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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슨 설움 그리많아 홀로 고개 숙이고 계십니까 |
| 글쓴이 메신저 조회 136 |
작성일 2004-02-13 오전 8:3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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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미꽃
꽃 치고는 첫 인상이 좀 그렇다.
수상쩍다는 말이다.
따뜻한 봄볕인데도 털모자를 쓴 것처럼 보이는 것이 그렇고
모든 봄꽃들이 태양을 향해 가슴을 열고 있을 때도
홀로 고개를 숙인 채 묵묵히 서 있는 모습이 또한 그렇다.
건드리기만 해도 금새 눈물이 주르르 흐를 것만 같다.
무덤가의 잔디밭에서 자라서 더 그런 인상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런 겉모습과는 달리 속은 아주 빨갛다.
빨갛다 못해 검붉은 빛이다. 흑장미 같다고나 할까.
게다가 단단하게 뭉쳐 있는 샛노란 꽃밥들
어려서 처음 할미꽃 속을 들여다봤을 때
그 털모자 속에 그렇게 뜨겁게 불타는 얼굴이
숨겨져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무슨 비밀을 훔쳐본 기분이었다.
이 세상에 한과 정열을 한데 섞어 놓은 표정이 있다면
할미꽃의 표정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닐가 하고 생각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꽃 전설의 9할이
젊고 예쁜 여인이 억울하게 죽어서 다시 태어난 것으로 되어 있는데
다만 이 할미꽃만이 예외라는 사실이다.
예쁜 여인의 죽은 영혼으로 보기에는
꽃이 주는 이미지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었던 것일까?
이 꽃은 원래 꽃잎이 없다. 꽃잎 같은것은 실은 꽃받침이다.
이 꽃받침이 떨어지면 꽃대에는 씨가 앉아 공처럼
둥글게 뭉쳐지면서 길고 흰 씨가 바람에 나부끼는데
이것이 마치 백발을 흩날리는 노인과 같이 보이기도 한다.
백두옹(白頭翁) 이란 할미꽃의 중국 이름이다.
꽃을 통하여 사회를 풍자한 전통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디에나 있다.
조선조 광해군 때 임제가 지은 화사라는 한문소설 같은 것이 그렇고
아시아가 원산지인 이 꽃이 이탈리아에서는 사탑이 있는
피사에만 피는 이유가 될 듯도 싶은 한 전설에 의하면
십자군에 참가했던 피사의 움베르토 사교가 예수의 못박힌
현장의 흙을 옮겨다 놓은 땅에서 피기 시작했다고도 하며
이 꽃물로 부활절 달걀을 염색 하기도 하는 연유로 인하여
부활절 꽃으로도 불린다고 한다.
이 꽃의 생김새 자체가 좀 으스스한 것처럼
꽃과 뿌리에는 맹독에 가까운 성질의 독이 있다.
해서 소나 염소 같은 가축들도 본능적으로 피할 뿐만 아니라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이 꽃을 꺽거나 만지는 것도 금했던 것이었다.
뿌리를 찧은 즙은 재래식 화장실에 생기는 벌레를 없애는 살충제로도 쓰이지만
이 뿌리는 한방에서 설사를 멈추게 하는 지사제로도 쓰이고
이질을 고치는 데에도 요긴하게 쓰인다.
독도 잘 쓰면 약이 되는 이치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것이다.
우리의 몸이 중독 되었을때 치료하는 방법의 한 가지로
서로 상극인 또다른 맹독을 투여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할미꽃은 독성이 강할 뿐만 아니라 뿌리가 곧고 매우 깊게 뻗는 특징이 있다.
때문에 옮겨 심으면 대개 제대로 살지 못한다.
요새 우리의 산야에 나는 야생초를 아끼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그때문이리라. 욕심껏 파다가 폼나는 화분에 옮겨 심기도 하는 것을 나는 보았다.
덕분에 우리는 지난 1970년대에 제주도와 홍도의 풍란이 이런
잘못된 사랑으로 해서 요절이 나고 말았던 아픈 기억이 있는 것이다.
수입 화훼에 식상했기 때문이기도,
또 어려서 자랄때 친숙했던 꽃과 자연에 대한 향수 때문이기도 하리라.
자연의 일부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인하여 생겨나는 행위는
어떻든 환영할만한 현상임에 틀림 없긴 하지만
야생초를 마구 파다 심는 것의 진실이 과연 진정한 자연에의 사랑인지
한 자리에서 뿌리가 삭도록 살다 스러져 가더라도
생겨난 그 자리에 그대로 살도록 놓아 두는것이 진짜 사랑인지는
이 글을 읽는 독자와 메신저가 함께 고민해봄직한 문제라고 생각된다.
벌써부터 금강초롱이니 금낭화니 하는 꽃들이 멸절될 위기라는 소리가 높았다.
오셀로는 데스데모나를 죽이면서 '사랑하기 때문' 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남의 손에 넘어갈 것을 두려워한 질투 때문이지
정작 그녀의 있는 그대로의 존재가치를 참 사랑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야생초가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자연상태 그대로일 때이다.
설혹 잘 살린다고 해도 화분이나 좁은 마당에 심은 할미꽃은 이미 할미꽃이 아니다.
거기에는 생기가 없고 신선한 야취가 없기 때문일것이다.
그것은 새장에 갇힌 종달새거나 감금된 학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할미꽃이 자라야할 자리는 할미꽃 자신이 선택하도록
놓아두는 것이 우리의 야생초에 대한 참사랑이 아닐까 생각하며 필을 접는다.
원저: 손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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