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침번 핸드폰이 울린다.

눈이 온다고 들뜬 목소리로 소식을 전한다.

참으로 우스운 친구다.

마흔을 넘은 우리에게 눈이 무슨 감흥을 준다고...

하지만 철없는 내겐 눈이 예사롭지 않다.

아직도 눈이 오면 가슴 한켠에 설레임이 요동을 치고

눈밭을 뛰어다니는 똥개마냥 밖으로 튀어 나가고 싶다.

내맘을 아는지는 모르지만

야밤에 전화해서 불러내는 나이값 못하는 친구가 있어서 좋다.

달려온 친구는 칼치찌게를 먹으러 봉덕동까지 가자고 채근한다.

차위에 소복히 쌓인 눈을 뭉쳐 개구장이들처럼 눈싸움을 하고 난뒤

들뜬 이마음은 칼치찌게에 밥대신 소주로 추스르기로 뜻을 모은다.

소주 4병을 나눠 마시지만 서로 말을 아낀다.

지친 오늘의 하소연을 재털이에 수북히 쌓이는 담배 꽁초로 늘어놓고,

힘든 내일의 두려움을 목구멍으로 넘기는 알콜기운으로 숨긴다.

친구사이엔 어색한 침묵은 없다.

말을 하지 않아서 귀로 들어오는 소리는 없지만

친구의 넋두리는 가슴으로 느껴지고 스며든다.

불면의 밤은 짙어간다.

노래를 부르고 싶단다.

분냄새가 그립단다.

이쁜 아가씨들이 지켜보는 막힌 방에서 주착없이 친구가 오열한다.

손짓으로 아가씨들을 내보내고 한참동안 내가슴에 안겨서 울도록 내버려둔다.

강한 놈이었는데... 밝은 녀석이었는데...

흐틀어진 모습을 스스럼없이 보이는 친구놈이 정겹다.

제목도 모르는 노래를 멜로디만 듣고 어김없이 찾아내는 아가씨들의 도움으로

친구는 가슴에 맺힌 한을 노래로 토해낸다.

폭탄주를 마셔도 취할 수 없는 밤은 깊어간다.

굳은 악수와 가벼운 포옹을 나누고 서로 집으로 향한다.

고개만 쳐들면 볼 수 있는 하늘이 왠지 낯설고

이루어 놓은 것없이 숨가쁘게 살아온 시간들이 아쉽다.

술취한 몸과 깨어있는 정신이 서로 다툰다.

힘든 하루가 지나간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기다리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내일은 오늘과 다를거란 바램은 버릴 수 없다.

친구야,,,

너와 함께 하는 내일이라면 두렵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