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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시대의 프로기사들의 대응과 자세 변환(펌). | 오로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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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시대의 프로기사들의 대응과 자세 변환(펌).
글쓴이 자객행      조회 242   평점 400    수정일 2018-11-04 오후 3:48:00

( 좋은 글입니다. 성격이 비슷하기에 펫북에 엽부님이 올린 글을 퍼옵니다. 엽부님은 광장 기우였고 지금도 끊임 없이 이곳에 관심을 기울이시는 줄 압니다. 바둑은 바둑진흥업법을 매게체로 이런 사고를 하는 분들과 프로기사 개발자들이 팀을 이뤄 연구팀을 이룰 때 물적 지원을 하는 방식으로 바둑인들의 적극적인 생각의 변환이 필요합니다)


한가한 일요일.. 앞으로 바둑이 영원하고 이 모임도 영원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인공지능에 대해서 제 나름 써보겠습니다.
제 글의 서두에 꼭 들어가듯이, 이 글 역시 제 개인의 생각이고, 그 바탕이 무지하며, 약간 은둔해서 살다시피 하는 저의 생활이라서, 남들이 다 아는 내용을 나만 모르고 쓸 수도 있고, 일부 거슬리는 부분도 있을 수가 있으나,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 말할 자유가 있으니 ^^! 이쁘게 봐주시고, 살살 지적해 주시면 수정 내지 삭제하겠습니다. ^^!

여러분은 바둑을 관전자 입장에서 보면, 본인 급수보다 한두 급수 높게 본다는 말을 들어 봤을 겁니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세요? 제 나름의 생각을 말하겠습니다.
사람의 사고에는 관성(慣性)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생각의 관성이란, 바둑의 기풍이나, 습관, 고정관념과는 다른 겁니다.

지금부터 한판의 바둑에서 일어나는 생각의 관성에 대해서 말하겠습니다.
한판의 바둑에서 대국자는 처음부터 자기 수에 의도를 가지고 두며, 상대 수 역시 자기 의도 내에서 분석하고 예측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과정에서 다음 수를 생각하는데 있어서, 바로 이전의 수는 물론 처음의 첫수에 이어 그 후에 놓여진 모든 수에는 자기 의도에 대한 잠재적 연속성, 결정에 대한 책임, 오기, 자기합리화 등 딱 하나로 표현하기 애매한 무엇이 관성처럼 작용을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대국자의 진행형(進行形)의 사고는 거의 그 관성을 이기는 것 같지만, 실상은 애매한 일부분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수의 의도에 그 관성이 작용하여 승부에 영향을 미칩니다.

단순한 예로, 다음 수의 착점 중에, A수는 확률 59%로, B수는 확률 61%. 그런데 생각의 관성이 영향을 미치면 A수는 확률 62%로, B수는 확률 57%로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다음 선택의 착수도 달라집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머리를 때리는 무엇을 못 느끼겠습니까? 
그런 사고의 관성이 0(zero)인 것이 바로 인공지능 AI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그런 생각의 관성과 두뇌의 피로 등이 합쳐져서, 한수 한수 선택의 확률에 영향을 주어서, 한두 급수를 인공지능에게 지고 들어가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고수든 하수든 옆의 관전자는 중립의 사고에서 처음부터 객관적으로 양 대국자의 수를 보았기 때문에, 생각에서 그런 생각 관성의 영향이 적다는 겁니다.
물론 니편 내편 나누어서 보면, 그 중립성에 중대한 영향이 있지만요.. ^^

이 생각의 관성은 중립의 사고에서 나오는 확률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런데 하수일수록 그런 생각의 관성이 강합니다.
그래서 하수일수록 객관적인 시각이 적고, 양 눈에 가리개를 한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갑니다.

지금부터 쓰는 글은 진짜 무지한 생각과 순수한 마음에서 쓰는 글이니 거슬려도 너무 욕하지 마시기를...^^

나는 바둑인들이 정말로 바둑만 잘 두는 사람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불과 이십 년 전에 딥블루의 체스 정복 때, 바둑인들이 무어라고 하셨는지들 아세요?
『바둑은 19x19=361, 경우의 수 361!(팩토리얼), 그래서 아무리 컴퓨터가 발전을 해도 바둑을 정복할 수가 없다.』 고 했습니다.

그런 바둑에 “알파고“라는 감정도 없고 생각도 없는 바둑강자가 나타난 겁니다.
그런데 20년 만에 나타난 인공지능에게 그 바둑인들은 항복을 넘어서 이제는 존경까지 합니다. 
물론 AI의 수가 기존의 바둑의 개념을 깨는 수들이 많고, 그 승률이 압도적이니, 그 수들을 연구하는 것을 뭐라 하는 것이 아니지만, 바둑인들의 문제점으로는 심각하다고 봅니다. 
다들 알다시피 바둑은 첫수부터 거의 모든 수가 연관되어 있고, 그 배석에 따라서 그 놓임의 가치가 다 다른데, 복기 한 번 못하는 인공지능의 수를 연구한다고요?

물론 인공지능의 영향으로 다양한 수의 확대에 따른 바둑의 발전은 있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바둑인들의 근본적인 사고의 패러다임 발전은 미미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 인공지능의 진짜 가치는 따로 있는데, 지금의 많은 변화에 만족의 착각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지금의 컴퓨터는 냉정히 보면 바보상자입니다. 더하기 빼기 등 연산과 비교 그리고 용량 이내의 100% 기억능력이 전부입니다. 그것의 조합이 프로그램입니다. 그것을 조합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컴퓨터라도 현재의 AI는 사람의 뇌와는 비교가 안 되는 겁니다.
간단? 복잡?한 예를 들겠습니다.

신이 관장하는 전쟁터?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바둑으로 전쟁의 승패를 가릅니다.
그런데 신이 내놓는 바둑판이 19x19가 아니고 17x25, 20x30 등 그때 그때 무작위입니다. 
그리고 어떤 판들은 “ㄱ”, “ㄷ” “ㅁ” 자 등 여러 형태입니다. 
그러면 이때, 우리나라 대표로 AI를 보내겠습니까? 아니면 7급인 저를 내보내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전쟁터에서는 제가 인공지능을 이길 수 있을지 몰라도, 이세돌이는 죽어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AI를 폄하하거나 바둑인들과 다투고자 하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왜 전문 바둑인들은 그렇게 쉽게 항복을 하며? 왜? 그런 인공지능에 대해서 오기나 호기심이 없느냐는 겁니다.

역사적으로 수학자 물리학자 등 과학자들 뿐 아니라 모든 이공계통의 사람들은 아무리 어렵고 불가능해 보여도 연구하고 해결을 합니다. 도저히 불가능한 부분은 그것을 대체해서 비슷하게라도 일단 만듭니다. 그중의 하나가 지금의 AI라고 봐도 됩니다.

여러분들은, 왜 같은 컴퓨터바둑 분야에서,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아무에게나 질 수 있었던 “돌바람”이 현재에는 아무에게나 이길 수 있는 AI가 됐는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개발자가 다릅니까? 컴퓨터성능 때문이라고요? 
아닙니다. 컴퓨터성능은 당연히 그것을 이루는 조건은 되지만, 핵심은 그 프로그램알고리즘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어찌해서 전 세계의 모든 바둑프로그램이 불과 2년 만에 전부 초고수로 상향 평준화가 됐겠습니까? 그것은 알고리즘 즉 무식?하게 표현하면 방법이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저는 이른 학교 중퇴로 학연이 없고, 어학이 딸려서 외국 서적이나 외국 사이트의 자료를 볼 수가 없어서 그러니 아래 물음에 아시는 분들은 답글 부탁드립니다.
과연 AI는 계가를 할까요? 한다면 한판의 언제부터 할까요.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어떤 기준으로 계가를 할까요?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어떤 기준으로 승률의 확률을 낼까요? 
그렇게 똑똑한 AI가 왜 축이나 사활에서 (드물지만) 오류가 난다고 할까요?
궁금하지 않습니까? 다들 아시고 있는 것을 저만 궁금해하는 겁니까?

컴퓨터바둑의 제일 큰 무기는 놓아보기입니다. 그 속도는 도저히 사람이 따라갈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러나 사람의 머리는 다행히 필요와 불필요를 구별해서 걸러서 경우의 수를 줄일 수 있습니다. 그래도 과다한 놓아보기에는 역시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면 과연 컴퓨터는 모든 수를 다 놓아볼까요? 아닐 겁니다. 
경우의 수는 수십!(팩토리얼)만 넘어가도 현재의 컴퓨터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컴퓨터 역시 놓아보기 속도 능력 내로 경우의 수를 줄여야 합니다. 
그것의 시초가 바로 초기 알파고의 과거 기보습득이었고, 그다음의 발달이 그것을 기본으로 한 놓아보기 학습을 통한 인공지능바둑 알파고제로라고 봅니다.
제 생각으로는 기존의 초기 알파고의 기보를 통한 기본입력이 없었으면, 알파고제로의 학습도 없었을 거라고 추측합니다.

무식한 제가, 아주 무지한 저만의 생각을 말하겠습니다.
알파고 포함. 인공지능바둑이 더이상 발전하지 않고 그대로인 상태에서, 바둑기사들이 인공지능바둑의 알고리즘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것을 깰 방법을 연구한다면, 분명 인간이 어느 순간 한번은 인공지능바둑을 이길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저는 그때부터가 바로 인공지능바둑의 또 다른 시작이라고 봅니다.
이 말은 반대로 인공지능 바둑의 발전 또한 앞으로 무궁무진할 수가 있다는 뜻이 됩니다.
그리고 내 100원? ^^! 걸고 장담하는데, 그 연구들을 깊이 하면, 그 과정에서 정말로 근본적인 바둑사고의 메커니즘이 또 다른 단계의 발전을 볼 것입니다.

알파고 개발자 허사비스는 “나는 알파고가 왜 바둑을 잘 두는지 모릅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컴퓨터가 사람 머리의 학습 메카니즘을 흉내 내서 학습을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판단처럼 보이는 결정을 하지만, 실제 알파고가 실제 바둑의 얼마 깊이까지 왔는지 모르고 알 수도 없다는 겁니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인간 역시 바둑의 수가 어디까지인지 모르는 것도 사실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둑의 제일 큰 장점이기도 합니다. 바둑이 오목 같으면 재미있겠습니까?

바둑의 궁극적인 절대의 길은 딱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361!(팩토리얼)의 다 놓아보기에서 나오는 절대 흑, 백의 덤을 찾아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이 만든 바둑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겁니다.
바둑의 묘미는 상대가 있고, 그 상대와의 승부와 또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두뇌 싸움에서 일어나는 그 재미가 목적이지, 아무 의미 없는 이기고 지고의 수를 찾으려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달리기와 자동차를 빠르기로만 비교를 하는 것이 의미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은 실패와 불가능을 연구하고 극복하면서 모든 것의 발전을 이루어 왔습니다.
그런 의미로 지금의 바둑인들은 해야 할 것이 태산이라고 봅니다.

우선 인공지능의 알고리즘을 연구하고 그것을 깰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인공지능을 이기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것은 앞으로 다가올 인공지능 바둑의 발전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사람이 단일로는 도저히 인공지능을 이길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올 것입니다. 자동차를 사람이 이기지 못 하듯이..

지금도 인공지능을 이용한 사기 대국에 대해서 말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마라톤 대회에 전부든 중간 중간이든 자전거를 타고 시합을 하는 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빠르기만을 본다고 하면, 자전거는 자전거끼리, 자동차는 자동차끼리 해야 재미가 있지요.
그러나 바둑이라는 것이 들어가면, 다 재미있습니다.
바둑의 재미란, 하수는 몇 점 깔면 되고, 페어바둑은 꼭 상수끼리의 조합이 이기는 것이 아니고, 또 최고수들의 바둑은 그 깊고 오묘한 바둑의 묘미를 느낄 수 있어서 더욱 좋습니다.
그런데 컴퓨터가 거기에 가세를 하면, 더욱더 다양한 조합으로 또 다른 많은 재미가 창출될 수 있다고 저는 봅니다.

저의 혼자만의 예상으로 향후의 바둑은 인간의 호기심과 승부욕 등이 합쳐져서, 앞으로 100년 ^^! 안에, 개인이나 단체 또 국가 간에, 무한 체급의 인공지능 바둑대회, 제한 체급의 인공지능 바둑대회, 계산기를 소지한 바둑대회 등등이 수없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여기서 체급이란 하드웨어 즉 메인 칩 개수, 속도, 메모리 용량 등을 말합니다.
(여기서 유기적인 컴퓨터의 등장은 예외로 봅니다.) 
그리고 그 체급은 단체나 나라의 기술력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체급 제한을 두면 진짜로 사람의 머리가 중요하게 됩니다.
그리고 바둑 계산기란 Stand alone 방식의 단일 컴퓨터에 단일프로그램으로 인간이 어렵고 피곤한 부분의 수읽기는 컴퓨터 프로그램의 힘을 빌리는 방식으로 대결을 하는 것이지요. 
한마디로 인간과 인공지능의 결합이지요. 그리고 인공지능과의 페어 바둑 등등...
잘못하면 바둑이 전 세계적인 게임?으로 발전할지도 모릅니다. 
헛소리 말라고요? 에이~ 꿈도 못 꿉니까? ^^
이 모든 것은 바둑의 무궁무진한 수 때문에 가능한 생각이라고 봅니다.

만약에 이런 상황이 온다면, 바둑인들의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바둑인들이 더 필요해지고 분야가 넓어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바둑인들이 인공지능을 보고 바둑의 수가 발전을 하듯이, 바둑인들이 인공지능의 개발이나 활용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여 발전시킨다면, 그 기술이 다른 분야의 인공지능의 발전에도 또 다른 역할과 도움을 줄 것이라고 저만? 생각합니다.. ^^

앞으로 바둑학과에서 인공지능 바둑을 위한 컴퓨터공학이 필수가 될지도 모릅니다.

바둑인 여러분. 인간이 만든 가장 복잡한 놀이라는 바둑에 자부심을 가지시고, 미래의 바둑을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추가-

지금부터 진짜 황당한 말을 하겠습니다. 그리고 일반 사람들은 절대 보시면 안됩니다. 낚시냐고요? ㅎㅎ

여러분들 중에 일부 또는 많이 아시는 푸엥카레의 추측이라는 100년 전의 공간형태의 추측을 2000년대에 들어서 소련의 천재 수학자가 증명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증명 당시 수학과 물리적인 이론을 섞어서 증명하였는데, 세계적인 수학자와 과학자들이 그 증명을 듣고, 완전히 이해하고 인정하는데 1년이 넘게 걸렸답니다.

여러분들은 다수가 무조건 옳다고 믿습니까? 특히 전 세계의 최고들이 인정하면 무조건 맞다고 보십니까? 물론 99.999999% 맞을 겁니다. 그러면 0.0000001%는 요? 사람들은 수만 년 동안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수학은 자연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고, 기호로 만들어서 그 역할을 주고 정의를 내려서, 그것을 조합하는 학문입니다. 
그렇기에 그 발전된 조합으로 모든 자연에 적용해서 그 자연을 예측하고 또 다른 자연의 원리를 밝힙니다.
그러나 그 이상을 벗어난 자연을 만나면 오류가 일어납니다.

푸엥카레의 추측은 3차원 공간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그 경계라는 4차원의 개념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1차원인 線에서는 2차원인 面을 설명하거나 상상을 못 하고, 2차원인 面에서는 죽어도 3차원의 空簡을 표시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는 겁니다. 
그런데 어찌해서 4차원과 경계를 한 3차원 공간을 추측하면서 그것을 증명한다는 말입니까?
제 말은 우선 3차원과 4차원이라는 상위차원과의 경계를 3차원적으로 추측해서 증명 못 하면 3차원 공간의 추측은 그 의미가 없다는 겁니다.

원래 무한이란 존재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시작과 끝을 생각해야 하는 것은 모두 원으로 이루어지고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렇듯 2차 평면의 선은 원을 이루어야 면과의 경계가 없고 그 선의 존재가 설명되고, 그것을 품은 2차원 평면 역시 구가 되어야 3차원 공간과 경계가 없이 차원이 나누어질 수가 있는 겁니다.
그래야 그 차원들의 크기가 결정되고, 그래야 그 차원이 품은 하위의 차원이 유한의 갯수로 존재하는 겁니다.

거기서 더 나아가면 각 차원도 “존재를 한다”라고 한다면, 그 존재의 두께를 인정해야 하고 그것이 두 개 이상으로 겹치면 상위차원이 된다고 가정하고, 또 그리되어야 그나마 자연의 형태를 설명하고 이해할 수가 있는 겁니다.

2차원 평년에 1치원 선이 존재하려면 두께를 인정해야 하고, 그것이 겹치면 2차원인 면이 돼야 합니다. 
그래서 일차원 원이 1차원 선으로 존재를 하려면, 반드시 내부와 외부에 2차원이 경계로 존재해야 합니다.
그러나 냉정히 말하면 이차원 면이 일차원 원을 품은 겁니다.

그래서 한 면에 있는 다른 두 개의 일차원 원이 겹치는 경우가 없는 겁니다. 
왜냐하면, 두 개가 겹치는 순간 두 개의 선이 겹치므로 그 부분은 2차원 면이 되어서, 결국은 그 두 원이 합쳐져서 하나의 큰 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3차원의 인간이 3차원적으로 생각하는 겁니다.

공간 즉 천체의 비밀은 그 경계에 있습니다. 그 경계는 바로 양자입니다.
빅뱅은 폭발이 아닙니다. 그리고 중력 상수는 변합니다.

여기까지 읽으신 분은 일단 그 인내심은 대단하신 겁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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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벳 | 2018-11-04 오후 5:37  [동감 0]    
너무어렵고 길어서 못일긋어요 미안합니다.점수만 드리고 갈께요...
참나이런 | 2018-11-06 오후 4:20  [동감 0]    
열심히 읽었는데 뭔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자객행 | 2018-11-08 오후 2:57  [동감 0]    
시간이 멈춰버린 착각.

20세기 초반의 등반가 킨스호퍼는 낭가파르밧을 등정하고 하산 할 때 바즈인 분지에서 이상한 현상을 겪는다. 아이젠이 벗겨져 자신의 아이젠을 다시 묶는 것이 당연한데도 킨스호퍼는 자신이 눈밭이 아닌 6월의 담배밭을 걷고 있는 줄 알았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50년 후 단독으로 낭가파르밧에 올랐던 라인홀트 메스너는 8부 능선의 암벽을 오를 때 앞뒤로 몇명의 다른 등반인들이 함께 오르는 착각을 했다고 한다.

산악인들이 말하는 죽음의 지대에서 만나는 색다른 경험담이다. 메스너는 죽음의 지대를 건널 때 마다 영혼의 깊은 고양을 느꼈다고 한다. 강력한 엑스터시 즉 몰입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몰입은 시간이 멈춰버린 착각의 크로노스타시스와는 다르다. 시간이 멈춰버린 착각은 시간경험의 장애인 코타르증후군 환자의 증상일이다. 이 환자는 나는 없고 심지어 현실속에서 나는 죽었다고 믿을 정도인데 대체로 회의와 자기 비관이 강한 사람들에게 나타난다.

몰입과 크로노스타시스는 다르다.
이 몰입이 동양의 고전 춘추에 여러번 등장하는데 샤먼이 구우(求雨)를 하는 장면에서 압권으로 등장한다. 샤먼은 팔월 땡빚 아래서 비기 오기를 원하며 한바탕 신명의 춤을 추는 데 그 동작 하나 하나가 천변만화로 주변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 기묘한 춤 동작을 기록하기 위하여 한자 삼천자를 아는 서학동(書學童)이 필요 했는데 이들이 훗날 사관(史官)이 된다.


이 기우제에서 실패한 샤먼은 팔월 땡빚 아래서 처형으로 화형을 당했고 또 다른 샤먼이 나름의 창작 무(舞)를 선보이며 신명의 무대에 데뷔를 한다. 비는 과연 내릴 것인가. 샤먼이 호명하면 하늘은 맞장구를 쳐 줄 것인가.

고대의 샤먼의 폭무(暴舞) 의식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자 바람이 분다.
강가의 갈대숲이 비바람에 난분분 쓰러진다.
이곳에 홀연히 등장한 샤먼은 의미 없는 어떤 성어(聲語)를 위치며 끊임없는 주문을 건다. 그의 곁으로 흑백의 두 마리 개가 다가와 갈대숲을 향해 하울링을 투사한다. 의미 없는 의성(倚聲)은 백왈 흑왈(白曰黑曰)의 삼중주로 세찬 비바람을 타고 아득히 먼 곳으로 사라진다.

우리가 사랑하는 개는 시간여행을 할 수 없다는 연구가 있다. 개를 사랑하는 나는 내가 사랑하는 애완견이 나와 함께 즐거워했던 어제의 기억을 하지 못한다(연구자 토마스서전포트)는 것을 애석해하며 애완견 밍키를 앞세우고 산책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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