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 늦은 봄 어느날 사무실에서 오수의 나른한 기운에
꾸벅이고 있는데 “ 띠디리리띠 , 띠리디리띠 ,, ” 요란한 전화 벨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 여보세요 ! ” , “ 예 ,여보세요 ”

“혹시 저를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요 , , 저 원주에서 하숙집을 했던 사람이예요 ”

카랑카랑한 목소리 할머니 특유의 음성을 듣자 난 10년전 내가 원주에서

기거할 때 집 주인 임을 알수 있었다.

“ 아 예 , 기독병원옆 할머니 시군요. 반갑습니다. ”

시내 부근의 한적한 주택가 아늑한 집한채

앞뜰엔 배추 상추, 등을 심었고 방앞엔 넓직한 툇마루가 있는

분위기가 맘에 들어 그곳에서 약 1년간 방을 얻어 지낸적이 있었다.

그 할머닌 체구는 작았지만 뭔지 모를 친근감을 느끼게 하는 인상으로

내게 뭐 부족한게 있는지 알아보고 잘 챙겨 주셨고 동네잔치 때면

꼭 나를 불러 같이 가자고 했었다.

어느땐가 주말 내가 서울로 올라갈 때 검정 비닐봉투를 건네주며

집에서 손수 가꾼 상추, 깻잎 그리고 쑥갓을 조금 땃으니

사모님과 식구들 같이 먹으라고 주셨다.

내가 터미널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핸드폰이 울렸다.

봉다리(비닐봉투)가 바뀌었으니 미안하지만 집으로 다시와 달라고 했다.

난 그냥 “ 아무거나 먹죠 ” 했더니

할머닌 막무가내로 꼭 좀 집에 다시 와 달라고 했다.

난 다시 집으로 갔더니 할머닌 거듭 미안하다며 다른 비닐봉투로 바꿔 주셨다.

“ 여보 이게 뭐야 !”

집에서 비닐봉투를 끌러보던 와이프는 하얀 봉투를 발견하고 나를 불렀다.

그 안에는 만원짜리 열장이 들어있었다.

무슨 보물 찾기처럼 깻잎 속에 숨어있는 돈봉투는 우릴 충분히 감동시켰다.

‘ 아 그래서 그 봉투가 바뀐걸 알고 일부러 바꿔가라 하셨구나 ’

오늘은 무척 말씀을 아끼셨다.

쉽게 말씀을 안하시다가 어렵게 말을 이어갔다.

“실은 우리 아들이 집에서 놀고 있는지 꿰나 오랜데 ,, 부장님이 건설쪽에 계시니

일할 수 있는 곳을 한번 알아봐 줬으면 해서요 !“

그 때 그분의 아들이 건설 현장쪽에서 일하고 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었는데 그게 생각 났다.

그 어려운 질문에 난 너무 쉽게 대답했다

“요즘 경기가 안좋아서요 건설회사들도 제대로 돌아가는 곳이 없어요 ”

“ 좀 힘들겠네요 ” , “알아는 보겠습니다”

현실은 그렇더라도 그 할머니에겐 큰 실망을 주었다.

그리고 점점 잊혀져 갔다.

내게 잘해주던 사랑도, 그런 기억들도 ,, 냉정히

거절되어야 하는 상황이 날 더 강하게 만들지는 몰라도

나의 순수성은 점차 잃어가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