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 벙어리 바이올린

My love 

그대가 보고 싶어요

그대가 보고 싶어 죽을것만 같아요

20만엔을 손에 쥐고 집을 나섰다.

여전히 센다이의 집이다.

아내는 무선방송관계회사의 사무를 보고 있었고 곧 그 계통의 자격증을 따서 보수도 올라갈 것이라고 했다.

요코하마의 회사에서 구입한 중고 닛산 서니자동차는 1500cc싸구려인데도 엔진이 좋았다.

밟는대로 달려 주었다.

토쿄-센다이의 좁은 동북자동차도를 160킬로로 달렸다.

가보고 싶은곳이 있었다.

후쿠오카(福岡).

한국과 제일 가까운 곳이다.

고속페리도 있어서 부산까지 세시간이면 도착한다.

비행기처럼 며칠전에 예약하지 않아도 되고 요금도 절반이하이다.

게다가 후쿠오카는 아키타현과 더불어 일본에서 미인으로 유명한 지역이 아닌가?

2년만에 다시 오사카, 코베를 들러 국도 2호선을 달렸다.

낮에는 햇님을 따라 달리고, 밤에는 달님을 따라 달리고...

달리다가 때가 되면 트럭휴게소의 한 모퉁이에 쪼그려 앉아 라면을 끓였다.

나는 삼양라면을 좋아한다.

일본에서는 신라면이 더 유명하지만 신라면을 한 번 먹고는 입술과 혓바닥이 따갑고 화끈거려서 그 뒤로는 먹지 않는다.

그 따가움은 천연재료의 따가움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냄비뚜껑으로 라면을 먹고 있는 모습을 보면 집없이 떠도는 사람쯤으로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냄비뚜껑으로 밥을 먹는다는 것은 일본의 일반가정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광경이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지금 현재로서는 그랬으니까.

직장도 없이 아내를 협박하여 없는 살림에 가족의 두달 생활비를 빼앗아 평소 가고 싶었던 남쪽나라로 가고 있는중이 아닌가 말이다.

2호선 국도로 히로시마까지 갔다.

처음 달려 본 길이었다.

히로시마시내를 한 바퀴 돌고 공원에 차를 대고는 일박을 했다.

오사카, 토쿄에 살다가 히로시마를 보니 몇십년 과거로 온 것 같이 느껴졌다.

원폭은 가슴아픈 일이다.

비록 일본이 맞을짓을 하기는 했지만...

히로시마에는 종이학의 아픈 이야기가 있다.

사사키 사다꼬(佐々木貞子,1943-1955).

두 살때 원폭을 맞고, 열 세살때 감기로 인한 급성백혈병으로 하늘나라로 갔다.

원폭의 빛에 쬐었을때에는 외상은 없었으나 열 두살때 감기에 걸린것이 낫질 않았다.

몇 달동안 병실에 있으면서 사다꼬는 급우들과 함께 했던 즐거웠던 나날들을 회상하며, 졸업식에 참가할수 있도록 매일 매일 학을 접었다.

천마리의 학을 접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믿었다.

종이가 귀했던 옛날, 종이를 접음으로서 영적인 에너지가 모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센바즈루(千羽鶴) - 천 마리의 종이학.

사다꼬는 8개월만에 학이 되어 날아갔다.

그리고 그 2년후, 사다꼬의 친구들이 호소해서 일본각지에서 성금이 모여져 히로시마의 평화공원에 「원폭 어린이 동상」이 세워졌다.

 
국도로 칸몬(関門)터널을 지났다.

시모노세키(下関)와 키타큐슈(北九州) 사이의 좁은 해협을 잇는 터널이다.

오사카에서 출발한 화물선비슷한 부관페리가 24시간 걸쳐서 부산을 왕복할때 지나는 곳이다.

국도는 금방이라도 물이 샐것같은 지하터널 속을 달리고, 고속도로는 탁트인 바다위에서 하늘을 나는 기분으로 교량을 달린다.

저녁 7시.

가랑비가 내리는 퇴근시간의 후쿠오카역앞에서 오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여자들은 대개가 계란형 얼굴의 미인이었다.

어째서 여기 후쿠오카에는 미인이 많을까?

지금까지 보아 온 일본여성들은 평균해서 못생겼다.

이빨은 뻐드렁니에다가 키는 작고 얼굴과 몸은 제멋대로였다.

그 뻐드렁니도 감추지않고 숨김없이 드러내어 웃는다.

있는 그대로, 가지고 있는 자연산 그대로를 가공하지 않고 내 보이는 것이다.

한국처럼 성형이 성행하지 않으므로 자식을 낳아도 누가 부모인지 알 수 있다.^

가끔씩 보이는 미인은 정말로 귀엽고 예쁜사람도 있었지만 이렇게 무더기로 예쁜집단이 있는것은 처음보았다.

다음 직장은 아이치현 토요하시였다.

조금 인연이 있던 사람에게 매달려서 중부전력산하의 말단하청회사로 들어갔다.

주로 전봇대를 관리하는 회사였다.

트랜스의 어스를 재어서 전봇대아래에 동판을 묻는것이 주 임무였다.

담당지역이 아이치현 동부의 전역으로 넓었으므로 근무시간의 거의 반은 차타고 이동하는 시간이었다.

두 사람이 페어이므로 마음만 맞으면 참으로 편한 직장이었다.

내 페어는 하루에 담배 네 갑을 태우는 초골초영감이었다.

하지만 내게 아주 잘해주었고 대하기도 편했다.

일은 거의 영감이 도맡아 했다.

어스를 재는 것은 그가 전문이었으며, 땅을 파는것도 나보다 두 배는 빨랐다.

그렇게 2년 반이 지나갔다.

월급도, 기술도, 하는 일도, 생활도,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千年後愛님.

어느 날 오로의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읽고 나는 눈물을 흘렸다.

내용은 프랑스의 식용개구리요리에 관한 이야기였다.

식용개구리요리는 처음에는 개구리가 놀라 도망가지 않게 냄비속에 개구리가 좋아하는 온도의 물을 넣어 주고, 아주 천천히 끓인다.

그러면 개구리는 기분좋게 잠을 자다가 서서히 삶아진다는 것이었다.

나는 내자신이 개구리와 같은 인생이라고 생각되었다.

편하게 차타고 돌아다니는 동안에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삶아지고 있었던 것이다.

입사 2년반.

되돌아보니 한심했다.

2년전과 조금도 다름없는 지금의 삶, 기능기술, 월급, 자기계발, 사고방식....

애절하게 흘러나오는 노래를 몇 번이나 들었다.

그리고 한 달후,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었다.

아무도 모른다.

내가 왜 그 직장을 그만 두었는지.

여러 직장을 전전했다.

그러나 일본사회에 동화되기란 쉬운일이 아니었다.

노랑머리에 파란눈이거나, 곱슬머리에 검은 피부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동남아시아계의 얼굴에 광대뼈가 불거지고 입술이 두터운 가무잡잡한 모습이라면, 척보고 이 넘 외국인이구나하고 생각하고는 엉뚱한 행동을 해도 이해할텐데, 자기들보다 잘생기고 똘똘하게 보이는 사람이 자기들과는 다른 행동을 하니 몹시도 눈에 거슬렸는가 보다.

나는 첫 인상이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다.

대체로 다른 사람들과 무리없이 지내지만 어딘가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이 꼭 한 놈은 있는 법이다.

물론 내 잘못이 많을것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몇 곳을 전전했다.

몇 년전에 개구리와 함께 나온 그 노래의 제목을 알았다.

역시 오로의 게시판을 통해서였다.

친구에게 부탁해서 CD에 담았다.

그리고 출퇴근 왕복 100분동안 계속 그 곡만 들었다.

듣고 듣고 또 들었다.

잠들기전에도 두 시간 정도 들었다.

하루에 50번은 더 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2년을 들었다.

지금도 지치거나 마음에 상처를 받았을때는 헤드폰을 귀에 꽂고 한없이 듣는다.

한없이...

브룩클린... 비상구...

좋은 노래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내 마음을 사로 잡아버린 그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그게 무엇인지 아련하게 감이 오긴 하지만 말이나 글로서는 설명이 안된다.

페이지.

나는 아직도 이 노래를 더 들어야 하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