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6년 겨울 원주를 출발한 한 노인은 충청좌도를 관통하여 추풍령을 넘어 직지사(直指寺)에 도착합니다. 노인은 충청도를 거쳐오며  다섯곳의 절집을 들려 그가 도착한 시간은 집을 떠난지 50여일만인 1687년 1월27일입니다. 이 노인은 직지사에서 삼일간 묵으면서 절집주변을 구경하고 밤이면 승려들과 담소를 나누며 나흘째 인근의 '수도암'을 거쳐 쌍계사로 길을 잡습니다.

이노인은 오랫동안 보아온 유교책을 덮고 홀연히 산승절경을 찾아 조선의 중부내륙과 동해안의 많은 절집여행에 나섭니다. 노인이 거친절집은 엄청납니다. 군자사, 안국사, 연국사, 화엄사, 수도암, 직지사. 쌍계사, 실상사, 안양사, 그리고 금강산 유점사까지 노인은 무려 2년에 걸쳐 30여곳의 절집을 순례합니다. 노인은 어느산곡의 무명암자에서는 이런 감회를 토로합니다.

細雨春江山/ 前山淡將夕/不見意中人/梅花自開花/

이노인은 직지사는 크다고 말합니다. 대여섯명의 승려들이있고 전각이 여러동이며 스님들은 대화를 할만하다 합니다. 스님들중에서 영안(靈眼)이 그중 말을 섞(?)을만하다 합니다. 이노인이 본 전각이 비로전(毘盧殿)입니다. 비로전이 직지사안에서 가장 오랜 전각이고 임진왜란의 전란에서도 유일하게 남은 직지사의 건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직지사는 여전히 장대합니다. 수많은 전각, 엄청난 크기의 강당, 인근 폐사지에서 모아온 많은 탑들과 탑재의 파편은 물론 휴일이면 3천명씩 몰려온다는 관광객등 직지사는 단연 우뚝합니다. '직지사'에 왔습니다. 나작인중에 백여덟곳의 절집 순례를 하겠다는 원(願)을 세우고 실행에 옮기고있는 팔공선달님의 공덕쌓기에 격려(?)가 되겠다고 황악산아래 다섯 사내가 모였습니다.

대전에서 만난 저니님과 추풍령을 지나 직지사에와서 팔공선달님 수목나라님 그리고 착각전공님을 만났습니다. 다른분들이야 나작안에서 늘상 뵙는분이여 그랬지만 착각전공님은 김천을 지키는 오로회원으로 직지사를 다녀가는 오로회원들을 그냥 보낼수 없다시며 길안내와 풍성한 연찬까지 베풀어 즐거운 시간이 되었습니다.

모두 먼길을 온 다섯분의 회원들과의 반가운 만남탓에 정작 절집을 돌아볼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여섯시간을 차에서 보내고 한두시간 절집을 둘러본 나는 절집의 단상을 포착할 수 없없습니다. 다시 1686년 직지사를 왔었던 노인을 떠올립니다. 이 노인의 이름은 '정시한' 훗날 다산선생이 '정구' '장현광'이후 오직 순수한 학자는  정시한이다했던 사람입니다.

삼일간 직지사에 유숙했던 노인은 떠나는날 자신의 여행경비에서 쌀 두어말과 마른명태 한두름을 절집에 덜어내주고 길을 떠납니다. 노인은 2년간의 절집기행을 '산중일기'로 꼼꼼하게 남깁니다. 일기속에 절집의 풍경은 알뜰하지만 승려들이나 불교에대한 기록은 볼것이 없습니다. 다만 지리산에서 본 불에 그을린 진감국사비를 쓰다듬으며 아파했다는 말이 전부인듯합니다.

김천에서 다섯분의 회원들과 해어지고 다시 사는곳으로 돌아옵니다. 밤 열시 멀리 서해대교의 불빛이 아스라합니다. 마흔여덟의 나이가 새삼 안탑깝습니다. 아직도 덜여물고 미숙하기만 한 인생, 한페이지도 남길것 없는 학식으로 나는 다시 침묵을 생각합니다.  정시한을 스승으로 생각하던 다산이 마흔여덟에 둘째 아들 '학유'에게 한말이 생각납니다.

-나는 스므살에 이세상 모든것을 살피고 따져 정리할 수 있다 믿었단다. 이 마음 서른에도 마흔에도 변하지 않았었지. 풍상을 맞은 지금 백성과 국가 정전 군제등과 같은 일들에 신경을 꺼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직한 생각이 남았는데 그것은 '경전'의 고석과 의심나는 점을 따져 묻는그것이다. 지금은 병까지 얻어 몸이 약해지고 마음까지 약해져 큰일이구나. 그러나 얘야, 나는 정신과 몸이 회복되면 다시 많은 생각에 불끈 불끈 일어나고 싶구나.

다산은 가는 시간을 떠올릴때마다 스스로 놀라 벌떡벌떡 일어났다고 합니다.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것이 걱정이 아니라 스스로 공부할 시간이 없을을 걱정했다는 겁니다. 나는 스스로를 다그치며 밤길을 달려 당진바닷가로 돌아와  노트에 일구막릉(日鳩莫陵)을  써놓습니다. 하룻빛 비둘기는 작은 언덕도 넘을수 없습니다. 나의 날개는 언제나 저 산을 넘을수 있을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