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한 7년전쯤 일인가 봅니다.
제가 아내에게 한가지 제의를 했습니다.
서로에게 원하는것이 무엇인지 한가지씩 말해보자고 했죠.
(사실은 아내에게 원한는것이 하나 있었는데, 나만 부탁하면 미안하니까 그냥 형식상 한가지씩 서로의 소원을 말해보자고 한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엉뚱한 제안 하나가 나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게 될줄이야 ...
아내는 매일 아침저녁, 방바닥을 병적(?)으로 열심히 쓸고 닦고 합니다.
그러나 냉장고안은 몇달전 과일이 썩은채 그대로 있기도하고, 옷장서랍속은 뒤죽박죽이고, 하여튼 눈에 잘뜨이지 않는 곳은 정리가 안되어있고 지저분해서 가끔씩 화가 나곤 했죠.
그래서 사실은 요걸 좀 부탁하려구 짱구를 돌렸던 겁니다.
내가 먼저 원하는것을 이야기 했습니다.
“ 여보, 내소원은 말야 당신이 옷장속과 냉장고등 잘보이 않는 곳도 청소를 좀 잘 해주면 좋겠어”
아내는 나의 부탁을 듣고는 의아해하는 눈치였습니다.
(‘아이들 4명이 어지러 놓으면 보이는 곳만 치우기도 시간이 모자라는 판인데 ... ’)
그래도 저에게는 상냥하게
“알았어요, 최소한 일주에 한번은 정리하고 치우도록 노력해 볼께요” 라고 말해주었읍니다.
저는 마음이 흐믓하여, “나는 뭘해주면 좋겠어?’” 했더니,
저에대한 아내의 부탁은 “제발 화좀 내지 말라” 는 것이었습니다.
이뜻밖의 소원을 들은 저는 좀 당황했고, 머리속에는 여러가지생각이 오고갔습니다.
(아니, 내가무슨 화를 그리 많이 냈다고… 세상에 화 않내고 사는 사람있으면 나와 보라고해 ... )
그러나 저도 역시 아내에게 앞으론 화를 내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보겠다고 약속을 해주었고, 아내는 무슨 큰 선물이라도 받은듯 무척 기뻐했습니다.
(저는 가족들이 일주일에 한두번 화내는 것은 보통인 집안에서 컸지만, 아내의 아버님은 평생 한번도 화를 않내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처음 결혼하고 제가 화를 낼때나마 무척 당황스럽고 견디기가 힘들었다고 하더군요.)
화를 않내겠다고 약속은 했는데, 그런데 이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더라구요 ...
약속을 한 후로는 화가 날때마다 나름대로 참고 또 참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화내는 횟수는 줄었지만, 한번 화를 내면 그동안 쌓인것이 한꺼번에 폭팔하여 완전히 뚜껑이 열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화에대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되겠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제자신을 살펴보기 시작 했습니다.
“나는 언제 화가 나는가?” “왜 화가 나는가?”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집에서는 주로 아이들 때문에 화를 냅니다. 직장에서 돌아와 좀 쉬고 싶은데 네놈이서 떠들어 대니 화가 나고, 서로들 매일 싸워대니 또 화내고, 누굴 닮았는지 공부도 잘 못하니 열받고...
(난 분명 애들이 외가를 닮아서 그렇다고 생각하는데 아내의 생각은 좀 다르더군요 - -;;)
그런데 그중에서도 가장 열받는 일은 학교 숙제를 가르쳐주는 일입니다.
서너번 가르쳐줘도 못알아들으면 뚜껑이 열려 소리를 지르게되고, 아이는 더 얼어서 점점 생각을 못하게 되니 악순환이 반복 됩니다.
아이들이 내가 원하는 만큼 따라와 주지못하니까 화가 나는것입니다.
그런데 아주 오래전 남의집 아이에게 수학을 가르쳤던 일이 문뜩 떠올랐습니다.
정말 엄청나게 머리가 않좋은 아이였죠,
그때는 똑같은 것을 열번이나 가르쳐 주면서도 별로 화가 나지 않았었는데, 왜 내자식은 이렇게 힘이들까…
한참후에 깨닫게 된것은, 제가 아이들과 제자신을 동일시 했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인정하지 못하고 나의 분신 내지는 소유물로 생각했던것 같습니다.
집 밖에 나간다고 화를 않내는것이 아니더군요.
운전을 할때 옆에서 깜박이 신호를 주면서 끼어들면 저는 점잖게 양보합니다.
그런데 얌체같이 갑자기 쏙 끼어들면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아니 이녀석이 나를 뭘로보고…”
저는 다시 옆으로 빠져나가, 더빨리가서 그나쁜놈 앞으로 신호를 주지않고 끼어듭니다.
(너도 맛좀 봐라)
또 한번은 사무실에서 전화를 받았는데 예쁜아가씨 목소립니다.
마음 설레이며 누굴까 하고 있는데, 잠시 기다리랍니다.
전화를 들고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왠 남자 목소리가 나옵니다.
아, 이건방지신 분이 자기 비서를 시켜서 전화걸게하고 나를 기다리게 한후 전화를 받는것입니다.
(와, 뚜껑이 또 열립니다. 아니 지가 무슨 대통령이라고, 자기 전화는 자기가 걸지, 나를 뭘로 보고…)
그래서 저는 그분이 전화를 받자마자, 퉁명스럽게
“아, 지금 바뻐요”
하고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 버렸습니다.
그 외에도 밖에서 화낸 이유들을 가만히 생각해보니, 대부분의 경우 내가 무시당했다고 느꼈을때 화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상대방이 실제로 나를 무시한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스스로가 무시 당했다고 느끼고 화를 낸 것이었습니다.
사실 다시 생각해보면, 별로 화낼 일들이 아닙니다.
운전하다 보면, 차가 끼어 들수도 있고, 비서가 건 전화를 잠시 기다렸다가 받을수도 있는 일이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사소한 일로 화를 내지않을 것입니다.
그럼 나는 왜 화가 나는 걸까?
우선 내마음대로, 내가 원하는대로, 내편안함, 내주장대로 안되었을때 화가 나는것 같습니다.
아직 내면이 자라지못해, 나 중심이고 배려가 부족한 어린아이투정 증세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내가 무시당했다고 느낄떄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뿌리를 찾아 더 깊이 내려가 보니, 나의 “자존감”(self esteem) 에 문제가 있었던것 같습니다.
자존감이 건강한 사람은 누가 나를 좀 비방하거나 무시를 해도 여유를 가지고 웃어 넘길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자존감이 낮을때는 누가 나를 조금만 무시해도 마음에 상처를 받고 화가 치밀어 오르는것 같습니다.
(상대방의 사소한 행동이나 말에 스스로 무시 당했다고 느끼는것이 더 큰 문제인듯 합니다.)
나에게 화를 내는 문제가 있다는것을 깨닫고, 또한 그 원인의 뿌리를 알고 난후 요즘은 제자신과 많이친해졌습니다.
요즘엔 누가 웬만큼 욕해도 별로 화가 나지않습니다.
물론 지금도 기분이야 좋지 않지만 예전처럼 견딜수없게 화가 치밀어 오르지는 않는다는 것이죠.
또 자동차가 갑자기 끼어들어도 화를 낼까 하다가 그만둡니다.
아이들은 여전히 떠들고 말썽부리며, 냉장고 와 옷장속은 여전히 지저분 합니다.
7년 전과 바뀐것은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요즘엔 별로 화가 나지 않습니다.
제 생각(시각)을 바꾸었고, 또 화를 대하는 저의 태도가 바뀌었기 때문이 아닐른지요...
(물론 지금도 화를 냅니다. 그런데 얼마전 아내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그래도 요즘같으면 같이 살아 줄만은 하다" 라고 하면서 제 어꺠를 토닥여 주더군요...ㅎㅎ)
작가의 말
술익는향기
수나써
낙지대그빡
박쥐
내사랑숙이
오로묵시록
예뜨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