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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이야기(94) = 막현호은 막현호미 |
| 글쓴이 핸디산맥 조회 69 |
작성일 2004-02-05 오후 1:27: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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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현호은 막현호미 *
‘막현호은 막현호미’(莫見乎隱 莫顯乎微)란 옛말이 있습니다. 중용(中庸) 1장에 나오는 말로, ‘감추는 것보다 더 잘 드러내는 수 없고, 숨는 것보다 더 잘 드러나는 수 없다’는 뜻입니다. 감추고 숨는 것보다 더 잘 드러나는 것이 없다니, 낯설게 들립니다. 자신을 알리기 위해 많은 공을 들이는 세상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쉴새없이 쏟아져 나오는 광고가 삶의 질을 지배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너나없이 어떻게 하면 자신의 존재를 효과적으로 알릴까 고민하는 세상입니다. 남자들의 성형수술도 드물지 않다고 합니다. 이런 세상에 감추고 숨기는 것이 자신을 가장 잘 드러내는 일이라니, 뚱딴지같은 괴설로 들립니다. 한껏 너그럽게 본다면 현실감이 없는, 무명하고 빈궁한 자의 게으른 자기 변명처럼 들릴 뿐입니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면 옛말이 맞겠다 싶기도 합니다. 자신의 존재나 남모르게 한 선행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보다는 오히려 감추고 숨기려 할 때 더욱 진한 향기로 오래 가는 것을 드물지만 주변에서 확인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난과 영지가 있는 곳엔 저절로 길이 난다’는 말은 듣기만 좋은 말만은 아닐 것입니다.
언뜻 ‘기자불립 과자불행’(企者不立 跨者不行)이란 말이 떠오릅니다. 노자(老子)에 나오는 말로, ‘까치발로는 오래 서지 못하고, 가랑이를 한껏 벌려 성큼성큼 걷는 걸음으로는 멀리 가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일부러 자기 자신을 드러내려 하는 일이 한 때는 통할지 몰라도 오래가지 못함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 한 때를 위해 발에 쥐가 나는 줄도 모르고 발뒤꿈치를 들고, 병이 나는 줄도 모르고 무리한 걸음을 죽자살자 옮기기도 합니다.
‘포곡은사’(布穀隱士)라는 말도 눈에 띕니다. 겉으로는 은둔을 표방하면서도 끊임없이 자신의 거처를 알리는 거짓 은둔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포곡은사를 우리말로는 ‘뻐꾸기 은둔거사’라 한다고 합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일정한 간격으로 울어대어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뻐꾸기처럼, 숨어 삽네 하면서도 끊임없이 자신의 거처를 알리는 어정잡이 은둔자를 말하는 것이지요. 세속적인 가치와 욕심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산다고 자랑하면서도 행여 남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을까 연신 자신의 존재를 알려대는 삶이 있습니다. 남이 알아주건 알아주지 않건 묵묵히 소중한 삶을 살던 이들이 이내 재물에 눈이 멀어 몰락의 길을 가는 것을 이따금씩 보게 됩니다.
그러고 보면 떠버리 광고장이를 지나, 어정잡이 포곡은사를 지나, 말없이 생명을 담지한 자로 살아가기란 얼마나 아득한 일인지요. 각각의 경계가 애매하고 까마득하여 분간하기조차 어려운 터에 그 선을 분명하게 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요. 제 풀에 주저앉아 앉은 곳이 한평생의 삶이 되고 세상이 되는, 우리네 가볍고 가여운 삶이 안타깝습니다. 참된 가치가 흔들리는 이 어지러운 세상에 ‘막현호은 막현호미’란 옛말 하나를 마음에 새깁니다.
- 한희철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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