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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 밭에서 길을 잃다. | 나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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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달 19로 산책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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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 밭에서 길을 잃다.
2013-06-03 오후 5:35 조회 6955추천 11   프린트스크랩

을씨년스러운 바람이 풍성한 감나무 밭을 휩쓸고 지나갔다. 나는 감나무 밭 입구에 차를 세우고 아까 그 사내가 일러준 말을 떠올렸다.

"일손이 많이 모자랄 겁니다."

사내의 손가락이 머무는 곳에 감나무 밭이 펼쳐져 있었고 나는 로시난테라고 이름붙인 보기에도 한심한 소형차를 몰고 감나무 밭으로 향했던 것이다. 엉성한 나무문이 가로막고 있었고 나는 그것을 무시하고 들어갈 것인가, 아니면 여기서 사람을 부를 것인가 망설이고 있었다. 나무 문 저 안쪽에 꽤 커다란 집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일단 담배를 피워물었다. 그때였다.

밀짚모자를 눌러쓴 초로의 사내가 괭이를 어깨에 메고 천천히 걸어왔다.

"뉘 슈?"

"감을 딸 일꾼이 필요하지 않으세요?"

"필요하지요, 왜 댁이 하려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사람 같지는 않은데, 빈방 많은데 감 다 딸 때까지 머무시오."

나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저기 공터에 텐트를 치면 안 될까요?"

"뭐 꼴리는 대로 하시오. 참 일당은 오만원이고 점심과 새참을 줍니다."

늙수그레한 주인영감이 과수원의 감잎을 뚝뚝 따내면서 말했다.

"여기다 차 대놓고 텐트 쳐놔도 상관없겠지요?"

"맘대로 하슈, 이고장분이 아니신 모양인데 텐트는 그자리가 좋은데 차는 저쪽 구석으로 세워 놓으슈, 감을 출하하려면 차들이 많이 다녀야 하니 차가 거기 있으면 엄청 걸거칠 거요."

걸거친 다는 말은 걸리적거린다의 다른 표현이리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낼부터 할 것인데 용케 알고 오셨군. 이왕 온 거 해도 저물고 하니 우리 집에 가서 저녁이나 한 끼 때우시오."

"아닙니다. 라면이나 한 봉 끓여 먹으면 됩니다."

내가 차 트렁크를 열어 한쪽구석에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는 가스레인지를 꺼내면서 말했다.

"거 젊은 사람이 늙은이 말에 또박또박 말대꾸야, 어른이 와서 먹어라 하면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그래야지. 젊은 사람이 영 싸가지가 바가지구먼 그래."

"텐트만 얼른 치고 가겠습니다."

"오래 걸리나?"

"던지면 펴지는 최신형입니다. 하하하."

노인네는 내가 텐트를 치는 양을 지켜보고 있었다. 먼저 들어가시라고 했지만 끝끝내 내가 텐트를 치고 마무리까지 하는 걸 보고 서야 앞장을 섰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차문을 잠그고 노인네를 따라서 사택으로 향했다. 과수원의 사택으로 들어가자 할머니와 딸이 나왔다. 딸은 삼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제법 예쁘장한 얼굴을 수건으로 누르고 제법 잘빠진 몸매를 몸 빼 바지에 감추고 있었다.

"낼부터 우리 과수원 감 따러 오셨대."

텔레비전에서 야구 중계가 한창이었다. 쌍둥이와 불사조가 준 플레이오프를 펼치고 있었다. 엘지가 선취점을 내고 현대가 투수를 바꿨다. 그때 상이 내오고 구수한 된장찌개에 근대 국이 시원했다.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근대 국에 밥을 말아서 먹었다.

"거 젊은 사람이 곯았구먼, 무신 사연이 있어서 저런 똥차를 끌고 전국을 돌아 댕기는지 모르지만 잘 챙겨 드시오."

"똥차요?"

나는 어이가 없어서 되물었다.

"그럼 아니란 말인가?"

딸이 피식 웃었다. 그런데 딸의 남편은 보이지 않는다. 결혼한 사람인지 아닌지 금방 안다. 나는 내가 보기엔 애가 둘쯤 있고 결혼한 지 최소한 십년은 넘었고 제법 날씬하고 얼굴도 반반하지만 그건 타고난 거지 가꾼 건 아니다. 가끔 미용실에서 피부 관리라도 한다면 저렇게 기미가 끼지는 않는다. 집에서 팩이라도 한다면 저렇게 거칠지는 않다.

"소주 한잔 할 텐가?"

노인이 냉장고에서 페트병을 꺼내오면서 한말이다.

"노인네가 술 준다면 넙죽 받아먹어야 건방진 놈 소리 안 듣지 않나요."

노인네가 빙그레 웃었다.

"늙은이를 놀리면 못쓰지, 거 젊은 놈이 변죽이 좋네"

쌍둥이가 불사조를 누르고 플레이오프행이 결정되었다. 김재박의 어두운 표정이 지나가고 김성근의 환하게 웃는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소주 몇 잔을 마시고 나는 슬슬 지겨워졌다.

"이제 가보겠습니다."

"이슬 맞고 자면 추울 텐데? 공연히 허세 부리다 입 돌아가지 말고 우리 허름한 창고에서라도 좀 자지 그래"

"아닙니다."

내가 일어서서 나올 때 딸이 빙그레 웃으면서 따라 나왔다.

"엄마, 나 저 앞에 슈퍼에 갔다 와야 되는데 이 아저씨 보고 태워 달라 하면 안 될까?"

"낼 아침 일찍 갔다 오면 되지 왜 남의 신세를 지려고 해 그 사람도 피곤할 텐데"

"아닙니다. 태워 드리겠습니다."

딸이 거울을 보면서 대충 옷매무새를 다듬고 머리도 이리저리 돌려 보고 나를 따라 일어섰다.

"조심해서 댕겨 와"

나를 염두에 둔 말이다. 건장한 사내, 그것도 홀로 돌아다니는 사내, 여자에 굶주렸을 사내,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딸이 밤에 한차를 탄다.

"알았어."

차있는 곳까지는 약 이백 미터,

"감은 따 보셨어요?"

"아뇨"

여자가 키득 키득 웃는다.

"결혼 안하셨죠?"

""

잠시 침묵하다가

"결혼 한지 십년 정도 되셨죠?"

", 어떻게?"

"아들하나 딸 하나죠?"

"총각으로 마흔 넘으면 도가 통한답니다. 한눈에 척 보이죠"

여자가 키득키득 웃었다.

"수수께끼도 잘 푸시겠네요?"

 

"수수께끼요?"

""

"한번 내 보세요 단박에 풀어 드릴께"

"여자는 몸에 감 씨 하나씩 감추고 있어요, 아세요?"

"몰라요"

모른다고는 했지만 알 것도 같았다.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뭐 이런 황당한 아줌마가 다있어. 마침내 차까지 다 오고 나는 이른바 변차를 끌고 마을로 향했다. 마을에서 이런저런 반찬거리를 사고 돌아오는 길, 갑자기 여자가 말했다.

"지름길이 있어요, 그리 가죠, 좀 험하긴 해도"

"변찬데"

"겁이 많군요. 덩치는 황소만한 사람이,"

"갑시다, 까짓 거 혼자 죽는 것도 아닌데"

"이런 총각이 아줌마랑 죽으면 억울할 텐데요?"

"나보다 어려 보이시는데요, "

"서른다섯입니다."

"전 마흔하나 이빨 빠진 호랑입니다."

고개가 가팔랐다. 거의 산 정상이지 싶었다. 가릉 가릉 소리를 내면서 언덕까지 올랐다. 나는 차의 시동을 껐다.

"왜요?"

"우리 변차가 힘들답니다. 내려서 담배나 한대씩 피우고 갑시다."

"내가 담배 피우는걸 아셨어요?"

"장미 피우잖소, 아까 거울 보면서 챙겨 넣는 걸 봤어요."

차문을 열고 나오자 싸늘한 바람이 우리를 감쌌다. 나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러자 여자도 케이스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감나무 밭이 발아래 펼쳐져 있고 마을은 안온한 불빛에 잠겨있었다. 손톱 같은 달이 서쪽 하늘에 걸려있고 여자는 자꾸만 몸을 떨었다. 나는 트렁크에서 큼직한 겨울점퍼를 꺼내어 걸쳐주었다.

"애들은 어쩌고?"

"이혼했어요, 염병할"

여자가 주저앉았다. 나는 트렁크에서 소주 한 병을 꺼내어 꿀꺽 꿀꺽 마시고 여자에게 내밀었다. 여자가 꿀꺽꿀꺽 마시고는 감 하나를 뚝 따서 한 잎 베어 물고는 감나무 과수원 아래로 휙 던졌다.

"엘지에 키퍼라는 외국인 용병투수가 공 던지는 폼이랑 비슷하군요."

"야구선수요?"

"."

한동안 서로 말이 없었다. 이런 침묵은 참 사람을 곤란하게 한다. 무언가 이야기를 해야 할 텐데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회사에서 경리를 보는 젊은 년이랑 눈이 맞은 겁니다, 그때 이야기를 하니까 갑자기 확 도네? 다 잊어버리고 사는 줄 알았더니 질투가 시퍼렇게 살아있네요. 호 호 호.“

나는 묵묵히 담배만 피웠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뭐 그런 분이죠?"

 

"아닙니다. 전국을 떠돌면서 막노동을 합니다."

"얼굴에 딱 적혀 있어요. 예술 하는 놈이라고 말이에요. 호호호.“

아니, 누가 내 얼굴에 낙서를 했단 말입니까? 도대체 어떤 놈이 아니 년인가요? 하하하

썰렁한 농담을 즐기시는 군요.”

댁도 만만치 않아요.”

사실은 무협하고 만화스토리하고 뭐 닥치는 대로 씁니다. 잘 안 팔리긴 하지만 나름대로 그 바닥에선 꽤 알아주는 편입니다. 하지만 삼류죠. 매일 별 발전도 없는 쓰레기 같은 소설이나 써대는,”

나는 말하면서도 무안해져서 괜히 말했다 싶었지만 그녀는 담담했다.

"글 쓰는 데 삼류가 어디 있고 일류가 어디 있어요. 글 써서 먹고 살 수 있으면 프로고 취미로 쓰면 아마추어지, 어쨌든 댁은 프로군요. 실력이야 알바 없지만 프로는 달라요. 그런데 왜 이렇게 돌아다니죠? 무슨 뻐꾸기 우는 사연이라도 있는가요?"

나는 대답대신 웃었고 그래서 말이 끊겼다. 바람이 불었고 바람에 감잎이 흔들렸고 그녀가 다시 독백처럼 중얼거렸다.

"얼마 전에 이혼서류에 도장 찍고 그리고 애들도 그 젊은 년이랑 키우겠다고 엄마가 머리끄덩이 붙잡고 난리를 치고, 정말 기억하기도 싫어"

나는 다시 소주를 몇 모금 하고 담배를 새로 피워 물었다.

"참 수수께끼는 풀었나요?"

"무슨 수수께끼요?"

"여자는 몸에 감 씨 하나씩 숨기고 있는데 그게 뭘까요?"

눈을 빤히 뜨고 화장품 냄새를 풍기는 여자가 코앞 일 센티로 다가왔다. 꿀꺽 하고 침 삼키는 소리가 천지를 울린다. 여자가 입술을 포갠다. 나는 여자를 끌어안는다. 추워요, 차안으로 가요, 나는 여자와 얼굴을 포갠채 차로 간다. 여자가 내몸을 더듬는다. 나는 움찔하다가 다시 정 신을 차리고 여자의 몸을 더듬었다. 한참 더듬다가 손이 아래쪽으로

향할 때, 맞아 맞아 거기 숨겨둔 감 씨가 있어요. 따뜻하고 안온하게 젖어있는 질퍽한 진흙탕으로 한 발을 디밀었다. 이젠 빠져나올 수 없을 것이다. 내 뼈가 녹고 몸이 녹고 파김치가 되어서야 이 늪에서 벗어날 것이다. 나는 입술을 빨면서 그녀의 아랫도리를 벗겼다. 그녀가 몸을 뒤틀면서 내가 옷을 벗기는 것을 도와주었다. 마침내 희미한 어둠속에서 알몸이 드러났다. 나는 허겁지겁 내 몸의 한 자락을 그녀의 몸속으로 집어넣었다. 와락 끌어안는 그녀의 입에서 단내가 훅 풍겼다.

", 재미있다. 감나무 밭에서 총각 놈한테 한 번 주게 될 줄이야,"

여자가 몸을 부르르 떨면서 말했다. 좋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가 몸속으로 아득한 추락을 계속해 나가다가, 갑자기 여긴 어디쯤일까 감나무 밭이긴 한데 도대체 진주 문산 진영 도대체 어디야, 여자가 몸을 뒤채면서 소리친다.

너무 좋아.”

그러다가 갑자기 눈을 번쩍 뜨더니 내게 말한다.

당신, 나 소리 지른다고 천박하다고 여기는 건 아니겠지? 왜냐하면 여긴 아무도 안 오니까 소리 질러도 괜찮단 말이야.”

알았어요. 마음껏 소리 질러도 괜찮아요.”

언제 내가 감 씨 보여 줄게요. 정말 감 씨처럼 생겼다니까요?”

그 말 한마디에 온몸이 더욱더 타오르면서 갑자기 감 씨를 온 몸으로 느끼면서 오래오래 타오르다가, 정신을 차린 우리가 헐레벌떡 옷을 주워 입고 다시 시동을 걸었다. 가릉 가르릉 꺼억 차가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더니 다신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우리는 어두워지는 감나무 밭 사이에서 가만히 있었다. 길을 잃은 것이다. 이 넓은 감나무 밭 에서 도대체 어떻게 나는 텐트로 여자는 집으로 갈수 있는가. 길이 있지만 어두워 보이지 않고 나는 여자가 감추어둔 숨어있는 감 씨를 찾기 위해서 손을 내밀었다.

 

,ps: 약간의 에로틱이 걸리긴 하지만 뭐 심의에 걸릴정도는 아닌것 같고
미성년자가 들어와 이글을 읽을리도 없고, 문제가 된다면 자삭하겠습니다.

┃꼬릿글 쓰기
황악산인 |  2013-06-03 오후 8:05:07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어릴적 읽은 벌레먹은 장미 보다 훨씬 재밋구먼요...  
철권미나 |  2013-06-03 오후 10:13:17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삼류 아닌데?  
철권미나 무협은 맞겠지만..유
철권미나 감씨는 허한 몸에 귀물인데 뉘 맘 대로 삭제이옵니까?
철권미나 감이 익을 무렵 고창 질마재 쪽으로 가보시죠. 그니가 어깨 아래 대님 근처로 물들고 있을테니까요.
철권미나 조각달이 부엉이 소리 흘리는 그 밤에..
눈길달빛 |  2013-06-04 오전 3:18:13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감씨 싹터 감나무 과수원, 감나무 한그루 더 늘겠네...운명이든가, 인연이든가... 어떻든 그렇게 갑자기 찾아 오지요... 같이 오래 못하더라도 서로 소중히 여기고 대해야...  
팔공선달 |  2013-06-04 오전 6:30:3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다녀 갑니다^^  
패스파인더 |  2013-06-06 오후 11:23:1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애구 나두 감씨 찾아나서겠슴당..
잘일고 갑니다..한템포 쉬는데 읽는 재미는 아주 굿이야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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