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이 편재되어 선계로 와서 하고 있는 일은 나무를 지키는 일이었다. 그를 이곳으로 데리고 온 노인은 백발에 긴 수염을 하고 바짝 마른 이미 100살은 훌쩍 넘은 듯한 노인이었다. 임동을 이곳으로 데리고 와서는 단지 눈 앞에 있는 나무를 지키라고 했다. 그곳이 임동이 있어야할 곳이라는 것이다. 선계로 들어온 선인들에게는 그렇게만 설명해주어도 그들이 각각 맡은 곳에서 무엇을 해야하는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되는지 그들은 모든 것을 이해했다. 그러나 임동에게는 나무를 지키라는 것이 나무를 가꾸는 것도 아니요 나무를 가지고 무엇을 만드는 것도 아니요. 나무를 연구하는 것도 아닌 탓에 벌을 서고 있는 것이라 여겨졌다. 벌이 아니더라도 그의 경험상 부적절한 곳에 온 탓에 방치 되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이곳은 선계였다. 각자 정해진 곳에서 수양을 더해서 다음 단계의 선계로 넘어가는 곳이었다. 하지 말아야 할것이라는 것은 시키지 않은 것 즉 수양 이외의 특별히 지시된 것이 없다면 안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이곳의 당연한 그리고 아주 간단한 규칙조차도 임동은 말해주지 않으면 알지 못할 정도로 이방인이었다. 어떤 이는 동굴 속에서 어떤 이는 구름 위에서 어떤이는 냇물 가에서 그렇게 수양을 하는 것이었다. 얼마전까지 세상에서 하루하루를 몸이 부서져라 주어진 임무로 급히 급히 일을 하던 그에게 적응될리가 만무한 곳이었다. 수양의 개념이 없는 임동에게 이곳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굶어죽는 곳도 아니었다. 시장기가 없어진지는 오래였다. 생계에서 벗어난 보통인간에게 선계는 너무나 적응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그래도 임동에게는 한없이 높게만 보이는 신선이 나타나서 나무를 지키라고 했으니 나무를 지켰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이제 시간의 감각도 없어졌다. 처음에는 집이라는 곳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얼마나 머물렀는지 모르는 시간동안 점점 그런 욕심은 희미해져갔다. 이승에서 다른 세계로 접어들면 망각의 강을 지나게 되는지 기억은 또렷한데도 관심이 없어져 갔다. 이르다가 완전히 기억을 잃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임동은 이곳에 대해서 조금씩 알게되었다. 이곳은 선계였다. 말로만 듣던 선계였다. 그리고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선인, 신선이었다. 그들은 세상에서 깨닭음을 얻어 이곳으로 왔듯이 이곳에서 깨닭음을 얻어 다음 세계로 가는 단계였다. 그 과정에서 하나의 직을 가지게 되는데 직은 그들이 있게 되는 장소와 같았다. 그러나 임동은 그가 지키고 있는 나무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선계에서는 임동의 일로 회의가 개최되었다. 선계에서는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보았다. 신선이 되어 선계로 들어왔다면 문제가 없겠으나 신선이 아닌 사람이 그가 살고 있는 계를 벗어나는 것은 죽음과 관계되는 일이기에 염라계의 의견을 듣고자 명부관을 부른 것이다. 마땅히 나중에 자신이 저승으로 데리고 와야할 인물이 명부를 벗어나 선계에서 죽지 않고 있는다는 것은 우주의 질서를 거스러는 것이었다. 보통 사람이 명부에서 벗어나 선계로 들어오려면 이승에서 상당기간 수련을 하여 선계와 기가 통하고 선계의 요청에 의해서 명부에서 벗어남으로서 이승과 저승의 윤회의 과정에서 벗어나서 선계에서 다시 다음 세계로 넘어가는 준비를 하는 것인데, 그런 절차 없이 바로 선계로 사람을 데리고 온다는 것은 명부관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선계의 월권으로만 여길 수 밖에 없었다.
바둑을 두던 신선들의 명부관에게 한 설명은 이르했다. 평소와 다름없이 나무 아래에서 바둑을 두고 있었는데 밖에 있는 임동이 어느 틈에 편재되어 들어온 것이라 했다. 평소와 다른 어떤 일도 없었으며 평소와 다른 그 어떠한 일도 한 것이 없다고 했다.
'명부관! 명부에는 어떻게 되어있나?'
신선들은 물었다.
'명부에는 별다른 표시가 없습니다. 평범한 사람으로 노환으로 죽어서 염라계에 오기로 되어있을뿐입니다.'
'혹시 명부에 표시되지 않은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없습니다'
명부관은 무표정한 얼굴로 짧게 대답했다. 선인들과 명부관은 서로 의견을 주고 받기 시작했다. 한동안 이야기를 주고 받던 그들은 한가지의 질문으로 사건은 종결이 되었다.
'그가 선인인가?'
그들이 생각한 것은 단 하나였다. 그가 선인이라면 여기서 수련을 하면 되는 것이고 아니라면 다시 이승으로 돌려보내는 것이였다. 그것이 선계의 어지럽혀진 균형을 맞추는 일이라고 판단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의 실수였다. 임동이 이곳에 오게 된 원인을 파악하지 않고 그렇게 결정한 것은 신속한 판단이라기 보다는 처음 발생한 일에 대한 가벼운 처리라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인연이 있다면 명부에 없는 일도 세상 일이거늘 그들 전부는 너무나 평온한 선계에서 너무 오래 있었나보다. 임동도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열매의 향기에 바둑돌 소리에 기맥이 뚫리면서 선인이 되어 버렸기에 편재될 수 있었다는 것을 모르다니..
이곳의 직은 이름만 있는 것 일뿐 세상의 직업과는 거리가 멀었다. 한동안 임동은 생각해야했다. 왜 나무를 지킬까? 이곳은 선계인데 이 나무가 하찮은 나무든 아니면 금으로 된 나무든 선인들이 훔쳐갈 일도 없고 그렇다고 가뭄이 들거나 태풍과 같은 바람이 부는 것도 아니고 폭우가 쏱아지는 것도 아닌 선계에서 나무를 지키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왜 이곳에 와서 나무를 지키는 지 알 수 없었다. 남는 것은 시간이고 흐르는 것도 시간이고 내가 유일하게 가진 것도 시간이었다. 그리고 덤으로 가진 것이 의문이었다.
나무를 지키는 것은 너무나 지루했다. 이것이 필요없다는 생각에 미치자 나는 주위를 둘러보기로 했다. 이곳 옆에는 연못이 하나 있었는데 연못의 가운데는 정자가 하나 있었다. 금칠이 되어진 정자에는 선인들이 있을법도 한데 아무도 없는 상태였다. 하긴 이들에게는 어떤 것도 관심이 없었다. 오직 자신들의 수련 이외 다른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선인은 이곳을 관리하는 몇명 뿐이었다. 그들만 이곳을 관리하고 있었다. 관리라기보다도 다른 계와의 연락과 선계의 선인들의 들어오고 나감을 파악하여 그 균형을 조절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니 이곳을 수련하는 장소로 정한 선인이 없다면 이곳은 아무도 없는 것이다. 너무나 신기했다. 금색으로 꾸며진 정자가 틀림이 없는데 가까이 다가와서 보니 오색의 색깔이 모두 있었다. 화려한 단청의 무늬도 있었고 오색의 등도 켜져 있었다. 정자 밖의 아름다움을 모두 구경한 그는 정자 안이 보고 싶었다. 정자안에는 더 많은 아름다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자안에 들어가자 많은 책들이 있었다. 그는 선계의 책은 어떤 것인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을 열어본 그는 웃음이 나왔다. 선계라면 무슨 한문으로 된 어려운 책이나 알아볼 수 없는 글로 적혀진 책 또는 아무 글씨도 없어 마음으로만 볼 수 있는 그런 책들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시하게도 그가 펼치는 책마다 바둑책 뿐이었다. 5급이면 한눈에 알만한 사활도 있었고 고수들도 한동안을 생각해야지 풀수 있는 기경중묘나 관자보 수준의 사활도 많았다. 혹시 다른 선계의 내용이 있는 책이 있나 모두 열어보았지만 책에는 하나 같이 바둑만 있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가 그 내용들은 한눈에 다 풀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가 책의 사활들을 하나씩 머리속으로 풀어내자 이내 기다렸다는던 빛이 뿜어졌다. 나무를 지키느라 지루했던 것을 보상이나 하듯이 불꽃놀이가 펼쳐진 것이었다. 그가 펼쳤던 정자의 모든 책에서 빛줄기가 뿜어져 나온 것이었다. 오색의 빛줄기가 책을 뚫고 나와서 정자를 뚫고 하늘로 올라 간 것이었다. 정자의 형태는 부서짐없는 그대로였지만 빛은 아무것도 없는 공간을 가로지르늣이 끝없이 하늘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다시 내려와 바닥을 뚫고 계속 내려갔다. 그리고는 다시 올라 오지 않았다. 불꽃놀이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한동안 심심하지 않았던 그는 다시 나무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는 며칠은 심심하지 않게 나무를 지킬수 있을 것 같았다. 그동안의 체증이 모두 내려간 탓이라 여기며 그는 편안하게 나무에 기대어 잠들었다. 그가 지키던 나무는 정자의 빗장을 채워둔 것이었다. 임동이 나무 아래에 있음으로써 빗장의 걸쇠 역할을 했는데 그 걸쇠가 직접 빗장을 열고 들어가 버린 꼴이 되었다. 그 사실을 모른체 임동은 다시는 깰 수 없는 잠을 들었다.
그가 잠이 든 것은 염라계의 부름 때문이었다. 선계에서 잠이 든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나무도 물고기도 하늘도 선계의 있는 모든 것들은 천천히 천천히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잠을 잘 만큼의 시간을 보내지 않는 것이었다. 길지만 짧은 시간의 흐름인 것이다. 명부관은 다시 그를 이승으로 내려보내기로 한 결정에 따라 그 동안 그의 업의 무게에 맞는 곳으로 보내기로했다. 냉정한 명부관은 늘 자신이 하는대로 사심없는 일처리를 했다.
'그의 업을 지고 갈 곳으로 그를 보내라'
냉정한 음색으로 간략하게 명부관은 명을 내렸다.
보통의 사람을 기대하며 보냈던 명부관은 그가 내려가는 곳을 보자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곳은 보통의 자가 내려갈 갈 수 있는 곳의 운명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가 그곳에 내려가게 된 것은 이승의 업이 아니라 선계에서 지은 업때문이었다.
'큰일 났습니다'
임동이 불꽃놀이라 생각했던 것을 본 선인들이 그들이 본 것을 전하고 있었다.
'기선(棋仙)들이 세상에서 잡아와 가두어 놓았던 모든 마인들이 이승으로 흩어졌습니다.'
'뭐라?'
'방금 금혁전에 가두워 두었던 기마들을 그자가 모두 봉인을 풀어주었다고 합니다.'
'그자는 어떻게 되었는가?'
'그자도 방금 명부관에 의해 이승으로 보내졌다고 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방금의 업도 명부관의 명에 따라 짊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선계 갇혀 있는 기마(棋魔)들이 지상으로 내려가게 되었고 파괴와 창조의 세월이 펼쳐진 것이다.
먼 곳에서 이 모든 것을 조용히 지켜보며 차가운 웃음을 짓는 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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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오오현경
맥점구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