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를 타고 가는 사람과 그 가마를 지고 가는 사람들은 언제부터 어떤 연유로 그런 극과 극의 삶을 살게 되었을까요?
수레를 모는 사람과 수레를 끄는 소(牛)는 언제부터 어떤 연유로 그렇게 나뉘어져서 살아갈까요?
1cm벌어진 나뭇가지가 수십 년이 지나면 정반대의 방향으로 벌어져서 살아갑니다.
이 모든 것이 이전에 지은 업(業)이 이어져서 이승의 받은 업(業)이 된 것이라면, 우리는 이승을 얼마나 염려하며 살아야하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생의 빚"인 "업(業)과 인연(因緣)" 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비(非) 논리(論理)적, 비 과학(科學)적이라고요? 과연 그럴까요?
현대 최첨단 물리학의 "양자역학"을 보면 눈앞에 뻔히 일어나는 현상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현실인데, 눈에 안 보이는 "영혼(靈魂)"을 말하고 "전생(前生)"을 말하는 것이 "비 과학적"이라고만 한다면 인간은 영원히 그 굴레에 갇혀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생에 우리네 지금의 억울은 전생의 빚일지 모릅니다.
그 빚 갚는 것을 미룬다는 것은, (날아오는 돌멩이를 보면서 눈만 감는다고 안 맞는 것이 아니듯이) 언젠가 더 큰 빛으로 찾아올 것입니다.
바로 지금 이승의 이 억울함처럼..
예지 못했던 한해가 지나가고 또 예지 못할 한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올해는 기우여러분들 모두에게 뜻밖의 행운과 평안이 찾아오기를...
.. 언젠가의 빚 ..
눈에 보이는 것을 느끼는 순간..
눈에 안 보이는 것이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느끼는 나를 깨닫는 순간..
내가 모르는 내가 있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모른다고 해서 없는 것이 아니며..
기억나지 않는다고 없던 것이 되는 게 아닙니다.
죽을 것 같았던 그때의 고통도 지금에는 여름에 보는 겨울만 같은데..
하물며 기억나지도 않는 먼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찌 알겠습니까.
순간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도 그 원인이 있거늘..
이유도 모르고 아팠던 그 시절이라고 어찌 원인이 없겠습니까?
영문 모를 인생이 주사위 던지기였어도 그 주사위는 내가 던졌을 것이며..
설사 그것이 복불복이었다 해도 그것은 자연의 공평함이었을 겁니다.
아쉬운 지난 세월의 돌아봄은 돌이킬 수 없는 원망을 깨 씹고자 함이 아니고..
지난 것을 용서한다 말함은 먼 이전에 지은 내 죄업이 두려워서일지 모릅니다.
거짓으로 저지른 죄는 나중에 이유를 모르는 고통을 받을 것이며..
알면서 저지른 죄는 나중에 그 끝을 모르는 고통을 받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