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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강펀치5 | 나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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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베 단편소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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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강펀치5
2016-06-01 오전 10:42 조회 1851추천 3   프린트스크랩

5. 신촌세브란스

아내를 구급차에 태운채로 바로 은행에 가서 정기예금 문제를 해결할까 하고 은행에 전화를 하였다.
답이 왔다.
 “날씨가 추운데 혹시 환자 분이 감기라도 걸리시면 안 되니까 나중에 저희가 병원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구급차는 동부간선도로를 경유하여 북부간선도로로 접어들었다.
 오른쪽으로 월곡동이 보였다.
병호가 읽은 제임스 힐턴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에는 푸른 달 골짜기에 전설의 사원 샹그릴라가 있다.
병호는 자기가 달 골짜기에 살고 있으니까 샹그릴라에 살고 있는 것이라고 마음속으로 자부하였다.
 아내에게 집근처를 지나가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차는 홍지문 터널을 지나고 연희램프에서 내부순환도로를 벗어났다.


병호 아내는 신촌세브란스 재활병원 7층에 입원하였다.
자리가 창가에 배정되어 침대에 앉아서도 밖이 내다보였다.
안정되고 평화로운 경치가 내려다보였다.
야트막한 야산에 둘러싸인 대학건물들이 고요히 서있고, 군데군데 교목들이 얼마 남지 않은 단풍잎들을 매달고 있었다.
함박눈이 몇 송이 떨어졌다.
“야, 눈이 온다.”
사람들이 외쳤다.
 눈송이들이 점점 많아지더니 온 하늘을 눈으로 가득 채웠다.
복도 반대편 병실의 보호자들이 눈 구경을 하러왔다.
그 쪽 창문으로는 병원의 큰 건물만 보였다.


이제 간병인은 쓰지 않고 밤에는 딸애가, 낮에는 병호가 아내를 돌보기로 분담을 하였다.
병호는 아침에 월곡역에서 6호선 전철을 타고, 신당역에서 2호선으로 갈아탔다.
시간이 약간 달라서 그런지 아니면 원래 그런지 2호선은 7호선보다 덜 붐볐다.
노약자석에 빈자리도 보였다.
 신촌역에서 내려서 병원까지 걸어갔다.
높은 빌딩과 넓은 거리, 젊은 학생들, 병호는 자신도 젊어진 듯 당당한 걸음걸이로 걸었다.
철길 터널을 지나자 암 병원이 웅장한 자태로 병호를 압도하였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병원을 지나가는데 주변의 풍경이 일류호텔보다 더 고급스럽고 깨끗하였다.
공연히 병호의 어깨가 으쓱해졌다.
촌 놈 출신 병호가 아내 덕에 눈 호강을 하는 것이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재활치료가 시작되었다.
 9시부터 9시 40분까지는 전기 자극 치료였다.
 조그만 패드를 왼쪽 팔과 어깨에 붙이고 코드를 꽂은 다음 스위치를 올렸다.
치료사가 환자의 태도를 보고 강약을 알맞게 조절해주었다.
 환자가 가만히 있으면 강도를 높이고 환자가 움찔하거나 찡그리면 강도를 낮춰주었다.
20분이 지나면 패드를 왼쪽 다리로 옮겼다.
병호 아내 외에도 수십 명의 환자들이 저마다 아픈 부위를 치료하고 있었다.
치료사는 칠판에 환자이름과 시간을 적어놓고 시간이 지나면 지워나갔다.


10시부터 10시 30분 까지는 인지치료였다.
 컴퓨터를 보고 문제를 푸는 것인데 병호가 옆에서 지켜보자니 답답하고 짜증이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
도저히 옆에 있지 못하고 밖으로 나왔다.
 인지치료가 끝나면 바로 옆방에서 작업치료가 있었다.
이것, 저것 손동작들을 하고 몇 가지 물어보기도 하고, 중요한 것은 연하치료라고 음식을 삼키는 훈련인데 가제를 써서 입안을 청소해 주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그 동안 코 줄을 써서 음식물을 바로 위장에 도달하게 하였기 때문인지 병호아내의 잇몸은 무척 나빠져서 피가 많이 나왔다.
 나중에 퇴원 후에 따로 잇몸수술을 받아야했다.


2시부터 2시30분 까지는 서있는 훈련이었다.
창문너머로 이화여대의 건물과 북아현동의 아파트들이 보였다.
이어서 바로 물리치료였다.
 아마 재활 치료 중에서 가장 효과가 눈에 보이는 치료가 아닌가 싶었다.
 아내는 치료사의 지시에 초등학생마냥 고분고분 잘 따라주었다.


4시부터는 운동실에 가서 운동기구를 사용하여 등허리운동, 다리들어올리기, 다리내리기, 팔 밀기, 팔당기기를 각각 80회씩 하여야했다.
병호아내는 20번씩 하고 나서는 나죽겠네 하고는 나자빠졌다.
 병호만 있을 때는 어르고 달래서 간신히 40번을 채웠지만 딸애가 있을 때는 독하게 독려하여 악착같이 80번을 채웠다.
 마지막으로 자전거를 20분간 타면 하루의 재활이 끝났다.


병원 본관의 식당은 규모가 엄청나게 크고 가짓수도 많고 맛도 있었다.
 다만 비싼 것이 한 가지 흠이었다.
반찬들이 정형화 된 것도 병호 마음에는 맞지 않았다.
 바깥거리로 나가자니 상당히 시간이 걸리고 거기라고 특별히 싸고 맛있는 음식이 있으란 보장이 없었다.
 병원 문밖만 나서면 싸고 맛있는 음식이 많았던 면목동이 생각났다.


여의도 형님네와 딸애가 또 다툼을 벌였다. 
병호가 아내와 치료하러 병실을 비운 사이에 여의도 형님 내외가 병원에 오신 모양이었다.
형님이 비어있는 앞집 병상의 보호자 침대에 앉자 딸애가 참견했다.
 “그 자리는 우리 자리가 아니니 앉으시면 안돼요.”
 “뭘 비어있는데 잠깐 앉아도 되지.”
융통성 없는 딸애가 소리쳤다.
 “비어있어도 남의자린데 앉으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언성이 높아지면서 형수님이 중재에 나섰지만 딸애는 울면서 발악을 하였다.
“다 필요 없으니 이제 오시지 마세요.”
화가 나신 형님은 그대로 나가버리셨다.


자초지종을 딸애에게 들은 병호는 어이가 없었다.
딸애에게 화가 났지만 딸애를 혼내주는 것은 나중 일이고 우선 형님에게 사죄하는 것이 급했다.
 아내의 휠체어를 끌고 복도로 나갔다.
복도 끝에 가자 창밖으로 천문대의 안테나 돌아가는 것이 보였고 빈 의자가 벽에 붙어있었다.
휠체어를 고정시키고 의자에 앉아 핸드폰을 꺼냈다.
무슨 말로 사죄를 드려야하나 고민하면서 번호를 누르고 있을 때 앞에서 우두둑 소리가 들렸다.
아뿔싸! 아내가 휠체어에서 일어나다가 넘어지는 소리였다.
 핸드폰을 내던지면서 몸을 날렸으나 이미 늦었다.
아내는 휠체어와 함께 넘어졌다.
다행히 머리는 땅에 닿지 않고 무릎을 꿇으면서 손으로 땅을 짚었다.
간담이 서늘하였다.
병원 곳곳에 ‘낙상방지’라고 환자가 넘어지는 것을 최고수준으로 경고하고 있는데 그만 환자를 넘어뜨린 것이었다.
아내의 상태를 물어보니 허벅지가 조금 아프고 다른 데는 괜찮다고 하였다.


병실에 돌아와서 그냥 시치미를 떼고 넘길까 생각했지만 무언가 찜찜하여 간호사 실에 신고하였다.
간호사 실은 초비상이 되었다.
즉시 보고하고 지시를 받고, 이거 저것 검사를 실시하라고 하였다.
이 병원의 특징은 섬세함과 철저함 이었다.
의사와 간호사, 치료사, 직원들이 한 몸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이었다.
 왜 넘어졌는지에 대한 질문이 들어왔다.
전화를 걸다 넘어지는 것을 방치했다면 딸애가 길길이 날뛸 것이 뻔했다.
 거짓말을 했다.
“아, 천문대 안테나 돌아가는 것이 너무 신기해서 쳐다보고 있다가 그만, 죄송합니다.”
이 후에 병호에게는 병원 어디를 가도 ‘방심하다가 환자를 넘어뜨린 보호자’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녔다.


옆 침대 보호자인 효자 총각이 좋은 팁을 알려주었다.
학생식당에 가면 싸고 맛있게 먹을 수 있다고 하였다.
즉시 찾아가 봤다.
정말로 본관식당의 반값으로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병호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혹시 송 군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해 보았다.
 병호는 퇴직하기 전 K고등학교 수학교사였다.
고3인 송 군은 질문을 자주 하였고, 병호는 친절하게 대답해주었다.
간혹 고등학교 과정을 넘어서는 문제는 집에 가서 대학교재를 보고 정리하여 다음날에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송 군은 고마워하였고 병호는 가르치는 보람을 느끼었다.
 송 군은 이대학 공과대학에 합격하였다.
 “여기서 송 군을 만나면 얼마나 반가울까?”


재활치료를 거듭하면서 아내의 몸 상태는 점점 좋아지고 힘이 붙었다.
 위험하다고 계속 주의를 주는데도 자꾸만 침대난간을 넘어오려고 했다.
어느 날인가 보호자 침대에서 책을 보고 있는데 옆에서 손길이 느껴졌다.
아내가 서 있었다.
“아니, 어떻게 난간을 넘어온 거지?”


아내를 걷게 해보았다.
 몇 발짝을 떼었다.
의사선생님이 일자로 서는 자세를 권하였다.
왼발 뒤꿈치 바로 뒤에 오른발 앞꿈치를 놓고 똑바로 서있는 자세였다.
 처음에는 일초도 못 버티었지만 자꾸만 반복하니까 열을 셀 때까지 버티었다.


옆 침대 환자인 아주머니가 지나간 과거 이야기를 다른 보호자와 하고 있었다.
 커튼을 쳐서 옆자리는 보이지 않았다.
이야기가 아주머니의 젊었을 때 고생한 대목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병호 아내의 얼굴이 붉어졌다.
병호가 깜짝 놀라 어디가 아프냐고 물어보았다.
 아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픈 것이 아니고 이야기에 감동하여 울기 시작한 것이었다.


병원에 찾아온 은행 직원들과의 면담이 잘 마무리되어 예정대로 12월 20일에 바로 옆 동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포장이사여서 병호가 할 일은 별로 없었다.
그냥 멀뚱히 서서 지켜만 보았다.
 제반 업무는 전에 엄마와 이사를 해본 경험이 있는 딸애가 다 처리하였다.
전에 이사할 때마다 병호는 방해만 된다며 아내와 딸이 제쳐놓고, 이사할 집 주소를 적어주고 저녁때 찾아오도록 하였었다.
이삿짐 속에는 아내가 가꾸던 50여개 정도의 화분들도 있었다.
 화초들은 다 시들어서 거의 다 죽어 있었다.


연하검사에 합격하여 코 줄을 빼게 되었다.
그 동안 몇 번이나 아내가 강제로 코 줄을 빼어서 다시 끼우느라고 무척 고생을 했고, 못 빼게 팔까지 묶어놓은 적이 있었는데 이제는 다시 안 끼워도 되어서 속이 후련하였다.
코 줄을 빼고 입으로 음식을 먹게 되면서부터는 환자상태가 기하급수적으로 좋아진다고 병실의 보호자들이 말하였다.
정말로 병호아내는 이 후로 급격히 좋아져서 걷는 것은 물론이고 계단까지도 오르내릴 수 있게 되었다.


병원들의 규정상 한 달 까지만 이 병원에 있을 수 있었다.
그 때문에 병실의 환자와 보호자들은 다음에 어느 병원으로 갈 것인지에 대하여 계속해서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의사 선생님은 퇴원하여 집에 가서 외래로 진료 받을 것을 권유하였다.
 그러나 한 겨울에 밖에 나가서 운동도 할 수 없고, 인지상태도 아직은 한 참 뒤떨어지는 터이라 집으로 갈 수는 없었다.
 여기 저기 알아본 결과 수유리의 국립재활병원으로 가기로 결정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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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선달 |  2016-06-01 오후 1:51:48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건필하세요^^  
youngpan 달님은 동감이. 많을듯...
youngpan 국립재활병원은 3달간 간병한 경험이 있네요.....
짜베 도움도 안되는 글를 구구절절히 옮기는 것 같아 쑥스럽습니다.
다힝이 다음 편에는 끝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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