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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의 죽음(3) | 나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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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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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의 죽음(3)
2016-08-08 오전 9:50 조회 1803추천 4   프린트스크랩


3. 전장으로

루이가 졸업한 후 독일은 폴란드를 침공 하였고, 곧바로 프랑스와 영국은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였다.


루이는 북동부전선에 배속 되었다.
 마지노선 인근의 부대였다.
프랑스는 든든한 마지노선의 위용을 등에 업고 독일의 자를란트 쪽으로 진격 해 들어갔다.
 독일군의 소극적인 대응으로 치열한 전투는 벌어지지 않고 소규모의 전투만 계속되었다.
 지뢰와 소총으로 부상당한 병사들이 대부분이었다.
루이는 학교에서 배운 대로 침착하게 병사들을 치료하였다.
 바쁜 나날이었지만 치료가 끝난 병사들을 보며 루이는 뿌듯한 만족감을 느끼었다.
 사는 보람이 솟아나는 나날이었다.


드카스트리 상병은 수색조에 뽑혔다.
 아래쪽에 있는 적의 진지를 정찰하는 임무였다.
 이 때 프랑스군은 적진 속으로 이미 30km정도 침투해있는 상태였다.
수색조원 다섯 명이 적의 진지를 향해 내려갈 때 적 진지에서 수류탄이 한 개 날아왔다.
순간적으로 수색조원들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이 때 드카스트리가 뛰어들어 오른발로 수류탄을 차 적진지로 날리었다.
곧 이어 또 한 개의 수류탄이 날아왔다.
드카스트리가 이번 에는 왼발로 수류탄을 차 날리었다.
첫 번째 수류탄은 적 진지에서 터지고 두 번째 것은 공중에서 터지었다.
 두 번 째 수류탄이 터지면서 파편이 드카스트리의 허벅지에 파고들었다.
드카스트리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수색조원 네 명이 적진지를 점령하고 부상당한 드카스트리를 진지로 옮겼다.
전방의 독일군 진지에서 집중적인 사격이 가해졌다.
임시로 지혈은 했지만 빨리 치료를 하지 않으면 드카스트리의 부상이 심각한 상태였다.
수색조원 하나가 적의 화망을 뚫고 아군진지로 도망쳐왔다.


루이는 드카스트리가 부상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아연실색하였다.
 드카스트리라면 작년 독일과의 연례 축구시합에서 2대0으로 지던 경기를 후반 들어 내리 세 골을 넣음으로써 프랑스를 승리로 이끈 프랑스의 축구 영웅이 아닌가?
또한 그는 루이가 고등학교 일학년 때 루이네 학교를 패하게 만들었던 몽펠리에 고등학교의 골 게터였던 것이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국가대표에 뽑혔고, 곧 이어 툴루즈 FC에 창단멤버로 입단하여 프로축구선수가 된 터였다.


루이는 구급장비를 챙겨들고 직접 전선으로 향했다.
 수색조원들이 들어있는 진지에 적의 화망이 집중되어 탈출하기도, 접근하기도 어려웠다.
빨리 대책을 세워야했다.
아군진지에 빈 드럼통들이 많이 쌓여 있는 것을 본 루이는 빈 드럼통에 흙을 채워 굴리도록 했다.
 드럼통들이 많이 굴러 내려가자 은폐물이 생겼다.
루이는 드럼통들을 은폐물 삼아 진지로 내려갔다.
먼저 상처를 소독하고 주사를 놓았다.
재빨리 응급처치를 끝낸 다음에 들것에 드카스트리를 싣고 끌고 올라왔다.


야전병원에 도착한 루이는 제대로 된 수술에 들어갔다.
 다행히 드카스트리의 수술은 순조롭게 끝나고 재활여부에 따라서 선수생활도 계속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수술을 끝내고 잠시 쉬면서 루이는 행복했던 고등학교 시절을 머리에 떠올리고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돌연한 철수명령이 내려져 독일 쪽으로 진격했던 프랑스군은 다시 마지노선으로 돌아왔다.
곧 이어 루이에게 벨기에 전선 쪽으로의 전출명령이 내려졌다.
적의 주력이 벨기에의 평원으로 진격할 것이라고 예측한 프랑스의 지휘부가 마지노선의 일부병력을 벨기에 쪽으로 돌린 것이었다.


독일의 41기갑 군단장 라인하르트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기가 어려웠다.
 아르덴 숲이 교통지옥이 되어 도무지 전차가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는 것이었다.
 전차가 나아갈 앞길에 보병차량들이 끼어들어 도로는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어있었다.
 만약 적의 공습이라도 있으면 완전히 도륙이 될 판이었다.
 룬트슈테트를 비롯한 상급대장들은 기갑부대에 우선권을 주지 않고, 직속상관인 클라이스트 기갑집단장은 강하게 자기주장을 못하고 상급자들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제일 먼저 출발한 구데리안의 19전차군단은 이미 한 참을 앞서가고 있을 것이었다.
라인하르트는 외쳤다.
 “야, 전차로 차량들 다 밀어붙이고 앞으로 나가!”


독일군은 만슈타인의 작전계획에 따라 아르덴 숲을 주공으로 삼고 있었다.
아르덴 숲을 주공으로 하고 벨기에 평원과 마지노선을 조공으로 하는 만슈타인의 계획은 터무니없는 것으로 여겨져 처음에는 채택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벨기에 평원을 주공으로 하는 계획서가 정보책임자의 비행기 추락으로 연합군에게 넘어가자 부득이 만슈타인의 계획을 채택할 수밖에 없었다.


루이는 며칠째 탱크포의 굉음에 시달렸다.
진지 앞의 평원에서 대규모 탱크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프리우 장군이 지휘하는 프랑스 기병군단과 독일의 회프너가 지휘하는 16기갑군단사이에 대규모 격돌이 벌어진 것이다.
 쌍방 1000대 이상의 탱크들이 뒤엉켰다.
독일군은 급강하 폭격기 슈투카까지 동원하여 프랑스의 탱크들을 파괴하였다.
프랑스군도 열심히 대적하여 독일군의 탱크를 무수히 부수어대었다.
그러나 무전기의 부족과 공중지원의 부족이 겹치고, 선형전술을 고집한 지휘관들 때문에 일개 부대가 밀리면 나머지도 덩달아 철수하는 상황이 벌어져 부분 부분을 쪼개서 집요하게 공격하는 독일군에게 조금씩 밀리는 형국이 되었다.


대규모의 부상자가 나왔다.
먼저의 자를란트에서의 부상자들과는 양과 질에서 확연히 달랐다.
엄청난 수의 부상자 대부분이 중상이었다.
루이는 눈 코 뜰 새 없는 나날을 보냈다.


전차중대장 르 루에 대위는 샤르 b1 bis 의 진격을 명령하였다.
육중한 전차가 적진 속으로 파고들었다.
적의 3호 전차 5대와 4호 전차 3대가 모여 있었다.
적들이 먼저 사격을 가하였다.
타격 음이 둔중하게 들리고 전차가 크게 흔들리었다.
르 루에의 전차가 주포를 발사하였다.
 첫 발이 적의 4호 전차에 명중하였다.
적 전차가 부서지는 모습이 보였다.
이어서 포탑의 전차포로 3호전차를 향해 연사를 날리었다.
3호 전차 두 대가 폭발하며 불이 붙었다.
다시금 적의 사격이 아군 전차에 가해졌지만 조금 흔들리고는 그만이었다.
적들은 황급히 도망쳤다.
있는 힘을 다하여 쫒아갔지만 속도에서는 적 전차를 당할 수가 없었다.
르 루에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상했다. 주위에 2개 중대의 전차들만 보였다.
르 루에가 공격 명령을 내리기 전에 이미 사단전체에 후퇴명령이 내려져 있었다.
무전명령을 못 받은 2개 중대만이 공격에 나섰던 것이었다.
르 루에는 후퇴하면서 분통을 터트렸다.
“아, 독일 놈들을 스당에서 몰아낼 수 있었는데 후퇴 명령은 도대체 왜 내려 진거냐?”


남쪽에서 불길한 소식이 들려왔다.
스당이 독일군에게 돌파 당했다는 소식 이었다.
프랑스의 지휘부는 기절초풍했다.
스당이 돌파되었다면 벨기에 전선에 있는 프랑스의 주력군과 영국 연합군이 포위된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제 2군은 도대체 무얼 하고 있었단 말인가?


프랑스 제 9군이 역습에 나섰지만 너무 느린 대응으로 계속 지체에 지체를 거듭하다가 결국 군단 급 역습에 실패하고 말았다.
또한 예비대인 제1 흉갑기병사단의 역습은 샤르전차의 짧은 항속거리 때문에 롬멜의 기갑연대를 전멸시킬 기회를 놓치고, 오히려 롬멜에게 역습을 당해 겨우 1개 전차연대에게 사단전체가 우왕좌왕 하며 농락만 당하는 꼴을 빚었다.


다행히 구데리안이 지나친 승부욕 때문에 클라이스트에 의하여 19기갑군단장에서 잠시 해임되고 1914년의 마른전투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한 히틀러의 명령에 의하여 독일군의 진격이 잠시 중지되었다.
독일군은 서쪽으로의 진격대신 남 측방 일대의 방어에 나섰다.
 사실상 남측에서의 프랑스군의 공격은 확률적으로 제로에 가까웠다.
 다만 샤를 드골이 이끄는 프랑스의 제4흉갑기병사단이 정확한 역습을 가하여 독일군에게 타격을 주었지만 규모가 작아서 전세를 역전시키기에는 한참 모자랐다. 
그 와중에도 무전기의 고장으로 정지 명령을 받지 못한 롬멜은 좌충우돌하며 프랑스군을 괴롭혔다.


끈질긴 설득 끝에 히틀러에게서 진격명령을 받아낸 상급대장 프란츠 할더는 기갑부대를 총동원하여 아라스로, 덩케르크로 쾌속 전진을 시켰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신이 난 독일의 기갑부대들이 전진하면서 전위부대와 후위부대사이에 큰 틈새가 벌어졌다.
이 틈을 연합군이 노렸다.
 연합군에게는 전세를 역전시킬 마지막 기회였다.


프랑스 총사령관 가믈랭은 부사령관이자 북동 작전 구 사령관인 조르주에게 공격 명령을 내렸다.
 “모든 것은 일분일초에 달려있다.”
그러나 이날 가믈랭은 해임되었고, 새로운 사령관으로 1차 대전의 영웅인 막심 베강이 임명되었다.
 베강은 이 역습명령을 최소 시켰다.
그리고는 신임 국방장관을 예방하고, 벨기에로 날아가 벨기에 국왕을 예방하였다.


어떻게든 역습을 성공시키고자 영국군 총참모장 아이언사이드는 영국 대륙 원정군 사령관 고트와 함께 프랑스 제1집단군 사령관 비요트를 설득하여 함께 역습할 것을 합의하였다.
 공격은 반드시 5월 21일 실시한다는 합의 이었다.
그런데 비요트와 1군 사령관 블랑샤르는 이 작전을 5군단장 알트메어 장군에게 위임하였고, 알트메어는 공격준비가 5월 22일에나 가능하다고 보고하였다.
영국군이 5월 21일 공격을 위하여 전차를 정렬시켰으나 프랑스군 전차는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할 수없이 영국군 단독으로 작전을 실시할 수밖에 없었다.


2개 전차연대로 아라스 일대에 공격을 개시한 영국군은 독일의 보급부대를 급습하여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독일군의 대전차포로는 영국의 마틸다 보병전차를 파괴하는 것이 불가능하였다.
독일군은 당황하였다.
그러나 임시방편으로 88mm대공포를 이용한 공격이 주효하다는 사실을 알았고, 포병과의 연계작전을 펼쳐 영국 전차의 1/3을 파괴하였다.
뒤늦게 날아온 독일의 급강하 폭격기 슈투카도 공격에 합세하여 최종적으로 영국군은 총 전차의 2/3가 파괴되는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결국 영국군의 아라스 일대에서의 역습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 공격으로 독일군은 연합군의 역습에 심각한 충격을 받았고, 연합군의 역습에 의하여 전세가 역전될지도 모른다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이는 후에 연합군의 덩케르크 철수작전에 큰 도움을 주었다.


뒤늦게 베강은 5월 23일 최후의 역습을 기획하였으나 솜강 남변의 제 3집단군이 제대로 된 역습을 실시하지 않고, 화가 난 고트가 영국군을 대서양 연안으로 퇴각시켜 버린 대다 설상가상으로 제1집단군 사령관 비요트장군이 5월 21일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지휘공백이 생겨 허둥지둥 대기만 하다가 결국 역습을 최소해버리고 말았다.
전세를 역전시킬 최후의 기회가 사라고만 것이었다.


루이는 부대를 따라 덩케르크로 이동하였다.
덩케르크 해안은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구축함 몇 대에 승선하고자 군인들이 수백 미터씩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쓔우애애앵’
슈투카의 괴사이렌 소리가 루이의 고막을 울리었다.
이어서 폭탄 터지는 소리와 구축함과 모래언덕에서 쏘아 올리는 대공포 소리가 덩케르크의 하늘을 뒤 흔들었다.
온통 적의 비행기뿐이고 연합군의 비행기는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게 적의 지상군은 공격을 하지 않고 있었다. 아라스의 역습으로 혼이 난 독일군이 숨을 고르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영국 공군인 고든중위는 몹시 떨리었다.
 첫 출격이었다.
허리케인을 편대장 기에 바싹 붙여서 날았다.
편대장인 스미스 중령은 걱정 말고 자기에게 바싹 붙어서만 오라고 지시하였다.
호위기가 없는 슈투카는 허리케인의 밥이라고 하였다.
 적들은 며칠째 오만하게도 호위기 없이 폭격기만 보내고 있었다.
덩케르크에서 한참 떨어진 동쪽 하늘에서 슈투카들을 기다렸다.
10분쯤 고공을 선회하고 있자 아래에 슈투카들이 까맣게 몰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자 따라와라”
편대장기가 먼저 기수를 아래로 내리꽂았다.
고든도 바로 뒤를 따랐다.
조준선에 적의 비행기가 잡혔다.
 7.7mm 기관총이 불을 뿜었다.
적의 기체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기 시작했다.
고든은 흥분되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야, 내가 해냈다.”
기수를 올리려고 하는데 꼬리 날개 쪽에 작은 점이 세 개 보이더니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적 전투기인 매사슈미트가 틀림없었다.
고든은 등골이 서늘하였다.
적들이 나를 죽이려고 오고 있는 것이었다.
고든은 급상승하며 필사적으로 왼쪽으로 선회비행을 하였다.
 선회비행 후 오른쪽을 슬쩍 보았다.
적의 비행기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왼쪽을 본 순간 적의 비행기 한 대가 바짝 따라붙은 것이 보였다.
 날개 옆으로 기총 탄이 핑핑 날아왔다.
오른쪽으로 급히 선회하였지만 비행기 동체에 기총 탄이 박히면서 비행기에 불이 붙었다.
 “제기랄” 고든은 급히 탈출하였다.
낙하산 줄을 당기자 불이 붙은 허리케인이 발아래로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고든은 사흘 밤낮을 독일군 눈을 피해 이동하여 덩케르크에 도착하였다.
조종사 복장을 본 병사들이 야유를 해댔다.
 “야, 하늘에서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더니 어디 숨어있다 나타난 거냐?”
고든은 억울하였다.
울먹거리는 심정으로 반박하였다.
 “우리는 여기서 보이지 않는 먼 동쪽에서 싸웁니다. 우리도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뜬 루이는 깜짝 놀라 자기 눈을 의심하였다.
온 해안이 까마득하게 배들로 가득 차 있었다.
배들은 군함뿐만이 아니고 어선이나 요트들도 수없이 많았다.
조그만 통통배들도 있었다.
도버해협을 가득채운 구름이 독일의 폭격기로부터 이들을 보호해주었다.


30만 명이 넘는 연합군이 철수한 해안은 연합군이 버리고 간 장비들로 여기저기 산더미를 이루고 있었다.
 연합군의 무사한 철수를 엄호하기 위하여 프랑스의 3개 사단 3만 4천명은 모래언덕에 남아있었다.
이들 중에서도 상당한 수의 부상자가 나왔다.
 배에 타라는 주위의 권고가 있었지만 루이는 남기로 했다.
부상자들을 버리고 떠날 수는 없었다.
 ‘부상자들이 있는 곳에 반드시 군의관이 있어야한다.’는 것이 루이의 신념이었다.
남은 프랑스 병사들은 모두 독일군에게 포로로 붙잡히었다.


포로행렬이 마지노선을 넘으면서 루이는 프랑스가 항복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너무도 분하고 처량하였다.
마지노 요새를 견학하면서 참으로 든든한 심정이었는데 일 년도 안 되어 포로 신세가 된 것이었다.


포로생활은 힘들고 배고프고 지루한 나날이었다.
고향집의 어머니가 몹시 그리웠다.
 한 가지 위안거리는 아픈 병사들을 치료하는 거였다.
치료는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았다.
 갑자기 맹장염에 걸린 독일 장교도 치료해 주었다.
답례로 맥주 한통이 보내져서 동료들과 나누어 마셨다.


독일이 항복하자 루이는 고향집으로 돌아왔다.
 자유를 되찾게 해준 연합국이 정말로 고마웠다.
 사나리 쉬르메르 항구는 프로방스 상륙작전의 여파로 심하게 파괴되어 있었다.
다행히 앙시베시의 고향집은 무사하였다.

계속

┃꼬릿글 쓰기
팔공선달 |  2016-08-10 오전 8:30:11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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