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오로 포인트에 푹 빠진 적이 있었다.
언뜻 보면 포인트 베팅이 별것 아닌것 같지만 요것이 매력이 있어서 한번 빠지면 좀처럼 헤어나오기가 쉽지않다.
표면상으로는 "고수들의 바둑을 즐기고 감상하기 위한 것이다" 라고 변명을 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고수의 바둑을 구경하러 가는것이아니라 이방 저방 뛰어다니며 형세 분석기만 부숴져라 눌러대고, 포인트 베팅하기에만 급급했었다는 사실을...
그래도 몇달동안의 고생끝에 왕관인지 트로핀지 얻게 되었고 오로의 100대 부자들 명단속에 내이름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 ~ 그때의 감격이란.
대화창에도 옆에 트로피를 달고 나가면 모두다 나를 존경의 눈초리로 쳐다보는듯 했다.
예전엔 7단을 만나면 꼬리를 내리고 조신하게 있었는데, 단수는 낮더라도 옆에 왕관이 생기자 공연히 폼도 좀 잡고 왕별7단들 앞에서 어깨도 으쓱여 보았다. 흠...부자가 좋긴 좋구만...
그런데 밤에 잠도 못자고 눈이 벌개서 새벽까지 베팅을 하고 나면 하루가 엉망이 되고 말았다.
아내와 아이들도 한번 돌아보지 못했고, 사업도 여기 저기서 삐걱 대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이게 아니다 싶어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렇게 소중했던 포인트가 하나의 환영 <幻影 >에 불과한 숫자였다.
또 한동안은 오로에서 글쓰는데 푹 빠진적도 있었다.
오로광장(매니아) 에서 나의 글이 2000점, 3000점을 돌파할때마다 희열을 느끼고 밤잠도 설쳤고, 곤하게 잠든 아내도 꺠워 이것좀 보라면서 자랑을 하곤 했었다. 거기에다 오로볼과 포인트란 상금은 나로 하여금 풍만한 만족감을 얻게 해주었다.
오로 작가에서도 20개 30개의 추천을 받아 하트가 완성되면 내가 마치 정말 대단한 작가나 된듯 흐믓해 하곤 했다. 어린애처럼 좋아하는 모습을 본 내아내는 옆에서 "당신 글쓰는 탈렌트가 있는것 같아요...계속해보세요" 라고 맞짱구도 쳐주었다
모든 댓글에 정성을 다해 답글을 올리고 점수 후하게 찍어달라고 아부도 했다.
그런데 이것 역시 환영 이었다.
내 삶의 터전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곳이지 가상의 인터넷 오로왕국이 아니었던 것이다.
요즘엔 베팅을 주로 프로들 바둑에만 한두번 하고 만다. 그리고 일년에 몇달씩은 베팅을 하지 않는다.
오로에 글을 쓰는것도 덤덤한 마음으로 쓴다. 그리고 글에 너무 빠진다 싶으면 몇달은 글을 쓰지 않는다.
나도 모르게 가상의 세계에 빠져들어 현실을 망각하는 자신을 다시 깨우도록 하기 위해...
이런 생각을 하다 요즘엔 한발 더 뒤로 물러나 보니 지구에 내려와 살고 있는것 역시 하나의 거대한 환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만족을 주는 돈을 조금이라도 더벌기 위해 아둥바둥 하는 자신을 보면서...
어짜피 이세상도 하나의 환영<幻影 > 인것이다... 포인트가 물거품이듯이 돈, 명예, 권력 역시 환영인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문제는 환영인것을 알면서도 돈이 가져다주는 쾌락과 함께 세상에 도취되어 살다 보면 어느새 그것이 환영인지 잊어버리고 그안에 푹 빠져있는 나자신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은 내 자신을 세상의 환상으로 부터 분리 시켜놓고 무엇이 환영이고 무엇이 실제 인지를 다시 일깨워 주어야만 하는가 보다.
작가의 말
수나써
달선공팔
오로묵시록
내사랑숙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