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나(恵那)산장-옻닭

기후(岐阜).

일본열도의 정중앙에 해당하는 지방이고 일본 삼대온천중의 하나인 게로(下呂)온천이 있는 곳이다.

그 기후현 에나(恵那)에 별장이 하나있다.

모두들 에나별장이라고 부르지만 주소로는 나카츠가와(中津川)시이다.

국도 19호선에서 에나신사쪽으로 5킬로정도 산길을 올라간 곳에 있는 허름한 집인데, 원래 할머니 한 분이 살고 있던 것을 우연히 이곳을 지나던 아는 형님이 한눈에 반하여 100만엔을 주고 샀다.

그리고는 3년동안 틈나는대로 손질을 해서, 비록 방 한칸이지만 난로를 중심으로 양쪽에 스무명가량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산장의 바로 앞에는 제법 물이 흘러내리는 바위투성이의 넓은 개울이 있어 여름에는 3000미터급의 깊은 산속에서 흘러내리는 차가운 물에서 물놀이도 할 수 있고, 겨울에는 무쇠난로 한 대에서 뿜어나오는 열기로 온 방안이 후끈하다.

뒷산에는 산돼지도 살고 가끔은 웅담도 인사를 한단다.

언젠가 덫에 걸린 산돼지를 이웃사람(100미터, 200미터이상 떨어져 있는)들과 함께 잡았는데, 가로 세로 각각 2미터정도의 덫안에 갇힌 놈을 대막대기로 찔렀으나 좀처럼 죽질 않아서 애를 먹었다고 한다.

집도야같으면 나죽는다고 십리밖까지 들릴만큼 꽥꽥거릴텐데 이놈 산돼지는 피를 흘리며 죽어가면서도 꽥소리 한 번 지르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 여름에 개를 데리고 뒷산을 산책했다가 내려오는 길에 산돼지를 보았다.

개보다 작은 놈이었는데, 역시 개가 먼저 발견하고는 이길수 있겠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주인이 셋이나 따라가니 없던 용기가 났는지 멍멍거리면서 달려갔다.

20미터밖에 안떨어졌는데 산돼지도 죽순을 파다가 엉겁결에 당한지라 잠시 주춤하더니 이내 맹렬한 기세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짧은 다리로 땅을 박차고 내닫는데 개가 한 발 뛸 때 이놈은 세 발짝을 뛰었다.

대단한 순발력과 파워였다.

순식간에 언덕을 넘어 도망가버렸다.

만약 시속 100킬로까지 달릴 수 있다면 도달하는데 3초도 걸리지 않을것 같았다.

맨손으로 산돼지를 잡았다는 옛날 이야기는 다 거짓말이다.

산돼지가 지발로 달려와서 잡혀주었다면 또 모를까...

나고야에 사는 선배형님에게서 옻닭을 하니 먹으러 오라고 연락이 왔다.

한국에서 옻닭전문으로 하는집에서 옻을 가져왔다고 한다.

닭은 토요하시에서 아시바사업을 하는 M사장이 생닭 열 마리를 사왔다.

토요일 오후 나는 다른 사람과 약속이 맞지 않아 혼자서 에나로 향했다.

토요하시에서 에나로 갈려면 나고야까지 동명(東名)고속으로 가서 다시 중앙(中央)고속으로 갈아 타야한다.

몇년전에 제2동명고속도로를 만들면서 토요타(豊田)에서 바로 중앙고속으로 연결되는 길을 만들었다.

이세완간(伊勢湾岸)이라 불리는 도로이다.

신칸센과 해저터널등 각종 악조건에서도 도로를 만들어 온 일본기술인지라 산을 깎고 만든 30여킬로 되는 구간에 4000미터가 넘는 터널이 두 개나 있다.

제2동명고속은 시속 140킬로를 상정하여 만든 도로이지만 아직은 100킬로이다.

터널안에는 대체로 경찰이 없으므로160킬로로 달린다.

도로공사도 미친 인간들이 있을걸 예상했는지 터널안은 대낮처럼 밝게 해놓았다.

나는 3000엔되는 고속도로 요금을 아낄려고 산길을 타기로 했다.

거리는 고속도로가 1.5배 멀고, 시간은 한시간 반, 산길은 네 시간 걸린다.

다만 겨울인지라 산길쪽은 사고나 눈이라도 쌓여있으면 통행이 거의 불가능하다.

꼬불꼬불 산길을 세 시간 넘게 달리고, 마지막 난관인 절벽같은 산정상을 넘을때, 길가에 눈이 남아 있는데다가 원숭이(진짜 원숭이) 두 마리가 길을 막고 있어서 순간 심장이 덜컹했다.

그러고 보면 일본은 야생동물이 많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도 야생동물이 차에 치어 죽어 있는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일본 최대의 민물호수인 비와코(琵琶湖)주변에는 약 2만마리의 야생사슴이 서식한다고 하는데, 농작물에 피해를 주므로 시가현(滋賀県)에서는 개체수를 조절하기 위하여 해마다 200여마리를 살처분한다.

전문 총잡이를 고용하여 사냥총으로 어른사슴만 잡게하는데, 잡은후에는 모두 땅에 묻어버린단다.

아깝지롱.

이번에 옻을 가져온 선배형의 여동생이 비와코에서 펜션을 경영하는데, 남편이 가끔 잡은 사슴을 한 두마리 받아서 불고기용으로 절여놓은것을 대접받은적도 있다.

나라(奈良)공원에서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는 사슴과 같은 개체이지만 주민등록된 사슴과 등록안된 사슴의 운명은 그야말로 모가지가 길어서 총맞아야 하는 슬픈 운명인것이다.

집 뒤 공터에 솥을 걸고 장작을 땠다.

요즘 세상에 시골에서도 이런 광경은 못볼것이다.

옆집에서 연기가 나면 신고들어가는 세상이다.

이곳은 이웃이라고 해봐야 산쪽으로 100미터 이상 떨어져 있다.

불을 피우든 연기를 피우든 큰소리로 고함을 지르든 누구도 모른다.

옻닭은 맛이 있었다.

특히 진한 국물맛이 일품이었다.

모두들 진국이라며 니시오에 사는 왕족이 가져온 인삼주와 함께 몇그릇을 비웠다.

뱃속에서 캄브리아기의 종의 폭발같이 DNA가 교체되고 있는줄도 모르고...

새벽 두 시.

오줌을 눌려고 밖에 나왔다.

안에서는 화투판을 벌이는 소리가 떠들썩하다.

그다지 깊지 않은 산 속.

주위에 불빛이 없어 사방이 깜깜하다.

차가운 겨울하늘.

별이 맑게 보인다.

어두운 숲을 향해서 바지를 내리면 그 곳이 바로 변소이다.

바로 옆에, 작업장에서 사용하는 이동용 화장실이 있지만 큰 것도 아니고 오랜만에 자연을 향해서 방뇨하는 쾌감을 맛보았다.

금방이라도 숲에서 뭔가가 튀어 나올것만 같다.

옛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산속에서 밤을 지새야 했던 수도승이나 여행자들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방 한 가운데 놓여진 둥근난로 하나.

통나무장작을 한 개 넣어 두면 서너시간 온 공간에 온기가 돈다.

무쇠난로인데, 아시바와 집수리등 여러가지 일을 하므로 이것저것 버리는것을 가져와서 재활용하는 것이다.

부엌옆방에 있는 밥먹을때 찌개냄비 올려놓는 대리석테이블은 이십년전 버블때 싯가 100만엔이었다고 한다.

한밤중에 일어 나서 난로에 통나무를 하나 더 넣어두고 불구멍을 조금만 열어 놓는다. 

평소의 생활에서는 도저히 맛볼수 없는 것을 지금 실감하고 있다.

하루가 지나자 옻이 올라왔다.

양쪽 팔목과 무릎 뒷쪽이 발갛게 부어 올랐다.

특히 오른쪽 팔이 심했다.

퉁퉁부어 올랐다.

회사를 오전근무만 하고는 조퇴를 해서 또다시 어제의 토요하시용사들이 만났다.

국물로 닭죽을 끓였는데 많이 남아서 집으로 가지고 온 것이었다.

M사장은 온몸에 옻이 올라있었고, 나는 팔목이 엄청가려웠지만 남은 닭죽으로 점심을 때웠다.

인터넷에서 옻이 적당히 오르는것이 건강에 좋다고도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저녁, 집에서 뜨거운 욕탕에 들어갔다.

새로 받은 목욕물이라 온 몸에 깨알같은 공기방울이 달라붙었다.

공기방울을 살살 쓰다듬다가 종아리와 허벅지를 쓰다듬었더니... 이런! 전기가 찌르르 흘렀다.

엉덩이는 긁어도 밋밋한데 발갛게 발진이 솟은 종아리와 허벅지는 손끝이 닿는것만으로도 짜릿한 간지러움이 흐르는것이 아닌가?

손끝에 닿는 종아리의 세포 하나하나가 요동치는것이 생생히 전해져왔다.

마치 총각때, 밤에 어두운 방안에서 자고 있는 처녀의 옷을 몰래 벗기듯이 손끝에 연결된 모든 신경이 아주 작은 촉감 하나라도 놓치지 않을려고 살아 움직이는것 같았다.

5분정도 엑스타시를 느꼈다.

여성이 오르가슴을 느끼는것이 이런것이었던가?

닭 열 마리에 사람 열 마리.

나흘이 지난후의 결과를 발표한다면 5:4로 사람이 이겼다.

5:4인것은 한 사람, 닭에는 손도 대지않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은 지켰다.

제일 심했던 사람은 나고야팀인데, 저녁에 옻닭을 먹고 다음 날 집에 들어가자 지구가 빙글빙글 돌더란다.

급히 병원에 입원해서 링겔을 맞았는데 그만 아직 뱃속에 들어 있던 보약을 모두 쏟아 버렸다고 한다.

두번째는 닭을 사온 M사장.

해마다 화분증으로 고생하는 M사장은 일관계상 알레르기 억제하는 약을 먹고 일하는데, 그 때문인지 몸의 저항력이 약해져서 옻닭을 먹고는 몸 구석구석에 발진과 함께 얼굴까지 퉁퉁부어서 눈이 안보일지경이라고 했다.

나는 이틀이 지나자 종아리와 허벅지 그리고 양손목이 벌겋게 부어올랐다.

붓기는 오른쪽 손목이 제일 심했으나 가렵기는 무릎뒷쪽이 제일 심했다.

그 외는 설사가 좀 이어졌던 사람이 한 사람이었다.

왕족을 비롯한 몇몇 인간독종들은 끄떡없이 인간의 자존심을 지켜주었다.

옻닭.

아무나 먹는게 아니란걸 알았다.

며칠 지나자 종아리쪽은 많이 좋아졌으나 양손목은 새빨간 발진이 꽃보다 더 예쁘게 피었다.

그리고 날이 갈수록 나아지는게 아니라 발진이 온 몸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M사장과 나는 약을 먹지 않고 버티기로 마음을 먹었으나, 6일이 지난 날 아침 출근길에 입안과 항문에 발진이 돋아난것을 알고는 버티기를 포기했다.

간이 해독을 못하는 것이다.

이 날은 교육을 받는날이어서 책상에 앉아만 있었는데 날이 따뜻했다.

온 몸이 가려웠다.

마치 몸속 구석구석에서 용암이 지면의 틈을 뚫고 나오듯이 온 몸이 부글부글 끓었다.

오후 다섯시에 마치자마자 병원으로 달렸다.

얼굴을 제외한 전신에 역병환자처럼 빨간발진이 돋아있었다.

얼굴이 철판인것이 그만 탄로가 나버렸다.

의사가 놀라서 이런것은 처음 본다면서 사진을 찍어댔다.

하긴 일본의사에게 옻닭을 먹었다고 하니 눈이 휘둥그래지면서 신기한듯이 이야기를 듣고는 어떻게 만드는지 자세하게 묻고 있었다.

이제와서 피가 되고 살이 되어버린 놈을 다시 뱉어 낼수도 없고...

캄브리아기의 종의 폭발은 마치 영화 스파이더맨과 같이 짧은 시간에 DNA구조가 바뀌어서 신종이 태어났다고도 하는데, 나도 잘하면 신인류 「옻닭맨」이 탄생할지도 모르겠다.

울퉁불퉁... 으 ～　무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