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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이야기(88) = 더불어 삶을 시작하는 설날 |
| 글쓴이 핸디산맥 조회 64 |
작성일 2004-01-19 오후 5:02: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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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불어 삶을 시작하는 설날 *
어린 시절의 설날은 기다림이었다. 특히 세뱃돈을 받을 수 있어 몇 달 전부터 설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섣달 그믐밤이면 어디 가서 세배를 할 것인가 궁리를 하고, 얼마나 세뱃돈을 받을 수 있을까 셈하다 잠을 설치던 추억은 지금도 가슴 설레게 한다. 설날이면 세뱃돈을 챙길 요량으로 쌓인 눈을 밟으며 귀를 에는 칼바람도 아랑곳 하지 않은 채 친인척 집을 순회하였고, 세뱃돈을 헤아리며 이 돈으로 무엇을 살 것인가로 가슴이 부풀었다. 그러나 새 학기를 위해 세뱃돈을 맡기라는 어머니의 엄명이 떨어지고, 꼼짝 없이 다 빼앗긴 뒤 야속하고 원통해 골이 나서 잠들던 추억도 너무나 그립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아이들에게 설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설렘이 없어 보인다. 물질의 풍요가 설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즐거움을 앗아가 버린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만이 아니라 어른들 역시 설날의 참 의미를 잃어버린 듯하다. 명절마다 내력과 의미가 있을진대 오늘날 본래의 의미는 퇴색하고 형식만이 남아 있다.
설날의 참 의미는 무엇인가? 설은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살(歲)’에서 유래한 것으로 시간적으로 이전과 이후가 달라진다는 구분이나 경계를 뜻한다. 또한 ‘서다’에서 나온 말로 보면, 새로 들어섬, 즉 시작의 의미를 가진다. 특히 과거형인 ‘선날’이라고 하지 않고 미래형인 ‘설날’이라고 표현한 것은 ‘설날’이 미래 1년의 생활을 설계하여 세우고 다짐하는 ‘미래를 세우는 날’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설은 한해의 시작이기에 새해를 새롭고 깨끗하게 맞이하기 위해 집 안팎 청소와 빚 청산은 필수였다. 광이나 뒤란까지 집안 청소는 물론, 빌린 돈을 갚고, 낫이나 괭이 등 빌려 온 농기구를 챙겨 되돌려 주었고 마음 상한 이웃과 화해함으로써 마음 빚을 갚았다.
한편 설날부터 시작하여 정월 대보름까지는 우리 선조들에게 자원봉사 주간이었고 이웃돕기 주간이었다. 돈 많은 이들은 정월 대보름 전에 다리가 없어 다니기 불편한 곳에 다리를 놓는 습속이 있었는데 이를 월천공덕이라 하였다. 또한 거지 움막 앞에 밥 한 솥 지어 갖다 놓는 적선공덕, 헐벗은 사람에게 옷을 주는 구난공덕, 행려병자가 누워 있는 원(院) 문전에 약탕 끓여 놓고 오는 활인공덕 등이 설날부터 시작되었고, 대보름날이면 걸립패들이 나서 양식과 옷가지를 모아 가난한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어 춘궁기에 대비하게 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설날은 가족과 조상의 소중함과 정신적 유대를 다지고, 동시에 이기적인 생활을 떠나서 경쟁하고 다투던 이웃들과 화해하고 더불어 사는 삶으로 전환하는 출발점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들은 정월 초하루부터 무엇을 시작하기로 다짐하고 있는가? 더불어 사는 삶의 길로 전환하기보다 더 많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각오를 다지고 기원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 볼 일이다.
- 이성록 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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