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최대 노천박물관 룩소르
상념 속에 또 하루가 지난다.
오늘 찾아갈 곳은 세계에서 제일 큰 신전이 있다는 룩소르다. 룩소르는 카이로로 옮기기 전의 이집트 수도였고, 이집트 중세기의 왕도(당시는 ‘테베’라 불렀음)이기도 했던 곳이라 유적이 많다. 그래서 이곳을 세계최대의 노천박물관이라고도 한다. 이곳에서 보기로 한 것은 세계에서 제일 크고 제일 오래된 카르낙 신전과 그곳에서 걸어 30분 거리의 룩소르 신전, 맴논의 거상과 피라밋과 대칭되는 왕들의 계곡, 그리고 그 옆에 작은 궁전 같은 한 여왕(합셑수트)의 장제전이다.
ㅇ 지하무덤인 왕들의 계곡
피라밋이 지상의 무덤이라면 왕들의 계곡은 지하의 무덤이다. 사막의 한 계곡, 사암층을 깊게 파 들어가 왕들의 무덤을 만들고 입구를 봉해 아무도 찾을 수 없도록 했다. 미라를 다치고 소장품을 잃는 도굴을 막기 위해서다. 당시 공사에 종사했던 인부들을 전부 생매장했다는 일화가 여기에서도 떠돈다. 당시 이집트는 금광은 국가소유이고, 금은 파라오의 전유물로, 소위 국가재정의 주요재원이 되어 왕실에서만 쓰여졌다고 한다.
파라오의 힘과 막강한 국력이 이웃나라들로부터 조공으로 받아들인 금은보화는 또 얼마였을까? 그래서 무덤 안에는 금은보화가 상상을 초월했다니 고금의 도굴범들이 어찌 방관할 수가 있었을까? 그러나 공사장에 공역한 인부들마저 생매장하여 자신들의 무덤을 지키려했던 수많은 파라오들은 자신들의 무덤을 과연 온전하게 지킬 수 있었던가? 결코 아니었다. 지금까지 발굴된 수많은 무덤중 오직 하나, 1922년에 영국의 탐사팀들이 발굴한 ‘투탕카문’의 무덤만이 도굴되지 않은 체 온전한 상태에서 세상빛을 보게 되었다니, 이집트의 역사를 도굴의 역사라고 한 얘기가 결코 과장은 아니구나 했다.
더구나 이 무덤은 9살에 즉위하여 18살에 요절했던 불행처럼, 다른 무덤에 비해 크지도, 인상적이지도 않았다는데도, 무덤 속에는 미라를 포함하여 동상, 침상, 의자, 소파, 배, 이륜마차, 무기, 항아리 등 헤아릴 수 없는 유물들과 금은보석들이 자그마치 3,500여 점이나 쌓여있었다니, 69년간이나 파라오로 있었던 람세스 2세나, 이집트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투트모세스3세의 무덤들은 얼마나 많은 보물들이 매장되어 있었을까? 상상이 되질 않는다.
카이로에서 아침을 먹고 비행기로 한 시간 날아가서 바로 찾아간 곳이, 나일 강 서쪽에 있다는 이 왕들의 계곡이었다. 이곳에서 발굴된 무덤들은 주로 19왕조의 무덤들이다. 특히 일반에 공개되고 있는 무덤은 18왕조를 마감하고 19왕조를 연 람세스1세, 그 뒤를 이은 세티1세, 3대째의 람세스2세를 비롯한 람세스3세(메렌프타)와 람세스6세 그리고 백여명에 이르는 왕자들의 무덤이고, 전 왕조의 파라오였던 투탕카문, 투트모세스3세, 아멘호테프2세의 무덤도 이곳에서 발굴된 무덤들이다. 30개 왕조의 그 수많은 파라오들의 무덤은 어디에서 또 문을 열어줄 때를 기다리고 있을까?
무덤은 하나같이 깊게 파들어가 왕들의 방을 만들고 방과, 회랑처럼 긴 진입로 벽에는 하나같이 왕의 치적과 왕생의 염원을 신성문자와 그림으로 새겨 놓았다. 그것도 천연색이다. 티 하나 없고 바래지도 않은 색감이 선명하고 아름답다. BC 13세기의 일이니 3,300년 전의 물감들이다.
엊그제 홍천 백우산으로 등산을 갔다가 소나기도 맞고 허리까지 차는 계곡도 여러 차례 건너다보니 배낭은 물론 속옷까지 다 젖었다. 돈은 말렸지만 볼펜으로 기록한 수첩은 결국 버리고 말았다. 종이도 떡이 되었지만 글씨가 피어 하나도 알아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3,300년 후의 종이요, 물감들이었다.
왕들의 계곡에서 직접 확인한 것은 람세스6세와 3세, 그리고 세티1세의 무덤이었다. 다소 크고 작은 차이는 있을지라도 무덤안의 내용이나 모양은 대동소이했다. 미라를 보관하는 관과 그 관을 안치하는 방을 만들고 사방의 벽과 미로 같은 긴 통로의 벽에는 치적을 그려 넣고, 왕생을 비는 산자들의 염원을 신성문자와 그림으로 새겨 놓았다. 다만 미라를 안치한 방을 찾을 수 없도록 미로의 길이와 난이도가 조금씩 다를 뿐이다.
ㅇ 오직 백성과 나라를 섬기다 간 위대한 파라오, 람세스 2세
람세스1세가 왕조(19왕조)를 열었다면 2대인 세티1세는 왕국의 기반을 튼튼하게 다졌고, 뒤를 이은 람세스2세는 번영의 꽃을 피웠다. 여느 왕들처럼 초기에는 많은 전쟁을 치렀으나 점차 이웃나라가 넘볼 수 없는 힘을 키웠고, 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외교력을 발휘하여 전쟁대신 평화를 유지해 나갔다. 이렇게 축적된 전쟁비용은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고 신전을 짓는 등 국가번영의 기초를 다지는 한편, 물산을 장려하고 무역을 터 국부를 축적해 나갔고, 백성들은 각기 타고난 소질을 살려 기술도 발전시키고 문화 창달에도 소홀함이 없도록 했다. 한마디로 통치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다. 이러한 정신과 왕도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파라오’란 신성문자로는 ‘집과 기둥’이라고 한다. 집은 보호해주는 장소를 뜻하고, 기둥은 위대함을 상징한다고 한다. 왕이야말로 군림하는 자가 아닌, 백성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자임을 깨닫고 철저하게 울타리를 쳐주었다. 오직 백성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 왕 스스로가 법을 세워 공정하고 엄격하게 지켜나갔고, 무엇보다 ‘정의로운 나라건설’에 파라오의 일생을 걸었다고 한다. 나라에 질서가 잡히고 정의가 서니, 노력한 만큼 누릴 수 있어, 당연히 나라는 평화로웠고 백성들을 행복했다. 람세스2세의 경우 그렇게 다스린 재위기간이 무려 69년이나 되었다니 이런 곳에서 문명이 탄생치 않았다면 그것이 오히려 불가사이한 일이 아니었을까?
“ 우리는 생애의 매 순간을 이집트에 바쳐야 하오. 그대와 나는 이 땅을 다스리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고, 이 땅을 섬기기 위해서 이곳에 태어난 것이요.”
“섬긴다는 것은 한 인간이 이룩할수 있는 가장 숭고한 행동이지요. 오직 섬김에 의해서만 충만함을 이룰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람세스2세와 왕비 네프레타리와의 대화에 불과하지만, 그보다는 이집트 학자인 프랑스 작가 ‘크리스티앙 자크’가 람세스2세의 치적을 그린, 자신의 소설 <람세스>를 통해 그가 말하고자했던 왕과 왕비로서의 자질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수 천년 전에 이미 이런 훌륭한 지도자를 갖춘 나라였기에 지금도 풀리지 않는 불가사이한 인류문명을 창조했던 까닭이 아닐까 하니 의문의 한 끈이 풀리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소설 람세스는 신왕국시대의 역사와, 문화와, 정치와, 전쟁사를 함께 다룬 이집트 역사소설일 뿐이지만 말이다.
ㅇ 수 천년의 전통을 깬 비련의 여왕 합셑수트
왕들의 계곡에서 돌아 나오면 또 다른 계곡, 멀리 보이는 궁전 같은 것이 여왕 합셑수트의 장제전이다. 사막의 돌산을 등지고 햇볕을 받고 앉아, 밖을 내다보고 있는 모습이 일품이다. 더구나 사방이 사막인 황토흙 속의 청정한 건물이라 돋보이지 않을 수가 없지만, 더 돋보이는 것은 이집트 역사상 최초의 여왕의 장제전이라는 점이다. 18왕조의 투트모세스2세가 죽자 어린왕자(후궁의아들) 투트모세스3세의 섭정을 하다가 스스로 파라오가 된 여왕이었기에 더 인상적이었는지도 모른다.
이곳 여왕의 장제전 벽화에는 전쟁보다는 무역에 주력한 여왕의 치적이 음각되어 있다. 특히 질 좋은 향수를 구하기 위해 외국과 무역한 사실은 파라오의 강인함보다는 부드러운 여성상을 느끼게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 애절한 사랑을 간직한 여왕이기도 하다.
합셑수트 여왕은 18왕조를 연 파라오 아흐모세스의 손녀이다. 그의 부왕인 투트모세스1세는 4명의 자녀를 두었으나 다 죽고 합셑수트 공주만 남게 된다. 당시 파라오의 왕실은 왕가의 피를 보호하기 위하여 근친결혼을 했고, 모계로 상속되는 파라오의 왕권은 왕비우선순위 1위와 결혼하고 있는 동안에만 정통성을 갖게 된다. 따라서 이상적인 결혼은 친형제 자매간의 결혼이다.
그러나 합셑수트 공주는 친형제가 없었기 때문에 이복동생과 결혼했는데 이것이 투트모세스2세였다. 이복동생인 투트모세스2세와 결혼하였으나 남편(이복동생)이 일찍 사망하여 20대 초반에 왕비순위 1위를 유지한 채 과부가 되었다. 그러나 왕통을 계승하기 위해 자신이 낳은 아들이 없어 투트모세스2세와 첩 사이에서 생긴, 아들뻘 되는 어린 왕자와 다시 결혼하게 되는데, 후일 그가 바로 이집트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파라오, 투트모세스3세가 된다.
그러나 파라오가 된 투트모세스3세의 나이가 겨우 9살밖에 되지 않아 왕비가 섭정을 시작하였지만, 자신의 이름으로 통치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불만을 갖게 되는데, 결국 어린 파라오를 신전 안에 유폐시킨 후 실권 장악을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고, 또 성공하여 드디어 여자는 파라오가 될 수 없다는 수천년의 전통을 깨고 만다. 그래서 공식 석상에서는 남장까지 했고 가짜수염도 붙였다고 한다.
이처럼 남보다 피가 뜨거웠던 여왕이 재위기간 중에 사랑하게 된 사람이 평범한 건축가라는 데서부터 비련은 시작된다. 파라오는 지상에 내려온 신이기에 보통사람들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들어내 놓고 사랑할 수가 없기에 환생을 믿고 있는 이들은 내세를 기약하게 된다. 이 건축가는 여왕의 명으로 여왕의 장제전을 건축하면서 여왕의 무덤 옆에 자신의 무덤을 설계했는데, 이 계획이 누설 되면서 죽어서라도 맺어지길 원했던 간절한 사랑이, 불륜이 아닌 애틋한 사랑으로 세상에 회자된 것이다.
당시 파라오의 권능은 소문 따위를 충분히 무시 할 수 있었음에도 파라오에 대한 백성들의 신뢰를 끝까지 지켜주었다. 그래서 내생의 유무룰 떠나 죽어서도 함께하지 못한 이들의 사랑이 더 안타깝게 다가섰는지도 모른다. 음란한 역사로 점철된 우리나라 여왕들의 이야기가 불현듯 떠오르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ㅇ 가이드가 본 공직자들
장제전 이층 계단에 서서 앞쪽을 건너다보면 허름한 흙벽색 건물이 하나 보인다. 무슨 문화재인가 했더니 새로 지은 경찰서란다. 사막 한쪽에 황토언덕을 등지고 지은 흙벽돌집이다. 앞쪽은 지상이나 뒷 쪽은 지하다. 관광객에 대한 과격한 무슬림들의 테러가 잦자, 사람 하나 살지 않는 관광지이지만 아예 경찰서를 하나 세웠단다.
이집트 정부의 제일 큰 세입이 관광수입이고, 관광수입이 국가재정의 40%나 차지하고 있다니 치안은 필수적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런데 경찰서 마당에 보초는 물론, 사람 그림자 하나 볼 수 없으니, 근무는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가이드의 뒷얘기만을 종합하면 하급공무원의 봉급이 우리 돈으로 보통 5만원 정도인데, 안전띠를 매지 않았을 때의 벌금이 무려 2만원이나 된다고 하니, 봉급이 적은 것인지, 벌금이 센 것인지 알 수도 없지만, 그보다 뭔가 안정되지 않은 구조물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 뿐이다.
더구나 벌금은 납부할 때 50%까지 DC가 된다니 이 또한 이해가 되질 않고, 5만원으로 어떻게 사느냐는 질문에는, 팁 문화가 발달되어 거의가 음성수입으로 살아간다고 하니, 부패는 들어보나 마나인 것 같다. 빈집처럼 보이는 경찰서,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인데도 문맹율 40%, GNP 1,300불, 그리고 늘어진 공직자들의 근무 관행이 한 묶음이 되어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어디 공직자들뿐이던가? 언젠가 우리들처럼 한 팀의 외국인 관광객을 태운 버스가 일정에 맞추어 관광지를 순회하고 있을 때, 버스에 대기하고 있어야할 기사가 보이지 않아, 그를 찾느라 큰 소동이 벌어졌는데, 한 시간 후에야 그것도 미안한 표정 하나 없이 어슬렁거리며 세워놓은 버스로 돌아오더란다. 얘긴 즉 버스기사는 무슬림이었고 마침 기도시간이 되어 인근 모스크(이슬람사원)를 찾아 갔기때문이란다. 이 사건 이후로 여행사는 버스기사 채용 시에는 이슬람교도 여부가 매우 중요한 고려사항이 되었다고 한다.
어쨌거나 한국이 좋다고 옹색한 한국생활을 마다하지 않는 멀쩡한 외국인들처럼, 내 이곳에 온지 며칠밖에 되진 않았지만 이들을 이처럼 안타까워하는 것은, 이집트 문명과 이들의 역사를 사랑하는 마음이 내 젊은 시절의 애틋했던 짝사랑처럼, 어느 덧 내 가슴속에 깊게 자리한 까닭이 아닌가 싶다. 위대한 파라오들이요, 백성들이었다. 나라를 섬기고 백성을 아꼈던 그들은 죽어서까지 하늘과 땅을 움직여 오늘날까지 사막의 땅, 이집트 국민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 이 위대한 파라오들은 자신들이 이룩한 문명을 팔아가며 살아가는, 수 천년후의 후손들의 운명까지 그때 이미 다 내다보고 있었단 말인가?
(다음은 마지막으로, 남은 유적 이야기와 3일간의 문명답사를 결산한 제 소감이 되겠습니다.)
.png){kind=logo}
작가의 말
youngp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