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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준의 “기도碁道 강의” | 오로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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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준의 “기도碁道 강의”
글쓴이 원술랑      조회 351   평점 440    작성일 2019-09-07 오후 8:15:00

어느 기인碁人의 말이 “바둑을 노는 것보다는 수필 쓰는 재미가 여간이 아니라”고.

“바둑이란 것은 한번 딱 놓고 나면 물릴 수도 없고 되풀이할 수도 없어서 그날 판세에 맡기는 도리밖에 없지만, 글을 쓴다는 것은 상대방의 위협도 없어 좋거니와, 일 년이나 이태 후일지라도 깎고 고치고 하여 첨삭하는 재미도 있고, 또 쓰고는 잊어버렸던 글을 얼마 후에 다시 읽어 보면 내가 언제 이런 것을 썼던가 싶어서 꽤 흥미를 돋운다”는 것이다.

그는 또 말하기를,

“전문가란 것은 병신이라”고.

“자기가 전문으로 한다는 자부심보다도 전문으로 하는 것이어니 하는 때문에 별반 흥미가 없는데, 전문 이외의 것은 꽤 투기적인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점이 좋다”고.

이 말에는 제법 경청할 여지가 있었다.

그런데 나는 바둑이고 수필이고 모두 전문이 아니면서 괜히 건드리기만은 좋아하는 성미인데, 그러나 어쩐지 글쓰기보다는 바둑을 노는 것이 더 취미가 있다.

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어떤지 몰라도 글을 짜낸다는 것은 정말 고통 중의 고통이다. 깎고, 짓고, 문지르고, 다듬고 아무리 낑낑거려도 자기의 의사표시를 하려면 삼동에도 이마에 땀이 흐르지 않고는 못 배긴다.

오죽 답답하고서야 창으로 들어오는 광선이 아른거려서 덧문을 첩첩이 닫아도 보고, 그리고 나니(그러고 나니) 또 깜깜해서 전등불을 켜도 보고, 그리고 나니(그러고 나니) 또 안방에서 지껄이는 소리가 귀에 거슬려서 원고지며 펜을 들고 산으로 올라가도 보고, 풀섶에 엎드렸노라니 또 개미 새끼들이 넓적다리를 꼭꼭 찔러서 화가 벌컥 나고, 이리하여 내가 여남은 장 원고를 쓸 양이면 농弄이 아니라 십년 감수는 하고야 만다.

이건 내 나이 삼십이 훨씬 넘어 배웠기 때문에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몰라서 그런지, 누구든지 만나면 두고 싶고, 두기로 말하면 집에 불이 나도 모를 지경으로 빠지고 만다.

하찮은 바둑도 두어 보니 거기에도 법이 있고, 요령이 있고, 예의가 있고, 염치도 있는 것이라.

흰 점과 검은 점이 광막廣漠한 지역에 운명의 씨처럼 한 점 자리를 잡고 앉는 것이 바로 철리哲理나 해득될 것 같다가, 차츰 전쟁이 벌어지기 시작할 때면 평온하던 심장이 긴장되고, 적의 포위태세가 점점 줄어들 때는 그만 간조증이 나면서 나도 모르게 오줌을 지리는 수도 많다.

완연히 서편에 공격을 당하는 줄만 알았는데 어느 여가엔지 동편이 포위를 당한다.

이것은 소위 성동격서의 전술이다.

그러다가 전세가 불리하면 점잖게 바둑을 놓고 항복의 뜻을 표한다.

그러나 이것은 신사적인 바둑이다.

어디까지 점잖게 신사적으로 수비를 든든히 하는 것이 능수로, 능수일수록 적을 공격하기를 주저한다.

적이 패한다는 것은, 결산을 해 보면 적이 침략적인 방법으로 덤벼들 때에 한한다. 침략적인 태세를 취할수록 패하는 도수는 잦아진다.

능수일수록 되도록 공세와 침략을 피하고 덕德과 의義로 자기의 지역을 방어한다.

그러나 풋내기 바둑은 출발부터 침략이다. 뿐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상대편을 속일까 하여 갖은 모략(속임수)을 다 쓴다.

침략도 모략도 또 용서할 수 있으나 풋내기는 걸핏하면 물러 달라기가 일쑤요, 심한 것은 바둑을 두다 말고 자기의 실력이 부족하든 덕의심이 부족하든 간에 자기편이 불리한 경우에는 다짜고짜 먼저 얼굴빛이 변하고 그 다음 불평이 나오고 그 다음은 가끔 화를 버럭버럭 내다가, 그러나 그 뿐인가, 후레자식들은 그만 폭력을 쓴다.(요샛말로 테러가 전개된다.) “내ㅡ드런 것, X같은 놈의 바둑 안 두네” 하는 날이면 바둑판이 쏟아지고 주먹질이 건너온다.

이렇게 되면 아찔이다.

바둑을 놀 흥미는 완전히 사라진다.

바둑은 잘 두면 정신수양도 된다.

의협심도 는다. 상대편을 사랑하고 싶은 애타심도 생긴다.

허나 막된 놈이 바둑을 배우는 날에는 처음부터 침략이요, 그 다음은 폭력이요, 그 다음은 친한 친구끼리의 의리를 저버리는 못된 습관만 는다.

아마 이것은 기도碁道에 뿐 아닐 것이다.

전쟁도 그러하고 정치도 그러할 것이 아닐까.

인仁과 의義로써 한다면 전쟁도 정의를 살리기 위하여만 생길 의의가 있고, 또 정의로 나선 편이 반드시 이길 것이요, 정치도 인의仁義로 나서는 편에 인민은 가담할 것이니, 우리 같은 범용한 사람의 생각도 이러하거든, 하물며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이야 무엇보다 먼저 기도碁道의 정신을 체득할 필요가 없을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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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술랑 | 2019-09-07 오후 9:00  [동감 0]    
근원近園 김용준의 “근원수필近園隨筆(을유문화사, 1948)”은 상허尙虛 이태준의 “무서록無序錄(박문서관, 1941)”과 수필 문학의 양대 산맥을 이룬다. “기도碁道 강의”는 “새 근원수필(고전의 향기 듬뿍한 근원수필의 새 모습, 열화당, 2009)”에 수록된 수필이다. 옥중 서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돌베개, 1988)”의 저자 신용복 선생은 ‘서삼독書三讀’이라고 말했고, 일명 ‘인간 국보’라 자칭했던 무애无涯 양주동 선생은 “소 뼈다귀도 몇 번씩 우려 먹는데, 내 얘기를 두 번 우려 먹었다고 뭐가 문제가 되나?”라고 말했다 한다.
원술랑 | 2019-09-07 오후 9:11  [동감 0]    
몇몇 독자들은 “기도碁道 강의”를 기억할 것이다. 1년 전쯤 광장에 올렸던 글이기 때문이다. 내가 볼 때 두 번 읽는다고 손해 날 일은 없을 것으로 사료된다. 백곡柏谷 김득신 선생은 사기 “백이전伯夷傳”만 11만 3천 번을 읽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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