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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 모리, 카르페 디엠, 그리고 의식..
글쓴이 백보궁      조회 926   평점 800    수정일 2018-12-04 오후 10:19:00



톨스토이는 끊임없는 삶의 성장을 모색한 중에 다음과 같은 삶의 지침을 얻었다.

 

죽음을 기억하라.

오늘 밤까지 살라.

동시에 영원히 살라.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라는 의미의 라틴어이다.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로마에서는 원정에서 승리하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행진을 할 때

노예를 시켜 이 말을 큰 소리로 외치게 했다고 한다.

 

인간은 영원히 살 것처럼 산다.

죽음은 아직 오지 않은 먼 미래의 일인 것처럼 생각하며 산다.

그리고 영원할 것 같은 삶 속에서 그 긴 미래를 위한 욕망이 자라난다.

인간의 욕망은 한도 없고 끝도 없다.

그것은 그의 삶이 영원할 것 같기 때문이다.

 

오늘 밤 죽을 사람에게는 욕망이 생겨날 수 없다.

욕망은 언제나 미래를 위한 것이다.

그래서 욕망은 그로 하여금 현재를 살 수 없게 한다.

그러나 과거나 미래는 실재하지 않고 우리의 삶은 현재의 연속이다.

따라서 미래를 위한 욕망은 실존적 삶을 살 수 없게 한다.

욕망적 삶은 신기루와 같은 거짓의 삶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욕망적 삶은 반드시 삶의 허무와 만나게 된다.

중년을 넘어선 톨스토이는 대문호의 명성과 부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삶의 허무를 느끼게 되고 다음과 같이 독백하게 된다.

 

나는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온 세계 모든 작가보다 빛나는 명성을 얻을지도 모른다. 그래, 그게 어쨌다는 건가?”.

요컨대 죽음이 한순간 모든 것을 앗아간다면 명예와 명성이 대체 무슨 소용인가. 그래서 어쨌다는 건가?

 

시한부 삶의 선고를 받은 불치병환자들은 삶의 하루하루가 아주 소중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이전에는 오늘 하루는 내일의 욕망을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하루를, 현재를 그 자체로 직면해 본 적이 없다.

마음은 항상 미래의 어떤 것을 향해 있었기 때문에
현재 그 자체의 중요성이나 소중함을 모르고 살았다
.

그러다가 죽음을 기억하고 나서 하루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현재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모두 시한부 삶을 사는 것이 아닌가.

 

현재를 살아라. 카르페 디엠 Carpe diem

지금 살고 있는 현재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뜻의 라틴어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직 않았다.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현재 뿐이다.

나의 존재는 오직 현재에서만 존재한다.

 

죽음을 기억하고 삶이 소중해지면 현재에 충실해진다.

현재라는 시간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현재를 찾아보면 지금 보고 듣는 여기에 있다.

그러다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거나 미래의 어떤 일을 상상하는 순간 현재는 사라진다.

현재가 사라지다니 나의 존재가 사라진 것인가?

그것은 아니고 현재와 나의 존재가 망각된 것이다.

 

지금 보고 듣고 있는 여기와 과거나 미래의 일을 생각하는 망각상태의 차이는

의식을 자각하고 있느냐 아니냐의 차이다.

의식의 자각, 각성이 있을 때 현재는 나타나고

과거나 미래의 일에 의식이 사로잡히게 되면 현재는 사라진다.

그러므로 현재란 곧 의식의 자각이요 자기 각성이고 자기 존재의 인식이다.

만약에 과거나 미래의 일을 생각하고 있을 때라도

의식의 자각이 있다면 그것은 현재가 된다.

 

꿈을 꾸고 있는 상태를 생각해 보자.

꿈을 꾸고 있는 동안 의식의 자각은 없다.

따라서 꿈속에서는 현재도 각성도 자기 존재의 인식도 없다.

그러나 꿈을 꾸면서 그것이 꿈인 줄 자각하고 있는 자각몽의 상태에서는

의식도 있고 자기 존재도 있으므로 현재의 경험이 된다.

 

의식의 자각인 각성이 나타나면 의식은 서서히 그 존재의 빛을 드러낸다.

그리고 머지않아 의식은 충만해진다.

충만해진 의식은 전과 같은 욕망에 끌리지 않게 된다.

 

톨스토이의 말을 다시 들어보자.

"5년 전 나는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받아들였다.

그러자 나의 전 생애가 변했다.

이전에 욕망하던 것을 욕망하지 않게 되고

오히려 이전에 구하지 않던 것들을 갈구하게 되었다.

이전에 좋게 보이던 것들이 더 이상 중요한 것으로 보이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보이던 것들이 이제는 중요한 것으로 보이게 되었다.

그동안 소위 행운의 무지개를 좇아 살았는데 그 허무함을 알게 되었다.

거짓으로 나를 꾸미는 것이나 여인들과의 타락한 생활이나

술취해 기분 좋은 것이 더 이상 나를 행복하게 할 수는 없었다."

 

여기서 우리는 톨스토이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받아들였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이해할 수 있다
.

그것은 죽음을 기억함으로써 현재를 살고

현재를 삶으로써 의식의 각성을 가져오고

의식의 각성으로써 의식이 밝은 빛으로 충만해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예수가 그의 제자들에게 종종 말씀하신,

너희는 깨어 있으라라는 말의 의미를 알게 된다.

유교의 대학에는 첫머리에 이렇게 나온다.

도재명명道在明明 도는 밝음을 밝히는데 있고

덕재친민德在親民 덕은 사람들과 친해지는데 있고

재지어지선在止於至善 지극한 선에 머무는데 있다.

 

공허한 의식에서 충만한 의식으로 바뀌게 되면

몸이 죽더라도 의식은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의식은 물질이 아니므로 죽지 않는다.

노자가 말씀한대로 곡신谷神은 불사不死인 것이다.

 

선악과만 먹고 영생과는 먹지 못한 인간은

분별집착하는 의식으로서 몸만을 나로 여기고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는 존재가 되었으나

욕망을 버리고 현재를 삶으로써 영생과를 먹고 영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선악과와 영생과는 인간의 의식 상태를 우화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意識이란 말에서 는 선악과이고 (-)은 영생과이다.



https://youtu.be/LQMDf2yoNdA
파워메탈 밴드 카멜롯의 Memento m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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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나세 | 2018-12-05 오전 10:30  [동감 0]    
나자신을 돌이켜보는 좋은 말입니다.
쏠리데오 !
코람데오!

의식(意識)이란 단어를 백과사전에서 찾아보았습니다.
意=선악과이고, 識=영생과인지 부연설명 부탁드립니다.
백보궁 | 2018-12-05 오전 11:33  [동감 0]    
반갑습니다.
솔리데오 코람데오, 첨 들어본 말이라 검색해 봤습니다.
라틴어인데, ‘솔리데오 글로리아’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서 라는 말이네요.

意識은 뜻의 자, 알식 자로 되어 있는데요.
예수님은 나의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소서라고 기도했다고 하지요.
여기서 나의 뜻이 바로 인간 개개인의 의식에서 意에 해당합니다.
나의 뜻이란 에고의 생각이고 말이고 분별을 말합니다.
선악과에서 선악이란 좋고 나쁨입니다.
나라는 에고가 있기에 좋고 나쁨의 분별이 생기고 좋은 것은 애착하고 나쁜 것은 혐오하게 됩니다.
우리는 마음을 먹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먹는 열매의 비유로써 선악과라고 한 거라고 봅니다.
果報라는 말도 있는데 열매과 자를 쓰지요. 果라는 말의 맺은 열매라는 의미와 먹었다는 의미가 같이 내포된 절묘한 비유인 거죠.

識이란 한자도 보면 앞에 말씀언言이 붙어 있습니다.
에고의 뜻과 생각과 언어에 의해 오염된 심식인 거지요.
그런데 이러한 의식에서 에고의 뜻과 생각과 말이 제거되면 순수한 의식이 됩니다.
이 순수한 의식은 개념도 형태도 없기 때문에 시공을 초월하고 생사도 초월하는 거죠.
그러므로 識-言=영생과가 됩니다.
살나세
12-05 오후 1:35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백보궁
12-05 오후 6:02
좀 더 첨언하자면
意=자아(에고)의 분별 개념 생각 언어 의지 등 <- 선악과의 결과
識=의에 의해 오염된 인간의 顯在의식
識-言=순수의식 ->영생과
에덴동산의 선악과도 안 먹고 영생과도 안 먹은 의식 상태는
분별집착이 없으므로 행복한 상태였으나, 인간의 사고가 없는 동물과 같은 상태.
선악과를 먹고 나서 눈이 밝아진건 분별의식이 생기고 인간의 사고의 발달을 가져오나 그 대신 행복을 잃게 되고 번뇌하는 인간이 되게 됨.
성경에는 선악과를 먹은것을 책망하고 영생과를 먹지 못하게 하셨다는 말은
인간적인 해석이 들어간 것으로 저는 봅니다. 번뇌와 죄를 짓게 된 것에 대한 자책인 거죠. 뱀의 지혜=에고의 지혜=사악한 지혜
선악과를 먹은 것은 인간에게 동물에게는 없는 번뇌를 가져오지만 영생과를 먹을 수 있는 자질이 생기는, 영적으로 진화하는 과정으로 저는 봅니다.
동물은 영생의 자질이 없고 인간에게는 영생의 자질이 있지 않습니까.
분별의식은 번뇌를 가져오지만 그 번뇌와 분별을 통해 영생 즉 진리의 나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킹포석짱 | 2018-12-06 오후 9:24  [동감 0]    
새삼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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