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는 아름답다

아무나 접 할 수 없는 바다의 비경을 그녀는 일상 옆에 두고 산다

스킨 스쿠버가 준비하는 숱한 장비를 마다하고

물망하나 그리고 물안경하나

바다 선녀의 날개옷은 고무로 만든 옷 모양에 간단한 잠수복이면 족하다

인간과 바다의 만남에서 훨훨 하늘을 나는 선녀처럼 해녀는 바다에서 자유롭다

물속에서 해녀는 번잡한 세상과 다른 도원경을 즐기며

격한 풍랑이 몰아치는 세상바다 아래에 고요함을 즐기며 물속을 누비며 산다

누구도 쉽게 접할 수 없는 기쁨 뒤에 긴 숨을 참아내는 고행은

건져 올리는 해산물로 가쁜 숨을 쉰 보상을 받기도 하는 프로다

t.v에서 재방영되는 을룽도 최고의 해녀가

예쁜 돌고래처럼 바다를 누비는 모습을 보며 아내와 나는

저녁을 먹고 있다는 것도 잊은채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해녀의 멋들어진 유영 장면과 조화를 이루는 파도는 너무도 아름다웠다

근동 바다 사람들의 엄지손가락 을 치켜세우게 하는

그녀의 사냥 솜씨는 정말로 일품 이였다

길쭉한 빗창을 사용해 전복을 떼어냈고 골괭이로 성게며 문어를 잡아내다

때론 작은 창 같은 소살로 물고기를 잡던 그녀의 손놀림은 정말로 멋져 보였다

테왁을 의지해 가쁜 숨을 토해내며 잠시 쉬다

밑에 매달려있는 망사리 그물주머니 속을 들어보이던

물안경 안에 그녀의 흡족한 웃음은 우리 부부도 실없이 따라 웃게 했다

허리에 차고 있던 작은 그물주머니 좀망사리를 떼어내며 그녀의

하루 물일은 끝이 났다

카메라 앞에서 모자를 볏은 그녀의 얼굴을 보고 우리는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짜기 만한 바닷바람과 쉴 새 없이 밀려드는 파도를 넘나들며

모래알같이 거칠어진 얼굴과 함께

잠수복에 가려졌던 작은 몸매와 구부러진 허리는

그녀가 세월로 새겨 놓은 나이테 동그라미 속에

날이 새면 테왁과 망사리를 메고 이어도를 찾아 바다속을 헤매던

막 물질을 시작할 때 불리던 "톨파리" 하군의 풋내기 모습을 지나

"중잠수" 중군을 거쳐 바다와 한몸 처럼 되어버린

"상잠수" 상군에 이르기까지에 해녀 생활의 애환을 고스란히 함께 담고 있었지만

황혼 나이에 어디서 솟은 근력으로 그렇게 날렵하게

바다를 가르고 다녔는지 의심이 들도록 그녀는 놀랍게도 87세 고령의 할머니였다

참으로 세월을 거스르며 사는 멋쟁이가 아닐수 없다

동리 안으로 들어온 늙은 해녀는 수확해온 해산물들을

이집 저집 다니며 나누어 주러 다녔다

“왜 이렇게 집집마다 애쓰고 잡은 것들을 주십니까?”하고

취재진이 묻자 그냥 희미하게  웃어 버리고 만다

이곳저곳 살림 내보낸 자식들 집 돌듯이 동네를 한바퀴 돈뒤

만족한 미소를 띄우고 반찬 될만한 작은 생선 한 마리를 들고 부엌으로 들어가

저녁 준비를 하는 집에는 왠일인지 아무도 없이 휭 하니 썰렁하고

이제껏 보았던 내가 사는 옆집 할머니 모습 같은분이  
사는곳이라고는 전혀 믿겨지지 않게 푸근하고 따듯함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눈을 뜨고 집앞 뜨락에 서기만 하면

천상의 세계, 바다와 유채의 기막힌 만남, 등의 관광객 유치 문구가 아니래도

저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비경의 촛대 바위를 눈앞에 두고

가슴앓이를 하며 사는

멋진 할머니 뒷면에 숨어 살아온 또다른 모습의 늙은 해녀를 만났다

많은 사람들이 꿈에 그리도록 먼길을 마다안고 찾아와 감탄사를 쏟고 가는

비경의 촛대바위 앞을 떠나고 싶어 하면서도 떠나지 못한 슬픈 사연을 간직한

늙은 해녀의 넋두리는 카메라를 따라 행적을 쫒고 있던 우리의 마른 목을 메이게 했다

만선을 알리는 깃발을 달고 40대 장년의 두 아들이 몰고 돌아오던 고기잡이배는

촛대바위 앞 바다에서 원인규명을 하지 못한 선체폭발로 배 밑이 터졌고

집앞에서 귀가를 기다리며 보고 있던 할머니는

늠름하던 두 아들이 눈앞에서 무참하게 사라지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던 모양이다

두 아들을 기쁘게 마중 나가다 현장을 목격 하고도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채

발만 동동 구르던 어머니는 그냥 선채로 두 아들을 잃어버린 무력감으로

오랜 세월을 죽지도 못하는 자신을 한탄만 하며 살아왔던것 같다

다시는 만날수 없는 두 아들의 남은 흔적과 기억이

하나 라도 지워져 버릴까 두려워서

아픈 기억을 남긴 촛대바위 앞을 떠나지 못하고 서성이며 살고 있다는 것이다

늙은 해녀의 슬픔을 삼키고도 아무 일 없는 듯

무심히 철썩이는 파도를 감싸안는 촛대바위를 닮아가며 살아야 했던

늙은 해녀의 젖고 마른 눈물의 되새김이얼굴에 남겨 놓고 간
겹겹의 주름은 너무 깊고 굵게 파여있어

가슴을 아리게 하며 결국은 우리 부부의 눈물을 떨구게 하고 말았다

최고령 해녀의 노구라 전혀 믿기지 않는 날쌘 몸놀림으로

젊은 해녀 보다 언제든 더 많은 수확량을 뱃전으로 끌어 올리는 것은

옛 기억 속으로 끌려가는 자신을 과거 밖으로 끌어 올리는 것 같아 안타까웠고

지우지 못하고 깊이 가슴에 싸매둔 슬픔 하나쯤 없는 이 뉘 있을까마는

아픈 기억을 매일 되새김질 하면서도 촛대바위 를 떠나지 못하는

그 진한 아픔은 어떻게 덜어가며 살아 왔을까 생각 하니

더 더욱 가슴을 쓸어내리게 한다

너무도 크고 아픈 상처는 아무리 멀리 도망 쳐도 지울수 없는 것처럼

생때같은 자식을 둘씩이나 잃어버린 아픔은

생애에 가장 소중한 자식들을 잃어버린 그 아픈 자리마저도 떠나지 못하도록

버겁고 무거운 것인지도 모른다

종일 자맥질 해 따온 미역과 소라 고동을 오랜 세월 이웃 에게 나누어줘도

자식들에게 먹인 밥 한공기의 기쁨도 찾지 못하고 쓸쓸한 미소를 뭍에 두고

오늘도 늙은 해녀는 바다로 간다

잠시 만났던 취재진이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워 눈물을 글썽이던

늙은 해녀는 바다에서 세월의 아픔도 잊은 채

바다속 선녀처럼 유영하는 모습을 남기며 t.v는 늙은 해녀의 이야기를 끝낸다

늙은 해녀의 눈물은 언제가 되면 마를 수 있을까?

명쾌하게 그녀의 눈물을 닦아줄 아무런 답이 없는 이 슬픔은 어디로 보내야 하는걸까?

오늘도 늙은 해녀의 눈물을 가득 담은 파도는 촛대바위를 때리고 철썩 이고만 있을텐데...

다 식어버린 밥상 앞의 우리 부부는 오래도록 말을 잃고 멍하니 앉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