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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일리지 스캔들. |
| 글쓴이 새벽21 조회 2964 |
작성일 2002-08-06 오전 8:28: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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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독일의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독일 사람들이 가장 기피하는 직업은 노조 간부와 서점 주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자의 권익을 옹호하는 노조 간부와 ‘생명의 양식’이라는 책을 파는 직업이 3D업종으로 간주되는 세태는 유럽이라고 해서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흥미로운 것은 바로 그 다음 순위에 정치인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가 하나의 직업으로 자리 잡은 것은 기껏 한 세기 남짓한 과거부터이니,사실 직업으로서의 정치는 그다지 오래된 일은 아니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정치는 서민들은 감히 범접 못 할 귀족이나 대부르주아만의 특권 가운데 하나였다.
상황이 변해 정치가 봉건적 특권으로부터 떨어져 나오면서 하나의 직업으로 특화된다. 하지만 과연 세계 어느 나라에서 정치가 특권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있을까. 끊임없이 꼬리를 무는 정치인의 특권과 관련한 스캔들이 이를 무언으로 부정하고 있다.
올 하반기 유럽의 정치일정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다음 달 말로 예정된 독일의 총선이다. 프랑스와 덴마크에 이어 과연 독일에서도 극우세력이 약진할 것인지,현 독일의 좌파정부가 정권을 방어할 것인지가 주요 관전 포인트다.
그런데 최근 정치 스캔들과 관련, 3명의 정치인이 전격 사임했다.
첫 번째는 국방장관 루돌프 샤핑이라는 사람이다. 한 홍보회사의 젊은 사장 훈징어로부터 퇴임 후 집필할 자서전의 선인세 명목으로 거액의 돈을 챙긴 혐의가 들통났다. 대개 그렇듯 본인은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지만 샤핑 자신이 오래 전부터 끊임없이 갖가지 구설수에 올랐던 탓에 그의 전격 사임은 오히려 때늦은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뚜껑을 열고 보니,훈징어라는 인물은 거의 모든 정당,거의 모든 주요 정치인에게 ‘정당기부금’이라는 명목의 돈을 -물론 ‘공식적으로는’ 법정 한도액 내에서-지속적으로 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 2명의 정치인은 사정이 사뭇 다르다.
세칭 ‘마일리지 스캔들’이라는 이상한 스캔들에 연루되어 녹색당의 젊은 정치인 한 명과,구동독 사회주의 통일당(SED)의 후신 민주사회당(PDS) 소속의 기지(Gysi) 현 베를린 부시장이 전격 사임한 것이다.
사건의 윤곽은 이렇다. 이들이 공무수행 과정에서 모인 루프트한자 항공사 마일리지를 개인적 용도로 전용했다는 정보를 모처로부터 입수한 이른바 납세자협회라는 로비단체가 이를 일간지 빌트에 제공하고,빌트는 이 명단을 다시 단계적으로 공개한다.
앞의 훈징어 스캔들에 비하면 그 자체로 ‘미미하기만한’ 마일리지 스캔들,하지만 이에 대한 의혹도 만만챦다. 우선 공개된 명단이 주로 집권 사민당과 녹색당 그리고 좌파 정치인에 집중되어 있다. 명단 자체가 지난해 10월에 입수되어 이미 알려진 것인데 하필 총선이 2개월도 남지 않은 지금 폭로되었는지에 대한 것과 납세자협회 쪽에서 주장하는 마일리지 리스트가 진정 존재하는지 등도 궁금증을 더하고 있다.
사건의 실체적 진실 여부와는 무관하게 독일의 대표적 황색지이자 노골적 보수 지향지인 빌트가 거둔 과실은 적지 않다. 무엇보다 독일 녹색당에 적잖은 도덕적 흠집을 입혔고,특히 구동독 좌파의 슈퍼스타 기지를 낙마시킨 일은 최대의 성과다.
그런데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이 상황에 한국의 현실을 대입시키는 순간 우리는 적잖은 혼란을 감내해야 한다.
훈징어가 1990∼99년,근 10년 동안 독일의 대다수 정당에 ‘투자’한 총액이 공식적으로 약 43만 마르크(본인의 장부에는 약 105만 마르크),요즘 우리 돈으로 따지자면 많아야 2억5000만원(본인 주장은 약 5억여원)이다. 말하자면 강남 30평형대 아파트 전세가(또는 한 채값)에 불과하다. 마일리지 스캔들도 도무지,이것이 연방 의원이,그리고 잘나가는 ‘좌파’ 정치인이 사임해야 할 ‘건수’가 되는지 우리네 상식으로는 연방 당혹스러울 따름이다.
독일 정치가 ‘좀스러운’ 탓일까 아니면,한국 정치가 ‘통이 큰’ 탓일까. 우리네 같으면 마일리지 정도는 문제 삼는 쪽이 오히려 우습게 보일 테고,훈징어의 기부금 10년 총액은 우리네 ‘정치시장’에서는 잘 해야 한두 건 가격밖에 되지 않을 텐데 말이다.
그럼에도 한국의 각종 게이트와 견주어 ‘좀스러운’ 독일 정치가 어쩔 수 없이 커 보이는 것은 왜일까.<베를린에서>
이해영 (한신대교수·독일 마부르크대 방문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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