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스스로 생각하기를 <돈 셈>만 빼고는 제법 모든 것에 능숙하다고 자부했었다. 그러나 근래 되돌아보니 정말 어리석기 그지없는 인생이 아니었나 하는 자책이 든다. 

워낙 돈 쓰기를 좋아해 주머니에 있으면 배겨내지 못하는 성격이다. 따라서 있으면 우선 쓰고 없으면 뭐 그 다음은 어떻게 되겠지 하는 습성이니 기본적으로 내 주머니 돈 씀씀이에 대해서 계산을 하기 싫어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돈 버는 것에는 젬병이다. 월급쟁이 시절에야 별반 걱정없이 살아왔는데, 사업을 하면서는 제법 돈도 만져보았다. 그러다 망하고 나니 이젠 XX 두 쪽만 덜렁 남아있는 신세로 전락했다.

신체적 결함으로 인하여 군대를 가지 못했다. 그래서 사나이들의 세계를 경험해보지 못했다는 것이 늘 원죄처럼 따라다녔다. 이것을 극복하고자 나름대로 처세, 대인관계 등에 대한 책도 열심히 읽어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친구들을 살갑게 대하지 못할 때가 종종있다. 능수능란하게 대인관계를 유지하며 처신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 그지없다. 

고1 때인 열일곱 꽃다운 나이에 집사람을 만났다. 물론 그 당시는 친구였지만, 대학시절부터 연애로 발전했다. 그러다 결혼해서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다. 그런데 아직도 집사람에 대한 애정표현은 서툴기 그지없다.  간혹 언쟁이 벌어진다. 돌이켜보면 전혀 부부싸움으로 번질 일이 아니었는데도 그렇게 발전하는 것을 보면 어지간히도 어리숙한 인생인 것이다.

딸이 넷이나 되니 아버지 노릇은 제법 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즈음 딸들과 이야기 하다 보면 그렇지도 않았던 모양이다. 애들 눈에는 엄하고 무서운 아버지로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하긴 <엄친자모>가 나의 자녀양육에 기본이었으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엄마하고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에게는 대화에 인색한 아이들을 보면 은근히 시샘도 나는 것이다.

직장을 다닐 때는 제법 유능하다는 평을 받았다. 공직에 근무할 때는 부처 장관 표창도 받았고, 일반 기업에 다닐 때는 회장 표창도 받았었다. 전공분야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전문가라고 자칭 타칭했어지만, 이제 손을 놓은 상황에서 그런 것들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전산학을 전공하다 보니 인문학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이것도 원죄처럼 나를 따라다니며 괴롭혔던 것이다. 모름지기 학문이라고 한다면 인문학이어야 하지 않느냐 하는 것이 소신이었다. 따라서 전산학 따위는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의 기술일 뿐이라고 여겼다. 조선시대로 치자면 <중인(中人)>들이나 해야할 일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주어진 시간의 한계와 환경을 탓하며 학문연마에 게을리 했음을 자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다 우연치 않은 기회에 오로에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너무나 많은 것이 부족하다는 것에 대해 스스로 절감하고 있다. 간혹 본인에게 묻는다. 글을 쓰고 남에게 보일 자격이 있는가 하고 말이다.

그러던 중 또 우연치 않은 기회에 <한시번역> 제의를 받았다. <영바모>님이 과거에 <바둑과 관련된 한시를 영어로 번역해> 책을 출간한 적이 있었는데 신통치 않다고 여긴 듯하다. 그래서 나에게 제의를 해왔다. 공저로 하기로 하고 한시를 우리 말로 번역해 달라는 것이었다. 본인은 그 번역본을 가지고 영역을 하겠다는 것이다.


내가 한문에 대해서 무엇을 안다는 말인가? 더구나 한시라니? 정비석이 쓴 <소설 김삿갓>을 읽어본 것과 고승들의 게송 정도 본 것이 전부였는데...

노느니 염불한다고 겁없이 승락을 했다. <한번 해봅시다.>

그래서 한시 원문 팔십여 수를 찾아서 일일이 번역을 했고 그 중에 49편을 엄선했다. 거기에 감히 졸작이지만 나의 시도 한 수 넣었다. 그래서 50편을 채워 옆의 사진과 같은 책을 출간한 것이다.

어리숙하기 그지없는 인생이 사고를 친 격이다.

다행인 것은  출판사 대표가 이러한 콘텐츠에 대해 문화적 가치를 인정하고 흔쾌하게 일을 진행시켜 준 것이다. 하긴 돌이켜보면 바둑에 관련된 한시만을 추려낸 것이 얼마나 되랴? 그런 차원에서는 희소성의 가치가 있다고 본다. 그래서 그런가? 시리즈로 출간할 계획이니 다음 편에 실을 내용들을 지금부터 준비해달라는 전언이 있었다.

원고를 넘기고 나서 <한시 톺아보기>에 올릴 내용들을 추린다고 다시 들여다 보니 마음에 덜 차는 것이 또 제법 된다. 아쉬움이 많이 남아있다. 어느 시에서는 제대로 그 뜻을 새기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 내용들은 <한시 톺아보기>에서 숨김없이 고백할 예정이다.

어제 책 몇 권을 들고 친구들이 막걸리 마시는 곳에 갔다. 스스럼 없이 한 권씩 사준다. 그 동안 수고했다는 격려의 말과 함께...


책을 출간할 자격이 있느냐에 이르러서는 스스로 부끄러움이 먼저 앞선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통해서 학문을 연마해가는 것이라고 여긴다면 이런 부끄러움도 일면 감수할 수도 있으리라.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얼마나 되랴 자위하면서...

삶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어느 옛사람이 읊은 시 한구절을 올리고 이에 어리숙한 출간기를 마칠까 한다.

산중수부의무로(山重水復疑無路) 첩첩 산중(山中) 곳곳에 물 흐르니 혹시 길이 끊긴 것은 아닐까?
유암화명우일촌(柳暗花明又一村) 버드나무 그늘지고 꽃 피어 있는 곳에 마을이 또 있구나.

여기에 감히 이 여현이 덧댔다.

강심산고하세도(江深山高何歲到) 강은 깊고 산은 높으니 어느 세월에 가려나?
거거중성원일촌(去去中省遠一寸) 가고 가는 중에 뒤돌아보니 겨우 한 치 멀어졌네.

<혹시 책이 필요하신 분은 연락 주세요. 정가 12,000원 입니다. 우편비는 제가 부담하죠^^ 이거 갑자기 책장사 된 기분입니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