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野夜哭.

멀리 돌아 왔다. 가는 길은 쓸쓸했고 오는 길은 허전했다. 가을이 깊어가는 날 와 겨울이 가고 꽃이 피더니 장우(長雨) 깊은 뒤로 다시 겨울이 와 중심으로  가고있다.

아무도 오지 찾아 오지 않았다. 올 사람 없기에 문밖을 나갈 이유도 없었다. 낯이면 잠을 자고 밤이면 위항인들의 시를 읽었다. 그리고 점책을 보았다.

주역에 정괘에 정전지(鼎顚趾)가 있다. 그륵이 넘어져 깨졌다는 뜻인데 내가 좋아 하는 말이다.

고대인들은 종명정식(鐘瞑鼎食)을 삶의 덕목으로 알았다. 아침이면 종을 쳐 온 가족을 불러 모아 놓고 그륵을 늘어 놓고 밥을 먹는 것이 그들의 꿈이자 소망이었다.

 왕은 열정이식(列鼎而食) 했다. 신하들을 불러 모아 놓고 좋은 그륵을 늘어 놓고 술과 음식을 대접 하며 음악을 베풀어 주는 것이 좋은 왕의 기준이었다. 정(鼎)은 밥그륵 즉 생업이다. 정전지는 바로 그 밥그륵이 깨진것을 말한다. 실패한 인생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전지가 실패의 대명사고 종국을 말하는 것으로 끝난다면 그건 주역이 아니다. 주역은 정전지가 무구(无咎) 하다고 한다. 그륵이 깨졌는데도 탈이 없다는 것이다. 이 말은 실패를 성공의 실마리로 삼으라는 교훈에 다름 아니다.  위항인중 조성기(?-1689)가 있다. 18세기 지독하게도 불우하던 문인인데 조성기는 그의 문집 '졸수재집'에 이런 한탄을 한다.

 我識天心雖了了.

逢人開口便生嗔.

 나는 세상 모든 것을 알지만

만나는 사람마다 얼굴을 붉히네.

조성기는 천의무봉한 학식과 견문으로 당대의 제도권 문인들을 기를 죽인 사람이다. 그러나 늘상 당 시대의 견고 하고 답답한 풍토에 염증을 느끼고 이탈을 한다. 이탈은 이탈을 부르기 마련, 조성기는 끝내 자탄 한 마디를 더 하고 18세기의 역사에서 사라진다. 한줌의 부귀도 공명의 체취도 맞아 보지 못한체 말이다.

自有千秋能賞我.

何論世少知心.

천년이 가도 나를 알아줄 사람 있을까 묻고 있다. 진실로 세상에 자신을 아는 사람 적구나 하며 유서를 쓰고 있는 것이다. 당시대 자신을 알아 주는 사람이 없는데 천년 후에라도 별 수 있으랴. 조성기는 처지(?)를 모르고 이런 소리를 한다. 그런데 이상 하다. 이런 말은 '양웅'이나 '사마천'도 한바 있다. '김시습'마저 비슷한 소리를 한적이 있다.

오늘 알아 주는 사람이 많다면  그 사람은 학인도 예인도 아닌란 말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말은 별볼일 없는 잡인들의 잠꼬대다. 조성기는 불우한 삶을 살며 시짓고 술먹고 바둑 두는 일로 평생을 소일하던 사람이다. 조성기는 위항인 답게 바둑인 몇을 기록으로 남겨 놓아 연구 재료가 되게 해 준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당대의 문제아였다. 그러나 조성기는 엄청난 공부와 사색으로 학문의 절정을 보여준 보기 드문 사람이다. 한마디로 문제의 개인이 역사적 개인이 된 바로 그런 사람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세상과의 대화다. 세상은 사람의 말을 잘 귀담아 듣지 않는다. 귀담지 않는 사람들에게 자꾸 무슨 말인가를 하는 것은 미친사람이기 십상이다. 그러나 세상을 행해 자꾸 무슨 말인가를 하는 사람은 아름답다. 그 말은 이해상반을 떠나있을때 더욱 빛을 낸다. 나의 말을 세상이 귀를 기울인다는 것 ...  그것이 글쓰는 사람들의 꿈이고 보람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