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호집-

참으로 오랜 동안 기억 저 편에만 남아있던 얼굴들이 여럿 함께 있어 참 좋았던 날이다.

어머님을 잃어 눈물이 마를 때 없던 종석이 에게는

회한에 눈물이 마를 새 없던 설운 날 이였을 터여서 미안 했지만......

석 집 건너 살아 많이 친했던 부산에 사는 복수는 약속을 못 지켜

함께 갈수 없지만 오늘은 그냥 섭섭지 않게 웃고 넘기기로 했다

포항에서 김포를 오는 동안 어머니를 먼저 잃었던 사람으로

상주가 느낄 아픔의 무게를 덜어주러 간다기보다

30년 가까이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이 모여 있다는 소식으로

마음 들 떠 있던 내게

잃었던 소중한 추억을 찾아 돌아가는 길은 혼자서도 좋을 것 같았다

학창시절에 어렵던 형편 이라 신문 배달 등으로

부모님께 학비부담을 덜어드려야 하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언제나 밝았던 종석 이는 가까운 친구가 늘 많았다

지금은 제법 큰 건재상을 운영하며 고향을 떠나지 않고

지금도 총무 던 전임 동문회장으로 던 어떤 자리에서도 옛 친구를 위한 일에

자신의 수고를 아끼지 않는 종석네 喪家는 동창회를 방불케 하는 큰 모임을 이루고 있었다

절 을 끝내고 입구에 앉아있던 현임 동문회장 하는 동섭 이를 만났다.

한 30년 전인가 보고는 못 봤으니 반갑기만 하다.

제1 한강교 가 서울을 넘나드는 유일한 다리 였을떄 김포는 외진 시골이였다

동섭 이는 국민학교 경기도 김포군 대표로 서울대회에 핸드볼 선수로도 시합을 치렀고

중학교에선 같은 야구부원 으로 함께한 인연으로 다른 동창들보단 사이가 돈독했다

몇 순배 술잔이 건네지고, 함께 야구를 하던 때로 화제가 건너가자 추억이 풍성해졋다

가난하던 시절 시골 공립 중학교론 꿈도 꿀수 없던 야구를 할수 있었던건

김포에 주둔했던 미군들에게 권투를 가르쳤던 체육 선생님이

우리 학교로 전근을 오신 덕분 이였다

야구 배트며 공 야구 장갑 유니폼 모두가 그 떄론 귀하기만 한 미제였으니

실력은 없어도 장비는 대한민국 중학교중 최고가 아니였을까 싶다

그것 외에 시설이며 모든 것은 최하급 이였을 터지만...

거칠고 조악한 옷감과 달리 너무도 부드럽고 매끄럽던 유니폼이 아깝고 상할까 두려워

평소에 우리는 입지도 못하고 가보처럼 소중히 집에 모셔두고

해체해 놓으면 거친 면을 재료로 한 원조품 쌀푸대는 훌륭한 옷감이 되 주었는데

그것들을 재단해 노랗게 염색해 유니폼을 만들어 훈련복으로 입었던 얘기를 시작으로

처음 유니폼을 받아 등 번호를 보며 마냥 들떴던 얘기며

훠스트,쎄컨,쑈스탑(그땐 1루,2루,유격수 등을 꼭 그렇게 호명했다) 하고 부르는 소리나
깡!  하며 나르던 공 소리만 들리면 미친 듯 뛰다 글로브를 들이밀던 습관으로

잠결에 손을 뻗어 동생 머리를 죽어라 움켜 집었다는

문방구집 아들 치섭이 말에 눈물을 질금거리며 웃기도 하고

비닐하우스조차 없이 꽁꽁 언 손으로 밖에서만 공을 던져도

마냥 신명 나기만하던

즐거웠던 기억 속으로 우리 모두는 함께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꽤 많은 경비를 지원해서 야구를 전혀 모르고도 감독님이 되었던 배불뚝이 정육점 아저씨
후에 알게 됐지만 서너 달 야구를 했었다는 자전거포 주인 이던 코치님

야구의 정석교육이 이뤄졌는지도 의심케 하는 야구부였지만

우린 무조건 많이 뛰고 툭하면 쥐어터지고 야구배트로 맞아 가며도

간간히 입을수 있는 미제유니폼 만으로도 자랑스러웠고

남녀공학이던 학교에서 여학생들로부터 선망에 눈길을 흠뻑 받아 너무 좋았으며

어렵게 이뤄졌던 서울 야구명문 이였던 배문 중학교 야구부 2진과에

친선경기 에서 10여점 차에 영패를 당했지만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난생 처음 보았던 동대문 운동장에 고교야구를 관람하며

점심인 찐 고구마를 우걱 거리고 먹을 때도

우리 모두는 주위를 의식치 않고 선택된 자의 즐거움을 만끽 할수 있었다

체육 선생님의 전근으로 1년반 정도에 길지 않은 꿈으로 끝이 났지만

그 꿈은 4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야구부원 이던 내게 가슴을 뛰게 하는 추억으로 남아있다

야구부 창설 시에 회상이 지나고 16호집이 살아나며 추억은 더 가까이 다가왔다

처음엔 무슨 소릴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16호?

기억해 내기엔 너무 오랜 세월이 녹아있었다.

같이 자리한 친구들 부추김에 겨우 기억해 낸 16호집.

한 번 열린 16호집은 많은 추억을 와락 밀어주었다.

종석이가 살았던 그 곳

좀도둑이 많아 문단속이 심했던 때도. 그 집은 항시 문이 열려있었다.

입구에 커다란 우물이 인사를 대신하던 열여섯 가구가 한 울타리 안에 모여

단칸 단칸 모양도 크기도 같은 벌집처럼 생긴 월세 집 덩어리

하나의 대문을 같이 사용 했지만 집이라기보다는 한 마을 이였다

그래도 그 집은 16호집으로 불렸다.

형제 열명과 종석이 부모님 두분 열두 식구가 쓰기엔 너무 좁았던 곳.

그 단칸방.

늘 뎅그라니 혼자 앉고 혼자 자야했던 텅 빈듯 큰 집에 살던 나는

동그란 나무밥상 두 개에 엉덩이를 밀어 넣고

늦으면 먹을 것을 놓쳐서 젓가락 숟가락을 들고 밀치며 엎어지며

끼니때마다 전쟁하듯 밥을 먹던 종석이네. 밥상머리를 탐냈고

가마솥 하나 가득 끓인 수제비가 금새 동이 나곤 했던

그 자리에 얼마나 끼고 싶어 했는지 모른다.

그 16호집 에는 TV 방송국 카메라맨 이었던 창근이

60이 넘어도 아직 굳건히 숫총각을 자처하는 창규

워낙 돌머리로 자자해 1년 유급을 받아

가까운 곳에 학교를 못 들고 김포에서 두 시간 남짓이나 시간이 더 드는

강화 어딘가 먼 곳에 시외버스를 타고 중학교를 다닌 만성이가 살았었다

흰머리와 주름들이 듬성한 중년의 늙은 모습들이

기워진 옷과 책가방이 없어 보자기로 싸맨 도시락을 덜렁거리며 들뛰던 국민학생과

흰 교복에 잉크방울을 묻히던 까까머리 중학생의 모습이 되어

다시 되살아나도록 해주었던 16호집.

16호집의 기억 속에서 나도 홍안의 소년으로 되살아난다.

건너편 자리에 모여 수다를 떨고 있는

여자동창 아이들도 모두 세일러복을 곱게 입은 소녀가 되어 함께 살아난다.

아무리 치마를 주름잡아 곱게 입어도 선머슴 같던 영자

크리스마스 전날 밤이라고 미군부대 식당에 밤일을 나간 홀어머니 덕분에

어른 없는 집에서 맛도 모르는 술을 홀짝거리며 밤을 같이 새우던

키만 멀쑥하던 경숙이.

주근깨가 얼굴에 가득해 깨순이 별명에 미자,

남학생보다도 먹성이 좋아 학교 매장에서 팔던 곰보빵 대여섯 개를 뚝닥 먹어치워

돼지라고 놀려댄 성원이의 팔을 물어뜯어 흉터를 남겼던 순복이 .

건너에 수다를 떨며 앉아있는 저 아이(?)들은 이곳이 슬픈 喪家임을 잊은듯하다

우린 언제 다시 16호집의 우물 속에 들어있던

차고 시원했던 수박을 나눠먹으며 킬킬거리며 웃을수 있을까?

판자를 내려붙여 이음새가 벌어진 벽틈 사이로 겨울이면

시베리아 벌판 같은 바람이 숭숭 불어대던 판자집 교실에서

멀리 있는 조개탄 난로를 원망하다가도 풍금 소리가 들리면

“청라 언덕위에 백합 필적에~"를

추워 떨던 언 손을 호호 불어 녹여 가면서도 목청껏 소리쳐 노래 해볼수 있을까?

갈수 없는 시간이기에 더욱 그립고 소중 하기만하다.

포항에서의 예정된 약속이 없다면 밤을 새워도 짧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차창 밖으로 애젋게 눈물을 애써 삼키던 종석이의 모습이 겹쳐 지나는 것도 잊은 채

돌아가는 길에 하나하나의 얼굴들을 떠 올리며

꼬리 물고 따라온 추억에 잠겨 멀었을 거리를 짧게 느끼며 돌아 올 수 있었다

철부지 되어 진심을 다하지 못했던

먼 길 떠나시는 종석이 어머님의 극락왕생 을 다시 한번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