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쓰는 손주
딸애가 나에게 다가오더니 귓속말로 소곤거렸다.
“내일 애들이 올 거야. 엄마에게는 말 하지 마.”
나는 알았다고 말하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내가 이 사실을 안 다면 아내는 오늘밤 잠도 분명히 설칠 테고, 내일에도 새벽부터 일어나서 창밖을 내다 볼 것이 뻔하다.
아내는 늘 11시 경에나 일어난다.
점심을 같이 먹기 위해서 12시 경에는 도착할 거라고 연락이 왔었다.
12시부터 초조하게 초인종 소리를 기다렸다.
1시가 넘어선 뒤에야 아들 녀석과 손자, 손녀가 도착했다.
택시가 잘 잡히지 않았으며, 며느리는 6인 이상 금지에 저촉된다고 해서 집에서 쉬도록 배려했다고 말했다.
한 달 정도의 시간 간격으로 방문하는 애들이 무척 반갑다.
버선발로 뛰쳐나가(?) 현관 앞으로 가서는 애들을 안아주었다.
손자는 들어오자마자 장난감 자동차를 거실에 풀어놓고는 신나게 운전을 한다.
자동차는 여기저기 모퉁이에 부딪쳤다가 다시 방향을 틀어서 다른 곳으로 향한다.
손녀는 소파에 올라가서 뛰기 시작한다.
방바닥에서 뛰는 것은 아랫집에 실례가 되지만 소파에서 뛰는 것은 상관이 없겠다.
뛰다가 싫증이 난 여자애는 아내의 운동기구인 실내자전거에 매달렸다.
등산을 하듯이 자전거 안장까지 올라가서는 거기에서 설려고 한다.
도무지 겁이라는 것이 없다.
저러다 다치면 어떡하나? 우리는 걱정이 태산이다.
만일을 대비해서 두 손으로 바로 붙잡을 태세를 취했다.
기다리던 점심시간이 되었다.
나는 자못 기대를 하였다.
늘 애들이 오는 날에는 소주 한 병이 허용되었었으니까.
그러나 헛된 기대였다. 요즈음에는 집안에서는 금주령이 내려진 상태였다. 제길!
애들은 피자를 주문하고 어른들은 딸애가 요리한 아구탕을 먹었다.
식당에서 먹는 아구탕 맛보다 훨씬 맛이 없지만 그놈의 코로나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
아내는 애들이 먹는 피자에 슬금슬금 눈치를 주다가 기어코 몇 조각을 딸애가 안보는 틈을 타서 훔쳐 먹었다.
나는 못 본척했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소화도 시킬 겸 뒷동산의 축구장에 올라가기로 했다.
축구장 올라가는 길에 연못이 하나 있다.
그 연못에는 잉어들이 우글거렸었다.
애들에게 잉어를 구경시켜주려고 했지만 웬일인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조금 기다리다가 포기하고는 다시 길을 재촉했다.
축구장 올라가는 길과 밑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에서 문제가 생겼다.
아내가 힘들어하는 눈치가 보이자 딸애가 올라가지 말고 그냥 커피를 사러 내려가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의견을 내었다.
어른들이 좋다고 수긍하였다.
그리고는 내려가는 길로 방향을 틀려고 했다.
그 순간 손자 녀석이 휙 하고 방향을 틀더니 왔던 길로 내빼는 것이 아닌가?
모두들 깜짝 놀랐다.
어찌난 빠른지 내가 뛰어서는 도저히 잡을 수 없을 정도였다.
아들이 잡으려고 뛰어갔다.
“아니, 재 왜 그러는 거야?”
우리들은 어이가 없었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었다.
자기는 축구장에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는데 어른들이 자기 의견도 묻지 않고 행동을 취하니 갑자기 욱하는 성질이 발동된 것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우선 자기의 의견을 말로 표현해야하지 않는가?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그리고 고모님. 제 의견을 들어보십시오. 저는 축구장에 가고 싶습니다. 어르신들의 결정을 바꾸는 것이 어떨 런지요. 심사숙고 해주시기를 간청 드립니다.” 이렇게 말이다.
나도 모르게 화가 났다.
“저런 못난 놈. 그냥 내버려두어라 혼자 고생 좀 짤짤하게.” 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체면상 꾹 참았다.
아들이 간신히 달래서 다시 손자를 데리고 왔다.
결국 딸애 혼자서만 커피를 사러 내려가고 우리들은 축구장을 향해 올라갔다.
축구장에서도 손자 녀석이 몇 번이나 떼를 썼으나 그 때마다 아들이 잘 달래서 데리고 돌았다.
축구장을 한 바퀴 돌고 구경을 한 다음에 다시 우리들은 내려왔다.
이번에는 내려오는 계단에서 문제가 생겼다.
나와 아내는 손녀의 손을 양쪽에서 잡고는 계단을 내려왔다.
손녀가 좋아하였지만 너무 속도가 느렸다.
그래서 아들더러 손녀를 안고는 내려가도록 했다.
그때 손녀가 버둥거리면서 반항을 하였다.
손녀는 아예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나는 또다시 화가 났다. “아니, 애들을 어떻게 키우는 건가?”
딸과 아들이 어렸을 때 우리는 매를 들었다.
둘이 싸우면 엎드려뻗쳐를 시켜놓고는 매를 안겼다.
한 두 대만 맞아도 딸애는 곧 항복하였다.
“아구구, 살려주세요. 잘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들 녀석은 절대로 굽히지 않았다.
꿋꿋하게 온 매를 다 받아냈다.
매 덕분인지 애들이 떼를 쓴 기억이 거의 없다. 아니면 늙어서 기억력이 없어진 것인가?
집까지 내려오면서 고생을 했다.
놀이터마다 놀려고 하는 애들과 실랑이를 했다.
한 참을 지체하면서 간신히 집에 도착하였다.
집에 도착하자 아내는 진이 쪽 빠진 듯 보였다.
힘없이 말했다.
“저 애들하고 며칠 더 있으면 살이 쏙 빠지겠어.”
애들이 떠난 다음에도 마음은 답답하였다.
애들이 자기표현을 잘 하고 말을 잘 들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단기간에 교육을 시킬만한 방안은 무엇일까?
여러 날 생각했지만 뾰족한 수가 잘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가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저 놈들이 나를 닮은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었다.
이 나이에도 나는 유치하다.
얼마 전에는 딸애가 집에서 술을 못 먹게 하는 것에 대하여 고민하다가 나도 모르게 벽을 주먹으로 친 일이 있다.
논리적으로 조목조목 딸애에게 내가 집에서 술을 마셔도 되는 이유를 설명할 의지가 없는 것이다.
어릴 때 나는 외갓집에서 자랐다.
어쩌다 행상을 하시는 어머니가 찾아오면 나는 따라가겠다고 졸랐다.
그러나 이 동네 저 동네를 옮겨 다녀야 하는 그 장삿길에 나를 데리고 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는 사립문에 기대어 하루 종일 울었다.
이모나 외할아버지가 방에다 데려다 놓으면 굳이 다시 고집을 피우며 사립문에 가서 섰다.
저 놈들에게 나의 못된 피가 흐르는 것이다.
“애들아, 이 할애비가 너희들에게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