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덕수 타이젬 바둑사업총괄 상무

동양생명배를 발표할 때만 해도 한국기원의 공인을 받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 대회는 타이젬 회원만을 대상으로 하는 온라인 대회이며, 실명이 아닌 아이디로 대국하므로 설사 프로기사가 나온다 하더라도 실명으로 가입하지 않은 이상 프로기사인지 아닌지 알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익명의 아이디로 온라인대회를 열었던 e-게임넷이나 대쉬바둑의 전례를 보더라도 한국기원의 공인을 받지 않았다. 그 대회에는 다수의 프로기사들이 참가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며 차이가 있다면 상금액의 차이일 뿐이다. 그러나 한국기원에서는 7월말 타이젬이 대회발표를 하자마자 한국기원의 공인을 받지 않은 대회에 참가하는 프로에게는 제재를 가한다는 내용을 포함한 강도 높은 공문을 보내왔다.

나는 타이젬의 협상대표로 8월초부터 몇차례 한국기원을 방문했고, 유건재 사무총장을 만났다.
온라인바둑의 활성화와 발전을 위해 대승적인 차원에서 이 대회를 공인(프로가 참가해도 좋다는 허락)해 줄 것을 요청했다.

프로기사들의 대회가 아닌 타이젬 회원을 대상으로 한 아이디대회임에도 애초의 기획과는 달리 타이젬이 한국기원의 공인을 얻고자
한 것은 동양생명배 대회발표 이후 사이트에 올라오는 네티즌의 의견에 귀 기울였기 때문이었다. 대회가 아이디로 진행하는 만큼
일부 프로기사들이 참가할 가능성이 있고 한국기원이 강력 제재한다는 방침을 밝힌 상황에서 혹시 있을지도 모를 불상사를 방치하는
건 타이젬이 너무 무책임한 자세 아니냐는 의견을 겸허히 받아들인 것이다.

주관료 및 몇가지 문제에 대한 토론이 있은 후 한국기원 사무총장은 흔쾌하게 허락했다. 총장은 바둑계 발전을 위해 온라인
바둑이 번성해야 한다는 대전제를 강조했으며 인터넷 바둑회사가 성공해야 바둑계도 좋아진다는 점에서도 의견이 일치했다. 곧 약정을
맺기로 하고, 합의사실을 타이젬에 뉴스로 올려도 좋다는 양해를 받았다.

이에 따라 타이젬 사이트에 한국기원이 동양생명배를 공인하기로 했다는 기사가 올라갔다.
☞(타이젬
바둑소식 8월20일자 기사 참조)

약정서를 맺지는 않았지만 구두합의가 분명히 이뤄졌음은 한국기원 상임이사회에서도 확인된 사항이다

타이젬의 등기이사이자 한국기원의 상임이사인 조훈현 9단도 "8월에 한국기원 상임이사회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유건재
사무총장이 동양생명배 타이젬바둑오픈에 대해서 타이젬 측과 대략적인 조건에 합의했다고 보고했다."고 얘기했다.

동양생명배는 타이젬 회원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대회이다

9월 8일 약정을 맺기 위해 다시 한국기원을 방문했다. 대회에 대한 다른 모든 사안에는 양쪽이 합의를 본 상황이었고
다만 주관료 금액에 대해서만 약간 조율이 덜된 관계로 애당초 9월 초 맺기로 한 약정서가 미뤄진 상황인지라 별 장애는 없다고
생각했다.(이미 8월말 유성에서 열린 삼성화재배에 참석한 유건재 총장과 서울에 가면 서둘러 약정을 맺기로 얘기를 나눈 바도
있었다.)

9월 14일이 동양생명배 신청마감일이므로 10일부터 시작되는 추석연휴를 감안한다면 9일에는
약정을 맺고 싶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한국기원에서는 새로운 숙제를 타이젬에 던져 주었다.

-프로기사는 타이젬 9단이 아니더라도 동양생명배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을 달라는….



인터넷대회의 공정성을 담보하는 조건도 아니고 주관료에 대한 이견도 아닌 이 새로운 요구는 한국기원 소속 프로기사에게 바로
타이젬 9단 자격을 주어 대회 예선에 직행하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프로에 입단한 실력이면 타이젬 9단을 주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프로의 존재와 가치를 십분
인정한다. 그러나 아무리 작은 대회라 할지라도 나름대로 발표한 요강이 있다. 동양생명배는 타이젬 회원에 한해, 자력으로 타이젬
9단에 오른 회원에게 참가자격을 주는 대회라고 몇달 전 밝혔기에 접수마감이 임박한 시점에서 대회요강을 바꾸는 것은 무리다.




프로기사가 많이 참가하는 것은 우리로서도 즐거운 일이지만 이미 자력으로 9단에 올라 참가신청을 한 회원들에게 피해를 줄 순
없는 일 아닌가.

대회에 임박해 대회요강 자체를 뒤흔들 순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이번 대회는 그냥 치르고, 다음 대회 때부터는 한국기원과
이런 문제를 잘 협의한 후에 준비하도록 하겠다. 그러니 타이젬이 정열을 쏟아 개최하는 이 대회가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
이렇게 타이젬 임원진의 의견이 모아졌다.

9월 9일 12시, 나는 다시 한국기원을 방문하여 타이젬의 이러한 처지와 뜻을 전달했다. 사무총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뜻을 잘 알겠다. 한국기원은 동양생명배가 잘 치러지고 온라인 바둑회사로서 타이젬이 성공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프로기사가
마음대로 참가할 수 없다면 이 대회를 공인해 줄 수는 없다."

그리고 추석연휴가 지난 9월 15일 저녁 한국기원 홈페이지에 총장 명의로 동양생명배를 불허한다는 공지가 올랐다. 이것이 한국기원과
타이젬의 지난 한달여 간의 협상과정이다.

동양생명배 타이젬바둑오픈은 처음부터 고지했듯이, 지금까지 그 뼈대가 바뀐 것이 하나도 없다. 아이디대회로 진행할 것이며,
익명대회를 약속한 대로 끝까지 신분을 밝히지 않을 것이다. 오로지 타이젬이 원하는 것은 멋진 승부이다. 그 명승부를 회원들게
제공하기 위해 동양생명배를 만든 것이다. 동양생명배는 프로냐 아마냐의 이분법적 잣대를 들이미는 대회가 아니라 타이젬 회원의
대회임을 다시한번 강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