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전선

3월에 접어 들자 한 쪽에선 봄맞이로 준비가 한창인데 또 다른 한쪽에선 겨울의 마지막 꼬투리를 놓지 않고 있다.

내게 있어서 일년중 제일 괴로운 달이 3월달이다.

3월이가 들으면 오라버니, 그 무슨 섭섭한 소리요 하시겠지만 화분증으로 20년을 시달리고 있는 내 입장도 알아 주었으면 한다.

해마다 2월 중순부터 4월말까지 두 달반을 고통속에서 지내고 있다.

화분... 꽃가루.

듣기만해도 포근하며 처녀들의 가슴을 사알짝 설레이게 하고 봄을 연상하게 하며 그 속에 파묻혀 살아도 천국같은 생활이 이어질것 같은 말이다.

나도 그랬다.

순진한 총각이었으니까.

화분이라고 하길래 아름다운 꽃에서 벌이나 나비가 채취하는 그런것인줄 알았으나 꽃같지도 않는 꽃도 있는 모양이다.

겉씨식물 구과목 낙우송과의 상록교목...

설명이 오히려 어려운데, 쉽게 말해 삼나무이다.

삼나무.

일본의 산마다 빽빽하게 심어져 있는 나무.

일본의 대표적인 목재이다.

일본은 화산과 지진의 나라인줄 알았는데 맑은 물과 온천, 그리고 울창한 숲, 게다가 친절한 여자까지... 참으로 탐나는 나라이다.

삼나무는 재질이 단단하며 가볍다.

이 놈은 계곡의 급경사에서도 밑퉁을 꺾어서 똑바로 위로 자란다.

마치 발기된 남성의 거시기같다.

일본은 옛날부터 삼목을 계획적으로 재배해 왔다.

가옥의 기둥은 물론이고, 배에도 술통에도, 나막신까지 이용했다.

현재 일본인구의 20%정도가 화분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 최대원인이 봄이 오기전에 일본열도를 강타하는 재채기의 주범 삼나무 꽃가루이다.

1994년 3월 12일, 날자도 정확히 기억한다.

밤 늦게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50cc오토바이를 타고 돌아올때의 일이었다.

오사카 요도가와의 강변도로를 달리고 있을때 갑자기 도로가 울퉁불퉁했다.

도로를 재포장하느라고 아스팔트를 한 껍질 벗겨 놓았던 것이다.

앞에서 달리고 있던 트럭의 타이어에서 엄청난 먼지가 날라왔다.

바로 뒤에서 승용차가 따라왔기 때문에 속도를 늦출수도 없었다.

그대로 5분 정도 달렸다.

다음 날, 재채기가 멈추질 않았다.

게다가 눈물에 콧물... 감기인줄 알았다.

그런데 눈은 또 왜 그렇게 가려운지...

눈알을 꺼내어 솔로 박박 문질러 씻고 싶을 정도였다.

원인도 모른채 며칠 뒤 삼일간의 대학바둑동아리 합숙에 참가했다.

오카야마현(岡山県)의 시골이었는데, 3일동안 같은 방의 부원들을 한 잠도 못자게 밤새 재채기를 해 댔다.

재채기가 한 번 터지면 그야말로 20분동안 멈추지 않았다.

코가 막혀 숨을 쉴 수가 없었기 때문에 잠도 잘 수 없었다.

잠을 잤다가는 숨이 막혀 죽을것 같았다.

한 달 뒤, 병원에 가서야 처음으로 화분증이라는 것을 알았다.

병원에서 주는 약을 사용하고 비로소 코로 숨을 쉴 수가 있었다.

가스였는데, 꽉꽉막힌 콧속에서 한 번 누르고 숨을 멈추고 있으면, 가스가 미묘하게 콧속에 퍼지는것이 느껴졌다.

그리고는 마치 도자기를 굽고 나서 처음 화구를 열었을때 도자기 표면에 바깥의 새공기가 닿아서 도자기의 표면이 팅팅거리며 실금이 새겨지듯이, 가스로 콧속을 가득 메우고 있던 벽돌이 하나 하나 떨어져 나가면서 신선한 공기가 미세혈관에 닿아 코로 숨을 쉰다는 느낌이 그리 좋았다.

그 후로 20년 이상 해마다 병원신세를 지지만 첫 해에 받았던 가스약은 받아 본적이 없다.

소메이요시노.

일본말다운 냄새가 물씬풍기는 이 말은 4월이 되면 일본 전국을 화려하게 수놓는 벚꽃의 대표적인 품종이다.

접목으로 품질개량을 해서 병충해에 강하며 꽃이 크고 화려하게 피는 품종을 만들어 낸 것으로, 벚꽃으로 유명한 나라(奈良)의 요시노산과 당시 원예의 중심지였던 소메이지방의 이름을 합친것이다.

왕벚나무이다.

2월의 한 겨울.

일본 본토가 아직 추위에 떨고 있을때 오카나와에서는 벚꽃이 만개한다.

이것이 3월 하순에는 큐슈지방의 남쪽해안에 도착해서 꽃을 피운다.

이후, 한 달간에 걸쳐 후쿠오카, 오사카, 나고야, 토쿄를 지나, 4월 하순에 본토의 최북단인 아오모리에 도착, 츠가루해협을 건넌다.

혹카이도의 사람들이 꽃놀이를 즐기는것은 5월 상순.

본토 사람들이 벚꽃을 잊어갈무렵 동토의 섬나라에서는 꽃놀이를 즐긴다.

벚꽃은 개화해서 일주일이면 꽃이 떨어져버리지만, 벚꽃전선을 따라 북상여행을 하면 약 석달정도 꽃구경을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지역이 꽃놀이에서 불을 피우는것을 금하고 있으나 내가 있는 아이치현 토요하시는 일계 브라질인이 많아서인지 꽃놀이라고 하면 고기를 굽는것이 대부분이다.

숯불을 피우고 철망을 걸치고는 두텁게 자른 고기를 올려 굽는데, 고기를 맥주에 하룻밤동안 절여 놓았다가 소금을 뿌려 굽는것이 브라질식이란다.

벚꽃의 명소에는 포장마차가 즐비하며 각종 단체나 학교, 회사등에서 서로 좋은 자리를 잡을려고 새벽부터 난리가 벌어진다.

올해는 벚꽃이 애매한 시기에 개화를 했다.

3월 마지막주에 갑자기 개화를 시작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처 대응을 하지 못한것이다.

4월5일이 일년에 단 한 번 있는 꽃놀이 찬스가 될 듯한데 유감스럽게도 일기예보에 먹구름이 끼었다.

비가 와도 꽃구경하는 기분은 변함이 없으나 이 지역은 일본에서도 특이하게 숯불고기를 굽는 지역이므로 계획에 많은 차질이 예상된다.

제발 주말에 비가 오지 않게 하소서... 몸보신 좀 하게...  아멘... 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