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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선달 나의19로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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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택시기사의 애환
2019-08-05 오전 7:11 조회 596추천 8   프린트스크랩
▲ (__)

20여 년 전 IMF 때 개인적 부도가 나고 회복하는데 10년이 걸렸다

치매 할머니께 고맙다는 말과 평소 내가 일 나가고 일 들어 올 때 하던

하이파이브를 마지막으로 5년 전 보내드리고

30여 년 애먹이다 가면서도 당신 자존심 때문에 형제들 우애마저 끊어 놓고

고맙다는 말은커녕 수고했다는 눈빛 한 번 안주고 침묵으로 보낸 부자의 시간들도

3년 전에 접었었다.

 

뭔가 사람도리를 다했다는 위로도 잠시 내 삽자루 앞엔 태산이 막고 있고

등에 짊어 진 어머니와 바라보는 그 너머엔 망망대해가 있다

까짓 시련이 닥쳤지만 하루 이틀 겪는 일도 아닌데다

30여년의 세월에 이젠 간병 장인이 되었고 어머님이 건강 하시니 오히려 든든했다

하루 너덧 시간의 수면으로 일과 간병과 집안 살림을 하면서도 버텼고

틈틈이 술 한 잔 하면서 바둑도 즐겼고 이게 사실 음주바둑이 습관화 된 이유지만

가끔 가슴에 맺힌 응어리는 글로서 풀면서 있는 그대로 말 못할 땐

그냥 손을 놓고 실컷 울어 버리기도 했고 누군가 찾아주면 밤새 붙들고 늘어졌다

위로 받고 싶었고 위로해주지 않아도 내가 위로가 될 때까지.

 

내가 사람도리를 하는 과정에 누적 된 갈등들이 그들에게 어떻게 비춰졌을까.

도망가고 싶고 죽여 버리고 싶고 같이 죽고 싶었던 시간들을

채로 거르지 않아도 도덕경 거울에 비추지 않아도 현실적 논리에 벗어 난 희생 같아도

보석처럼 빛나지 않고 남의 일은 길거리 돌멩이 같은데.


도리
.

눈으로 보긴 아끼고 간직하고 싶은 보석이지만 입으로 구해지지 않으며

만들기는 부담스럽고 고통스러운데다 희소성에 비해 현실적 가치도 없고

감사의 대가론 희생으로 오는 미래가 불안하여 정서적 불편을 잠시 감수하고라도

대가 없고 가치 없는 보석을 만들기보다 돌을 닦는 게 맞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가치를 잃어가고 있다 퍼석한 마사토 아니면 반질반질한 돌이 되어.

나도 다시 하라면.

글쎄.

 

남은 인생숙제 엄니를 위해 최근 3년 모든 걸 퍼부었지만 30여년의 헛발질(?)보다

더 많은 시간과 절심함 집중력으로 임했는데도 3년여 만에 다시 부도에 직면했다

나라 같은 나라에서 재기하지 못한 것도 의문이지만

이 나라에서 다시 나라 같지 않은 나라에서 겪은 부도를 맞아야 하는 나는 뭔가.

이제 재기 할 여력도 없는데.

서민은 먹고 살고 희망이 이어지면 궁핍해도 행복할 수 있다

내가 미워 욕하면 사회적으론 적폐가 되고 딸내미는 밥숟갈 놓고 일어선다.

이념이 논리가 밥 먹여주냐.

나라다운 나라 만든다 했지.? 살기 좋아졌으면 욕하래도 욕할 사람 있겠냐.

 

누구를 욕하면 누구를 칭찬하면(할 놈도 없지만) 이런 놈이 되고 저런 놈이 되는 세상

요즘은 악몽만 꾼다.

헌병들이 찾아와 군복무가 모자라니 다시 입대하라는 둥 애마가 달아나는 둥.

 

바둑이 뭔지 모르지만 어머님은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 하신다

내가 뭔 글을 쓰는지 모르지만 고향 당숙 비문에 내 글이 새겨졌음을 등단 같이 생각 하신다.

우리애가 돈은 못 벌어 그렇지 글도 잘 쓰고 바둑도 잘 둬요.”

첨엔 민망해 말렸지만 지금은 말리지 않는다.

내가 못해드리는 행복감을 당신께선 거기서 느낀다는 생각에.

 

지금 나도 나의 돌을 닦으며 마지막 발악을 해야만 한다.

다음 달로 다시 그 악몽의 신용불량자로 전락하지만 어머님껜 알리지 않는다.

85세에도 류현진 손흥민에 대해 물어 올 때 자근자근 설명한다.

그 연세에 메이저리그와 프리미어리그에 관심 있는 분 얼마나 될까.?

박찬호 활약 땐 더 했다 내가 일 때문에 다 못보고 나가면 전화로 실 상황중계 해줬다

박찬호가 한 번에 둘이 죽이고 점수 안줬다

잠시 후

검디가 홈런 쳐가 둘이나 들어왔다

그 말에 담긴 열정은 그 어느 아나운서의 목소리보다 흥분하고 상기 되어 있었다.

물론 졌을 때는 기분 나빠 일에 지장 있을까봐 침묵했고.

내가 좋아하는 것에 관심을 갖는 분.

사회전반에 또래 친구 분들과 대화에서 자신감을 가지시지만 나서시지는 않고

덕분에 나는 이미 내 자식이 된 엄니의 질문에 누구와의 대화보다 진지하게 임한다.

최대한 객관적이며 예측 가능한 경우를 들고 초등자식 가르치듯.

 

바둑이 안보이고 두기 싫어졌다 글도 별로다

하지만 오늘 자판을 당긴 건 내가 얼마나 솔직할 수 있는지 이시간이 위로가 됐는지

다짐이나 망각의 시간이었는지를 확인하려 한다.

술을 한잔 했고 어머님 숨소리를 가까이 들으며 최대한 경각심을 끌어 올려본다.

유일한 취미로

바둑은 승패는 잠깐의 일희일비고 삼매경에 빠지는 행복이 있고

글쓰기는 격려로 느끼는 환희와 자괴감을 들게 만드는 안티들 모두가 나를 성숙하게 했다

춤을 배우게 했고 무단행단 하던 나에게 신호등도 되었다

그들의 목적과 관계없이.

 

201981.

오랜 방황과 갈등 끝에 다 접고 다시 20년 전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그동안 내가 인정하지 못한 죄에 대해 무기형을 내리고 나를 감옥에 넣었다

정상화 되는 날까지.

술로서 해결되지 않고 자학으로도 극단적인 생각만 들고 엄니가 눈에 챈다.

이제 같이 할 시간도 얼말 지 모르는데 내가 그 시간을 너무 뺐었다

20년 전엔 어떨 결에 맞았고 정신 못 차리고 지났지만 지금은 각오하고 달려든다.

하지만 미래는 예측하기 힘들다

내 앞에 무슨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내가 엄니의 여생 호강은 못 시켜드릴지라도

몸과 마음이나마 편하게 공양할 수 있을까.

이를 악물었지만 지금의 환경이 내 탓만이 아니라는 건 평생 원수로 살다간 아버지

내 잘못을 변명하게만 만들고 원인만 제공했던 당신의 자리를 떨칠 수 없다.

 

아버지의 방탕한 생활로 초등학교 가긴 전 엄니와 헤어지고 어린 시절을 그리움으로 보냈다

그래서 나는 초등 중등 졸업사진도 친구들 가족에 얹혀 찍혔고 이제 그마저도 없다

고등학교 때 집을 나와 엄니와 다시 만났고 자취를 하며 졸업하게 되는 과정에도

순탄치 않았으며 사춘기방황의 시간을 거쳐 난생처음으로 엄니와 졸업사진을 찍었다

엄니는 사랑의 눈물로 씻어주셨고 애간장을 태워 언 나의 마음을 녹여주셨다.

어린 시절 10여년의 생이별도 아버지로 인하였고 다시 만나야 되는 악연도 당신 때문이었다.

마음잡고 졸업 후 재수하여 대학을 갔고 그해 입대를 하였다.

실상 엄니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준 건 대학 가는 과정의 1년 남짓 더 나은 시간을 바랬건만

제대하자마자 우리의 시간에 끼어 든 원수 같은 아버지.

 

당신과 악연은 부자인연으로 시작되었고 그 절정은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서 돌아 와보니 방 두 칸에 노름꾼 수 십 명이 차지하고 어린 동생들은 없었다.

있을 자리가 없었지.

눈에 불이 났고 심장이 뛰고 두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그래도 그동안 우리 방은 비워줬었는데 배신감 상실감에 증오심이 불타올랐다

(그래 오늘 다 죽자)

가방을 한 구석에 던지고 일단 동생들부터 찾아 나섰다

수소문 끝에 찾은 막내는 학교운동장 철봉 아래서 혼자 모래 장난을 하고 있었고

노을 등진 나의 긴 그림자가 먼저 달려가 부등 켜 안았다

흐르는 눈물을 굴곡지게 만드는 악마 같이 일그러진 얼굴엔 삶을 조소하는 웃음이.

 

동생을 자장면 집에 데려다 놓고 맛있게 먹는 모습에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초등 1학년.

저 천진난만한 아이를 나처럼 만들지 않아야겠다는 책임감에 의연해 진 것일까.

아무 말 없이 일어나 주인에게 부탁하고 가게를 나와 바로 집으로 달려갔다

동네 친구들 모으라고 자장면 집에서 전달했으니 바로 모일 것이고 나는 미쳐 있었다.

엄니의 얼굴이 내 앞을 가로막고 할미는 인자한 얼굴로 손을 가로저었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몇몇 아는 이들의 당황한 모습들을 스치고 달려가 부엌으로 내달았다

연탄집게로 집어든 벌겋게 달은 연탄을 들고서니 모두 혼비백산했다 나는 악마였다.

 

문득문득 잘려서 생각나는 일들에 온몸이 쑤신다고 생각할 즈음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엄니가 철창 안에서 나를 보며 울고 있는 게 아닌가.

나는 화들짝 놀라 고함을 질렀다

어무이 무슨 일인교. 누가 어무이를 언 놈이야.”

반대편에서 다시 고함소리가 들리고 나는 정신을 차렸다

엄니가 철창에 갇힌 게 아니라 내가 철창 속이었다.

40여 년 전엔 임의동행이 불법이 아니고 경찰서에서 30일간 구금할 수 있었다

폭행에 존속상해에 방화미수에 살인미수까지. ?

진압과정에서도 구타당했고 경찰서에서도 숱하게 맞았다

다행히 노름꾼들의 고소나 피해신고가 없어서 존속상해만 적용 되었다

 

시대적정서로 보아 당신의 자존심은 엄청난 충격이며 신문기자로서 더했을 것이다

내가 나오면 다음엔 진짜 죽여 버린다고 말하곤 입을 다물어 버렸다

내가 미친 짓을 하는 걸 보고 당신이 느꼈는지 동거녀가 느꼈는지는 모르지만

엄니를 통해 각서니 머니 잡다한 조건을 제시하고 아버지로서 내 장래를 위해

참는다는 절충안을 들고 엄니가 오신 거다.

엄니와는 15년만의 불편한 만남에 엄니는 나로 또 모욕을 당하셨다

부추 켰다고.

 

당신의 절친 그래서 나를 더 많이 때린 경찰이 입을 다문 나를 데리고 나갔다

그때 당신의 나이 50 정도.?

고등학생인 나에게 전과자의 불이익과 엄니의 눈물의 호소에 장래의 공포와

영웅심에 소주를 원했고 협객처럼 병으로 연속 2병을 마시고 말했다

막내는 데리고 나간다는 조건을 걸었고 엄니도 승낙 하고 고마워했다

당신 서슬에 안타까움만 가슴에 응어리졌는데 이참에 내가 제시하니 다행인 것이다

그리고 일주일 후 석방 되었다

거처인 경산엔 다시 오지 않는다는 조건과 재발 시 모든 건을 적용한다는 머 그런 각서로.

그 후 막내는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대학까지 무사히 졸업하고 공무원으로 재직 중이다.

 

하지만 나는 당신으로 평생 당신은 그 건으로 평생.

우리는 평행선이었고 다시는 보지 않고 살 것이라 생각했는데 천륜이 뭔지.

노름하다 쓰러져 전신마비가 되어 동거녀는 도망가고 그 경찰 절친이 나를 찾아왔다

그 사건 후 5년 만이었다.

많은 당신 친구들 앞에서 나는 말했다

아쉬울 것 없으니 그만 가소.”

눈만 움직이는데 닭똥 같은 눈물을 쏟아낸다

내 어깨를 가만히 두드려주던 그 경찰 친구 분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에이 시팔 당신이 우리에게 어떻게 했는지 그게 어떤 세월이고 어떤 고통인지...”

말을 못 맺고 설움이 복받쳐 뛰어나와 병원 앞 화단 옆에 앉아 울먹이는데

그 분이 나와 나를 이끈다.

다시 만난 식당에서 그 분은 직접 소주 한 병을 들고 오셨는데 잔은 없었다.

그리고 병을 따서 가만히 나에게 내밀며.

얼마나 사시겠냐. 니가 이해 못하는 삶도 있단다.”

내 친구 좀 살려다오. 아니 죽더라도 가족 없이 죽게만 하지마라.”

그날 얼마나 마셨는지 엄니가 경찰차에 실려가 경찰차에 실려 왔다고 했다

다음 날 엄니의 만류를 뒤로하고 병원으로 갈 때는 몇 달 정도를 각오했고

그게 30년이 걸릴 줄 알았으면 천륜이고 뭐고 돌아섰을 것이다

20초반에 시작해 3년 전에 끝내고나니 내 나이가. .

 

그리고 그 어린 것을 그 구렁텅이에서 건져 사람답게 살게 해줬는데 원수지고

나에게 엄니에게 간병 받으면서 동생들을 이간시키고

당신이 가고 남은 가족들에게 동안의 잘못을 반성은커녕 풍지박살을 만들면서도

아버지라고 30년 넘게 귀저기 차고도 지킨 자존심 대단하오.

그 동생들 당신 가시고 엄니 모시다더니 가물치 코 구멍이요.

,

누가 춘향이라 이집을 지켜 주겠소.? 혼자가 되었소.

친구 만날 시간 없어 모두 떠났소.

사실 나도 진심으로 하지 않았소. 억지 춘향으로 천륜을 술로 때우며 30여년 세월에

노름 안 하고 바람피울 시간 없어 못 피우고 설움과 갈등을

내 나름대로 삭히며 살았지만 인생 낙오자가 되었소. 후련 하시오.?

나는 바둑 한 판 두고

살았더라고 가식 없이 경험을 써보는 글쓰기로 나도 모르는 누군가에겐 위로가 되고

또 그 공감으로 위로 받는 유일한 벤치마저 잃고 걸망을 걸쳐 들었소.

그래도 영면하시고 할머니 재산 노름 기집 질로 다팔아먹은 거 만나서 사죄 하시구랴.

 

엄니와 나는 화해했소.

그 와중에 사람 되게 살게 해달라고 할머니 당신 극락왕생하시라고

지금은 떠났지만 집사람과 노숙까지 해가며 3년에 걸쳐 108사찰 108배를 했고

다시 시작하다 모든 게 멈추었소.

나 혼자였으면 벌써 죽었을 것이고 어쩌면 나 혼자 죽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죽으면 꼭 당신 찾아가 목을 눌러 버릴 것이요.

사는 동안 다시 내 탓이라 여기려 하고 세상에 진 빚 내 업을 닦기로 했소.

귀신이 영험하다고는 믿지 않지만 그 한은 신보다 더 독하다 생각하오.

화해가 아니라 용서하소.

엄니 고생 시킨 건 우리 공범이니 엄니 여생 마친 후 우리 저승에서 만나 승부 봅시다.

당신도 당신이고 나 또한 당신 자식인데 어련 하겠소.

 

독촉전화에 시달리고 사회적 제한과 열등감 패배감 상실감에 시달리겠지만

이대로 당신을 만나면 내 한은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이고

엄니에 대한 죄스런 한은 지옥의 그 어떤 불로도 태울 수 없을 것이니
일단 나를 놓아주고 저승에서 봅시다.

 

사람도리를 하려고 살다가 그 빚 때문에 또 사람도리를 못하여 짊어진 멍에

내 생에 갚다가 가기를.

그렇게 빌면서 나를 감옥에 쳐 넣은 지 일주일

세상을 보아 재기할 기미가 보이지 않으나 내 양심의 도리를 붙들고

결과를 만들지 못해도 빈 걸망을 들쳐 매고 길을 나선다.

바란다면 다시 돌아 올 때 살았더라고 신세 갚고 다시 빈 걸망 지고 오기를.

 


원하던 원하지 않던 우리는 서로로 완성되어 가며

삶 또한 완성이 아니라 과정이니

선악이 결론이 아니라면

시시비비가 추한 것이 아니라 다듬질이요 날을 세우기 위함이 아닐까.

 

┃꼬릿글 쓰기
킹포석짱 |  2019-08-05 오후 6:15:08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법에도 눈물이 있답니다,무기수라도 성실히 임 하시고 행하시면 가석방 이라는 좋은 제도도 있고요.이참에 돌을 잘 갈고 닦으셔서 구슬도 만드시고 바늘도 만드시는 도인이 되소서^^()()(),  
우리권이 |  2019-08-07 오전 6:08:52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  
리버리어 |  2019-08-10 오전 11:38:11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당하는 배신과 폭력이
가장 치유하기 어렵고 그 상처가 오래갑니다.
방탕한 아버지로 부터 받은 어린 시절의 좌절과 시련..
수십년의 병 수발 과정에서 보여준 형제들의 이기심 등이
세월이 지났는데도 아물지않고
선달님의 마음을 순간마다 할퀴고 있습니다.
어디 조용한 암자라도 찾아가 어머님하고 생활해 보시는 게 어떨런지요.
그 아픔을 치료하는 약은
조용한 환경과 흐르는 세월 뿐입니다.  
오방색2 |  2019-08-17 오후 5:58:27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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