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예찬

아침 열 시, 짧은 5분간의 휴식을 마치고 옆에 있던 빈 커피캔을 습관적으로 입으로 가져갔다.

바닥에 남아 있던 두,세방울의 커피가 혀위로 떨어졌다.

마지막까지 떨어지지 않고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반방울은 혀끝을 대어 타고 흘러내리게 했다.

이상도 하지.

아침에 커피캔 하나를 마실때는 아무렇지도 않던 것이 겨우 두,세 방울 마신 것만으로도 뱃속에 자극이 전해진다.

일분쯤 지나자 조용하던 뱃속이 조금씩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3분이 지나자 파이톤이 큰 먹이를 삼키듯이 수축과 이완을 시작했다.

아침 먹은 것이 이제야 소화가 되는 모양이다.

이 때의 기분, 뱃속이 갑자기 허해지면서 공복감을 느낌과 동시, 어디선가 읽었던 이 순간이 살이 제일 많이 빠진다는 말이 생각나서, 배고픔과 기쁨을 동시에 참는 미묘한 시간이 잠시 이어졌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커피는 루왁(Luwak)이라는 커피이다.

인도네시아가 네델란드의 식민지였을때 커피원산지에서 원두를 모두 빼앗긴 원주민들이 그 때 까지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야생고양이의 배설물속에서 커피원두를 발견하고는 맛을 보았더니 그 맛이 기가 막혔다는 것.

루왁이라는 이 고양이는 특유의 후각으로 질좋은 커피열매를 찾는다.

고양이의 장속에서 떵침을 맞고 분해되고 발효된 커피원두는 특유의 향과 맛을 머금고 그 희소성도 한 몫 거들어 세계에서 제일 비싼 커피로 등극했다.

그 때문에 지금은 루왁커피의 생산량을 늘리기위해서 야생의 사향고양이를 동물농장에서 사육하여 전문적으로 떵만드는 기계로 만들고 있다고 하는 소문도 있는걸 보면 인간의 하는짓이란 자연계에 평생 도움이 안된다.

처음 만난 아내는 커피를 좋아했다.

설탕을 넣지 않고 크림만 타서 마셨다.

나도 아내에게 고상하게 보이고 싶어서 커피를 좋아하는척 했다.

내가 좋아하는 커피는 설탕과 크림을 듬뿍 넣은, 커피라기보다 설탕물이었다.

대학 2학년.

필수과목중에 사료강독이 있었다.

16세기의 사료로, 한자로 적힌 문장을 당시의 일본말로 읽는것인데 일본학생들도 제대로 읽지 못했다.

담당선생님은 내가 유학생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격주로 과제를 내고는 수업의 첫번째에 읽게 했다.

나는 필사적이었다.

수업이 끝나면 옆의 학생들에게 물어서 0.3밀리 샤프로 전부 토를 달았다.

수업시간 90분동안에도 학생들이나 선생님이 읽고 있는것 전부에 깨알같은 글씨로 토를 달았다.

아침 열시반, 수업이 끝나면 나는 완전히 패잔병같이 몸을 이끌면서 식당으로 향했다.

그리고 한 잔의 커피...

마치 천국같았다.

왁자지껄한 식당이 깊은 산 속 같았다.

혼자서 무아의 경지에 빠져 있었다.

그렇게 일년동안 행복했었다.

처음 커피의 위력을 본 것은 한국에서 일본어를 공부할 때 였다.

일본어수업은 힘들었다.

교대근무였기 때문에 오전과 오후를 번갈아 다녀야 했는데, 오후 수업은 초급반이 없고 상급반뿐이었다.

상급반 선생님은 짧은 이야기를 숙제로 내고는 다음 수업시간에 한 사람 한 사람 전원에게 발표시켰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수강생 대부분이 여성이었기 때문에 창피당하지 않기 위해서도 외울 수 밖에 없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외웠다.

걸어가면서도 외웠다.

단어수첩을 들고 길거리에서도, 버스를 타도, 장소를 가리지 않고 외웠다.

오후수업이 끝나면 나는 완전히 녹초가 되어 있었다.

긴장감이 풀리면서 머리에 몰려있던 신경들이 제자리로 돌아갈 장소를 찾아 헤매고 있을때 나는 책상위에 엎드린채 움직일 기력조차 없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커피가 마시고 싶어져서 자판기에서 한 잔 뽑았다.

커피를 마시니, 그 때까지 자기장소도 못찾고 우왕좌왕하던 신경들이 마치 명령을 받은것처럼 한 줄로 정렬을 한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힘이 몸속에서 되살아 났다.

내가 세번째로 커피애호가가 된 것은 근래의 일이다.

맞지 않는 직장상사와 싸우기 싫어서 이리저리 헤매다가 들어간 곳은 열 두 시간 교대의 직장이었다.

그런데 몸이 이전과 달랐다.

야근이 매우 힘들었다.

특히, 야식을 먹고 난 후에는 견디기 힘들었다.

새벽 세 시경이 되면 몸에서 비명소리가 났다.

10분도 안되는 짧은 시간에 눈이라도 붙일까했으나 포기하고 커피를 택했다.

또 다시 일어나는 기적...

나는 커피가 잘 받는 체질인가 보다.

지금은 평소에도 커피를 즐기고 있지만, 지쳐있을때는 특효약이다.

이상하리만치 잘듣는 편이다.

커피의 향기만으로도 세포가 반응하게끔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특별히 기호품은 없지만 향이 짙은것을 좋아한다.

진하게 마시는 편이다.

페밀리 레스토랑에서도 식사후에 석 잔 정도 에스프레소를 마신다.

잠들기전에도 뜨거운 커피를 마시면 숙면할 수 있다.

그러나 도중에 잠이 깨면 밤을 세워야 한다.

설핏 잠이 깨면 태풍이 지나간 뒤의 산속같이 뇌속이 깨끗이 씻겨져서는 세포 하나하나의 움직임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눈을 감으면 온 우주의 별들이 뇌속에 펼쳐진다.

콜롬부스가 처음 커피를 소개했을때 당시의 유럽에서는 사형수에게 매일 커피를 마시게해서 생체테스트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후에 커피가 유럽의 일상음료로서 자리를 잡아 가자 각 강대국은 아프리카에 식민지를 확보하고는 대규모 플랜테이션을 만들기 시작했다.

세계 제1차대전도 독일의 키르군항의 수병반란때 식량창고의 커피원두가 약탈당했기 때문이라나...음, 이건 아니다.

최근에 들은 이야기로는 몸속의 암세포를 억제하는 식품이 계피와 커피, 그리고 식초라고 한다.

세 가지 모두 내가 아주 좋아하는 것이 아닌가?

이쯤되면 우선 암으로 죽을 확률은 거의 없다고 생각되는데 가끔씩 밤에 자다가 일어나면 심장이 터질듯이 박동하는 것을 보면 자식들에게 큰 폐는 끼치지 않을것 같다는 예감도 든다.

떵커피가 그 희소성때문에 비싸게 팔린다는 것을 알고 어느 커피회사가 떵커피를 대량생산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그리고 그 결과 태국에서 코끼리떵에서 커피원두「블랙 아이보리」의 채취에 성공했다.

가격도 루왁보다 비싸다고...

아프리카의 어느지역에서는 이전부터 야생코끼리의 떵을 말려서 오차로 우려 마셨으므로 이런 발상이 가능했던 것이다.

미래에는 호박만 먹여서 호박죽 떵을 생산하는 코끼리, 현미를 먹여서 현미떵죽, 들깨떵죽, 율무떵죽, 녹두X죽, 팥X죽, 흑임자X죽, 전복X죽에 미역X국까지 생산하는 코끼리떵 전문점이 등장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