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허름한 둥지

무대 위 끄나풀에 매달려 춤추고 울고 웃는 사인형극(絲人形劇)의 인형처럼

6.25 라는 괴뢰희(傀儡戯) 한판 인형극에 휘둘려진 내 부모는

3.8 따라지가 되는 홍역을 치루며 정든 고향에서 낯선 땅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북녘 하늘에 눈길을 붙박이로 박아놓고 부모 형제와 살 비비고 살던

고향의 땅을 밟지 못하는 설움을 그네들은 남쪽에서 얻은 한 점 혈육인 내게서

그 슬픔을 풀고 잃어버린 가족을 다시 이루고자 소원 했었다

장작은커녕 마른나무 구경도 힘든 악조건 아래서

젖은 생나무로 눈물 콧물 흘려가며 죽자고 불을 지펴 간신히 김이 올라

솥뚜껑이 흔들리며 밥이 익어 갈때쯤이 되자 정작 그분들은

숟가락 한번 꽂아보지 못하고 그 흔한 월남치마 하나 제대로 못 걸쳐가며
적지 않게 모았던 재물만 쌓아둔 채
꿈에 그렸을 손주 새끼 구경은 고사하고 제 새끼 짝도 못 맞춰준 허망을

그나마 금술 좋던 부부사이로 위안 삼기나 하듯이 일주일도 않되

앞서거니 뒤서거니 세상을 등지며 19살 외동 철부지

사내놈 하나를 이승 나들이에 족적으로 남기고 떠났다

친족 이라곤 눈을 씻고 봐도 천지에 하나 없던 텅빈 외로움의 자리로

당연한 세상의 공식처럼 술과 여자의 달콤함이 
그리고 화투며 카드 경마 등 노름의 유혹이 줄줄이 찾아왔다

절약과 검소로 자라며 젖어있던 생활 습관의 방호벽은 그리 어렵지 않게 뚫렸고

그 구멍으로 들어오던 찬바람이 뼈골에 시릴때 남은 것은 빈손 이였다

뒤 늦은 후회로 정신을 차리고 살겠다고 버둥버둥 거리기 시작하자

두 분이 최후의 보루로 남긴 숨겨졌던 마지막 유산이 보였다

두고 온 고향이 개성으로 같아 친 자매처럼 지내던 어머니 친구에게서

비어있는 7평 남짓에 허름한 가게 터를 보증금 없이 반년 간 무상으로 임대한 것이다

달랑 책상 하나와 폐품으로 버려진 크기도 모양새도 제각각인

의자들을 주워 모아 비어있는 벽면 옆을 채워놓고

창문 가득히 인력 대 모집 등의 광고 문구들로 도배를 한후

인력 사무실을 차린지 오늘로 꼭 한해가 됐다

문을 열기도 전에 오늘도 명섭씨는 예나 다름없이 골목길 입구에

꼬꼬치킨 앞을 나보다 먼저 나와 서성이고 있다

1년 동안 하루도 어김없이 새벽 4시가 넘기 전에 문을 열었다

비가 한달 가까이 지겹게 내리던 지난여름 장마에도 할일 없이 시간을 때워도

처음 사무실을 차리며 근면 성실 하자던 나와의 약속을 지키며

문을 열어 놓고 점심때 까지는 있다 가는 것으로

탕아의 속죄를 의식처럼 치루며 살았다

아마 문을 열고 한 달이 조금 넘어서 였을것이다

전화는 착신으로 걸어 놓고 통행이 많은 골목을 빠짐없이 누비며

신발 뒤축이 헤지도록 스티커를 붙이고 다녔고

인력이 필요하다 싶은곳 이면 명함을 들고 다니며 상대의 핀잔이나 구박은

모르쇠로 일관하며 세번 이고 네번 이고 눈인사의 웃음이 실리도록 드나들었다

그리 크지 않은 구리 시내를 이 잡듯 발품을 팔은 덕에 조금씩 인력이 송출되기 시작했고

몇몇 낯이 익어가는 일꾼들이 안면 있는 제 동료들을 불러들이면서

때로 부족해 모자라진 의자 몇 개를 재활용 쎈타에서 더 사들여 올만큼

새벽 사무실이 제법 북적 거리기 시작했다

바쁜 시간이 지나 문을 닫고 제법 쏠쏠히 사람을 불러 쓰다

전화가 뜸해진 진영 설비 사장과 점심 약속을 하고 나가려는데

조금은 추레하게 보이는 60까지는 않되 보여도 50은 훨씬 넘어 보이는

꾸부정한 사내가 말을 부쳐왔다

“저 여기가 사람 쓰는데 맞죠?”

인상은 웃음기가 많아 보여 그리 나쁘진 않았지만 말씨가 어눌하고

노가다 판에는 어울리지 않게 너무 약해 보여 첫눈에 마음의 썩 들지가 안았다

“가진 기술은 있으신가요?”

“기술은 없고 무슨 일이든 시켜 주시면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매일은 아니더라도 필요 할때만 써주셔도 됩니다”

머리를 숙이고 부탁하는 눈빛이 애절해 보인다

이럴땐 딱 짤라 돌려보내야 하지만

아직 인력소장이 갖춰야할 냉정함은 다 터득하지 못했다

한번 나와 보라고 지나는 말투로 던져놓고 인적사항도 적지 않고

늦은 약속 시간에 쫒겨 대강 얼버무려 보내고 나도 지리를 떴다

한 일주가 지나도 그는 나타나지 않았고 나도 그의 존재를 잊어버려 갔다

그러다 한주가 더 지난 월요일 새벽에

나보다 더 이른 시간에 사무실 앞을 서성이는 그를 다시 만날수 있었다

대부분 현장들이 휴무인 일요일에 뒷날 월요일 새벽은 바쁘고 부잡 스럽다

겉치레 인사를 대충 나누고 예정된 거래처에 인력배정과

새로 걸려오는 전화로 정신이 산만해 따로 그를 염두에 두지 않다가

때아니게 마석 아파트 현장에서 남은 인원이 있으면 더 보낸 차편에

몽땅 실어 보내라는 추가요청이 들어와 이름도 모르던 명섭씨를

다른 일꾼들과 묶어 그렇게 첫 일을 내보냈다

잡다한 일들을 정리하고 커피 한잔을 들고 막 마시려다 받은

전화 속에서 쏟아져 나온 것은 바가지에 가득 들었던 대찬 욕설 이였다

“이런 쓰벌!

이런 병신을 여기다 태워 보내면 어떡해!

참 사람들 참 사람들 좋아하네 야! 그간판 내려 뻐려라

손가락 없는 이런 새끼를 보내는 데가 참 사람 있는 데냐?

조 까요!

너 문 닫고 싶어서 나 물 먹이는 거지?‘“

마석 현장에 소장은 성질이 급하고 입이 걸기로 소문난 반 양아치나 다름없다

할 말은 없지만 감추려고 살짝 쥔 주먹 안에 손가락은 보이지도 않고

손가락이 3개나 없는 일꾼을 받는 용역 사무실도 없을뿐더러

일을 하겠다고 찾아오는 멍청한 일꾼은 더 더욱 없다

참 김새는 아침이다

건물의 골조를 세우기 위해 틀을 만드는 판넬은 철근을 감싼 공간속으로

레미콘이 비벼 넣은 씨맨트를 담아 굳혔다가 양생이 끝나면

겉에 쌓여있던 판넬로 만든 거푸집을 제거하는데

현장에서 흔히 쓰는 일명 반네루 바라시 작업 날에 손가락 없는 인부를 보냈으니

소장이 팔팔 뛰며 화를 내는건 당연한 일이다

미쳐 말씀을 드리지 못했는데 일손이 많이 필요 하신것 같아뵈

혹 도움이 될지 몰라 용역비는 주지 않아도 좋은

써비스 인력 하나 더 보내드렸다고 둘러치자 금새 목소리가 부드러워진다

“그래서 내가 참 사람 사장을 좋아 한다니까!

근데 손가락이 3개나 없는 새끼를 어따가 쓰지?“

성질 같으면 총알 같이 날아가 죽통을 한번 날리고 싶다

날이 어두워 일꾼들이 모두 돌아왔다

한데 분명 한차에 타고 돌아왔다는 명섭씨는 보이지 않았다

쓸만한 일꾼은 못돼도 시키는건 꾀 안 부리고 꾸준히 잘 하더라고

함께 갔던 수택동 박씨가 알려주며 덧붙인다

“거 뭔 사람인지 입을 안떼두만 아마 종일 한마디도 안하고 지냈을껄?”

어쨎든 하루 일을 하고 왔으니 속은 쓰려도 나라도 하루치 임금은 줘야할 판이다

한데 아무리 근처를 돌며 찾아도 보이지 않은 명섭씨는

꼬꼬치킨 집에서 좀 늦게 끝난 술판이 다 파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화장실 갔다 뒤 못 씻은 사람처럼 찝찝함으로 께름직한 며칠이 지났다

사무실 옆 밥집에서 전날 지나치게 마신 술로

늦은 아침을 대신해 찢어질것 같이 아픈 속을 라면 국물로 달래고 있는데

사무실을 기웃 거리는 사람 그림자가 언뜻언뜻 보여 먹던 것을 버리고 나가보니

명섭씨가 히죽 웃으며 인사를 건네왔다

처음 볼때 보다 초췌해 보이는 그의 얼굴이 웬지 안쓰럽게 다가왔다

보이지 않는 인연 줄이 몸에 걸쳐지는 칙칙한 느낌을 탁탁 털어 버리며

반가울 일도 없는 그의 손을 잡고 일단은 안으로 그를 끌어 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