쎈돌의 기세를 누가 막을 소냐? 중국의 후야오위 8단이 준결승에 오른 세명의 한국 기사 중 하필이면 이세돌을 만난 게 불행이라면 불행.

이세돌 9단은 후야오위 8단과의 준결승전에서 ‘대마사냥이란 이런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기발한 묘수 한방으로 백 대마를 메다꽂았다. 그 과정을 느린 화면으로 함께 즐겨보시라.



제12회 LG배 세계기왕전 준결승

백: 후야오위 8단(중국)
흑: 이세돌 9단(한국)
장소: 일본기원 6층
날짜: 2007년 11월 14일
결과: 193수 끝, 흑불계승



장면 (대마불사?))
이세돌 9단은 흑1로 좌상귀 백돌을 노골적으로 잡으러갔다. 흑7까지 봉쇄를 당하고보니 과연 이 백 대마가 살 수 있을 지 의문스럽다.

국후 프로 기사들도 이 대목에서 거의 죽어 있는 것 같다고 설명할 정도다. 하지만 대국 당시엔 당사자인 후야오위 8단을 비롯해 관전하던 많은 프로기사들이 설마 그냥 죽기야 하겠냐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세돌의 생각은 달랐다.








실전진행1 (활로는 보이지 않고)
심각해진 사태를 당한 후야오위 8단은 활로를 찾기 위해 장고에 장고를 거듭한다. 그대로 죽으면 바둑도 끝장이니 남은 시간을 몽땅 쏟아 붇는 한이 있더라도 찾아내야 할 터.

허나 수순이 진행될수록 숨통은 조금씩 더 조여지고 있었으니, 이 무렵 후야오위의 등줄기엔 땀방울이 적잖게 흘러내고 있지 않았을까? 흑10에 숨이 턱 막힌다.








참고도1 (수상전 불가)
백1, 3으로 몰아 수상전을 벌이기는 어렵다. 흑이 A에 이어주지 않는 탓이다. 백이 끝까지 수상전을 고집하려면 7에 잇고 싸워야 하는데, 흑8로 바깥쪽이 끊겨 불가항력이지 않은가.













실전진행2 (강수 흑4)
후야오위 8단이 이처럼 일방적으로 쫒기는 불리한 처지를 깨달았지만 이미 때는 늦은 뒤였다. 다만 마지막 희망이 하나 있긴 있었다.

귀의 삶을 강요하는 동안 변쪽 맛을 염두에 둔 것. 검토실도 그런 맛을 염려하고 있는 찰나에 이세돌은 뜻밖에 흑4로 잇는 놀라운 강수를 반상에 떨어뜨렸다. 이것으로 끝이란 얘긴가?








참고도2 (흑1은 곤란)
<실전진행2>에 이어 흑은 귀를 살려야 한다. 예를 들어 흑1. 그 틈에 백이 우변에서 수를 낼 수 있다는 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가령 백2 미끼를 흑이 3, 5로 받아먹으면 백은 쉽게 살 수 있다. 수순에서 보듯 백4, 6이 선수로 듣는 관계로 변에서 한집을 보탤 수 있는 것.










참고도3 (패 발생)
백2엔 흑3이 그나마 정수라 하겠다. 허나 이 경우에도 여전히 백4로 붙이는 맛이 있다. 흑5로 막을 수밖에 없을 때 백6이면 백이 그냥 죽을 일은 없다. 흑A로 몰아가야 하는 상황이니 패가 아닌가? 이 패는 흑도 부담이 커 결코 즐겁지 않은 그림이다.












참고도4 (못 잡는다)
흑1은 앞서 보여준 것보다 귀의 삶을 능률적으로 보강하는 수. 하지만 이것으로도 백을 깔끔하게 잡지는 못한다. 여전히 백2로 끼우는 맛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

백6으로 찝어 응수를 묻는 수단이 있다. 귀의 삶을 노리는 백10이 언제든지 백한테 선수로 듣고 있다는 점이 흑에게는 불리한 점이다. 결국 흑11로 살아가는 틈을 타 백은 12로 완생.








참고도5 (기발한 묘수 흑1)
묘수풀이 책에서나 보던 맥점이 숨어 있었다. 일선에 한칸뛰는 흑1이 그것. 이세돌 9단은 바로 이 수를 준비해 두었던 것이다. 이것으로 백은 일거에 죽고 말았다.

백2로 끼우는 수가 형태상 맥점이지만 지금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백4, 8로 끊는 수는 흑9로 모는 축에 의해 실패. 결국 흑1은 귀의 삶과 백의 한집을 없애는 일석이조의 묘수였던 것이다.








실전진행3 (이세돌의 강미)
후야오위 8단도 이 수를 미처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백2 이하 ‘고기값’이라도 건지려고 안간힘을 써 봤지만 이미 해는 기울대로 기울어져 있었다.

이후 수순은 후야오위 8단이 돌을 던지기 전에 아쉬움을 달래는 시간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프로기사들도 쉽게 찾아내지 못한 흑1은 이세돌의 강미를 다시한번 느끼게 해준 수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