미물이지만 명복을 비는 바이다.  자, 다음 행선지, 두브로브니크를 향하여 출발이다.  

 

  • 4편에 계속 –     

┃꼬릿글 쓰기
짜베 |  2017-04-28 오후 10:09:23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글이 옆으로 너무 길어서 읽기가 불편합니다. 중간에 한번만 단락을 끊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소석대산 |  2017-04-29 오전 7:38:1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지도를 보며 웃음이 나오는 게 옛 유고의 해안선을 크로아티아가 거의 싹쓸이를 했군요.
세르비아는 아예 내륙국가가 돼버렸고
보스니아는 천신만고(?) 끝에 두브로브니크로 가는 길목에 있는 네움에다
약 20km 길이의 해안선을 어찌어찌 확보한 걸로 보이고요.
일단, 영토의 효용성을 따지자면 크로아티아가 짱인 것 같다능...
건승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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