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바뀌어 있었는지 방안 벽에 걸린 달력은 벌써 2011년 에 가있다

표지로 쓰이는 겉면 귀퉁이에 오는 세월에 밀려

쪼그맣게 매달려 있는 2010년이란 년도 표기가 없으면

12월의 달력은 얼핏 보기에 중앙상단 에 떡하니 걸터 앉은

2011년의 큰 글씨로 한해를 훌쩍 넘겨 버린것 같다

젊어 군복무중 새해를 맞으며 여자 친구에게 보내는 엽서 첫머리에

이年이 가고 저年이 온다고 써서 보냈더니

다음 면회 때 이년 저년 했다고 웃어야 되는거야 화내야 되는거야 하고

묘한 표정으로 묻던 기억이 나 혼자 피식 웃는다

辛卯年(신묘년) 토끼해가 되는 해에 耳順(이순)을 맞는다

소리가 귀로 들어와 마음과 통하기 때문에 거슬리는 바가 없고,

남의 말을 듣기만 해도 곧 그 이치를 깨달아 이해한다 등 여러 가지로

논어의 들어있는 六十而耳順 (육십이이순)이라고 하신

공자님 말씀을 해석해 놓은 글들을 볼수 있지만

글의 뜻 그대로 귀가 순해진다는 말씀이 가장 마음에 닿는다

한데 아직 귀가 순해지지 못했으니 나이는 들어도 철이 덜 든 탓인가 보다

공자께선15세의 지학(志學)으로 학문에 뜻을 두셨다 했는데

운동이나 기타를 배운답시고 천방지축으로 놀기에 바빳고

뜻이 확고하게 선다는 30세의 이립(而立)에는

뜻을 세우기는커녕 이른 결혼에 생긴 아이 쳐다보며

집칸이나 장만 한다고 정신없이 세월 보내고

불혹(不惑)이라는 40쯤에도 세간에 이름 한번 걸어 보겠다고

미친놈 널뛰듯 하다 마누라 고생만 죽도록 시켰다

지천명(知天命)이라는 50줄에는 하늘에 명을 듣는건 고사하고 뜻대로 않된

세상 탓만 하다가 그것도 모자라 하늘을 원망하는 어리석음만 잔뜩 늘어 놓으며

공자 말씀에 준하는 나이 값을 제대로 못하고 세월만 죽이고 살았다

뜻대로 행(行)하여도 도(道)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종심(從心)을 갖출

70세까지는 가볼수나 있을지 모르지만

여튼 머리는 허옇고 껍데기는 그럴싸하게 耳順으로 가고 있다

타 바둑 싸이트에서 연재소설 말미에 작가가 재미로 만든

삽화 그림 보고 써보라던 코너에 詩한편 올렸다가

응모한 사람도 그리 많지 않던 곳에서 부상으로 책 몇권 받고

마누라에게 우쭐 거리며 글 씁네 하고 하지 않던 짓으로 한해를 보냈다

술 먹고 건강 해치는것 보다는 나았는지 살살 꼬드겨 부추기는 아내의 칭찬에

사탕 쥔 아이처럼 틈만 나면 자판 앞에 앉아 글이랍시고 쓰고있다

체질에 맞지 않아 양은 그리 많지 않아도 즐기던 술 먹는 횟수가 반은 줄었다

코뚜레 없고 귀먼 황소처럼 고집만 부리고 살던 서방이

끄는대로 잘 끌려 다니니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신 마누라님께선

제 말 잘 듣는다고 耳順이 가까우니 귀가 순해져 사람이 변했다고

주름진 얼굴에도 엉덩이를 살랑 거리며 웃음이 가득해서 이뻐해 준다

좋아 하니까 그냥 나도 좋다

하지만 물 줄줄 새던 구멍난 바가지 세월 간다고 물이 가득 담겨질까?

知天命을 건너뛰고 耳順으로 가는것 처럼 보이는건 순전히 미안해서다

30년 넘게 철없는 아이 같은 철부지 신랑 뒷바라지 하다

곱디곱던 새 색씨를 주름 깊고 흰 머리 가득한 할머니로 만들어 논 미안감 으로

잠든 머리맡에서 하마터면 울뻔 한적도 있었다

그래서 耳順으로 가는양하며 사는줄 모르고 아내는 그저 좋아라 한다

또 덧없이 한해를 보내려 하고있다

덜 피고 덜 마시고 하겠다던 팔공선달님 글이 생각나 따라할까 해보다

심지가 굳지 못해 공수표로 끝날 확률 98%의 약속 새해에는 아예 안할 작정이다

될지는 모르지만 그냥 마누라님 하잔대로 시키는 말이나 잘 듣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올해 끝머리엔 삼부자 뒤치닥꺼리에 맨날 바쁘게 사는 마누라님 잠들었을때

고맙습니다 하고 큰 절이나 한번 드릴까 하는데

마주보고 정식으로 하고 싶지만

안하던 짓 하면 또 무슨 사고 치려고 저러나 겁낼까봐

잠들었을때나 몰래 한번 해야 할까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