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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오는 날의 추억하나. | 나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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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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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오는 날의 추억하나.
2019-03-24 오후 2:57 조회 766추천 10   프린트스크랩




어느 날 새벽

대화창에서 예전 기원의 독립군이야기가 잠시 오갔는데

아날로그적 추억이 해가 저물어가는 시점에 반추되면서 괜한 감흥이 젖어왔다

 

다이아몬드 석가탄 난로 알아요. 오가론 오줌통 알아요. 짬뽕 먹어 봤어요.”

 

대화를 하면서 내가 그런 적이 있었나 싶다

하루 한번 먹은 것 같은 짬뽕이 군대에서 먹었던 라면과 상충되는 기분과

바둑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어리석은 추억이 새삼스럽다

 

인생은 어느 시점에서 무엇엔가 미치게 되어있다

어떻게 얼마나 미치는가에 따라 결과가 다르지만 무엇인가는 편견일 뿐이다

실패자들의 이유는 진정 미치지 않았다는 것과 미쳐야 할 것에 대한 오해고

더 안타까운 것은 결과를 다른 것에 비유하며 합리화 하는 것이며

위로가 될 수도 없고 장인이 될 그릇이 아님을 애써 변명하는 소리일 뿐이다.

 

신문지 덮고 자기도 했고 밤샘으로 목탁 두드리듯 똑딱거리다 사우나에 들렀다

돼지국밥 먹고 뻔지르 하게 다시 기원에 올라가 서로 사장소리하며 인사 했었다

해지기전에는 모두 바둑으로 시작했고 계란 노른자 하나 띄워주는 모닝커피와

부스스하게 올라 온 마담과의 아침 수담.

 

고수들의 바둑에 장외 배팅 하고 기다리기 지겨운 사람들은 삼삼오오 개인전에

몇몇은 연기대국 그리고 원장이 주선한 리그전으로 시간을 때우다

해가지면 술꾼들이 나가고 독립군들의 시간이 도래한다.

 

하이로 마작 포카 훌라.....

 

뻔한 사람들이라 작 판과 접대 판이 없는 살벌한 실전에서도 나름의 인간관계는 있다

하지만 가끔은 누군가의 욕심으로 험악한 경우가 생기기도 했다

아주 절박한 시점이 있고 아주 급한 돈일 때 사람은 이성을 잃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서로가 숙주였다

누가 미워 왕따를 시키다보면 자칫 게임이 성사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가장 아쉬운 건 돈줄이 막힌다는 것이다

주머니가 넉넉한 놈을 겨냥하는데 그놈이 보통은 밉상이고 그놈도 그것을 안다.

 

 

죽어라 안 되는 날 모두가 떠난 기원의 적막감이 떠오른다.
외상으로 사온 소주와 쥐포를 난로 위에 올려놓고 몇 개비 적선 받은 담배를 보며

아껴야 한다는 생각에 재떨이 선별작업을 미리 해둔다

예나 지금이나 담배는 성역인가 왜 외상이 안 될까.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들은 하나 같이 달변들이고 모르는 게 없다

유머와 위트에 얼굴들도 범상들이다

한때 잘나갔던 사람들이었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또 잘나갈 것이라는 게 공통어고

지금은 잠시 쉬는 중에 시간 보내러 온다는 게 공통변이었다.

리그에서 우승하여 3만원에 내 돈 2만원을 보태면 단골구이 집 셔트를 내릴 수 있었다

(짜장면 1000원 담배 1000원 할 때니 아마 현물 가치로 20~30만 원 정도)

늙은 마담의 코맹맹이 소리와 조금 덜 늙은 년의 교태를 받으며 잠시 영웅호걸이 되다가

오버래핑으로 결국 시계 풀고 나오지만.

 

건전하지 않았지만 그것도 시대적 낭만으로 다가온다.

요즘은 그런 술집이 어디 있는가.

그땐 기원 앞 포차에서 피조개가 단골 메뉴였는데 이젠 오염으로 날것으로 못 먹는다.

벌건 속살에 마늘과 참기름 깨소금을 뿌려 소주 한잔에 후루룩 삼키면 그 알싸한 맛이란.

그 옆에 꼽사리 끼어 겹겹이 입고 목과 얼굴을 두르고 온몸을 완전무장한 채

사과상자 테이블 펼쳐 놓고 작은 연탄 화로에 어묵과 개피 담배 잔술을 팔던 할머니

진솔과 성실의 논리를 떠나 삶의 처절함이 느껴졌다

자본이 딸려 미리주문 생산하는 닭 꼬치는 할머니의 스페셜 메뉴였다.

 

오늘 같이 봄비가 내리는 날

할머니는 기원으로 올라오셨지 손수 하셨다는 김밥과 단골들의 담배와 소주

그리고 주문생산(?) 하던 닭 꼬치까지 듬뿍 담은 소쿠리를 펼쳐놓으셨다

한편으론 논네의 잔머리라 거부감도 없잖아 있었지만

모두 아도(떨이)를 외치며 잔치를 벌렸다.

마음은 있지만 몸은 따로 노는 사람들의 엄니 같은 분에 대한 측은지심이랄까.

지금 생각하니 우리가 노는 모습이 돈벌이가 되어 흐뭇했는지

정말 자식 같은 사람들이 도와줘서 아니면 그 이상의 애틋함이었을지 모를 미소가 떠오른다.

 

벌써 40년이 흘렀다

이렇게 처연하게 내리는 빗속에 수많은 사람들이 차원을 넘나들 듯 스쳐 가는데

문득 그 할머니가 떠오른 건 내 작은 성의에 감사하는 엄니 얼굴에서 죄스러움과

살아야 되는 이유에 반하는 현실 그것에서 도피하고 싶은 연약함이

가식으로도 결과를 만드는 것과 진심으로도 만들 수 없는 결과에 대한 한계를 보며

오늘도 오늘만 무너지자고 나를 위로하고 내일부터를 다짐하는 술잔은

채워도 채워도 허공을 가르고 내려앉은 빈잔의 공허함.

 

세월은 가고 마음은 소금쟁이처럼 늘 그 자리서 맴돈다.

요강이든 단지든 혹 바다 일지라도

소금쟁이는 그렇게 막히면 돌고 돌 뿐이다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세파가 막으니 그래서 또 도는 것이다

뚫지도 못하고 뛰어 넘지도 못하고.

 

애증의 만남들

이제 다시 만날 수 없겠지만 우리 언제 다시 만나면 그 할머니 매상 좀 올려주고

2차로 구이 집 셔트 내리고 밤새 마시다 동틀 무렵 영웅처럼 손 흔들고 헤어집시다.

 

 

 

┃꼬릿글 쓰기
짜베 |  2019-03-25 오전 11:56:5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추억은 영원한 것이지요.
선달님의 이야기가 구수하게 마음에 스며듭니다.  
팔공선달 추억은 그것을 넘어서고 바라 볼 때 아름다운데 그냥 지나간 것에 불과하다면 추억이 아니겠지요. ㅇㅇ
리버리어 |  2019-03-27 오전 8:23:3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색이 하얗게 바랜 한장의 추억을 들춰 내셨군요. 그 세월 속으로 다시 들어간다면 결코 행복할 수없는 순간이겠지만...지금 우리는 그 초라했던 그림에 그리움이라는 마법의 채색을 하여 바라보고 있는겁니다.
봄비...오랜 여정에 지친 사람들의 허전한 마음에 내려앉는 슬픔입니다.  
팔공선달 그들이 살아 있다면 한번 딱 하루만 보고 싶네요
단골기원 원장님은 공원에서 산책하는 걸 봤습니다
아마 나이가 80은 넘었를 듯 아니 거의 90가까이겠네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간이지만 그 시간의 연장선에서 위로 받고 있으니 ㅇㅇ
글에는 안 올렸지만 당시 기원 강 5급이던 나를 6점 접던 친구가
자살하던 날도 봄비가 추적추적 내렸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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