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고추 모를 옮긴다.
홀아비꽃대 우거진 산기슭에서
바람이 내려와
어린 모를 흔들 때
막 옮기기 끝낸 고추밭에
편편이 몸을 누인 슬픔이
아랫도리 서로 묶으며
고추 모 사이로 쓰러진다.
슬픔만 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남녘 땅 고추밭
햇빛에 몸을 말릴 적
떠난 사람 자리가 썩는다
붉은 고추가 익는다
-허수경-
<불취불귀 不醉不歸>
어느 해 봄그늘 술자리였던가
그때 햇살이 쏟아졌던가
와르르 무너지며 햇살 아래 헝클어져 있었던가 아닌가
다만 마음을
놓아 보낸 기억은 없다
마음들끼리 서로 마주 보았던가
아니었는가
팔 없이 안을 수 있는 것이 있어
너를 안았던가
너는 경계 없는 봄 그늘이었는가
마음은 길을 잃고
저 혼자
몽생취사(夢生醉死)하길 바랐으나
가는 것이 문제였던가, 그래서
갔던 길마저 헝클어뜨리며 왔는가
마음아
나 마음을 보내지 않았다
더는 취하지 않아
갈 수도 올 수도 없는 길이
날 묶어
더 이상 안녕하기를 원하지도 않았으나
더 이상 안녕하지도 않았다
봄그늘 아래 얼굴을 묻고
나 울었던가
울기를 그만두고 다시 걸었던가
나 마음을 놓아 보낸 기억만 없다
-허수경-
홀아비꽃대, 고추모, 편편이, 탈상, 떠난 사람 자리가 썩는다 등 쉽게 이해가 안되는
단어와 문장은 나의 무식함을 일깨워준다.
시인은 굉장히 박식한데 왜 벌써 하늘나라로 갔단 말인가.
에라이~에라이~그 박식함 나를 주고 가던가
에라이~에라이~그 쓸쓸함 나를 주고 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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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