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조(候鳥)

천지간에 인간으로 태어나기 어렵고, 인생세간에 너와나로 만나기는 더욱 어렵거늘...
익숙함은 편안함을 주지만, 낯설음은 설레임을 주는가...

그 남자...`그 이름은 모르지만...낡지도 않고 새것을 이루지도 않는다 했습니다`
그 여자...`아름다움을 아름다움으로...머물지 않음으로써 사라지지 않는다 했다지요`


========당신을 누구라고 말하리 / 나를 누구라고 당신은 말하리 /
             마주 불러볼 정다운 이름도 없이 / 잠시 만난 우리 오랜 이별 앞에 섰다 /

산수유 꽃속으로 그여자의 봄이 `처음`으로 피던 날... 

...`천하는 본디 아무일이 없다는데, 분주한 인간이 저혼자 야단스러우면 어찌합니까`
...`영화로움을 알면서 욕됨을 지키니, 청산은 내뜻으로 녹수는 님의 정으로 남겠지요`

희로애락의 햇살이 여린 꽃망울 살짝 튕겨 노란 속살을 엿보려  같이 놀자하고...

...`피어서 아름다운 꽃이고, 함께해서 따사로운 사람인데...꽃피는 삶에 홀림인가 봅니다`
...`운(雲)이 있어 청산에 머무르고 우(雨)가 있어 녹수에 담겼으니...정(情)으로 굳겠지요`

봄날은 찰나이지만 영원을 부러워하지 않는 그 상사(相思)는 말려도 피더라   


========갓 추수를 해들인 허허로운 밭이랑에 / 노을을 등진 긴 그림자 모양 /     
             외로이 당신을 생각해 온 이 한 철 /

6월의 풀빛 푸른 언덕위...비는 하얗색으로, 설레임은 연두색으로...장대같이 오는데

...`옛사람들은 산수를 보면서도 그 흥취를 반쯤은 남겨 뒀다지요...`
...`그래서 여인을 볼때도 달빛아래 주렴 사이로만 봤던가 보죠...`

이 푸른 눈동자는 무얼 말하려 함이고, 저 붉은 입술은 무얼 행하려 함인가

한여름 밤바다에 눈이오고...돌팔매에 물결은 야광으로...성모의 보석은 그렇게 빛이나고, 

...`말로써 말이 많은 세상...잃은 사람하고는 잃은 것으로 어울린다 했습니다`
...`말로써 그사람을 평하지 말며, 사람으로써 그 말을 평하지 말라 했다지요 `

이 느낌의 반만이라도  그대에게 전할 수 있다면...그냥 그렇게 가만히 바라만 보고


========삶의 백 가지 간난을 견딘다 해도 / 못내 이것만은 두려워했음이라 /   
             눈 멀듯 보고지운 마음 / 신의 보태심 없는 그리움의 벌(罰)이여 / 
             이 타는 듯한 갈망 /

가을은 나뭇잎을 부순다고 바쁜 구비구비 칠흙같은 산길...하늘에서는 별이 떨어지고...

...`가을이 오고 달이 암만 밝아도...나를 위해 남겨진 한사람도 없습니다...`
...`정은 돌려주거나 돌려받는것이 아님인데...그리움이게 하신 그뜻을 소중히 하시지요`

능금이 익어갈수록  눈물은 가슴속 돌의 쌓임으로...그래서 가을이 빨갛다고 했나?


========당신을 나의 누구라고 말하리 / 나를 누구라고 당신은 말하리 /

묻고싶은 것은 아끼느라, 하고싶은 것은 감춰둔 채...몇 번의 계절이 무심히 바뀌고...   

...`닿을수 없는 것은..............아득함입니까   애닲음입니까...`         
...`나를 버리고 나니..............그대는 벌써부터 와 있더이다...`

장작불 같았던 가슴 그 불씨...아쉬운 모자람속  내가 지켜낸 것은 무었이었던가...           


========우리 다같이 늙어진 어느 훗날에 / 
             그 전날 잠시 창문에서 울던 / 어여쁘디 어여쁜  후조(候鳥)라고나 할까 /

지나가는 것은 지나가는 것으로...모두 그렇게 떠나며 또 그렇게 보내며 살아가는데...

...`당신...없는곳 있는 사람이어서...그 자태는 남겨지지 않는가 봅니다...`
...`바람이 불어와도 그 소리를 남기지 않고, 기러기가 지나가도 그 그림자를 남기지 않는다지요...`


==========옛날 그 옛날에 /    
                이러한 사람이 있었더니라 / 애뜯는 한 마음이 있었더니라 /
                이렇게 죄 없는 얘기거리라도 될까 / 우리들 이제 오랜 이별 앞에 섰다 /

이제는 세월이라고 불러도 될만큼의 시간 후...각자 삶의 매무시는 단정하니 여미는데 

...`당신...참 좋은 사람입니다...그래서 내마음이 이렇게 아픕니다...`
...`돌아보면 다시 피어있는 꽃이니...꽃길 천리 다정 천리...일 것입니다`

한겨울...평행선의 철로위, 눈꽃송이는 하늘도 땅도 나몰라라 난분분 어지럽기만 하다  

.............................

능금꽃 속으로 그여자의 가을이 `마지막`으로 지던날...

...`그 이름은 모르지만...낡지도 않고 새것을 이루지도 않는다 했습니다`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으로...머물지 않음으로써 사라지지 않는다 했다지요`

                    
**************************************
후조(김남조 시) 를 읽어보며...그 행간으로,
내 삶의 숨은 그림(情人)을 추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