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토마토를 심었습니다.

처음 아파트로 이사를 오고 나서 몇년동안은 신축건물의 편리함에 몸을 맡기고 있었으나 차츰 땅이 그리워져서 플랜트재배용 화분을 두 개 사서는 베란다에 두고 토마토를 심었다.

첫 해에는 욕심을 내서 넓이가 30*50밖에 안되는 화분 두 개에 토마토묘목 열 개, 옥수수싹을 또 열개를 빽빽하게 심어서 매일 물을 주면서 풍성한 수확을 꿈꾸고 있었다.

베란다인지라 벽에 가려 햇빛도 제대로 들어 오지 않는데 그래도 내 땅을 가졌다는 기쁨에 산에서 파온 흙에다가 소똥, 닭똥을 반 쯤 섞고 식물영양제를 뿌리마다 한 개씩 꽃아주었다.

산 흙을 팔때 개미집이 있었는지 개미가 무수히 기어나오길래 성냥불로 개미 수백마리를 태워 죽이는 만행도 저질렀다.

방울토마토가 관리가 제일 쉬웠다.

특히 노란색으로 익어가는 놈은 제일 비싼가격으로 산 값을 톡톡히 했다.

일주일에 하나씩은 따먹었으니까...

결과는 초보자가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었다.

회사에서 취미로 밭농사를 하고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여러가지를 가르쳐주었다.

토마토묘목은 30센티가량 간격을 두라는 것, 묘목일때 영양을 너무 많이 주지 말것, 햇볕은 하루 6시간이상 쬘것, 비를 맞히지 말것, 열매가 열리면 물을 많이 주지말고 석회와 아연을 공급할것, 뿌리를 충분히 내리게 할것... 그 외에도 몇십년간 쌓아온 노하우를 한꺼번에 풀어 내는데 초보자의 머리용량으로 한계를 넘어 버렸다.

초여름부터 그래도 일주일에 토마토 한 두개씩은 따먹었다.

옥수수는 짬뽕국물속에 들어있는 손가락만한것 그것도 서너개가 전부였다.

투입한 자금만 해도 화분, 비료, 배양토, 묘종등...5천엔은 족히 들어갔다.

토마토가 비싸긴 하지만 슈퍼에서 사서 먹어도 5천엔이면 매일 주먹만한 토마토를 석달 열흘동안 먹을수 있었을 것이다.

베란다에 있는, 유리구슬보다는 조금 크고 매추리알보다는 작은 노란 방울토마토와, 슈퍼에 있는 주먹만한, 빨간 살결에 초록색 매끈한 엉덩이를 가진 토마토를 상상할때마다 자신의 무능력에 주먹을 쳤다.

일년이 지나서 나는 첫해의 수모를 잊지 않고 잘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올해에는 욕심부리지 않고 하루에 방울토마토 두 개씩 잡숴주겠노라고 목표를 설정했다.

지난 여름휴가때 처갓집에 갔을때 토마토나무를 보고 놀랐다.

줄기가 아니고 나무였다.

굵은 토마토나무 두 줄기에 주먹만한 토마토가 백개도 더 달려 있는게 아닌가?

옆에는 방울토마토가 몇백개인지 셀수도 없을 정도로 달려 있었다.

그 자리서 크고 탐스런 놈 두 개를 깨물어먹고 돌아올때는 광주리가득 담아들고는 운전중에 졸릴때마다 콧노래를 부르며 먹었다.

그야말로 토마토천국이 아니었던가?

다음 해의 봄, 작은 사건이 있었다.

참새가 베란다에 있는 화분에 알을 낳은것이다.

2월인가 3월경이었던가... 베란다에서 새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아직 날도 차고 묘목을 심기에는 이른 시기였으므로 베란다에는 얼굴도 비치지않고 있다가, 4월들어 어느 일요일 아이스 박스로 덮어두었던 화분을 들쳐보다가 깜짝놀랐다.

언제부터 물어왔는지 지푸라기가 두텁게 깔려있고 적당히 파인곳에 새둥지가 보였다.

둥지속에는 회색에 검은 점이 찍힌 메추리알정도크기의 알이 서너개 있었는데 알사이에서 짙은 갈색으로 된 뭔가가 꿈틀거리는게 아닌가.

지렁이인줄 알았다.

그것도 제법 통통한놈인가보다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갓 부화한 참새새끼였다.

털도 없는 알몸의 새새끼는 쪼글쪼글한 피부에 마치 ET같았다.

어미새가 알면 안좋아할까봐 다시 뚜껑을 덮어주고는 며칠을 기다렸다.

이놈들이 이사를 가야 토마토농사를 시작할텐데... 이제 갓 부화했으니 한 두 달은 틀렸구나... 이렇게 생각하고는 한 동안 그대로 두었다.

20여일이 지난 후에 얼마나 자랐는가 싶어 살짝 엿보았더니.... 이런, 알 세개에 시커먼 놈 하나... 그대로가 아닌가?

제비집에서 새끼들이 입을 다이아몬드로 만들어서 짹짹거리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던 나는 내심 실망을 했다.

그런데 그대로가 아니었다.

20여일전에 본 알은 전부 부화를 해서 껍대기만 저만치 밀려나 뒹굴고 있었고 새로 알을 낳은것이 지금 막 부화를 시작한 것이었다.

참새가 부화한지20여일만에 날아가?

조류사전을 찾아보지 않아서 대답도 못하겠다.

아무튼 내 집에 월세도 내지 않고 이놈들이 몇 달동안 동거를 했다는 말이다.

할수없이 제일 큰 화분을 참새가족에게 빼앗기고는 둥근화분을 두 개 더 샀다.

그리고 이번에는 욕심부리지 않고 화분하나에 토마토묘목을 하나씩만 심었다.

참새가족은 그 후 한 두달 더 짹짹거리며 살다가 6월중순의 어느 날 태풍이 심하게 불던 밤에 어디론가 모습을 감추어버렸다.

그 날 낮에도 사건이 있었다.

큰 새가 와서 참새들을 습격했다는 것이었다.

근처에 까마귀가 많으므로 까마귀에게 변을 당했는가 생각했는데, 태풍 다음 날 베란다의 콘크리드바닥 구석에 가지런히 놓여진 세 개의 알을 보고 까마귀는 아닌걸 알았다.

푸른 비취색을 띤 알이었는데 색이 고왔다.

고려청자를 보는것 같이 옛스런 맛이 나는 색이었다.

종달새소리가 가끔 들리던데 아마도 종달새알이리라.

어미새가 태풍이 부니 급한 김에 낳긴 했지만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고 차가운 콘크리트바닥에 내버려둔 채 가버린 것이었다.

자연부화하기에는 이미 틀렸다고 판단이 되자 이런저런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유정란이 아닌가... 슈퍼에서 파는 계란과 비교할 수 있는가...

끓는 물속에 담가볼까 고민하다가 지푸라기로 덮힌 새집속에 넣어두었다.

그리고 한 달후 각각의 화분에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그러고 보면 지금 살고 있는 곳은 환경이 때묻지 않은 편이다.

인구 40만의 작은 도시의 변두리이긴 하지만 주위는 감생산지로 유명한 곳이고, 산에서 300미터정도 떨어진곳이라 여름에는 창문을 열어놓으면 아침 저녁 집안을 통과하는 바람에 문이 부셔질정도다.

집앞에는 논도 있고 밭도 있지만 농약치는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었다.

그래서인지 여름에는 아침마다 꿩소리를 듣고 눈을 뜨며, 밤에는 개구리울음소리를 자장가삼아 잔다.

장끼는 누가 꿩아니랄까봐 꿩꿩하고 운다.

새끼는 아직 제대로 소리를 못내고 목이 막힌듯 프읍 프읍 하고 소리를 낸다.

이사온 처음에는 아침 출근때마다 밭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꿩을 볼 수가 있었으나 지금은 들고양이들이 설치고 다녀서인지 차츰차츰 사라져가는듯 하다.

올해는 참새도 종다리도 발길을 끊었다.

몇년전에 간선도로 공사를 시작하면서부터 꿩들이 놀고 있던 곳에 사람사는 집이 한 채 두 채 들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2년동안 방치했던 지푸라기 덮힌 화분을 말끔히 정리하고 신선한 소똥과 닭똥을 조금 더 보충하고는 토마토묘목을 다섯개 사서 화분에 각각 심었다.

그리고 못쓰는 의자위에 올려 햇볕이 더 잘 들게했다.

한 달이 지난 지금 성장속도를 보니 1300엔 투자한 묘목의 반본전은 건질수 있겠다.

토마토케첩으로 유명한 일본의 어느 회사에서는 하이드로... 뭐라고 하는 수경재배온실을 보여주는데 사방 길이가 수백미터인 공장이었다.

흙대신에 야자열매의 섬유를 깔아서 뿌리가 내리도록 하고 각종 영양제가 들어있는 수액속에 담구어서 재배하는데 대략 1.5미터 간격의 줄이 수백개, 토마토 한 그루의 폭은 50센티였다.

놀라운것은 토마토란 놈은 한 그루에 열매를 만 개나 열게 할 수 있대나.

흙이 아니고 각종 약품으로 범벅된 액속에서 양분을 빨아 열매를 맺는것이 웬지 모를 거부감을 느끼게 했지만, 방문자가 현장에서 따서 씻지도 않고 깨물어 먹는 모습을 보고 시대의 변화에 새삼 놀라움을 감출수가 없었다.

생각해보면 수경재배는 30여년전 츠쿠바박람회에서 선을 보인적이 있다.

이제는 인터넷에서 화분세트를 판매한다.

야자열매도 필요없고 그냥 물담는 용기만 있으면 각가정에서 토마토가 주렁주렁 달린 가정원예를 겸한 멋진 풍경을 베란다에 누워 토마토를 깨물면서 만끽할수 있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