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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강펀치3 | 나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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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강펀치3
2016-05-30 오전 10:43 조회 2195추천 1   프린트스크랩

3. 강릉아산병원

응급실에 도착하고 담당의사가 나왔다.
아내의 병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뇌동맥류라고 머리의 핏줄에 피가 뭉쳐서 꽈리같이 되어 있었는데 이게 터졌다는 것이었다.
이 병이 발생하면 환자들 중 삼분의 일은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삼분의 일은 병원에 도착하거나 수술 중 돌아가시고, 나머지 삼분의 일만 살아난다고 하였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실은 무서운 병이었다.
수술은 간단하다고 하였다.
 머리를 절개하고 핏줄을 클립으로 묶으면 끝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후유증은 자기들로서도 어쩔 수 없다고 하였다.
특히 병호 아내는 피가 터지면서 전두엽을 심하게 훼손했기 때문에 평생 의식을 회복하지 못 할 수도 있다고 하였다.


병호는 기가 막히었다.
정말로 큰일이 발생한 것이었다.
집에 있는 딸에게 전화를 하였다.
엄마가 병원 응급실에 실려 왔다고 말하니까 밝은 음성으로 “ 에이, 엄마는 왜 속을 썩이는 거야?” 하고 받는다.
아직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것이었다.
병호는 전화를 끊었다.


응급실 밖 의자에 앉아 있는데 다시 담당의사가 호출하였다.
 “ 댁이 서울이시군요. 환자의 간병을 생각하신다면 서울로 병원을 옮기는 것이 어떨까요? 다만 서울로 옮길 경우 비록 의사가 동행하지만 차 안에서 2차 출혈이 있을 경우 의사는 별 도움을 줄 수 없고, 빨리 원주나 춘천의 큰 병원으로 가셔야합니다.”
고민이었다.
아무 연고도 없는 이 곳 강릉에 있기보다는 당장 서울로 옮기고 싶었다.
 그러나 옮기는 과정이 너무 위험하였다.
담당의사는 서울로 옮길 경우 미리 수술 병원을 예약해주겠다고 하였다.
 “한 번 모험을 해 볼까?”
서울로 옮기기로 마음을 어느 정도 굳히고 딸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니 그제야 딸애가 울먹거리기 시작하였다.
딸이 울먹거리자 병호도 코끝이 시큰해져왔다.
 딸애가 한 번 알아보겠다고 하였다.


잠시 후 딸의 전화가 왔다.
딸애 친구의 남편이 의사인데 자기 같으면 옮기지 않을 거라고 한다는 거였다.
 너무 위험하다는 거였다.
거리도 그렇고 더군다나 비가 오는 날씨였다.
옮기지 않기로 하였다.
 담당의사가 왜 옮기지 않기로 했는지 물어왔다.
의견을 번복한 것이 약간 미안하여 뒷부분에 힘을 주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 옮기는 것이 너무 위험하고, 또 여기 의사 분들이 상당히 실력들이 좋다고 들었습니다.”
수술은 다음 날 오전 9시로 결정되었다.


밤 9시가 지난 병원 로비는 한산하고 썰렁하였다.
병호는 빈 의자에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애들이 저녁 먹고 출발한다고 했으니까 새벽 두 세 시는 되어야 도착할 터였다.
11시 쯤 A씨 부부가 병원에 왔다.
 속초에서는 너무 걱정이 되어 도저히 잠을 못 이루겠다는 것이었다.
A씨 부부는 자기 친척도 뇌출혈로 쓰러졌었는데 일 년 후에 아무 후유증 없이 일어났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병호를 위로하였다.
 A씨 부부가 근처 모텔로 잠자리를 보러간 후 병호는 빈 의자에 앉아 있기도 하고, 누워있기도 하고, 카페의 빈 탁자에 엎드려있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새벽 세 시 쯤에 애들이 병원 현관문으로 들어섰다.
딸과 아들, 아들 여자 친구와 아들 남자 친구였다.
 밤길을 운전해 온 아들 남자친구가 고마웠다.
병원 근처 모텔의 큰 방을 얻어 다섯이 같이 잤다.

수술실 앞 보호자 대기실은 사람들로 초만원 이었다.
전광판에 대기환자, 수술환자, 회복환자의 명단이 떠 있고 사람들은 숨을 죽이며 전광판을 지켜보고 있었다.
일부 보호자들은 울부짖고 있고, 의사가 이들을 진정시키느라고 애를 쓰고 있었다.
염원과 탄식이 가득한 공간이었다.
구석에는 조그만 기도실이 있어서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병호 아내는 대기에서 회복까지 일곱 시간이 걸렸다.
중환자실로 이송하면서 보호자를 호출하였다.
 병호 아내는 각종 주사기를 주렁주렁 달고 코에는 호흡기를 달고 있었다.
 눈은 수술 후유증인지 시퍼렇게 멍이 들고 부어있었다.
수술은 성공적이라고 의사가 말하였다.
 병호는 안심하였다.
“수술이 잘 되었으니 이제 회복만 하면 되는 건가?”
계속되는 의사의 말이 희망적인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지금 상태가 최선의 상태입니다. 중환자실에 있는 동안엔 점점 나빠질 겁니다. 한 번 상처 난 뇌는 회복될 수가 없고, 재활훈련에 의하여 주변의 뇌가 활성화되어야 예전의 기능을 어느 정도 되찾을 수 있습니다. 결국 재활의 문제입니다.”


중환자실은 하루에 두 번만 면회가 허용되었다.
오전 10시 30분에서 11시까지, 오후 7시 30분에서 8시 까지였다.

오전 면회 시간이 다가오자 한산했던 보호자 대기실이 붐비기 시작하였다.
시간이 되자 모두 중환자실 앞으로 밀려가 손소독제로 손을 세척하고 기다렸다.
걱정과 기대에 찬 모습들이었다.
경비가 문을 열어주자 안으로 들어갔다.
모두들 환자에게 다정하게 말도 걸고 팔 다리도 주무르고 정성들을 다했다.
병호도 아내의 팔과 다리를 주물러 주었다.
병호 아내는 계속 잠만 자고 있었다.
 딸애는 아내의 귀에 대고 “엄마, 사랑해”를 연방 외쳐대었다.
 30분 이 금방 지나갔다.
조금이라도 더 있으려는 보호자들을 경비가 제지하며 내 보내었다.


오전 면회를 끝내고 할 일이 없어진 병호는 병원 주변을 둘러보았다.
 속초와 주문진 사이에 위치한 병원은 왼쪽을 야산이 둘러싸고 있었다.
병원 뒤에는 넓은 주차장이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는 직원용 아파트가 있었다.
병원 오른쪽으로 의료기구 상가가 줄지어 있고, 사이사이에 해물탕집, 순댓국집, 국수집 등 식당들이 있고, 그 너머에 모텔이 두 군데 있었다.
 병원 바로 앞에는 병원소속 마트가 있고, 옆에 버스 정류장이 있어서 노선버스 두 곳에서 속초와 주문진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병원 앞으로 쭉 나가 보았다.
150m 정도 나가자 속초와 주문진을 잇는 큰 도로가 나왔다.
 차들이 무섭게 씽씽 달렸다.
건널목은 없고 지하도를 통해서 건너편으로 갈 수 있었다.
큰 길 옆에 막국수 집이 있었다.
“옳다, 오늘 점심은 막국수로 하자.”
딸에게 말하니 딸애는 “여기에 놀러 온 거야?” 라며 툴툴거리고는 그래도 길을 따라 나섰다.
식당에 들어와 가격표를 본 딸애는 비싸다면서 한 그릇 값만 계산하고는 그냥 나가버렸다.
병호는 화가 났다.
“모두들 보호자가 잘 먹어야 환자도 잘 돌본다고 말하던데 재는 그 말을 허투루 들은 게야?”

모텔비는 2주일 치를 할인하여 지불하였다.
모텔 방이 5층에 있어서 주변의 야산이 내려다보이고, 멀리 푸른 바다도 보였다.
야산은 단풍이 한 창 이었다.


다음 날부터 재정적자를 염려한 딸의 제안으로 내핍생활이 시작되었다.
 아침엔 병원 마트에서 할인하여 파는 어제의 재고품 빵을 사서 병원 로비의 300원 짜리 자판기 커피와 함께 먹었다.
점심은 순댓국집에서 한 그릇만 주문하여 둘이 나누어 먹었다.
주인에 대한 미안감 은 1000원 더 비싼 특 순댓국을 주문하는 것으로 무마하였다.
저녁은 김밥 한 줄 씩 이었다.


닷 세 째 되는 날 오전 면회를 마치고 딸애는 서울로 볼일을 보러가고, 병호는 바다로 가보기로 하였다.
병원 뒤로 길이 있었다.
한적한 시골길로 들어서자 갑자기 서러움이 북받쳐 올라왔다.
코스모스 꽃잎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콩 잎이 누렇게 변색되는 밭두렁 옆으로 병호는 터벅터벅 걸음을 옮기었다.
길은 밭을 지나 두 세 가구가 사는 마을길로 이어졌다.
 마당의 감나무에 주황색 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마을 오른쪽으로 병원의 하얀 건물이 보였다.
길은 다시 산길을 지나서 논길로 이어졌다.
경지정리가 잘 되어서 길이 반듯했다.
이제는 병원 건물이 저 멀리 보이고 그 뒤로는 대관령의 연봉들이 웅혼하게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논들은 꽤 넓었다.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리는 귀중한 땅이구나.”
 한 참을 걸어서 바다와 인접한 차도를 만났다.
차들이 무섭게 질주했다.
건널목은 있지만 차가 많지 않아서인지 신호등은 없었다.
병호는 좌우를 확실하게 살피고, 100% 안전을 확인하고는 건널목을 건넜다.
아내가 병상에 누워있는 지금 만약 병호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야말로 병호네 가정은 풍비박산이 되는 것이었다.
 길을 건너자 경포대부터 이어지는 기나긴 모래사장이 펼쳐졌고 그 너머에 동해의 푸른 파도가 넘실대고 있었다.
 병호는 용왕님에게 빌었다.
“용왕님, 아내의 병을 꼭 낳게 해 주십시오.”


돌아오는 길에 논둑에 클로버들이 모여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네잎클로버를 찾았다.
한 개라도 찾으면 아내 병이 금세 나을 것 같았다.
그러나 돋보기까지 쓰고 아무리 찾아봐도 네잎클로버는 눈에 보이지 않았다.
클로버들이 모여 있는 곳마다 쭈그리고 앉아 찾아보았지만 허탕이었다.


여의도 형님 내외분이 문병을 오셨다.
여의도 형님은 아내의 이종 사촌 오빠로 병호네가 어려울 때마다 도움을 주시는 분이었다.
고등학교 때는 육상선수이셨고, 대학교 체육과를 다닐 때에는 럭비선수로 활약을 하셨다.
 해병대 항공장교로 월남전에 참전하시어 미군 정찰기를 몰았다고 하셨다.
 젊었을 때에는 몸이 어찌나 빠른지 날아가는 제비도 손으로 잡았다는 소문이 퍼질 정도였다고 아내가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술은 병호보다 더 잘하시어 병호의 좋은 술친구이기도 하였다.
아내의 문병이 끝난 후 저녁 때 여의도 형님과 반주를 하였다.
 딸내미의 눈이 도끼눈깔이 되어 째려보았다.
그 다음날 딸은 일방적으로 선언을 하였다.
 한 번만 더 술을 마시면 당장 짐을 싸서 서울로 가버리겠다는 것이었다.


딸애와 형수님과의 다툼도 있었다.
병호네는 또 한 가지 어려운 문제에 봉착해 있었다.
 분당에 있던 집을 팔고 현재 전세를 살고 있는 월곡동에 아파트를 한 채 계약했는데 12월 20일에 잔금을 지불하고 이사를 하기로 되어있었다.
그 잔금을 아내가 몇 달이라도 이자를 불리려고 정기예금에 넣어놓았다.
 딸애가 은행에 가서 울면서 사정을 했지만 은행에서는 본인이 오지 않으면 돈을 찾을 수 없다고 하였다.
 잔금을 지불할 날짜는 두 달도 남지 않았는데 아내가 저 지경이니 병호네는 애가 탈 수 밖에 없었다.
 딸애는 원칙주의자 인지라 은행에서 규약 상 안되는 거면 그냥 안 되는 것으로 믿고 있었다.
형수님은 오랜 세월을 산 경험상 인간이 하는 일에 안 되는 것이 어디 있느냐며 아는 사람을 통하든지 무슨 방법이 있을 거라고 딸을 설득했다.
세대차이 인지 성격차이 인지 둘은 평행선을 달리었다.
형수님이 긴 병 끝에 효자 없다고 딸애의 정신건강에 대하여 걱정을 하셨다.
병호도 딸애가 걱정이 되었다.
 병호는 생활의 첫째 모토를 ‘딸과 싸우지 말 것’으로 정했다.


아내의 지인들이 여러 팀 문병을 왔다 가고, 병호의 친구들도 여러 팀이 문병을 왔다 갔다.
병호는 술친구들이 왔었음에도 술을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아 딸에게 점수를 땄다.


딸애가 두 번째로 서울로 가고 난 후 병호는 주문진 행 시내버스를 기다렸다.
정류장 앞 벤치 주변에 낙엽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벤치 사이로 휠체어를 탄 환자들이 돌아다녔다.
병호는 그들이 부러웠다.
 “아내도 빨리 낳아서 휠체어를 타면 얼마나 좋을까?”
병호는 2층 중환자실을 올려다보며 아내가 위치한 병상의 창문을 가늠해 보았다.


주문진 터미널 부근에 내려서 점심으로 동태찌개를 먹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 환승 시간 내에 버스를 타기 위하여 급하게 강릉행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는 연곡을 지나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강릉으로 가려면 왼쪽으로 가야하는데 무언가 이상했다.
“돌아가는 길이 있나?”
무심한 병호는 그냥 앉아 있었다.
차는 시골 마을로 계속 들어갔다.
정류장에 정차할 때 마다 손님들이 한두 명씩 내렸다.
 “시골 마을을 순환하는 버스인가 보다. 남는 게 시간인데 뭐 급할 거 있나?”
마침내 손님들이 모두 내리고 병호 혼자만 남았다.
 이정표는 왼쪽이 소금강이고 직진방향으로는 진고개 이었다.
운전기사에게 물었다.
 강릉으로 가는 버스가 아니라고 하였다.
버스를 잘 못 탄 것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구경이나 하자.”
느긋하게 좌석에 앉아 바깥 풍경을 구경하였다.
사실 병호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처음 가보는 길’ 이었다.
버스는 종점인 송천약수터에 도착했다.
20분가량 쉬었다가 출발한다고 했다.
종점에는 휴게소식당이 있었다.
아주머니들이 김장을 담그고 있었다.
주위에는 별장도 몇 채 눈에 띄었다.
산골짜기가 온통 붉고 노란 단풍으로 물들고, 맑은 물이 물보라를 일으키며 골짜기를 흘러가고 있었다.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은 외롭지 않을까? 저 아래의 인간 세상이 그립지는 않을까?”
병호는 산 구비 구비 골짜기 저 아래의 인간 세상에 누워있는 아내가 생각났다.


버스가 출발할 때 운전기사가 자판기 커피를 한 잔 병호에게 건네었다.
 병호는 운전기사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버스를 갈아타기 위하여 연곡에서 내렸다.
정류장에는 그늘이 져서 햇볕이 드는 옆의 공터에 서서 강릉행 버스를 기다렸다.
채소밭의 배추가 서리를 맞아서인지 풀이 죽어있었다.


중환자실에 입원한 후 두 번째 주부터 아내는 오른발가락과 오른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희망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11월 중순에 접어든 날씨가 쌀쌀함을 더해가자 병호는 겨울옷도 갈아입을 겸 서울을 다녀오기로 했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쿠폰도장을 찍었다.
도장이 열 번 찍히면 한번은 공짜로 탈 수 있었다.
 자다 깨다를 반복할 동안 버스는 서울에 도착하여 올림픽 대로를 휘돌아 천호대교에 접근하고 있었다.
보름 만에 보는 서울이 반가웠다.
 멀리 이태원 쪽으로 지는 태양이 한강에 석양을 드리우고 있었다.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한강을 끼고 있는 서울의 풍경이 마르마라 해를 끼고 있는 이스탄불의 풍경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 녀석은 밤늦게까지 들어오지 않고 썰렁한 방안에서 영 잠이 오지 않았다.
아내와 딸이 있는 강릉이 오히려 그리웠다.


3주째 접어든 어느 날이었다.
저녁 면회시간에 아내가 병호를 보더니 입을 한 쪽으로 찡그렸다.
웃는 것 이었다.
병호는 감격스러웠다.
 “ 아아, 아내가 나를 보고 웃었다. 내가 못생겨서 웃었을까? 하하 못 생긴 것도 이런 때는 좋구나.”
 면회가 끝나자마자 기쁜 소식을 여의도 형님께 바로 전해드렸다.
 형님도 무척 좋아하셨다.


환자와 보호자에게 의사선생님은 신과 같은 존재였다.
 면회시간에 담당 의사를 만나는 것은 일종의 행운이었다.
조금이나마 희망적인 소식을 전해 들으려고 두 눈을 부릅뜨고 설명을 들었다.
설명을 듣고 나면 그래도 마음이 안정되고 희망이 생겼다.


병원 로비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 두 분이 걸어가고 있었다.
그 중에 한 분은 담당 의사였다. 반가웠다.
그런데 두 분 모두 입에 아이스 바를 물고 있었다.
 너무나 신기했다.
의사 선생님들이 아이들처럼 얼음과자를 먹고 있다니, 병호는 그 때 깨달았다.
 “의사선생님들도 역시 사람이구나.”


세 번째로 바닷가로 갈 때는 딸애와 함께였다.
 병호는 딸에게 이야기했다.
 “ 첫 번째는 울면서 갔고, 두 번째는 기도하면서 갔고, 지금 세 번째 갈 때에는 이렇게 너와 함께 구경하면서 가는구나.”


3주가 지나고 병호 아내는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겨졌다.
 위급한 상황은 넘겼으니 이제 부터는 재활치료에 전념해야 한다는 담당의사의 판단에 의해서였다.
낮에는 절대로 잠을 재우지 말라고 담당의사가 말했다.
계속 운동을 시켜야한다고 했다.
마음약한 병호에겐 어려운 주문이었지만 어쨌든 아내를 계속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삼엄한 중환자실에 비하여 4인실인 일반병실은 온화하고 안정감 있는 분위기였다.
보호자들과 환자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고 정보를 교환하였다.
간병인 아주머니도 구하였다.
이틀 전에 딸애가 말했었다.
 “아빠, 간병인 비용이 많이 들지만 아직 우리가 경험이 부족하니 일단 간병인을 쓰고, 우리가 하나하나 배워서 익숙해지면 그 때는 우리가 간병을 하도록 해요.”

“응, 그러자꾸나.”


첫 번째 재활치료는 실패로 끝났다.
이송용 베드로 재활치료실에 도착했는데 도착하자마자 아내가 토하기 시작하였다.
엘리베이터에서 그랬는지 아니면 베드가 흔들려서 그랬는지 아내가 멀미를 한 것이었다.
 다시 병실에 올라와서 하루 종일 잠만 잤다.
 한시가 급한 재활치료인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두 번째 날에는 조심에 조심을 거듭해서 천천히 이동하였다.
 맨 먼저 비스듬히 세우는 치료를 하였다.
그 다음에는 물리치료사가 잘 움직이지 못하는 왼팔과 왼다리를 마시지 해주었다.
물리치료실에서는 여러 환자들이 제각기 다른 자세로 치료를 받고 있었다.
물리치료사들이 익숙하고 정성어린 손놀림으로 환자들을 치료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세 번째는 인지치료라고 하는데 주소와 이름 등을 물었다.
 간신히 이름을 대답 하는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작업치료로 막대기들을 옮기는 일을 시키었다.
오른손은 그런대로 약간씩 사용하였다.
치료가 다 끝나고 병실로 올라올 때 병호는 마음이 뿌듯하였다.
 드디어 아내의 재활을 향한 첫걸음이 시작된 것이다.


약해진 장 때문에 일반병실에 머무는 5일 동안 재활치료는 이틀밖에 하지 못했다.
닷 세 째 되는 날 담당의사가 병호를 찾았다.
 “ 댁이 서울 이시 든데 이제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옮기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무언가 쫓아내는 느낌이 들었지만 서울로 간다는 말에 병호는 금방 들뜬 기분이 되었다.
 “예, 좋습니다.”

딸애가 인터넷으로 알아보더니 서울의 유명 병원은 대기자가 많아서 입원하는데 몇 달씩 기다린다고 하였다.
우선은 이 병원에서 소개해주는 병원으로 옮기기로 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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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pan |  2016-06-01 오후 2:31:4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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