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과 심성이 동행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요. 바람이다.

  배운 사람일수록 심성을 옳게 닦아, 매사에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상식대로 되지 않은 게 세상이고 보면, 상식이나 바람도 요즘에 와서는, 거꾸로 가고 있다는 한탄이 그리 지나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이런 생각도 바로 새벽운동으로 매일 만나고 있는 조그마한 무덤 때문이 아닌가 싶다.

 당초에 이 무덤은 내다하고 요란하게 치장한 여느 무덤과 달리 그 흔한 비석 하나 없이, 큰길가에서부터 보일 듯 말 듯 나있는 오솔길 따라 몇 발짝만 올라가도 아예 세상을 등진 것처럼 숲 속에 묻혀있어, 마치 산속에 버려져 있는 묵묘처럼, 무덤은 무덤이되 이미 자연에 동화된 아늑하고 아름다운 무덤이었다. 

  그런데 이 무덤이 뜻밖에도 후손이 끊긴 묵은 묘가 아니고 밥술 깨나 뜬다는 자손들의 무덤임을 뒤늦게 알면서, 그간 친근했던 내 감정이 어떤 분노 같은 것으로 바뀌고 만 것은 얼마 전의 일이었다. 

  내가 이 무덤을 처음 만난 것은 새벽운동으로 테니스를 하다가 무릎 때문에 등산을 시작하고부터이니 한 10년은 훨씬 지난 것 같다.

 또 이곳을 좋아하게 된 것도 무덤의 고른 잔디와 무덤을 둘러싸고 있는 잣나무 숲, 그리고 도토리 진달래와 이름 모를 풀과 나무들이 무덤과 잘 어울리는 데다, 이곳에 앉아 땀을 식힐 때마다 아늑한 정겨움에 사로잡혀, 인간의 생리와 자연의 섭리를 유영하는 자유가 좋아서였다. 여기에 상쾌한 새벽기온까지 더하면 마음은 하늘을 나른다.

 봄은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계절을 바꾸어가며 풍겨주는 정취 속에, 새벽 등산길의 휴식처가 되어준 이 무덤은, 적어도 내겐 마을 앞 느티나무 아래에 만들어 놓은 안락한 평상이 되기도 했고, 때로는 흐르는 구름과 속삭이는 밤하늘의 별들과 눈길을 주고받던 냇가의 모래밭이 되기도 했다.

 더구나 여름날의 서늘한 새벽, 땀이 나면서부터 몸이 풀리는 기분이나, 땀이 밴 몸을 새벽기운에 들어내 놓는 나신의 상쾌함을 어떻게 다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이렇게 좋든 무덤이 꼴도 보기 싫게 된 것은 후손들의 오만한 벌초 때문이다.

 마치 멧돼지가 수수밭을 파헤쳐 놓듯이 수십 년 된 나무들까지 어지럽게 잘려나가 그렇게도 아름답던 질서도, 그렇게도 아늑하던 정취도 온 데 간 데가 없어졌다.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었다. 무덤의 풀을 다듬는 벌초가 아니었다. 새로 지을 집터를 닦는 듯한 낭자한 벌목이 되어 있었다.

 자연 때문에 무덤이 있었던 게 아니고, 무덤 때문에 자연이 존재하는 듯했다. 적반하장도 이럴 수가 없었다. 아무리 삭이려 해도 삭여지지 않았던 것은 정작 산짐승이 파 해쳐 놓은 봉분은 내버려 둔 체, 무관한 나무들을 시계청소 하듯 마구 베어낸 오만함 때문이었다. 더구나 뒷정리조차 하지 않은 꼴세가 너무도 당당해, 참견이라도 했다가는 무슨 봉변이라도 당할 것만 같았다.

 도데체 이 나라에 법이 있는가 싶을 뿐이었고, 치미는 울화가 가라앉질 않았다. 더 화나는 일은, 이들이 소위 출세했다는 사회지도층이라는 점이었다. 이렇게 쑥대밭을 만든 후에 조상에게 자랑이나 한 듯, 묘 앞에 놓여있는 화분에 어느 대학 총장의 이름이 자랑스럽게 나부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볼수록 울화가 터진다. 조국을 지키다 산화해간 무명용사들은 무덤도 명패도 없이, 이름도 모르는 산하에 묻혀 자연으로 돌아갔는데, 고작 자신만을 위해 살다간 인간들은 속죄는커녕, 죽은 후에도 자연만 해치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의 암 같은 존재들인데도 이들이 건재할 수 있는 사회풍토와 변할 줄 모르는 장례문화가 더 속을 뒤집어 놓고 있다.

 생명체가 생존해 갈 수 있는 가장 좋은 조건은 자연뿐이다. 좋은 조건이 아니라 절대적인 조건이라 하는 것이 더 옳다. 그래서 많은 생명체들은 자연법칙 속에서 섭리대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인간만이 지(知)를 앞세워 편의만을 추구하다가, 이제는 모든 생명체까지 함께 죽을 수밖에 없도록 자연을 병들게 하고 말았다.

 반성은 커녕 갈수록 더하다. 그것도 지식과 권력과 부의 척도와 비례하고 있다. 아름다운 것을 해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자연의 생리를 해치는 것이 문제다. 문명의 그늘로 생존조건이 극도로 나빠지고 있는데도 걱정도, 대책도 없는 것이 문제요, 해치고 있으면서 의식하지 않는 이기심이 문제다. 이제 자연은 인내를 끝내고 무서운 응징에 나서고 있다. 인간들이 죽이고 있는 하늘과 땅과 물이 그것이다. 

 지금 이 시대에 가장 시급한 과제가 환경(環境)이라 하면서도 기껏 화장(火葬)을 장려해, 천재까지 부르려 한다. 하늘은 걱정되지 않는 모양이다. 한 뼘 땅 아끼려다 더 큰 재앙을 불러오는 꼴이다. 혹한과 혹서, 폭우와 폭설, 해일과 폭풍이 무엇 때문인지 모르는 것만 같다. 

 시대적 가치에 따라 변천해온 장례문화(葬禮文化)가 이 시대에 와서는 길을 잃고 있는 것도 한몫을 하고 있다. 만물이 자연에서 왔다가 자연으로 돌아간다면 인간도 당연히 자연으로 돌려주어야 옳다. 살아오면서 해온 해코지를 속죄하는 뜻에서라도 죽어서는 흔적도 없이 돌려주는 것이 경우다. 매장, 풍장, 수장, 조장들의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매장은 인간의 과시욕으로 자연을 해치기만 해 왔다. 다 무덤의 봉분 때문이다. 봉분이 없다면 자연을 이롭게 하고, 자연으로 돌려주는 의미도 살릴 수 있을것 같다. 다만 조상을 기리는 예를 위하여 동화된 자연에서도 찾아 볼 수 있도록 비목이나 비석 하나면 족하지 않을까? 굳이 이름을 붙여 본다면 자연장(自然葬)이라 하면 어떨까 싶다.

 그래도 조국을 위해,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에서 아무 흔적도 없이 산화해간 무명용사들을 생각해본다면. 이것도 오감타는 생각이다. 더구나 살아생전, 조국은 고사하고 덕분에 살아온 이 세상에 대해서도 인색하기만 했다면, 죽어서 자연까지 해친 돼서야 말이나 되겠는가? 

 자연은 생존의 절대조건이요, 모든 생명체들이 함께해야 할, 오직 하나뿐인 삶의 터전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그 터전을 해쳐도, 보고만 있어야 한다면 사회정의가 괘씸할 뿐이다.  참으로 답답하고 환장할 일이다. 이게 다 이 무덤 후손들처럼 자신들만 아는 이기적이고 오만한 인간들 때문이라 생각하니 아름답든 무덤에 칵하고 침이라도 뱉어주고 싶다.

 오늘의 새벽등산이 기분 좋게 왔다가 우울하게는 됐지만, 허욕에 오염된 매장문화와 인간들의 만행, 그리고 생명체의 생존 조건들을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된 것은 다행이다 싶다.

 그러나 걱정은 더 커졌다. 인간들의 이기심이 이미 한계선을 넘은 것도 확실한 것 같고, 또 지금까지 참아온 자연의 인내도, 이미 한계점에 다다른 것이 확실한 것 같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