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들은 가끔 어처구니없는 수를 깜빡하는 경우가 있다. 일명 프로의 맹점. 18급이 보는 수를 프로가 못 본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까?
바둑을 업으로 삼는 프로들은 일반적인 형태가 어느 정도 기계적으로 머릿속에 입력되어 있다. 마치 수학 공식처럼. 그런데 이런 공식이 무시되는 경우, 프로들도 실수를 범하게 된다.



제12회 LG배 세계기왕전 16강전
백 : 박정상 9단(한국)
흑 : 씨에허 6단(한국)
장소 : 서울 서머셋 팰리스 호텔
날짜 : 2007. 6. 6
결과 : 262수 끝, 백 불계승



장면 (좌변이 승부처)
바야흐로 종반이다. 좌변 백△와 흑▲의 전투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이곳만 처리하면 본격적인 끝내기로 들어갈 태세다. 문제는 이곳 전투가 어떻게 일단락 되느냐에 있다. 좌변에 이런 모양이 나오기 전만 하더라도 형세는 중국의 씨에허 6단이 좋았다. 지금은 좌변 전투가 승부처. 둘 다 이곳을 포기할 수 없는 처지인 셈이다. 흑을 든 씨에허 6단이 둘 차례.











실전진행1 (흑3은 맥점이면서 모험)
장면이 나오기까지 과정을 알아본 그림이다. 흑3에 붙인 수는 모양상 멋진 맥점. 아이러니컬하게도 흑3이 결과적으로 이 바둑을 역전으로 빠지게 한 장본인이었다. 흑19까지 수를 내긴 했지만, 흑도 이곳 전투에서 지면 상당히 보태준 꼴이다. 그런 의미에서 씨에허 6단으로서는 흑3으로 붙여 수를 내며 모험할 이유가 없었다. 평범하게 끝내기를 했으면 이기기가 쉬웠다. 멋을 부리려다가 백한테 기회를 준 셈이다.








실전진행2 (정수는 패가 아니다)
좌변이 제일 시급하므로 씨에허 6단은 흑1로 늘어 당장 수상전에 들어간다. 백2로 단수로 몬 이상 이곳은 패다. 흑이 먼저 따내는 이 패에 대해 두 선수는 자연스러운 결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헌데 둘 다 이곳에서 엄청난 착각이 있었다. 당연한 것으로 보이는 백2가 실은 큰 실수였다. 과연 어떤 수가 있길래….












참고도1 (백2는 곤란)
정수를 알아보기 전에 기력이 약한 분들을 위해 준비한 그림이다. 흑1로 뻗을 때 백2에 막으면 곤란하다. 흑3으로 집 모양을 만들면 이제 패도 아니기 때문. 뒤늦게 백4로 몰아봐야 흑5면 백 여섯점은 앉아서 그대로 죽고 만다. 한수 부족!














참고도2 (기발한 수, 백2)
흑1에는 백2가 기가 막히는 묘수였다. 정말 18급은 우연히 둘 수 있고, 프로는 깜빡할 수 있는 희한한 곳에 정수가 숨어있었던 것. 흑은 3에 잇는 한수다. 그러면 백4로 바깥에서 조이면 백이 한수 빠르다. A, B가 흑한테 모두 자충이기 때문. 이처럼 그대로 죽는다면 바둑도 여기서 끝장이다. 박정상 9단은 '5급도 보는 이런 수(백2)를 못 봤다'며 혀를 끌끌 찼다. 허나 실전에서 이 수(백2)를 쉽게 찾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참고도3 (아쉬움 남긴 승리)
따라서 씨에허 6단도 흑1로 웅크리는 패를 만드는 게 정수였다. 이것은 실전과 반대로 백이 먼저 따내는 패다. 씨에허도 박정상도 미처 수를 보지 못한 탓에 잘못 두고도 패가 났다. 다행히 박정상 9단이 팻감이 많은 덕분에 이 바둑을 이길 수 있었다. 다만 씨에허의 실수를 제대로 응징했다면 쉽게 끝낼 승부였다는 아쉬움은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